36화. 의뢰
“하지만, 우리 학교 정도면 다른 학교들에 비해 문제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강문고를 비롯해 강남, 서초권의 학교에는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이 많지는 않았다.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다른 학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학교폭력은 예를 든 것뿐이에요. 그걸 비롯해 여러 잘못들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경우들도 있겠죠.”
이사장은 나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강 선생님이면 제가 말하는 게 어느 분야를 말하는 건지 감이 오실 거라 생각해요.”
그 웃음 뒤로 내 비밀을 캐내려는 것 같아서 몸이 움찔 움직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딱히 말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걸 하면 됩니까?”
“지금처럼 학생들을 가르쳐 주세요.”
이사장은 짐짓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이 맡고 계신 3학년 3반 학생들, 내년에 맡게 될 새로운 학생들, 그리고 2년 뒤, 3년 뒤에 맡게 되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지금처럼’ 가르쳐 주세요.”
“입시 위주의 공부를 말씀이신지요?”
“입시면 돼요. 단, 지금처럼요.”
나는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갔다.
왜냐하면 슬슬 내 기억 속에서 강은숙 이사장이 미래에 어떻게 되었는지 떠올랐으니까.
<강남 명문고 이사회, 이사장 퇴진 결정>
앞에 있는 이사장이 기억 속 사학비리 폭로 사건과 연관되어 연상되지 않았던 이유. 그건, 비리 폭로 사건 전에, 이사장 자리에서 퇴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위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때까지도 나는 학교의 여러 일들을 도맡아 했었고, 몇몇의 입시 비리를 눈감아주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오로지 그 일을 어떻게 하면 나중에 문제로 삼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사장의 문제는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지금처럼 입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 최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선 이사장이 바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야 나도 바라마지 않지.’
어차피 폭로 사건 전까지 내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최대한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했다.
“고마워요. 그거면 됩니다.”
이사장은 만족한 듯 옅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늦었으니 저도 체육관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먼저 가 봐요.”
몸을 돌리고 나가다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이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사장님, 먼저 먹고 간 학생들, 선생님들을 대신해 감사 인사 드립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도 대회가 너무 재미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이사장은 명함을 하나 꺼내서 내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뒷돈이라도 받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체육관을 향해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쌤, 정리 끝났어요!”
체육관에 도착하자 이미 책상, 의자, 용품 등을 모두 정리한 은장이가 달려왔다.
“벌써 다 했어?”
“이제 교무실에 옮겨두기만 하면 돼요! 정석이랑 동석이도 도와줘서 금방 끝났어요.”
나는 구석에서 의자를 한 손에 여러 개 들고 이동하는 정석이와 동석이가 보였다. 동석이는 많이 들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힘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학생들만 고생시키고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요?”
박 선생이 나를 나무라듯 부르면서 다가왔다. 박 선생도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힘을 썼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이사장님하고 대화가 좀 길어져서……. 박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총괄책임자님께서 사립학교 이사장님과 식사 후 면담하시는데 제가 해야죠.”
어쩐지 말에 가시가 돋친 것 같았지만 살짝 무시했다.
“지석 선배는요?”
“방금 류지훈 선생님이 부르셔서 먼저 교무실로 가셨어요. 아직 퇴근은 안 하셨을 걸요?”
류지훈이 갑자기 지석 선배를 불렀다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불렀을지 잠깐 생각해봤다.
‘그냥 궁금한 게 있었을지도 모르지.’
기말 시험에 수행평가 참관수업, 대회 준비 및 실행까지, 빠르게 몇 주를 달려 오다 보니 이제 잠깐 쉬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불금에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그리고 정석이랑 동석이.”
“네.”
두 학생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녀석들을 가리키면서 강조했다.
“오늘 했던 행사 내용들은 협력 요소 평가로 넣기 좋으니까 각자 어떤 내용들 넣으면 좋을지 고민해와. 은장이는 내가 구상해줄 거니까 걱정 말고.”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마지막으로 옮길 물품들을 들고 교무실로 향했다. 박 선생도 상자를 하나 들고 같이 걸어갔다. 은장이가 계속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런 은장이를 보면서 학생부에 기재할 멘트를 떠올렸다.
[고3 수험생이라 바쁜 와중에도 후배들과 학우들을 위해 대회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뒷정리 때에도 끝까지 남아서 선생님들을 도우려는 적극성을…….]
* * *
심지석은 이사장이 초대한 식사 자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류지훈의 전화를 받았다.
“……알았어.”
류지훈과 입사 동기인 심지석은 류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일한 동기였기에 가끔 식사도 같이 하고, 커피도 마시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요청으로 류지훈을 만나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평소 류지훈은 후임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강명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무언가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왔어? 대회 재밌었다야.”
평소처럼 밝게 웃으면서 캔음료를 건네는 류지훈을 보면서 심지석도 씨익 웃었다.
“재밌었냐? 다행이다.”
“재밌었지. 학생들이 그렇게 귀엽게 연기하는 걸 또 언제 보겠냐? 요즘 축제도 대충 하는데. 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류지훈은 말을 하다 말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그가 갖고 있는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심지석은 그런 류지훈을 보면서 의외라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나저나 웬일이냐? 네가 후배한테 관심을 다 갖고.”
“어, 이번 대회도 그 선생이 준비했다며?”
캔 뚜껑을 따면서 류지훈이 말했다.
“사실 그 전에 나한테도 이것저것 물어본 적이 있거든.”
“명문이가?”
“응. 김은장 알지? 3학년 3반 반장.”
심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은장이랑 걔네 부모님에 대해서 물어봤었어. 주말에 걔가 당직설 때였던 거 같은데.”
아마 강명문이 김은장의 정보를 얻기 위해 류지훈과 대화를 했던 그때였을 것이다. 심지석은 그렇게 확신하고서 류지훈이 준 캔음료의 뚜껑을 땄다.
“너 걔랑 친하지 않아?”
“친하지. 학교 선후배니까.”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심지석은 류지훈이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긴장했다.
“뭔데?”
“강명문 선생, 어떤 사람인지 좀 알려 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달라는 건 아니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왜 교사가 됐는지, 강문고에서의 목표는 뭔지, 뭐 이런 것들.”
팔짱을 끼며 류지훈은 말을 덧붙였다.
“매일 단위로 뭐 했는지 본 만큼만 보고해 주면 더 좋고.”
“……누구 지시냐?”
류지훈의 부탁 내용을 듣자마자 심지석은 수상쩍음을 감지했다. 류지훈도 그런 속내를 숨길 생각은 없는지 입맛을 살짝 다시면서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건 지금 알려 주긴 좀 그래.”
“그럼 나도 못 하고.”
“공짜는 아니지 당연히.”
심지석의 앞에 작은 봉투가 하나 놓여졌다. 류지훈은 봉투를 열어 보라고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
봉투를 열어 본 심지석은 놀라서 의자 위로 털썩 주저않았다.
“……진짜 누군지 말 못 해?”
“지금은 안 돼. 네가 믿음을 줘야지.”
심지석은 봉투 안에 담긴 금액을 손가락으로 세게 쥐었다.
무려 50,000,000원.
자기앞수표로 찍혀 있는 금액은 평교사인 심지석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이 아끼는 후배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어렵게 입을 뗐다.
“그래도 역시 못하겠다. 내가 어떻게 걔를…….”
“지석아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
류지훈은 알고 있었다. 평생 평교사만 하고 살아남는 길이 있고, 부장급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한 건 평교사로 쭉 살아가는 길이었다.
담임이나 부장급이 되면 몸은 힘들더라도 몇십 정도는 더 벌 수는 있었다.
하지만, 교사가 더 많은 급여를 얻을 수 있는 길은 그 이상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교장 되어 봤자 남는 것도 없고.’
류지훈은 벌써부터 자식들을 유학 보내려고 준비하는 아내를 떠올리면서 심지석의 어깨를 둘렀다.
“교사 월급 평생 벌어봤자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하면 끝이야. 요즘 물가 많이 오른 거 알잖아.”
“……그래서 하는 거냐.”
“연금은 앞으로 까마득한데 당장 쓸 돈은 어디서 마련하냐? 그러니까 이런 거라도 해야지.”
류지훈이 주머니에서 두 번 접은 메모지를 꺼냈다.
“친구니까 너한테 먼저 이야기하는 거야. 가족들 생각해라.”
심지석은 그 종이를 받아들고 펼쳐 보았다. 종이에는 전화번호 하나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결정하면 여기로 전화해. 1주일이라 그러더라.”
심지석은 손을 흔들면서 사라지는 류지훈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작은 봉투가 꾸깃 짓눌리며 고요한 교무실 속에서 소음을 만들어 냈다.
* * *
이번 주말은 원 없이 쉬면서 보내려 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빗발치는 전화와 문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태성이 같은 경우에는…….”
입시 상담을 해 주기도 했고
“조만간 학교에서 논술 특강이 열릴 겁니다. 정아도 논술을 한다면…….”
학교에 오픈될 특강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입시 코디를 하던 시절에도 중간중간 학부모들이나 학생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그때그때 받아 줬었다.
그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전화통화를 받다 보니 어느새 일요일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조금 그립네.”
바닥에 깔아둔 이불 위로 풀썩 쓰러지면서 핸드폰을 그 위로 던졌다.
예전처럼 학원 입시 컨설턴트를 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회귀하기 전인 그 삶이라면?
‘그래도 지금이 낫지.’
어느 정도 일타강사가 아닌 이상에야 입시 컨설턴트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메뚜기 한 철 장사였다.
수시나 정시를 지원하는 시즌이 아니면 딱히 고객들도 그들을 찾지 않았으니까.
‘큰돈은 못 벌지만.’
평생을 학생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직업이지만, 고정된 월급이 가지는 맛은 꽤 쏠쏠하다.
“아, 그래도 이렇게 상담해 주면 인센도 주고 그러면 좋겠다!”
주말 내내 전화를 받아 준 일들이 조금 억울해서 소리를 질렀다. 입시 코디였으면 이들 상담만으로 벌써 몇 백만 원 이상은 벌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다시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우우우웅!
“아 또 누구야!”
역정을 내면서 핸드폰을 보니 지석 선배였다.
[바쁘냐?]
“저 여태 학부모, 학생들 전화상담 해 줬습니다. 죽겠어요. 교사 복지 없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지석 선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딱 시즌 시작 직전이니 어쩔 수 없지. 잠깐 괜찮으면 저녁이나 먹자.]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