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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35화 (35/252)

35화. 불편한 듯 불편하지 않은

체육관에서 함성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학부모회장은 체육관 가장 뒤편에서 시사RPG대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방금 참가상을 받은 참가자 전원들을 향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녀는 지금도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자기 아들을 떠올렸다. 아들인 나명천은 말주변이 좋지 않아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을 꺼려했다.

그리고 그런 학생은 나명천뿐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오늘 대회에 참가한 NBA팀. 이 팀에서 비트겐슈타인을 맡은 학생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2학년이었지만, 학부모회를 하다 보니 각 학년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성적은 좋지만, 평소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라는 학부모들과 교사들 사이에서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저 아이가 저렇게 토의를 했다고?’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설마 이것도 강명문이라는 선생의 영향인가?’

학부모회장은 강명문이 건드리거나 가르친 학생들이 무언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집중했다. 정말 강명문이 특출난 실력이 있다면, 놓쳐서는 안 되었다.

“회장님.”

자리를 같이한 운전기사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수상이 끝나고 하나둘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가죠. 그리고 저 강명문이라는 사람 조사 좀 해 보세요.”

“그게 누구입니까?”

그녀는 멀리서 의자에 붙어 있는 좌석 표시 종이를 뜯고 있는 남성을 가리켰다.

“저기 의자에서 종이 뜯는 사람이요.”

“알겠습니다.”

“그 전에 연락부터 해 주세요.”

그 말에 운전기사가 알겠다며 확인 차 물었다.

“문자 보내두겠습니다.”

“아뇨, 전화로 하세요. 무슨 이야기했는지 기록 남길 거예요?”

학부모회장의 표독스러운 말투에 운전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성급했습니다.”

“됐어요. 연결이나 해요.”

그녀는 운전기사로부터 핸드폰을 건네받고 귓가에 가져갔다. 몇 번의 통화연결음이 들리고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반대편 전화기의 주인이 응답했다.

“네, 류지훈입니다.”

* * *

우리는 대충 체육관을 정리한 후 한 교감의 인도에 따라 이사장과의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예약한 장소는 학교 근처의 중식당이었다.

평소에는 간단히 짜장면만 먹던 식당에 들어온 학생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쌤 저 라조기 시켜도 돼요?”

“저는 유산슬!”

너나 할 거 없이 비싼 메뉴를 선택하는 녀석들에게 주의를 주고 식당 안쪽 홀에 자리한 이사장을 찾으러 갔다.

“안녕하십니까, 이사장님.”

“힘들었을 텐데 어서 앉죠.”

이사장은 싱긋 웃으면서 점원을 불렀다.

“메뉴는 제가 적당히 주문했으니까 나올 거예요. 학생들 먹을 음식도 주문해뒀어요.”

“감사합니다!”

민주가 이사장 앞에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런 민주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이사장이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편하게 먹으라며 격려를 했다.

이사장은 식사 메뉴를 하나씩, 그리고 요리 메뉴를 여러 개 주문해둔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들어올 때 물어봤던 유산슬, 라조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대회 준비를 도왔던 은장이와 민주는 물론이고 금상을 수상한 동석이와 정석이 등 시간이 되는 학생들이 모두 자리했다.

“천천히들 먹어요.”

이사장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는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억에 없어.’

그런 이사장의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과거의 사건에서도 특출난 무언가를 보여 준 기억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억 속 이사장은 잠깐 지나가는, 높은 위치의 인물 정도였으니까.

“선생님들도 앉으시죠.”

우리는 이사장이 따로 마련한 홀에 자리했다. 학생들은 홀 밖에 앉아 있어서 우리는 완전히 분리된 공간 안에서 이사장, 한 교감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인상적이었어요.”

이사장이 깐쇼새우를 하나 집으며 말했다.

“정말 학생들이 적극적이더군요. 따로 과외라도 하셨나요?”

이사장의 질문에 나는 물컵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사장의 표정이 제법 부드러워서 나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그냥 학생들이 재미있어할 것 같았습니다.”

“재미있어할 것 같았다?”

“네. 지금 시점에서의 학생들은 대회라고 하면 거부반응부터 보이기 마련입니다.”

지금 시점이라는 건 학생부종합전형이 자리 잡기 이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는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 수시 접수 직전을 의미했다.

그 부분을 파고들어서 대회 컨셉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을 대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RPG는 게임 장르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해서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사장은 점점 음, 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교감 선생님께 대회 승인을 요청 드렸습니다. 위인들 선정에도 도움을 주시기도 하셨고요. 덕분에 바쁜 시기지만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한 교감의 칭찬도 잊지 않았다.

“우리 교감 선생님이 이렇게 학생들을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저도 교육자 아닙니까, 이사장님, 하하하하, 하하…….”

능청스럽게 웃는 한 교감은 마치 무언가 찔리기라도 하는 듯 불안정해 보였다.

“다른 선생님들도 정말 고생하셨어요. 심지석 선생님?”

“네! 사회과 심지석입니다!”

선배는 군기가 바짝 들어간 얼굴로 이사장의 질문에 답변했다.

대체적으로 학교 생활은 어떻냐, 학생들과는 잘 지내냐와 같은 사항들이었다.

덤으로 학교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도 물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는 교사는 아무도 없었다.

“영어과 박은환입니다!”

박 선생마저도 이사장 앞에서는 양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유일하게 긴장하고 있지 않은 나를 두 사람이 긴장 좀 하라며 째려봤다.

“강명문 선생님.”

먼저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들어가서 체육관 정리를 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거기에 긍정적으로 답하고 우리도 슬슬 정리를 하고 있는데, 이사장이 나를 불렀다.

“네, 이사장님.”

“선생님은 무얼 하고 싶은 건가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가올 필연적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즉, 사학비리 폭로 사건 때 초임교사로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킬 방패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 방패를 기반으로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일.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뜻 그대로, 우리 강문고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서요.”

이사장은 내 속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순수한 의도로 궁금할 뿐임을 강조했다.

만약 사학비리 사건으로부터 살아남고, 교사직을 유지하면서 지낸다면, 하고 싶은 일은 하나였다.

<명문대 합격생 만들기>

강문고에 있으면서도, 과거 입시 코디를 하면서도 느낀 점은 하나였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교사와 컨설턴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명문대에 많이 보내는 것이 필수였다.

과거에는 입시 코디를 하다 보니 학원을 오지 않는 학생들은 가르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학교에 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딱 하루라도 내가 도와준다면 그 학생은 내 실적이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 실적이 있어야 사학비리 폭로 사건이 터져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은퇴하게 되더라도 입시학원을 차려서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고.

“학생들에게 입시를 알려 주고 싶습니다.”

“입시요?”

“우리 강문고는 강남구에 있는 학교지만, 변화하는 입시에 민감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라는 단어로 소속감을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는 그 안에서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 합니다.”

핵심만 간추려서 내가 앞으로 학교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했다.

내 말에 이사장도, 한 교감도, 지석 선배와 박 선생도 자리에 굳은 듯이 앉아 있었다.

“……먼저들 일어나요. 곧 따라가지요.”

“네 이사장님. 심 선생, 박 선생 먼저들 가지.”

한 교감이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을 데리고 홀을 빠져나갔다. 이사장은 그들을 잠깐 바라보고는 이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 선생님.”

그녀는 눈빛을 빛내면서 물었다.

“저 좀 도와줄래요?”

그 눈빛이 생각이상으로 밝게 빛나는 듯해서 살짝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이사장은 비어 있는 컵에 차를 다시 채우고는 내 앞으로 밀었다. 양손으로 잔을 받으면서 소주를 마시듯 몸을 돌려서 마셨다.

“솔직하게 말해서 강문고는 많이 부족해요.”

팔을 겹쳐 테이블 위에 올리고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인 이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부끄럽게도 강 선생님 말이 맞아요.”

마찬가지로 잔에 담긴 차를 마신 이사장이 그립다며 천장을 올려봤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요.”

“그런 문제라면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더 파워도 있고 영향력도 있지 않겠습니까?”

솔직한 내 질문에 이사장이 호호,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분들로는 안 돼요.”

이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

“좀 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해요.”

“그렇군요.”

강남서초권에서 입시 실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강문고등학교. 그 안에서의 변화.

아마 그 변화 중 하나가 시사RPG대회 같은 형태의 행사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강명문 선생님은 입시를 잘 아신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이사장의 질문에 생각을 멈추었다.

“김은장, 최동석, 이정석. 강문고의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학생들이에요. 그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변하게 된 건 강 선생님 덕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녀석들이 열심히 한 거죠. 게다가 아직 걔네들 입시는 시작도 않았습니다.”

내 말에 이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 선생님. 학교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에 대답을 바로 잇지 못했다.

그런 나를 대신해서 이사장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교감 선생님에게 듣기로는 강 선생님이 강문고에서도 강남 사교육 이상의 강의를 열어 보겠다고 했다더군요.”

아마 논술 특강 오픈 관련해서 한 교감과 이야기를 나눴던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사장에게 맞다고 답하면서 차를 마셨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생의 미래를 책임지는 곳? 사회성을 기르는 곳? 대학교에 입학시키는 곳?”

그렇게 말하면서 이사장도 찻잔을 들었다.

“저는 학교란 마지막 보호장치라고 생각해요.”

말을 잇는 이사장의 눈이 점점 진중하게 변해 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고등학교 때 저질렀던, 또는 중학교 때 저질렀던 잘못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죠.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과거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있거나 하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우리 강문고가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보호해 줄 수 있을 때 잘못된 일을 고쳐나갈 수 있었으면 해요.”

“잘못된 일이요?”

이사장은 나를 향해 호호, 웃으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나와 함께 강문고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보지 않을래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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