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34화 (34/252)
  • 34화. 누가누가 잘하나

    <이 T사는 에디슨처럼 시행착오를 당연하게 여긴 회사인 겁니다! 소비자를 상대로, 그, 그런 악독한 실험을 하다니! 마땅히 모든 소비자가, 들고 일어나서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마치 철천지 원수를 만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는 동석이의 모습에 사람들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니콜라 테슬라와 에디슨의 라이벌 관계에 집중해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어울리는 대사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말을 조금 더듬고는 있었지만, 이전의 동석이의 모습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테선생 흥분하지 마시고. 거 에디슨이라는 친구와는 어지간히 앙숙이었던 모양이오.>

    정석이가 옆에서 수염을 쓸어내리자 좌중이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동석이도 입술을 씰룩거리는 모습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람들이 이제 진실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에디슨처럼…….>

    동석이의 에디슨 언급과 정석이의 몇 마디 말이 더 오가면서 첫 번째 주제에 대한 발표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어서 두 번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사회자 민주의 말에 정석이가 능청스럽게 수염을 한 번 더 쓸어내렸다.

    <저기 있는 처자는 누구인가? 테선생이 아는 사람이오?>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애드립이었다. 심지어 이 애드립은 동석이에게도 언질하지 않은 애드립이었다.

    내가 비밀리에 지시했기 때문이다.

    [정석아, 대회 때 한두 번 정도는 너 하고 싶은 농담 뭐든 해 봐.]

    [대회랑 관련 없는 이야기를요?]

    [적당히 애드립을 하는 정도면 분위기 환기에 좋아. 내가 말했지? 이번 대회는 내용의 정확성도 있지만, 재미있게 청중을 휘어잡는 것도 중요해. 관객 꽤 많을 거다.]

    며칠 전에 내가 조언해 준 내용을 정석이가 잊지 않고 적절하게 수행 중이었다.

    [대신 동석이한테는 비밀로 하고.]

    [네? 그러다 다 망치면…….]

    [자연스러운 모습. 그 모습에 다들 호감을 표시할 거야.]

    예상대로 동석이는 정석이에게 무슨 소리를 하냐면서 눈치를 줬다. 하지만 정석이는 여전히 태연한 척 한 번 더 물었다.

    <어떻소, 테 선생?>

    동석이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겨우 한 마디를 뱉었다.

    <……몰라요오.>

    준비된 질문이 아니다 보니 동석이는 맥빠지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답변에 좌중이 또 한 번 뒤집어졌다. 니콜라테슬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동석이 모습 그대로였고 학생다운 순수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웃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려고 하자 정석이가 바로 말을 이어 갔다.

    <어흠, 너무 놀리는 것도 무안하니, 다음 이야기를 하겠소. 어디 보자……. 사회 지도층이 갖추어야 할 미덕! 이거야 당연히 청렴결백 아니겠소?>

    발표를 진행하기 전에 나는 정석이에게 강진에 대해 조사해 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 첫 번째 장소는 학교 교정에 있는 비석이었다. 전체적인 시대 설명과 강진의 업적에 대해 공부한 정석이는 이후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래서 정석이는 학교 설립자 강진의 미덕이 청렴결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몸 역시 과거에는 권력에 아부를 했던 적도 물론 있었소. 허나, 이내 잘못을 깨닫고 청렴결백함을 유지하려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지금도 보게.>

    정석이는 동석이에게 손짓으로 청중들을 가리켰다.

    <이 자리에 앉은 모든 이들이 나의 뜻을 이어 가고자 하는 후배들이 아니겠는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잠깐 몸을 움찔했다.

    정석이의 후배들의 경우에는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거 어떡하나. 내가 지금 100년도 더 전에 태어난 강진인 것을.>

    하지만 이 한 마디에 청중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꽤 긍정적이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청렴결백한 게 좋네. 창고가 무너진다 한들 그걸 또 세울 필요가 있겠는가. 채운다 해 봐야 욕심뿐일세. 그러니 사회 지도층은 언제나 백성을 위해 청렴결백해야 하네. 테 선생은 어찌 보는가?>

    테 선생, 동석이가 그 말을 이어받았다.

    <어르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인인 니콜라 테슬라가 어르신이라고 말하다니, 이건 감점이다 이놈들아.

    <지도층은 언제나 발명을 해야만 합니다. 발명 없는 사회에 발전은 없습니다.>

    <그 발명이 허무맹랑하거나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지 않겠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의 업적과 성과는 미래에서 평가받을 겁니다. 비도덕적인 것만 아니라면, 지도자는 사회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발명에 힘써야 합니다. 바로 발명가의 자세로써 말이지요!>

    그렇게 동석이는 발명가의 자세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파했다.

    ‘강 선생! 강 선생!’

    한참 동석이의 발표를 듣고 있는데 한 교감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나는 잠깐 조명이 약해졌을 때 살짝 몸을 이동해 한 교감 옆으로 다가갔다.

    “마지막인가?”

    “뒤에 한 조 더 있습니다.”

    “그럼 수상은 지금 하는 게 아니지?”

    “대회 끝나고 10분 정도 평가 후 수상여부가 결정될 겁니다. 오늘은 금상, 은상만 알려 줄 거고요.”

    한 교감은 잠깐 이사장을 돌아보더니 다시 고개를 내 앞으로 옮겼다.

    “그럼 끝나고 시간 비워두게. 이사장님이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하시는군.”

    그러고는 대회 무대를 바라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저기 있는 선생님들, 학생들도 모두 말일세.”

    다른 말이라면 몰라도 지금 말에는 나도 꽤 놀랐다. 내가 기억하는 이사장은 학교, 교사, 학생 일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회 참관도 하고 학생들과 주최 측 교사들과 같이 식사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는 이런 걸 좋아했나?’

    회귀하기 전의 강문고는 이사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만한 무언가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미 과거는 많이 바뀐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네, 끝나면 이야기하겠습니다.”

    한 교감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정석이와 동석이 차례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이제 마지막 조가 자유롭게 토의를 하고 있었다. 평가자 자리 뒤로 은장이가 다가와서 순서 시트를 보여 주었다.

    ‘쌤, 이거 끝나면 마무리할게요. 시상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10분 정도만 휴식 시간 가지고, 바로 준비할 거야. 빨리 평가해서 알려 줄게.’

    은장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박 선생과 지석 선배, 그리고 평가자로 참여한 차석기 선생으로부터 지금까지의 평가지를 수거했다.

    마지막 토의까지 냉정하게 평가를 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다.

    그 결과 금상은 ‘강진전자’였다. 은상은 ‘인생은 한 방이야’팀으로 결정되었다.

    <그럼 수상하겠습니다! 금상은 강문고의 설립자인 강진 어르신과 니콜라테슬라 역할을 했던 강진전자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선택한 역사적 위인들의 시대 배경, 생애 있었던 라이벌과의 관계 등을 바탕으로 토의를 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강진전자팀, 앞으로 나와 주세요!>

    감점을 했음에도 다른 항목들에서 워낙 고평가를 받아 강진전자팀이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정석이는 상을 받는 와중에도 갓을 쓰고 수염을 장착하고는 뒷짐을 지고 선비처럼 걸으면서 헛기침을 했다.

    <오늘 이 상은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백여 명의 위인분들 덕분이오! 감사드리오! 내 이 문화상품권은 청렴결백하게, 학급도서 구매에 사용하겠소!>

    수상소감마저도 강진에 빙의해서 말하고 청중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자 사람들이 또 한 번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옆에서 동석이는 부끄러운 나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동석이도 한마디 해.”

    “제, 제, 제, 가요?”

    동석이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더 긴장을 한 듯 마이크를 잡고 차렷 자세를 했다.

    “가, 감.사.합.니.다.”

    방금 전 대회 때의 니콜라테슬라는 사라지고, 부끄러움이 많은 평소의 동석이였다.

    정석이와 동석이는 상장과 이사장이 준비한 문화상품권 20만 원권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진 은상까지 수상이 끝나자 민주가 슬슬 마무리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자리를 끝까지 지켜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재미있으셨나요?>

    학생들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류지훈 선생과 윤기준 선생은 또 열어달라고 소리를 쳤다.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사장님의 감사말씀을 끝으로 저희는 인사드리겠습니다!>

    민주의 신호에 이사장이 일어나서 대회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오늘 정말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사장은 잠시 나를 돌아봤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봉투를 몇 개 꺼내서 나에게 전달했다.

    봉투에는 문화상품권 10만 원권이 각각 들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 참가한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데 몇 명만 수상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장은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 중 금상, 은상을 수상하지 못한 학생들을 부드럽게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사장 권한으로 참가상을 줄까 합니다. 괜찮을까요, 강 선생님?>

    지석 선배도 있는데 나에게 물어본 이유는 내가 이번 대회 총괄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부담스러운 결정을 해야 했지만, 나는 알겠다면서 동의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이사장은 빙긋 웃고는 다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럼 오늘 대회 참가 학생들 모두 단상 위로 올라오세요.>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단상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사장이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격려를 했다.

    “소크라테스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에도 좋은 모습 기대할게요.”

    “이순신의 일생을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아서 흥미로웠어요.”

    “니체의 철학이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요? 고생했어요.”

    그런 감상들을 한 명 한 명에게 간단히 전해주면서 이사장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문화상품권을 건네주었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 많아 단상 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이사장님께서 특별히 참가상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민주가 마이크에 대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순발력 있게 우왕좌왕하는 참가 학생들을 리드했다.

    <수상자들 모두 정면을 바라봐 주세요!>

    학생들은 사회자의 말을 듣고는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바라봤다.

    참가자가 아니라 수상자들.

    원래는 참가자분들은 모두 정면을 봐달라는 게 마지막 사회자의 멘트였다.

    민주는 그걸 적절하게 고쳐서 진행을 했다.

    그 순발력에 감탄해서 민주를 바라보자 그 뒤에 은장이가 나를 향해 씨익 웃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학생들의 인사를 끝으로 대회가 마무리되었다. 학생들은 학생들끼리, 학부모는 학부모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체육관을 나섰다. 교사들도 꽤 인상적이었다며 우리에게 감상을 들려주었다.

    나도 오늘 대회를 통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꽤나 의미가 있었던 대회였다. 학생들에 대해서도, 교사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사장에 대해서도 말이다.

    특히, 이사장의 행동은 예상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전부 다 줄 줄은 몰랐는데.’

    이사장에게 대회를 알린 이유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포부가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 보려는 것도 있었다.

    또한, 이사장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면 다음 활동에 협조를 구하기 편해서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오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었는데, 성과가 오히려 높았다.

    ‘이사장은 사학비리폭로 때 어디 있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사장은 사학비리폭로 사건 때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저 정도로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학교 행사에도 열심히 움직일 생각이 있는 사람인데 왜 없었을까.

    ‘설마?’

    나는 문득 떠오른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보았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강 선생, 뭐해? 안 가?”

    지석 선배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선배의 뒤를 따라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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