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31화 (31/252)
  • 31화. 무사통과

    하나만 걸리라는 듯이 발표 과정을 지켜보던 학부모회장은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트집도 잡지 못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들 수행평가 고생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마무리되면서 교실 바깥으로 나가니, 먼저 뒷문으로 나와 있던 학부모들과 한 교감을 만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어요. 발표 수행도 좋은데요?”

    “맞아요. 발표 못하는 학생들은 그만큼 점수가 깎이기는 하겠지만, 대학교 가서도 발표는 많이 하니까 연습하면 좋죠.”

    학부모회장을 제외한 4명의 학부모들이 모두 발표 수행평가의 장점을 찾아낸 모양인지 계속해서 장점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평가를 쑥스럽다는 듯 들으면서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히 필요하지, 이 양반들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비밀로 하고.

    “어흠, 강 선생. 정말 고생했네. 특히 동석이가 대단했어! 은장이도 잘했다고 들었는데, 일찍 못 와서 놓쳤구만. 아쉽네.”

    “은장이가 앞 번호라서 일찍 끝났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 대회도 있고요.”

    물론, 그 대회에 은장이는 참가하지 않을 거지만.

    “학부모회장님도 인상 깊게 보셨습니까?”

    내 질문에 학부모회장이 여전히 인상을 구기면서 나를 돌아봤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꺼내지 못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을 한 본인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안다는 듯, 학부모회장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평소에 책 많이 읽은 애들한테만 유리해 보이던데요. 최동석이라는 그 학생도 그렇고.”

    “그런 애들에게 점수를 더 주는 수행평가였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앞으로의 입시에서는 단순히 공부만 잘한 애들을 선발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공부뿐 아니라 인성적인 영역과 진로 적합성을 키우는 노력도 해 주어야 합니다. 수행평가는 앞으로 이렇게 바뀌어 나갈 거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학부모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필요한 수업 같았다고 말했다.

    “그럼 올해 이렇게 갑자기 준비해서 제대로 평가를 못 받은 학생에게는 불리한 거 아닌가요?”

    “학교 시험, 수행평가를 모두 한두 명의 학생에게 맞출 수 없기는 합니다. 강문고에서는 재학생들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고 있고요.”

    “맞아요. 발표 못 한 애들은 그렇게 많지도 않던데요. 저희 아이도 아까 걔보다는 잘할 거 같…….”

    학부모 한 명의 말에 학부모회장이 눈썹을 높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동생, 그거 우리 명천이 저격하는 거야?”

    그 기세에 잠깐 눌릴 뻔한 학부모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답했다.

    “언니. 솔직히 명천이는 잘 못 했잖아. 그거 다 형부가 만들어 줬지?”

    “……뭐야?”

    “질문에 답변도 제대로 못 하고, 내용도 중구난방이고.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없던데? 형부가 대필해 줘서 내용도 잘 몰랐던 거 아니야?”

    학부모회장은 다른 학부모의 평가를 받으면서 점점 화를 쌓여 갔다. 학부모는 자기가 뭐 잘못 말했냐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지금 어디서 뚫린 입이라고…….”

    “자, 자, 다들 잘 들으셨으면 이제 다른 반으로 가 보셔야죠? 6교시가 남아 있습니다.”

    머리채를 뜯어 가며 싸울지도 모를 정도로 과열된 분위기를 한 교감이 나서서 진화했다.

    “그럼 저도 다음 수업 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하는 나에게 학부모들이 격려를 해 주었다. 학부모회장은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지만, 벌써 여론이 뒤바뀐 상황이었다.

    그리고 학부모참관 수업의 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나타났다.

    <발표 능력, 위기대처 능력, 창의적인 답변 등 학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평가할 수 있어서 좋았음>

    <공부뿐 아니라 실제 미래 인생까지 고민해 주는 학교 시스템이었음>

    <발표, 감상문, 토론 등 여러 형태로 이루어진 수행평가들로 학생들이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어 보였음>

    <공부는 조금 못하더라도 다른 분야의 특기를 가진 학생들이라면 진학 의지를 고취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음>

    학부모 참관이 끝나고 간단하게 진행한 다과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거기서 학부모회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나가기 직전에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나치게 편협한 방법이지만, 덕분에 학생마다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네요.]

    그 이야기를 박 선생을 통해 전해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학부모회장은 명천이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이제 한목대 특강도 필참하겠지.’

    한가롭게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서 서류를 정리했다. 갑자기 지석 선배가 내 등을 세게 내리쳤다.

    파악-!

    “아!”

    “너 한 방 먹였다며? 어떻게 한 거야?”

    지석 선배의 말에 박 선생도 흥미가 생겼는지 의자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은 마치 심문이라도 하는 듯 나를 쳐다봤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면서 입안에 든 막대사탕을 밖으로 빼냈다.

    “학생들을 믿었다니까요.”

    “그게 말이 돼? 정석이야 그렇다 쳐. 동석이는 어떻게 한 거야?”

    “아니, 전 정말 한 게 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고, 동석이뿐 아니라 애들 다 발표 잘했고. 평가 기준 안 맞는 부분들 하나씩 있었으니까 그걸로 변별력 주고. 그게 끝이에요.”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었다. 딱히 학생들에게 특정 무언가를 주제로 준비하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래도 동석이가 그렇게까지 잘했다는 이야기는 저도 듣고 놀랐어요. 쌤이 연습할 때 도와주신 거 아니에요?”

    “진짜 한 거 없다니까요.”

    괜히 의심을 사는 것 같아서 좀 더 확실하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얘는 진짜 지가 뭘 했는지 모르나 봐.”

    “네?”

    “아니다, 됐다. 하던 일 해라.”

    지석 선배의 말에 나는 다시 서류를 정리했다. 학생들 기말고사 성적 정리와 함께 내일 있을 토론대회 준비도 해야 했다.

    “박 선생님. 내일 몇 시부터 도와드리면 됩니까?”

    박 선생은 달력과 시간표를 번갈아 체크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2시부터 와 주실 수 있으세요?”

    마침 수업도 없어서 비는 시간이었다.

    “네, 그럼 2시에 맞춰서 가겠습니다.”

    박 선생이 나눠 준 대회 준비사항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누가 상을 받을지보다는 은장이의 학생부에 어떤 내용을 기재해 주면 좋을지 구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 *

    그날 수업이 끝난 3학년 3반 교실은 제법 시끌벅적했다.

    정화히는 딱 한 명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최동석 너 뭔데!”

    “원래 이렇게 말 잘했어?”

    “조용했던 거 컨셉 아니야?”

    또 몇 명은 멘토를 요청하기도 했다.

    “동석아! 너 물리도 잘하지? 하필 우리 반에서 물리 들어서 이번 시험도 망했잖아! 나 수행평가라도 좀 도와주라! 이번에도 6등급 나오면 엄마한테 죽어! 수행이라도 만점 받아야 해!”

    “야, 안태성, 내가 먼저 왔거든? 줄 서라?”

    최동석은 이런 관심도 처음이었고,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온 것도 처음이어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딱히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렸다.

    그런 최동석을 도와 준 학생은 반장인 김은장이었다.

    “얘들아! 오늘 종례 생략하신대!”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이 부리나케 가방을 챙겼다.

    “아무튼 동석아! 나 분명 요청했다! 내 물리 멘토 해 주는 거야!”

    나가면서도 멘토를 요청하는 안태성을 보면서 최동석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 신호를 동의한다는 표시로 해석했는지, 안태성도 밝게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당번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하교를 했다. 은장, 정석, 동석 세 사람은 함께 교문을 나섰다.

    “동석이 연습 많이 했던데?”

    “그,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그, 쌤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셔서…….”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오자 다시 부끄럼을 타는 동석에겐, 발표 때 보여 준 자신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래도 발표 내용은 다 네가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 솔직히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

    은장의 솔직한 감상에 동석이 얼굴을 붉히며 손을 휘저었다.

    “너, 너희도 좋아하는 분야는 잘 알잖아. 그거랑 같아.”

    “그거랑 어떻게 같냐? 넌 대학 과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 같던데.”

    그 말을 끝내고 정석은 한숨을 쉬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나보다야 네가 훨 낫지.”

    “아, 아냐. 그건…….”

    “됐어. 무슨 우울한 이야기를 그렇게 해?”

    은장의 타박에도 정석은 말을 이었다.

    “우울하지는 않고. 근데 나 한국 떠나면 미란이랑 못 만나니까…….”

    이미 셋은 강명문 때문에 친해지기도 친해져서 서로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정석의 여자친구인 미란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아직도 해외로 보내려고 하시지 않아?”

    “그건 그렇지.”

    “설득은?”

    “해 봤어.”

    “뭐라셔?”

    “지랄 말래.”

    정석의 마지막 말에 두 사람이 피식 웃었다.

    “야, 난 심각하거든?”

    “알았어. 뭐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미란이랑 대학교 같이 다니고 싶다 그랬지.”

    동석도 이번에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정석을 응시했다.

    “나라도 그러면 욕했겠다.”

    “와, 이제 동석이까지! 야! 너마저 그러면 어떡해?”

    “애초에 설득하는 방법부터가 잘못된 거 같은데? 납득이 안 가잖아.”

    “넌 대회 준비나 잘해. 당장 내일 아니야?”

    “아! 맞다!”

    은장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더니 박은환 선생님의 번호를 눌렀다.

    “쌤 죄송해요! 내일 아침에 일찍 가서…….”

    그런 은장을 뒤로하고 두 남학생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동석아, 너라면 뭐라고 했을 거 같냐?”

    “어, 어?”

    “너라면 해외로 보내 버리려는 부모님한테 뭐라고 했을 것 같냐고.”

    동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진지한 얼굴을 하면서 걸음을 멈췄다.

    “나도 한국에 있고 싶다, 이랬을 것 같아.”

    “그치? 내가 뭘 잘못 말한 건지 진짜 모르겠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 가던 둘에게 통화를 마친 은장이 달려왔다.

    “뭔데, 왜 심각한 분위기?”

    “은장아, 너라면 뭐라고 했을 거 같냐?”

    방금 동석에게 물어본 내용에서 이름만 바꿔서 정석이 물었다.

    “뭘? 부모님한테?”

    “응.”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망하지, 당연히.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은장은 지난달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강명문의 말을 떠올렸다.

    “현실적으로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해야지. 여친이랑 있어야 하니까 유학 안 가요! 이러면 땡깡이지 뭐냐? 초딩도 아니고.”

    “뭐? 초딩?”

    정석이 농담처럼 받아치자 은장도 슬쩍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

    “담임쌤이 그러셨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야,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인데 어떻게 전략적으로 접근해?”

    “용돈 타려고 거짓말한 적은 많으면서 이런 건 못 해?”

    문제집을 산다는 핑계로 용돈을 올려 받은 일이나, 교통비로 썼다고 거짓말하고 데이트할 때 쓰거나 했던 일. 모두 정석이 친구들에게도 자랑처럼 이야기했던 사실들이었다.

    “난 거짓말한 적 없어.”

    “동석이 넌 예외고. 너처럼 청렴한 애도 거의 없을 거다.”

    동석은 그 말에 뭐가 좋았는지 흐흐 웃었다.

    “됐고, 정 어려우면 쌤한테 여쭤봐. 나도 도움받았으니까.”

    “그래. 고오맙다.”

    은장이 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담임을 찾아가 보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 역시 담임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두 사람도 그에 동의하면서 각자 준비할 사항들을 확인했다.

    그렇게 걸어가는 세 사람을 학부모회장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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