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발표 수행평가
명천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녀석은 평소의 건방진 태도를 버리고 진지한 자세를 취했다.
건네받은 USB를 연결해서 PPT 화면을 띄웠다.
“제가 준비한 책은 <의약합성2>입니다.”
명천이가 책 제목을 이야기하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저거 어려워 보이는데?”
화면에 나타난 책 표지만 봐도, 이게 대학교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건 책 표지가 아니었다.
‘왜 눈치를 보지?’
명천이는 앞에 서자마자 학생들이 아닌 학부모들 쪽, 정확히는 학부모회장 방향을 바라봤다. 어째 학부모회장과 시선이 마주친 다음부터 명천이가 더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명천이는 딱 규격을 그대로 맞춰왔다.
첫째 장은 PPT 표지, 이후에 책 표지로 한 장, 줄거리 요약으로 한 장, 느낀 점으로 한 장, 마무리로 한 장. 총 5장으로 정리된 PPT였다.
‘PPT 점수는 만점이군.’
교실 뒤에서 아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학부모회장의 얼굴이 보였다. 아마 내가 지난주에 알려 준 예시를 토대로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막상 발표가 시작되자 명천이는 항생제, 치료제, 바이러스에 대한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게다가 느낀 점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어서 즐거웠다’로 마무리되었다.
‘발표 일관성 부족, 참고자료 사용하지 않음.’
그리고 이어지는 학생들의 질문 시간.
“항히스타민제가 뭔가요?”
“어…… 알레르기에서…….”
명천이는 그 이상 답변을 하지 못했다.
뒤에 서 있던 학부모회장은 그 모습이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리고는 입을 뻥긋거렸다.
그때 명천이가 학부모회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학부모회장의 설명이 생각이 나지 않는 듯 명천이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기만 했다.
“제대로 읽은 거 맞아?”
교실 뒤편에서 그런 이야기가 들려온 건 뜻밖에도 학부모 중 한 명이었다. 그 말에 학부모회장이 찌릿 눈빛을 보냈다.
“됐다. 수고했어. 다음!”
결국 명천이는 그렇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학부모회장의 얼굴을 살폈다. 학부모회장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어간 얼굴을 하고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발표 점수 2점.’
예상된 일이었다.
과거 명천이는 부모님이 의사라는 것을 등에 입고 여러 보고서를 대필받아 왔었다.
아마 오늘 발표한 책도 아버지가 대신 만들어 준 내용일 것이었다.
그나마 쉽다고 생각하는 책으로 선정했겠지만, 그것마저도 고등학생에게는 지나치게 어려운 책이었다.
‘그것도 벼락치기로 공부시켰겠지.’
나는 표정 변화 없이 다음 발표를 진행했다.
한 명씩 발표가 진행되면서 학부모들의 표정도 조금씩 풀렸고, 학생들도 안심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생각보다 발표 점수를 측정하기 좋다는 생각을 해서 기뻤을 것이다. 발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학생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2분 이상으로 발표한 학생, PPT가 5면이 넘은 학생도 있었다. 갑자기 시사 이야기를 한다거나, 말이 꼬여서 의도치 않게 음 이탈이 되어 버린 학생도 있었다.
듣는 학생들은 재미있는 책이 소개될 때는 다 같이 웃었고, 저거 나도 읽어 봐야겠다며 호기심을 갖기도 했다.
“제가 준비한 책은 <나 홀로 세계여행>입니다!”
그중에서도 정석이의 발표가 단연 돋보였다. 녀석은 아직 자신에겐 구체적인 진로가 없다면서, 현재 가장 관심 있는 어문계열로 진학한 뒤 세계를 여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여행 안에서 자신이 정말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또렷한 발음, 자신감 있는 발성, 재치있는 제스처에 추가로 들고 온 세계여행을 통해 꿈을 찾은 저자의 또 다른 에세이까지.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 정석이의 발표에 학생, 학부모, 한 교감이 박수를 쳤다.
몇몇 학부모들은 저렇게 발표할 수도 있냐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딱 한 명, 학부모회장만 박수를 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만점이네, 이건.’
핸드폰 초시계를 멈추고 정석이 평가를 메모하면서 다음 차례를 불렀다.
“다음, 최동석.”
동석이는 긴장한 얼굴로 들고 온 USB를 건넸다.
“제가 준비한 책은…… E-book입니다.”
그 말을 하고서 동석이는 잠깐 숨을 멈추고 말이 없었다.
“어머, 어떡해. 까먹었나 봐.”
“너무 긴장한 건 아닐까요?”
“이래서 발표 수행 따위 하면 안 된다니까.”
동석이가 말을 하지 않자 학부모들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마지막 말은 학부모회장 목소리 같았는데.
동석이는 그 소리에 동요되는가 싶더니 준비한 PPT 화면을 넘겼다.
<로봇, 인간과 공존하다>
2008년에 출간한 학술논문지의 일부였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실제로 E-book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건에도 맞았다.
계속하라며 신호를 보내자 동석이가 발표를 이어 갔다.
“저는 평소 로봇과 공학 관련 논문을 자주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학급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학술지를 추천해 주려고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동석이의 발표 내용은 꽤 신선했다. 우선 학술논문지에 페이지도 겨우 5페이지 이내여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설명했다.
“이 논문은 인공지능과 철학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기에 제 진로를 고민해 보기 좋은 논문이었습니다. 인간이 휴머노이드 로봇과 호모 로보티쿠스의 이름을 두고 형이상학적 단계를 개선시키면…….”
그리고 이어진 동석이의 발표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누가 들어도 대학생 수준의 지식을 깨달았다고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콩트의 실증주의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콩트는 사회과학이 배제된 과학 정신은 사회를 조직함에 있어 무익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콩트의 철학까지 연계해서 발표를 하고 있었다.
“저도 콩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는 로봇을 좋아하고, 지금도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만드는 게 좋아서가 아닙니다. 로봇을 만들어서 현대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나는 동석이의 발표를 빠짐없이 메모했다.
말 그대로, 학생부 교과목 세특에 적기에 적절한 내용이었다.
‘언제 철학까지 고민했지?’
생각해 보면 동석이가 철학을 공부한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로봇과 관련된 여러 논문을 찾아봤을 거고, 용돈을 모아서 유료 논문을 구매해서 보기도 하는 녀석이니까.
“혹시 인문학과 과학을 같이 공부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이 논문을 꼭 읽어 보세요. 공학 이론의 내용이 아니라 철학과 관련되어 있기에 우리 반 친구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발표를 마친 동석이는 자리에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청중들은 조용했다. 반응이 없는 청중을 보면서 동석이가 불안한 듯 나를 돌아봤다.
“질문 제가 해도 될까요?”
정적을 깬 사람은 놀랍게도 학부모회장이었다.
나는 한 교감에게 눈빛으로 물어봤다. 한 교감은 얼떨떨해 있다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석아, 학부모님께 질문받아도 괜찮을까?”
“후, 하, 후, 하. 네. 괜찮아요, 쌤.”
짧은 시간이지만 발표를 하느라 긴장했던 탓인지 동석이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네, 학부모회장님 질문해 주세요.”
내 신호에 학부모회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로봇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될 거로 예상되잖니? 그래도 로봇과 인간이 같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분명 그때가 되면 로봇이 사람 일을 다 가지고 갈 텐데.”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방금 공학과 철학을 융합해서 발표한 동석이에게는 어떻게 보면 난제일 수 있었다.
‘로봇이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을 모두 대체한다면 인간이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엿 먹이려는 거네.’
여기서 동석이가 답변을 못 하면, 그저 어려운 내용 달달 외워서 발표한 거에 그친다. 평가도 깎일 수밖에 없다.
학부모회장이 보기에 동석이가 발표한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고 발표한 내용이 아니었을 게 분명했다.
때문에 그녀는 동석이를 공격해서 꼬투리를 잡아 이 수행평가의 문제점을 어필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티를 숨길 생각은 없는지 학부모회장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동석이는 그런 학부모회장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그걸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술은 점진적이지 않고 급속도로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시행된 로봇챌린지 대회에서 주어진 미션은 로봇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유를 들고 오는 행동을 해야 했습니다. 5살, 6살 어린이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미션이지만 로봇에게는 어려운 과제였죠.”
동석이의 막힘없는 답변에 학부모회장이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 많은 공학자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로봇에게 과연 인간과 똑같은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할까에 대해서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잠시 숨을 고른 동석이가 이어서 답했다.
“만약 로봇챌린지 대회에서 이런 미션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사람이 로봇에 탑승하고 물살이 빠른 길을 헤쳐서 목적지에 있는 상자를 들고 온다’였다면요?”
동석이는 오른손가락으로 4족 보행 로봇의 다리를 표현하면서 교탁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로봇은 아직 복잡한 명령을 수행할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힘이나 안전을 로봇의 목적으로 두고 개발한 후 그 위에 사람이 탑승한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왼손을 주먹 쥐고 마치 사람이 올라탄 것처럼 오른손 위에 올려 보였다.
“오늘 발표에서 말씀드리는 부분이 바로 그 내용이에요. 로봇이 인간과 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에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령이 있고, 로봇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령이 있어요. 장점을 더 발전하기도 어려운데 못하는 걸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요?”
동석이는 물길이 뚫린 강물처럼 막힘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서로 협업하면서 부족한 걸 채우고, 잘하는 걸 발전시키면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미래 직업은 협업이 중요해질 거예요.”
이제는 학급의 모든 인원들이 동석이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저는 인간이 어떤 부분을 잘하는지 고민해야 하고, 로봇이 어떤 부분을 잘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공학자도, 인문학자도 모두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답변을 듣던 나는 동석이를 보면서 이제 전공 분야 발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동석이의 발표 메이트인 정석이가 조용히 나이스를 외쳤다. 은장이는 동석이의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면서도 걱정이 되었는지 천천히, 라며 속삭였다.
그리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와…….”
한 학부모의 이 한마디가 조용했던 청중을 자극했다.
짝짝짝-
연이은 박수 소리가 학급 전체를 채웠다. 정석이가 발표를 마쳤을 때보다도 더 큰 박수 소리와 함께 정석이와 은장이의 환호도 들렸다.
심지어 학부모들도 박수를 치면서 강문고에 저런 학생이 있었냐며 한 교감에게 묻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한 교감은 자신이 찾아낸 것처럼 자랑을 하고 있었고.
“자, 자, 조용!”
환호 소리를 깨고 내가 소리를 쳤다. 소란스러웠던 교실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그 분위기 안에서 현재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발표 당사자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씁, 하. 씁, 하.”
“……최동석?”
“씁, 헉! 네 쌤!”
동석이의 다소 얼빠진 답변에 청중들이 이제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또 시끄러워진 교실을 다시 진정시키고 나서야 동석이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동석이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나는 동석이를 짧게 바라본 후 다시 학급으로 눈을 돌렸다.
“시간이 없으니까 계속 이어 간다. 다음, 진우!”
이어진 발표들은 학부모들도 집중하게 되었다. 진우의 발표는 다소 어설프기는 했지만, 유쾌한 발표여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딱 한 명, 심기가 불편한 학부모회장만이 혼자 인상을 쓰면서 발표를 지켜봤다.
‘그렇게 노려봐도 건질 건 없을 텐데.’
학부모회장의 시선을 모른 척하면서 나는 들키지 않게 미세한 미소를 지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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