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8화 (28/252)

28화. 학부모회장

“교감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이리 급작스럽게…….”

“다, 그, 괜찮은, 거 아닌가 응?”

지석 선배의 반박에, 한 교감은 발표 연습 초기의 동석이처럼 말을 더듬었다. 그로서도 지금의 이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내가 학부모참관을 하면 된다고 판까지 깔아 줬다.

한 교감 입장에서는 이번 학부모 참관의 비난으로부터 빠져나가면서도, 참관수업이 성공하면 평가도 올라갈 수 있는 기회였다.

“알겠습니다.”

“강 선생!”

대답하는 나를 만류하고, 지석 선배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학생들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할 게 뻔해요.”

“그래서 학부모 참관은 소수 인원만 나갈 겁니다.”

학부모회장이 안경을 고쳐 쓰면서 나를 째려봤다.

아 왜. 내가 뭐.

“저와 다른 학부모 4분, 딱 다섯 분만 참관할 거예요. 당연히 정.수.시. 선생님 반으로 말이죠.”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일부러 바람 소리도 들리라고 크게 소리도 냈다.

내 태도에 학부모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 교감은 여전히 나와 학부모회장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시죠.”

이제는 지석 선배도 나를 말리는 걸 포기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박 선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와 학부모회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신 학부모회장님께 요청드릴 게 있습니다.”

오히려 요청까지 하는 나에게 한 교감이 미쳤냐면서 눈을 부라렸지만, 모른 척했다.

“이번 참관수업 이후에 입시 특강이 열릴 겁니다. 제가 하는 건 아니고 외부 특강이요. 그 특강에도 꼭 와 주셨으면 합니다.”

학부모회장은 여전히 찌푸린 미간을 풀지 않고는 나를 째려봤다. 이제는 미간을 넘어서 이마를 타고 주름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특강을 들어 보시면, 제가 왜 수행평가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어떤 특강이죠?”

“한목대 2011학년도 모집요강 특강입니다.”

‘한목대’라는 말에 학부모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그렇지.’

학부모회장은 나명천의 어머니였다. 과거에 명천이가 학부모회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교감, 교장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래서 학부모회장이라 그랬을 때 바로 명천이를 떠올렸고, 한목대 특강을 이야기해 봤다.

역시나, 명천이 어머니는 한목대 의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의대 입시 전형이 바뀌고 있어서 특별히 한목대 입학사정관, 교수님을 저희 학교로 초빙하게 되었습니다.”

“……뭐가 바뀌나요?”

“의대에 MMI 면접이 생깁니다.”

내 말에 학부모회장이 입을 더듬거렸다.

“MM…… 뭐요?”

“MMI요. 자세한 내용은 특강 때 참여하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꼭 오실 거죠?”

빙긋 웃으면서 학부모회장에게 눈길을 보냈다. 학부모회장은 무언가 개운치 않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좋아요. 참관수업은 7월 2일로 했으니까 그때 뵙죠.”

“당장 내일이잖아요? 학생들에게 공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의를 제기한 건 옆에서 듣고 있던 박 선생이었다.

그리고 나도 여기에 동의했다.

“박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7월 2일에는 3반 국어 수업이 없거든요.”

“……그게 무슨 상관이죠?”

“명천이 수업 듣는 모습 보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학부모회장인 명천이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참관을 고집하는 목적은 단순히 나를 갈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었다.

그중 꽤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명천이의 수업 태도였다.

“우리 애 담임인가요?”

“명천이 수업이 궁금하시면 7월 5일에 오시는 게 좋습니다. 3, 4일은 주말이라 안 되고, 5일 날 5교시가 우리 반 수업이니까요.”

학부모회장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부모회장이 나를 한 번 더 노려봤다. 눈알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던 그녀는 알겠다면서 핸드백을 고쳐 맸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우리 애 때문에 가는 건 아니에요.”

그 말에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마지막 말이 조금 민망했는지 학부모회장은 후다닥 카페를 나섰다.

한 교감도 카페를 나가면서 ‘이따 나 좀 보게!’라며 소리치듯 속삭였다.

“야! 미쳤어?”

“네? 왜요?”

“너 명천이 어머니인 거 다 알고 그런 거야?”

“네, 그러면 안 되나요?”

“아니 지금…… 어휴, 말을 말자.”

잔소리를 하려던 지석 선배도 이제는 포기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박 선생도 지석 선배를 따라 일어나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물론, 집으로 가면서도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 * *

학부모 참관일은 바로 다음 날 학생들에게 공지가 나갔다.

“네? 다음 주에 바로요?”

“그냥 평소처럼 수업 들으면 되지,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사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는 있었다. 7월 5일은 내가 말했던 수행평가 날이었다. 그 시간에 학부모, 즉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와서 듣는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 우리 엄마 오면 어떡하지.”

“나 준비 진짜 하나도 안 했는데 큰일 났다.”

“야, 나는 엄마 아빠 다 온다 그럴 수도 있어. 망했어. 어떡해.”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한탄이기도 했고, 시련을 받아들이기 싫은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향해 교탁을 탁탁 내리치며 소리쳤다.

“조용조용!”

잠시 학생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더 볼멘소리가 나오기 전에 말을 꺼냈다.

“대단할 거 없다. 이번에는 급하게 만들어진 참관이라 겨우 다섯 분만 오실 거야. 그리고 발표 수행평가라고 해 봐야 꼴랑 2분도 안 되게 하는 거, 뭘 그리 긴장해?”

“쌤, 그래도 부모님 앞에서 하는 건 좀…….”

“재수 없으면 순서가 안 맞아서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거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 어떻게 하려고? 발표 안 할 거야?”

내 말에 학생들도 더는 불만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희들 하나 간과하는 게 있는데…….”

몇몇 녀석들이 침을 꼴딱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 발표 때 신경 써야 하는 건 너희들 앞에 있는 바로 나다. 엄마 아빠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수행평가 공지문을 펼쳤다. 종이를 앞을 향해 들면서 평가 항목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날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점수를 주는 나지, 학부모가 아니라는 거야.”

다시금 녀석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은장이가 손을 번쩍 들면서 물었다.

“쌤, 그럼 발표 순서 정해서 하나요?”

“아니, 번호대로 할 거야. 은장이는 초반에 하겠네?”

“번호 역순으로 하면 안 돼요?”

이번에는 정석이가 물었다.

“외부인이 올 때마다 형편 맞춰 가면서 할 거야? 처음 공지했던 것처럼 번호순으로 한다. 또 질문 없지?”

둘러보니 이제 질문을 하려는 학생은 없어 보였다. 교탁에 올려둔 출석부와 교과서를 챙기면서 한 번 더 강조했다.

“이번 수행평가는 정해진 형식에 맞춰서 정확하게 평가할 거니까 다들 공지문 숙지하고, 주말 동안 잘 준비해 봐!”

* * *

그날 종례가 끝나고 나는 은장이와 정석이, 동석이에게 붙잡혔다.

“쌤 이거 그거죠. 어제 있었던 그 사건 때문이죠?”

“어제 그 사건?”

“쌤이 어제 학부모회 사람들 완전 혼수상태가 되게 혼내 줬다던데요?”

무슨 소문이 그렇게 났는지…….

“누가 들으면 내가 사람 팬 줄 알겠다. 그리고 혼내 준 적 없어.”

“하지만 영상 보니까 혼내 준 건 맞던데요, 뭐.”

정석이가 자신의 핸드폰 안에 담긴 영상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영상에서는 열심히 학부모들을 향해 팩트폭행을 날리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누가 찍은 거야?”

“어제 이 주변에 있던 애들은 다 찍었을 걸요?”

“그니까 이거 때문에 그런 거 맞죠? 그쵸?”

정석이가 보여 준 영상은 ‘10년 뒤에도 당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가지 못할 겁니다.’ 라는 말을 하는 부분에서 끊겼다. 들어 보니, 민지정 교무부장이 학생들 보고 빨리 집에나 가라면서 쫓아낸 모양이었다.

그래서 막바지에 한 교감에게 이야기한 학부모참관에 대한 부분은 알지 못한 눈치였다.

“아 씨, 민쌤만 안 왔어도 더 찍었을 텐데.”

“네가 찍었냐?”

“네. 네? 아뇨, 어, 네.”

민망하게 웃는 정석이를 향해 사악하게 웃으면서 핸드폰을 훽 빼앗았다.

“삭제 버튼이…….”

“아 쌤, 잠깐만요!”

“유포했어?”

“저 말고 다른 친구들도 많아요.”

이렇게 되면 거의 강문고 초임교사가 또라이라는 소문이나 안 퍼지면 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이렇게 된 이상 정석파 교사로 컨셉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쌤, 그날 저랑 정석이랑 다른 애들 중 발표 잘하는 애들로만 선정해서 발표시키면 어때요?”

“아니면 저도 괜찮아요. 그 정도는 이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은장이와 동석이가 말하는 의도를 나는 대번에 눈치챘다.

어제의 그 사건 때문에 열리게 된 학부모 참관 수업.

이 수업은 학생들이 수행평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리한 수행평가를 제시한 나에게 비난과 함께 징계까지도 건의할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녀석들은 발표를 잘하는, 그래도 좀 하는 애들을 추려서 5일 수업 때 그 모습을 보여 주자는 뜻이었다.

“마음 써 주는 건 고마운데, 걱정 안 해도 된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우리 반 애들, 제대로 대회도 안 나가 본 애들이 태반인데.”

은장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3반뿐 아니라 다른 반 학생들도 거진 마찬가지였다. 수능 위주 공부만을 고집하던 강문고는 대회에 참여하는 애들이 한정되어 있었다. 공부는 조금 떨어져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애들이나 참가하는 게 토론, 발표 대회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괜찮았다.

“괜찮아. 그래서 평가항목도 까다롭지 않게 해 뒀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걱정하는 녀석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태연하게 의자 뒤로 몸을 젖혔다.

“나는 이제 기말고사 점검해 봐야 하니까 얼른들 들어가라. 주말에는 수행평가 준비 좀 해 보고.”

은장이와 정석이가 불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도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면서 빨리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지못해 발을 떼면서 둘이 나갔고, 동석이만 자리에 남았다.

“너도 얼른 들어가.”

“쌤, 저 진짜 제가 좋아하는 책 아무거나 하면 돼요?”

동석이는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 물었다. 그 결심이 무엇인지 짐작하기에는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동석이 네가 평소 즐겨 봤던 책이면 뭐든 상관없어.”

“진짜죠? 이북도 상관없어요?”

“상관없어. 대신 정말로 판매는 하고 있어야 한다.”

녀석은 이에 밝게 눈을 빛내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하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나는 5일에 있을 학부모 참관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비교과 정리, 논술 특강, 정시 준비생의 학습진단, 내신 분석 등.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인 바로 지금, 대한민국 입시 준비가 시작된다.

그리고 강문고 학생들의 입시 준비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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