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진짜 이대로 괜찮을까
진로가 있든 없든 쓰면 된다는 내 말에 학부모들이 한 번 더 언성을 높이려 했다.
그런 그들의 말을 막고서 한 번 더 설명했다.
“홍길동전을 봤다면, 홍길동전의 권선징악을 보면서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라고 하나 쓰면 됩니다.
별주부전을 봤다면, 토끼와 거북이가 경쟁하면서 성장했듯 나도 경쟁을 즐기겠다고 하면 됩니다.
소나기를 봤으면, 첫사랑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처음 사랑하게 된 때를 기억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내가 굳이 홍길동전과 별주부전, 소나기를 예시로 든 것은 학부모들도 쉽게 이해하라는 의미였다.
이 작품들이라면 적어도 기본 줄거리는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내 주장에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명색이 고등학생인데, 겨우 2분짜리 발표 하나 제대로 못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게다가 내가 설명해 주는 예시들은 조금만 생각의 틀을 바꾸면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감상이었다.
하지만, 이 학부모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아마, 실제로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학생이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예전에도 강문고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발표를 못 하는 편에 속했다.
은장이와 정석이처럼 타고난 말주변이 있지 않은 이상 발표를 잘하는 학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발표와 토론 수업이 조금 더 활성화가 된 미래라면 몰라도, 지금의 강문고에는 공부만 열심히 한 샌님들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말씀 잘하셨습니다. 진로가 없을 수도 있죠. 당연합니다. 그러면 홍길동전에서는 자기 적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홍길동처럼 내가 잘하는 분야가 있을 테니 공부하겠다 하면 됩니다.
소나기라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았을 때 첫사랑처럼 놓치지 않고 소중히 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여기에 더해 공부만 한 학생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당연히 희망하는 진로, 전공이 없고, 점수에 맞춰 높은 대학교에 갈 생각만 가득한 애들이 많았다.
“하나 더 이야기해 볼까요? 책의 장르 구분이 없으니 자기계발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노트필기의 힘>을 읽었다면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서 내가 잘하는 분야를 꾸준히 탐색하겠다고 하면 되는 겁니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숨을 삼켰다.
“이 내용을 PPT 면에 2페이지 안쪽으로 넣으면 되는 거고요.”
이미 주변의 학부모들 중에는 내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확인한 후 재차 물었다.
“이게 대체 어디의, 어떤 부분이 어렵다는 거죠?”
학부모들은 내가 말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하지도 못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어느 정도로 자식을 사랑하시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학부모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하나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조용해진 좌중을 의식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처럼 학생들을 교육한다면, 강문고 학생들은 10년 뒤에도 당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가지 못할 겁니다.”
실제로 강문고를 졸업한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은 제때 취업을 하지 못했다.
단순히 청년구직난 때문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명문대를 나와서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서도 몇 달 지나지 않아서 퇴사했다.
[집에서와는 다르게 누군가의 간섭을 견디지 못했으니까.]
그게 당시 지석 선배로부터 들었던 이유였다.
잠시 시간을 두고 나를 바라보는 학부모들, 한 교감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슴 한쪽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저는 강문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이 그렇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 교사 인생을 걸고 맹세하건대, 이 수행평가는 누군가를 엿먹이려는…… 죄송합니다. 누군가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저를 비롯한 많은 교사분들께서 고민하신 결과입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옆에 있는 한 교감에게 정중히 바라보았다.
“옆에 계신 교감 선생님께서도 마찬가지고요.”
학부모들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깊은 숨, 내면으로 여러 생각이 들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윤 선생이 내 옆에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물리 교과를 담당하고 있는 윤기준이라고 합니다.”
옆에 마치 학부모처럼 서 있던 사람이-의도한 건 아니지만- 갑자기 교사라고 밝히자 학부모들이 당황해했다.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윤 선생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학부모님들께서 염려하시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강명문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희도 고민하고 있고, 학생들이 지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윤 선생은 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서 보여 주었다.
“이건 제 물리 수업을 듣는 학급 학생들에게 배부한 물리 수행평가 자료입니다.”
윤 선생이 만든 수행평가 자료는 ‘과학 시사 1개 선정해서 느낀 점 작성하기’가 적혀 있었다.
당연하게도 평가요소와 형식은 간단했다. 심지어 형식을 보면 기사 중요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넣고, 줄거리 요약과 느낀 점을 작성하라고 되어 있었다.
“보시면, 저는 발표가 아니라 과학 시사를 공부해 오라고 시켰습니다. 강 선생님 말씀처럼 발표도 이 과학 시사 읽기도 역시 예시에 불과합니다.”
그는 종이를 천천히 품으로 집어넣었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강문고도 변하는 시대에 맞춰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있습니다. 분명 학생들의 입시에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을 마치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학부모들은 조금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기도 했고, 짐짓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리를 옮기자 강물이 갈라지듯이 길이 열렸다. 옆에서 내 말을 멍하니 듣던 한 교감도 허겁지겁 내 뒤를 따라왔다.
“강 선생! 어쩌려고 그래!”
한 교감이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로서는 지금 펼쳐진 여러 상황들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감사에서 내가 커버를 쳐준 만큼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정 불안하시면, 학부모 참관수업을 여는 건 어떻습니까?”
내 말에도 한 교감은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잘못하면 학부모 교실을 통해 자기 자식이 수행평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모습만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을 터였다.
“걱정 마세요. 학생들은 잘할 겁니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그렇게 묻는 한 교감을 향해 세상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자들을 믿어야죠.”
* * *
퇴근하는 길, 나는 박 선생과 지석 선배에게 이끌려 학교 앞 카페로 들어갔다.
“야! 너 미쳤어! 학부모회랑 왜 붙었냐고!”
“강 선생님, 어제 대체 무슨…… 제발 사고 좀 그만 치세요!”
나는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 빨면서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 왜요, 잘만 풀렸구만 뭐.”
“지금 그러고 끝낼 일이야? 어제 네 쪽으로 학부모들 몰려가게 해 줘서 고맙기는 한데, 그 이후에 그렇게 하면 어떡해!”
선배는 자신의 음료인 녹차 프라푸치노도 마시지 않고 나에게 훈계를 했다.
“선배, 그거 안 드실 거면 저 마셔도 돼요?”
“어, 그래 마셔. 가 아니라! 하, 진짜 이 새끼 또라이네!”
손으로 이마를 짚은 지석 선배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박 선생도 나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미간을 좁히고 나를 째려봤다.
“지금 무슨 일을 하신 줄 알아요?”
“그냥 학부모님들 상담해 준 기분인데 왜들 호들갑이에요?”
“그게 아니라……. 다른 학교면 모를까 강문고에서는 학부모회 파워가 장난 아니란 말이에요. 모르셨어요?”
학부모회에 대한 소문이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학부모회에 소속된 학부모들은 막대한 로비를 통해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낸다는 소문이었다.
제대로 된 실체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정도 소문만으로도, 한 교감이나 강 교장이 학부모회에 쩔쩔매는 이유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대충은 알고 있…….”
“대충 알고 있으니까 이런 사고를 친 거구만! 하, 답답아.”
“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윤 선생님한테도 뭐라 그러세요. 왜 저한테만 그래요?”
컵 안에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다 떨어졌는지, 빈 빨대를 빨아당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커피를 포기한 나는 컵을 들어 얼음을 입안에 넣고 사탕처럼 굴려대며 녹여 먹었다.
“아니, 눼가 머 아람을(사람을) 우물우물 뛔리귀를 해써 요글해쒀(때리기를 했어 욕을 했어) 우물.”
얼음을 우물거리며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꼬자 지석 선배가 눈치를 줬다.
“그래도 인마, 적당히 했어야지. 학부모회장이 빡쳤으면 너 가만 안 놔뒀을 거라고.”
“옆에 교감 선생님도 있었다고는 해도…… 너무 위험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내가 이번에 좀 심했나 고민해 보았다.
‘안 심했는데?’
입시 코디를 하던 초창기 시절에는 이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학습을 하지 않고 대필만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자신의 노력은 없이 학원에서 알아서 해달라고 내팽개치던 학생도 있었다. 그런 학생, 학부모들에게 던졌던 말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 듣고서도 열만 내면 학부모회 해산해야죠.”
“또, 또. 이제 그만해라. 잘못하면 귀에 들어간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제대로 내용 확인도 안 하곤 쳐들어오듯이 와서 이게 무슨 행패예요?”
“행패 부려서 미안하게 됐네요.”
우리 셋 이외에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방금 학부모회 인원들 중에서도 가장 차분한 인상을 가진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강 선생!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얼른 사과드려!”
그리고 그 뒤에는 한 교감도 함께하고 있었다.
“됐어요, 교감 선생님. 저희처럼 ‘무지한’ 학부모들은 야만인처럼 쳐들어올 줄만 아는 존재니까요.”
“해석이 조금 과해지셨네요.”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은 달라지는 법이죠. 그렇지 않나요?”
그녀는 내 앞에 천천히 다가와서는 내 이름을 또렷하게 불렀다.
“강.명.문. 선생님.”
기분 나쁜 한기가 몰려왔다.
“네, 반갑습니다, 학부모회장님.”
“반가워할 필요 없어요. 방금 교감 선생님과 이야기 다 끝내 놨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한 교감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그가 말을 더듬으면서 학부모회장을 대변했다.
“그, 그, 그래, 5일에 차, 참관, 하시기로 했네!”
한 교감의 말에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동시에 물었다.
““학부모 참관수업이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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