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6화 (26/252)

26화. 책임져!

씩씩거리며 교무실로 직행하는 학부모들의 중심에서 한 아주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이따위 평가 방식을 의논도 없이 도입한 강문고 교사들은 각성하라!”

마치 결사의 항전이라도 하는 듯한 그 모습에 윤 선생이 기겁했다.

“저거 진짜 괜찮은 건가……?”

“괜찮을 겁니다. 아직은 저희가 나설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학부모회로 이루어진 인파를 뚫고 교무실로 향했다. 나와 부딪힌 몇몇 학부모들이 욕을 내뱉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욕을 받아낸 건 내가 아니었다.

“교감! 교감 어딨어!”

“교장도 불러! 어디 학부모회와 논의도 없이 이따위 방식을 만들어?”

점점 감정이 격앙되는 학부모들의 앞에 선 것은 교감도 교장도 아니었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 지석 선배였다.

“어머님, 아버님들 죄송한데, 여기서 이러시면…….”

“당신은 뭐야?”

“아, 저는 사회 교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선배의 말은 교과목을 이야기하자마자 끊겼다.

“아, 그러니까 당신도 쓰잘데기 없는 걸로 애들 평가하고 그런다는 거지?”

“쓰잘데기요?”

지석 선배의 물음에 중앙에 있던 아주머니가 들고 있던 종이를 선배에게 집어 던졌다.

그 종이에 얼굴을 얻어맞은 선배가 인상을 찌푸렸다.

“수행평가 공지문이군요.”

그 와중에도 화를 내지 않는 지석 선배를 보며 감탄했다.

“그래요. 이거 누가 추진했어요?”

조금은 감정을 다스린 중년의 여성이 지석 선배가 들고 있는 종이를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이건 학교 차원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교육청의 지시도 있어서…….”

“교육청? 우리 애 아빠 사촌이 교육청 직원인데 이런 지시 하나도 없었다던데? 어디서 개수작이야, 개수작이!”

나는 그런 학부모회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이유로 감탄했다.

첫째로, 이 사건이 학부모들의 공분을 생각보다 크게 샀다는 점이었다.

둘째로, 강문고 학부모회의 파워가 예상보다 막강하다는 점이었다.

셋째로, 지금 이 상황에서 총대 메고 나설 만한 사람이 없는 교무실의 현실에 대한 점이었다.

“일단 저희도 자리에 돌아가야 하는데…….”

내 말에 윤 선생이 나를 복도 구석으로 끌고 갔다.

“쉿! 저 사람들에게 걸리면 몇 년은 피곤할 거야.”

“그렇게 파워가 강합니까?”

“자네는 강문고 학부모회를 모르나?”

나도 과거 기억 정도로는 알고 있었다. 강문고 학부모회는 강남, 서초의 여러 학교들 중에서도 드세기로 유명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강남, 서초에서 1등을 하지 못한 설움이 있기에 더 극성이라는 의견도 돌았다. 학생들 수준이 부모를 따라가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학부모들이 뛰어다닌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강문고의 학부모회는 주변의 여러 학교들 중에서도 강성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도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학부모회에서 오면 어지간한 부장급은 이야기도 제대로 못 해.”

“그 정도예요?”

“그래. 지금 심 선생도 다른 부장이 시켜서 총알받이하고 있는 걸 거야. 뒤를 봐. 아무도 없잖아.”

윤 선생의 말대로 인파 뒤쪽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본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부장급 교사들도 언제 자리를 내뺐는지 텅 빈 의자만 남아 있었다.

“그, 다들 진정 좀 하시고…….”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우리 애는 발표 못 한다고요!”

“맞아! 그리고 발표라는 건 숫자로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어떻게 평가하려고!”

“됐고, 당신 말고 교감이나 교장 불러와요! 그 사람들이 지시했을 거 아니야!”

격화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지석 선배는 쩔쩔 매기만 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선배는 눈으로 나에게 SOS를 보냈다.

그 시선을 나도 모르게 마주했고,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선배의 시선을 따라온 학부모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내 뒤에서 이들을 훔쳐보고 있었던 한 교감이었지만 말이다.

“저기 있다!”

중년의 남성이 내 머리 뒤로 손가락질을 했다. 그게 신호탄이 되어 학부모들이 순식간에 내 쪽으로 몰려왔다.

“이봐요, 교감 선생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애 발표 못 하는 거 아시잖아요! 잠깐 외근 나가 있는 사이에 이거 듣고 내가, 어휴…….”

“해명하세요! 우리가 매년 섭섭지 않게 해 드렸는데 이게 그 보답입니까!”

소리를 바득바득 내지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한 교감은 땀을 삐질 흘렸다. 얼굴이 붉어지는 걸 넘어서 귀까지 빨개진 모습에, 그가 지금 얼마나 당황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저기, 저 일단 진정들 하시고…….”

“할 말이 진정하라는 소리밖에 없나 보죠? 아까 저 교사도 그러던데.”

중년의 여성이 사람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저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는 지석 선배를 향해 눈으로 욕을 보냈다.

‘미안해, 강 선생!’

선배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서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그 모습에 나도 더 이상 뭐라 하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빠져나가지?

아직도 한 교감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쩔쩔매고 있었고, 학부모들은 계속해서 불만을 뱉어댔다.

‘아, 빨리 가야 퇴근하는데.’

학부모회를 상대하는 건 지금 시점에서는 교감이 하는 게 나았다. 저렇게 뿔난 황소처럼 달려드는 사람들 하나하나 상대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교감이나 교장에게 맡기고 나는 슬며시 퇴근하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잠깐 지나가…….”

“우리 애 내신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교감 선생님이 수시 쓰게 해 준다면서요!”

“이거 못해서 수능 공부에도 집중 못 하면 책임질 겁니까? 교감 선생님이 우리 애 서울한국대 보내 줄 거예요?”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와 윤 선생은 거의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우리가 있다는 것도 생각 못 한 채 한 교감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얼마 전 감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놈의 감사, 감사! 언제부터 감사 걱정했다고 그래요! 보나 마나 이번에도 봉투부터…….”

그 말에 한 교감이 학부모의 말을 끊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갈 겁니다.”

“이미 피해 주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요? 됐고 여기서 해결 봅시다! 다들 동의하시죠!”

학부모들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려 보이는 남성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의견을 구했다. 여러 학부모들이 여기서 결판을 내자면서 동의를 했다.

“이제 지나가…….”

“강 선생! 강 선생 나 좀 도와주게!”

“……네?”

한 교감의 멍청한 부탁에 나는 인파를 뚫고 나가는 데 실패했다.

“강명문 선생님이라고, 이번 감사 때 평가 방식을 바꾸겠다고 개선안을 제시한 선생님입니다! 장학관님이 거기에 맞장구를 쳤고 저는…….”

한 교감은 길이 가로막힌 나를 학부모들 앞에 내세우면서 소개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잘못 없다. 옆에 있는 이 선생이 했다. 누군지 아느냐, 2년 차 초임교사다.

한 교감이 말할 레퍼토리가 눈에 훤했다.

과거 회귀하기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수행평가는 아니고 수학여행지 선정 과정에서의 문제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학생들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학부모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한 교감은 수학여행지 선정 문제를 따지러 온 학부모들로부터 도망을 다녔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 한 교감의 태도가 납득이 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당신이 책임자야? 이 평가 방식…….”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쏘아대듯 말하는 나를 보면서, 항의를 하던 중년 남성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보니까 젊은 선생 같은데 이런 식으로 하면 강문고, 아니 강남 서초권에서 힘든 거 몰라요?”

“이미 힘든 일은 죽도록 겪어 봐서 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회귀하기 전에 배신도 당해 봤고, 아득바득 살아도 봤다. 살아온 경력이 몇 년인데 누구 앞에서.

내가 한마디를 지지 않자, 옆에서 한 교감이 불안하게 내 소매 끝을 잡았다. 그러면 안 된다며 고개를 젓는 그를 무시하고 중앙에 자리한 중년 여성에게 종이를 보여 주었다.

“마침 들고 계신 종이가 제가 나눠 준 종이네요. 여기에서 발표가 문제가 된다고요? 이게 뭐 어쨌다는 거죠?”

종이는 내가 어제 학생들에게 배부한 수행평가 공지문이었다.

“우리 애는 그런 거 못 하는데 성적 안 나오면 책임질 거예요!”

“아뇨. 안 질 겁니다. 그것도 못 하면 고등교육을 받는 의미가 없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종이에 적힌 평가요소를 그대로 읽었다.

“이 평가요소들이 뭐가 어렵습니까?”

주어진 형식과 시간에 맞춰서 발표한다. 발표 내용이 통일성이 있다. 책 내용과 진로에의 고민이 돋보인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뒤에서 씩씩대던 학부모 중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애는 책을 안 읽는다고요!”

그 말에 정말 헛웃음이 피식 나올 뻔했다.

“책 안 읽는 게 참 자랑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려운 책을 이야기했나요? 교과서에 있는 작품도 좋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것도 안 보고 자랐다면 이번 기회에라도 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나는 평가요소 중 형식을 가리켰다.

“슬라이드 최대 5면 이내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5장을 넘기라는…….”

그 말을 하던 중년 여성이 열려던 입을 다물었다.

“이내라는 건 1~5면까지만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최소가 아니라 최대입니다. 분량 넘어가면 2점 깎을 거고요.”

“…….”

“PPT 보신 적 있습니까? 그거 5면은 다섯 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면은 제목이랑 표지로 끝냅니다. 또 한 면은 추천할 책 표지 넣고 끝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면은 감사합니다 라고 마무리만 넣습니다.”

나는 공지문에 적힌 형식 중 <표지, 마무리 포함 최대 슬라이드 5면 이내 준비>라고 적힌 내용을 손가락으로 팍 튕겼다.

“그럼 학생이 준비할 면은 몇 개죠?”

내 말에 다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학생이 집중해서 만들어야 하는 면은 겨우 두 면입니다.”

“……그, 그 두 면을 만들어서 발표를 해야 하잖아요!”

“맞아! 우리 애는 생전 남 앞에서 말 한 번 안 하고 성실히 공부해 온 아이인데!”

그런 부모들을 보면서 다시금 이곳이 강문고라는 사실을 환기했다. 여기의 학생, 학부모는 이런 사람들이었다.

“두 면. 그거 쓰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나는 검지와 중지를 브이처럼 들어 올리면서 두 면을 강조했다.

옆에서는 한 교감이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윤 선생은 흥미롭다는 듯 이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그리고 지금 나이에 진로를 찾은 애들이 어딨어요? 대학교 가느라 정신없지!”

아직도 뭔가 반박해 보려는 학부모들을 향해, 나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알려 주었다.

“진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학부모들의 입이 동시에 멈추었다. 원래 이런 말싸움은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막혀 어버버거리게 되는 법이다.

다들 금붕어처럼 뻐금거리는 몇 초, 그리고 노련한 선생님인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많이들 어려워하시니, 쉬운 예를 들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잠시간 침묵이 흐르자 학부모들의 시선이 다시금 나에게 집중되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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