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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25화 (25/252)
  • 25화. 변화의 시작

    2010년 1학기 기말고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험문제를 제작한 선생님들은 채점과 감독에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은 자기 나름대로 준비한 지식들을 뽐내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반에서는 시험 답지를 비교하는 친구들의 소리가 웅성대며 울려 퍼졌다.

    “은장아, 여기 답 뭐라고 썼어?”

    “어! 거기 나는 2번 했는데?”

    “아, 또 틀렸다. 이거 1번 아니야?”

    은장이 주변에는 마지막 시험지 답안을 비교하려는 친구들이 여럿 붙어 있었다.

    물론, 은장이의 성적이 전교권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서슴없이 지내고 있는 친구가 바로 학급 반장인 은장이였기에 이렇게 시험이 끝날 때면 친구들이 달려왔다.

    “사문 10번 좀 이상하지 않아?”

    “응? 왜?”

    “아니, 지문 해석이 좀 애매하잖아. 이거 봐, 여기 (가)에서는 성취 지위에 대한 해석인데 여기서는 준거집단이 회사로 된 게 말이 돼?”

    “조금 헷갈릴 수는 있겠지만, 여기 (가)에서 보면 남편은 집보다는 직장을 더 좋아하잖아? 잘 보면 그런 뉘앙스의 문장이 숨어 있어. 여기에…….”

    시험이 전부 끝나자 은장은 친구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그렇게 답변을 해 주는 게 그녀에게는 일상이기도 했다.

    ‘부족한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해도, 여전히 그녀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옆자리인 동석이는 그래도 성적이 오른 모양이었다. 얼굴이 묘하게 밝아 보였기에 은장은 동석에게 물었다.

    “잘 봤어?”

    “응, 나 오른 것 같아!”

    순진하게 웃으면서 답하는 동석을 보면서 은장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학기 초에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사이였지만, 담임 선생님 때문에 입시를 같이 준비하는 친구가 되었다.

    최근에는 동석이의 발표를 도와주기 위해 합류한 정석이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반 선생님이지만, 동석이 동아리 선생님이기도 한 박은환 선생님도 자신을 도와주려 했다.

    은장은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신기했다.

    ‘꼭 합격해야 해.’

    그렇기 때문에 은장은 담임 선생님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특히,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수시 준비를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따를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성적은 지난 시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비슷한 성적과 비슷한 난이도. 다른 친구들도 난이도를 비슷하게 느꼈다면, 은장의 등급은 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우리 수행평가는 뭐 본데?”

    “쪽지시험 보는 거 아냐?”

    “그니까, 범위 정해졌어?”

    “기말시험 범위겠지, 뭐. 근데 쪽지시험 그거 범위 1학기 때 잘못 알려 줬다는 소문이 있던데 들었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장은 수행평가로 뒤집을 만한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쪽지시험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면, 다들 만점을 받기에 변별력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야, 근데 이번에는 평가 방식이 바뀐다는 소문도 있던데?”

    은장은 친구들이 옆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진짜? 누가 그래?”

    “몰라, 나도 건너건너 들어서. 뭐, 토론이나 발표 같은 걸 한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에이, 그럼 그걸 어떻게 평가해? 구라겠지.”

    “그치? 쪽지시험 범위나 확인하자.”

    친구들은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 소문 아니냐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그러나 은장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였다. 만약 수행평가의 평가 방식이 바뀐다면? 쪽지시험이 아니라 발표나 토론이 된다면?

    그럼 부족한 지필고사 점수를 수행평가로 채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자신있는 게 발표, 토론이지 않은가.

    그런 판단이 서자 은장에게 자신감이 샘솟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은장의 옆모습을 동석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 *

    “아이고, 힘들다.”

    “고생하셨습니다.”

    어깨를 툭툭 두들기는 지석 선배를 보면서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선배는 내가 들고 있는 서류들을 보더니 기함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뭐긴요. 곧 시행할 수행평가 주제랑 시사RPG대회 참가신청서랑 그리고 이것저것…….”

    “결국 올해도 초임들만 개고생이구만.”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올해는 그래도 재밌네요.”

    “재밌어? 이게?”

    “네. 발견하지 못 할 뻔했던 보석들도 많이 발견했고 말이죠.”

    내 말에 선배가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동석, 김은장, 이정석. 이 세 명은 내가 회귀하고서 발견한 입시 역전의 보석들이었다.

    다른 학생들도 상담을 했지만, 가능성을 지닌 학생으로는 이 셋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준비는 잘 되어 가?”

    “동석이가 좀 불안하긴 합니다. 발표 연습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역시 너무 급하게 준비했나 싶기도 하네요.”

    “그런 소리 마라. 지금 동석이 학교에서 유명한 거 알지?”

    알다마다. 동석이는 나와 상담을 마친 후부터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공부에도 매진했다. 평소 안 하던 야자도 하고, 문제집도 선생님들에게 빌려 가면서 공부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향상됐었다. 어쩌면 어제까지 치른 기말고사에서도 성적이 꽤 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왕 하는 거 동석이 잘 챙겨 봐. 완전 멘토처럼 따르던데.”

    선배의 이야기에 나는 알겠다고 답하면서 다시 서류철을 들었다. 한 아름 되는 서류를 들고 3학년 3반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시험이 끝나고 다시 활기를 찾은 학생들에게 보란 듯이 서류 더미를 소리 내며 올려놓았다.

    콰앙!

    그 소리에 놀랐는지 짧은 정적이 생겼다. 고요한 교실 분위기를 내 목소리가 깨웠다.

    “시험 다들 잘 봤냐?”

    “네.”

    “아니요.”

    “몰라요.”

    여러 대답이 섞이면서 들려왔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빙긋 웃고는 서류를 적당히 나눠서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하나씩 받아라.”

    내가 만든 종이를 받은 학생들이 처음에는 이게 뭔가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이게 진짜일 리 없다고 현실부정을 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쌤!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어디 있긴 어디 있어. 교감 선생님 명령이야.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준비해요!”

    “뭔 소리야? 소문 못 들었어?”

    “아니, 그야 듣기는 했지만…….”

    나는 피식 웃으면서 종이를 펼쳐 보였다.

    그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강문고 3학년 국어 수행평가]

    주제: 희망 진로나 희망 전공과 관련된 책을 1권만 읽고 친구들에게 추천하기

    (교과서 문학작품 포함)

    형식: PPT 발표(표지, 마무리 포함 최대 슬라이드 5면 이내 준비) / 발표 시간 2분 이내

    제출일: 7월 5일까지의 수업 시간 중 발표

    평가 기준

    (1) 주어진 형식과 시간에 맞게 발표했다.

    (2) 발표 내용이 통일성이 있다.

    (3) 책 내용과 진로에의 고민이 돋보인다.

    (4) 책 이외의 보조자료를 활용해서 발표했다.

    (5) 친구들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 5개 모두 만족 10점

    → 4개 만족 8점

    → 3개 만족 6점

    → 2개 만족 4점

    → 1개 만족 2점

    비고: 제출기한을 넘겨서 제출할 경우 하루에 2점씩 감점.

    제출 필수 분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부족한 페이지당 1점씩 감점.

    진한 궁서체로 적혀 있는 수행평가 안내문. 지금까지 쪽지시험이나 간단한 지문 분석 정도에만 익숙해져 있던 녀석들이 볼멘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튼, 이번에 수행평가 방식이 바뀌면서 비중도 조금 변했으니까 준비해 와.”

    작은 소리로 귀찮게 이런 걸 왜 하냐는 불평들이 들려왔다.

    “쌤, 이거 진짜 해야 해요?”

    “그럼 가서 감사관님들한테 따지던가. 우리라고 이 귀찮은 걸 하고 싶어서 하겠어?”

    적반하장으로 내가 화를 내자 학생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지난번 장학관이 왔을 때 이야기했던 발표 수행평가. 그걸 이번에 도입하게 되었다.

    시험 기간 동안 나는 임 부장과 함께 대회와 수행평가의 발전 방향에 대해 정리했다.

    대회와 수행평가에서 발표를 어떻게 할지, 강문고의 단조로움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등 의견을 종합했다. 그리고 장학관이 이야기했던 그 변화를, 바로 당장 시행하기로 했다.

    [빨리 해서 우리가 노력하는 걸 보여 주자고.]

    한 교감의 명령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교감의 명령이다 보니 교내의 다른 교사들도 수행평가 방식을 조금씩 바꿔 나갔다. 그런 사실을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을 테니 당황스러웠겠지.

    “이제 쪽지시험이랑 발표 수행이랑 해서 각각 10점 만점, 총 20점 만점이 수행평가 점수야. 대충하면 안 되겠지?”

    학생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 * *

    다음 날, 윤 선생이 나에게 와서 한목대 특강을 잡았다고 이야기했다.

    시기는 7월 16일 금요일. 기말고사를 보기 전부터 한목대에 연락을 한 덕분에 특강 날짜를 7월 중순으로 맞춰서 잡을 수 있었다.

    “설득 잘되셨나 보네요.”

    “강 선생이 알려 준 대로 하니까 금방 되던데? 가끔 이럴 때 보면 강 선생은 무슨 독심술이라도 부리는 것 같다니까.”

    윤 선생이 한목대 특강을 교감에게 허락을 받은 방법은 간단했다.

    ‘올해 한목대 의대 면접 방식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한목대 홈페이지에 기재된 의대 면접 방식 변화 안내 자료를 보여 주었다.

    나명천에게 모종의 이유로 관심을 쏟고 있는 한 교감은 한목대 의대에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

    게다가 한목대의 입시 변화는 고1, 고2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도 홍보를 할 수 있었다. 강문고에서는 의대를 목표로 하는 1, 2학년이 많으니까.

    ‘실제로 갈 수 있는 애들은 몇 명 안되어도 말이지.’

    어쨌든 관심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건 한목대 특강을 요청할 명분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나는 윤 선생에게 이런 부분을 설명해 주고, 한 교감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요청했었다.

    “다행입니다. 그럼 그때까지 따로 준비할 건 없으시고요?”

    “별다른 건 없었고, 한 교감도 관심이 많은가 봐. 자기도 듣겠다고 그러데. 어지간히 나명천이를 챙겨야 하나 봐.”

    그렇게 말하고는 잠깐 생각에 잠긴 윤 선생은 들고 있던 컵을 들고 남은 믹스커피를 마셨다.

    “어쨌든, 이번에 한목대 특강 끝나면 또 바뀌겠지?”

    “그럴 겁니다. 며칠 전에 장학관님이 이야기한 건 들으셨죠?”

    “아아, 그래. 수행평가랑 대회에 발표 항목 넣으라고.”

    “정확히 말하면 다양하게 평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발표는 하나의 예시였고요.”

    사실 장학관이 말한 점을 다시 생각해 보면, 발표는 어디까지나 평가 방식의 예시였다.

    때문에 쪽지시험을 보더라도 형식만 조금 바꾸면 변화를 추구하는 형태를 보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영어 쪽지시험은 단어 평가가 아니라 영작문을 평가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재 강문고 교사들은 이 변화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발표’라고 말하니까 모두 발표를 따라 하고 있었다.

    “근데 진짜 이렇게 바꿔도 괜찮은 거야? 학생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을까?”

    나는 윤 선생의 우려에 태연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아뇨, 학생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저기 다들 모이시는 것 같네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내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 시선에 교무실 앞에 떼를 지어 모여 있는 십여 명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담겼다.

    그들을 보면서 진짜 민원자들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이거 어떤 새끼가 만든 거야!”

    이제 강문고의 학부모회를 설득할 차례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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