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중간점검
“고개는 똑바로 들고, 허리 펴고!”
“응, 응…….”
“목소리는 왜 작아져? 더 크게! 복식호흡! 알려 줬잖아!”
예상했던 대로 동석이의 스피치 연습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 정석이의 옆에서 나는 다리를 꼬고 막대사탕을 빨았다.
박 선생은 그런 우리의 모습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박 선생님, 보고만 있지 말고 선생님도 좀 도와주세요. 영어 발표 대회도 금방이잖아요.”
“영어 발표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지금도 잘 배우고 있는 것 같은데요 뭘.”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봤다. 그러자 박 선생은 턱에 손을 괴고 태연하게 말했다.
“어제는 자기소개도 못 했는데, 그래도 오늘 자기소개는 하잖아요.”
“그거 말고는 아무런 대답도 못 하는데요?”
내가 핀잔을 주자 박 선생은 그래도 이게 어디냐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동석이는 여전히 칠판 앞에 서서 긴장한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동석이의 발표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주 남짓. 그 시간 동안 나와 박 선생, 정석이는 동석이의 스피치 실력 향상을 위해 힘을 쓰고 있었다.
방과 후, 3반 교실이 비어서 다들 여기로 모였고, 정석이도 지난번 약속이 있어서 자리를 지켰다.
“자, 학생은 어떤 로봇을 만들었나요?”
“어, 저, 저는, 곤, 곤충 로봇, 만들어 봤, 는데, 그때 공부한 게, 프라모델로 몸체를 만들, 만들어, 코딩, 아니 아두이노로 다리를, 아니 다리가 아니라, 곤충 몸통에…….”
보다 못한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교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정석이가 놀라서 나를 제지하려 했다. 나는 교탁 앞에 멈춰서서 동석이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녀석이 들고 있던 대본을 빼앗았다.
“이거에 너무 의존하는 거 같은데?”
“어, 근데 그거도 없으면…….”
“괜찮아, 너 저번에 나한테 로봇동아리 느낀 점 이야기했던 거 잊었어?”
이전에 동석이가 로봇동아리 활동 보고서를 작성해서 왔을 때 느낀 점을 이야기했었다. 처음에야 뿌듯했다는 둥 의미 없는 말만 내뱉었다. 하지만, 조금만 물꼬를 터 주자 동석이만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흘러나왔었다.
지금 동석이에게 부족한 건 그런 자유로움이다.
“정석아, 동석이한테 면접이나 인터뷰가 아니라 그냥 수다 떨듯이 물어봐라.”
“수다 떨듯이요?”
“그래. 영화 보고 온 다음 날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 영화 내용 외워서 말하니?”
“아…….”
말을 잇지 못하는 정석이에게 동석이의 답변 대본을 건네주었다.
“이건 방향성이 완전 벗어났다 싶을 때만 참고해. 그리고 우리가 있으니까 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석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도 그렇고.”
그 말에 정석이가 뜨끔했는지 어깨를 살짝 떨었다. 그런 녀석을 뒤로하고 박 선생에게 제안했다.
“선생님, 저희는 내려가 있을까요?”
“네, 기말고사 준비도 해야 하는데 잘됐네요.”
그녀가 내 제안에 동의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교실 밖으로 향했다.
“아, 은장이 오면 간식 먹으면서 해라. 올 때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고서 나와 박 선생은 교무실로 향했다.
정석이에게 맡기기는 했지만, 사실 불안한 것도 조금은 있었다.
정석이가 본인은 발표를 잘하고, 말빨도 좋다. 하지만 가르치는 데에도 능력이 있냐고 하면, 적어도 지금까지 본 바에 의하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가르치는 소질은 은장이가 더 좋았다.
“큰일 났네. 잘못하면 수상 못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정석이한테 동석이 발표 연습 맡기신다면서요. 그럼 좀 믿어 보세요.”
박 선생이 진정하라면서 혼잣말을 하는 내게 말했다. 옆에 그녀가 있는 것도 생각 못 하고서 혼잣말을 크게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화날 일이에요?”
“저러다가 최동석이 저놈이 수상 못 하는 날에는 입시고 나발이고…….”
내가 초조해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동석이는 입시에서 반드시 이번 대회 수상을 해야 했다. 그래야 연천대에 지원할 수 있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도 사용할 소재가 늘어나게 된다.
‘만약 이번에 수상하지 못하면…….’
학생부 내용도 중요하지만, 연천인재육성 전형은 외부 수상 실적 역시 중요했다. 기타 서류 목록표에 들어가는 수상 실적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평가가 바뀌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전국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하면 연천대의 꿈은 사라지게 된다.
“강 선생님, 그렇게까지 동석이에게 신경 쓰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그건…… 아닙니다.”
동석이는 내가 회귀하고 찾은 입시 역전 사례의 보석 중에서도 보석이었다. 동석이를 잡지 못하면, 뒤에 있을 내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사항을 알 리가 없는 박 선생은 내가 동석이를 지나치게 다그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후…… 어제부터 강 선생님 뭔가 다급해 보여요.”
“제가요?”
“네. 누가 뭐라도 훔쳐 오려는 것처럼요.”
그 말에 나는 달리 대답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이제는 다 녹아 버린 사탕 가루를 입에서 굴려댔다.
“쫓기는 기분이 들었나 봅니다.”
“쫓겨요?”
“그냥 그런 겁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는 다시 NEIS에 접속해서 반 학생들의 성적을 뒤적였다. 옆에서 박 선생은 이번 기말고사 문제지를 점검했다.
우리는 그렇게 적당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약속했던 30분을 조금 넘기려는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쌤 이거부터 보세요!]
정석이의 메신저 톡이었다. 톡 안에는 동영상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학생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네, 저는 강문고등학교 3학년인 최동석이라고 합니다.]
[네, 동석 학생 반가워요. 3학년이면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괜찮았나요?]
[담임 선생님께서 제가 이거 잘할 것 같다고 하시면서 추천해 주셨어요. 그래서 동아리 시간에도 준비했고, 물리 선생님도 도와주셔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3분짜리의 길지 않은 영상 안에는 정석이의 질문에 답하는 동석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괜찮은데?’
나는 영상이 끝날 때까지 동석이의 답변을 집중해서 들었다. 정석이는 동석이의 답변에 맞춰 꼬리질문을 적절하게 해 주었고, 동석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쌤 어때요, 괜찮죠?”
교무실을 벌컥 열고 정석이가 들어왔다. 가방을 메고 온 걸 보니 학원 갈 시간이 다 된 모양이었다.
“잘했는데? 어떻게 한 거야?”
“쌤 조언 참고해서 자연스럽게 꺼내려고 노력했죠. 은장이가 음료수도 사 와서 다과회 하듯이 이야기 나눴어요.”
녀석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 정석이도 선생님이 옆에 있어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낯선 사람들 앞에서도 잘할 거예요.”
“좋아. 정석이 너도 이거 잘 준비하면 논술 도와줄게.”
그 말에 정석이가 눈빛을 빛내면서 좋아했다.
“진짜죠? 저 그렇지 않아도 논술학원 다니겠다고 이야기했다가 엄마한테 등짝 맞았잖아요. 쌤이 도와주셔야 해요. 알겠죠?”
능청스럽게 웃는 녀석의 등을 나도 세게 때렸다.
“아! 이거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거예요!”
“빨리 학원이나 가라. 그리고 논술 답지는 다 봤어. 조만간 알려 줄게.”
정석이는 그 말을 듣더니 이내 긴장한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쌤, 간단하게만 먼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꼭 알고 싶냐?”
“네!”
“갈 길이 멀지만 길은 닦여져 있다.”
“……네?”
내 말에 녀석이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만난 듯 짧게 탄식했다.
정석이의 논술 답안지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 해 본 것치고 이 정도면, 정말 합격 레벨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어 보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우선 미뤄두고.
“지금 이야기하면 길어져. 조만간 대회랑 이것저것 정리되면 설명해 줄게.”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학교를 빠져나가는 정석이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3반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로 올라가자 은장이가 간식을 사서 동석이와 나눠 먹고 있었다.
“쌤, 방금 정석이 갔어요.”
은장이가 입에 물고 있던 과자를 급히 삼키면서 말했다.
“방금 만났어. 동석이는 해 보니까 어때?”
“어…… 괜찮았던 것 같아요. 정석이가 앞으로 학교 끝나고 30분씩 매일 도와준대요.”
정석이가 이렇게 꾸준히 봐 주면 확실히 동석이 스피치 실력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다.
“그래. 이번 대회 꼭 수상해야 하니까 2주만 참고 해 보자.”
초코 과자 봉지를 뜯던 동석이가 과자를 든 채로 주먹을 불끈 움켜쥐면서 ‘네!’ 하고 소리쳤다.
그 바람에 주먹 안에 있던 과자가 부서지면서 봉지가 터졌다. 당장 교실 바닥 치우라는 내 말이 나오기도 전에 동석이가 당황해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과자 조각을 수습했다.
“그런데 쌤, 저는 왜 부르셨어요?”
사실 오늘은 은장이 활동의 중간점검도 필요했다. 방금까지는 동석이 발표 연습을 해야 해서 그사이에 다과를 사 오라고 시켰던 것이었다.
“할 만해?”
“대회 스텝 말씀하시는 거죠? 네, 재밌어요.”
“공부는?”
“어…… 솔직히 좀 놓고 있기는 한데…….”
은장이의 말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중요한 평가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발전 가능성’이야. 이건 알지?”
“네.”
“작년까지는 내신이 2등급 초반, 중반을 왔다 갔다 했으니까 올해는 1등급을 받아야 해. 그래야 정신 차리고 활동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입학사정관제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뀌고,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졌을 때, 많은 학생들이 큰 오류를 범했었다.
바로, 내신이 좋지 않아도 활동만 좋으면 된다는 선입견이었다.
몇몇 학생들 중에는 활동이 지나치게 매력적이어서 낮은 내신을 극복한 사례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합격생들은 활동과 함께 성적도 좋았다. 그런 점들을 간과하고 학교 활동에만 집중하다가 결국 하나만 잡고 하나는 놓치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지금 은장이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1등급 중후반은 받아 줘야 ‘아 얘가 열공 하는구나~’ 하지, 작년보다 점수 떨어지면 어떻게 보겠어?”
“공부할게요…….”
내가 다그치자 은장이가 시무룩해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기죽지는 말고. 박 선생님, 기말고사 끝나고 대회 준비해도 늦지 않죠?”
“당연히 안 늦죠. 지난주까지 준비할 것들은 끝났고, 행사 당일에만 잘 진행하면 돼요.”
나는 그것 보라며 은장이를 돌아봤다.
“들었지? 괜히 대회 잘해 보겠다고 토론 주제 다시 생각해 보거나, 친구들 다그치거나 하지 마라. 준비한답시고 집에서 혼자 리허설, 시뮬레이션해 보고 그러지 말고.”
“헐. 쌤 어떻게 알았어요?”
은장이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책상 위에 팔을 올렸다.
“만약에 공부 제대로 못 해서 성적 더 떨어지면, 이번에는 진짜 답 없어. 그때는 너희 부모님께서 서울한국대 포기하고 재수나 시키겠다 하면 나도 할 말 없는 거야. 알겠어?”
“네. 공부 제대로 할게요, 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은장이 옆에서 동석이는 괜히 긴장해서 발표 대본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런 둘을 보면서 나는 남은 시즌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아직 싹이 트지 않은 학생들.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학생들
그렇기에 이 녀석들의 입시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내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다.
그리고 동석이와 은장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다.
그런 기대감과 자신감이 내 마음속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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