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감사 (2)
“제가 ‘주의’를 줬고, 선생님들은 ‘개선안’을 알려 주셨지 않습니까.”
그제야 장학관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눈치 챈 두 사람이 대답했다.
“고마워, 김 장학관.”
“감사합니다. 추가 자료가 필요하시면 요청 주십시오.”
“그리고 이참에 발표 대회도 여러 개 열어 보는 건 어떤가요?”
장학관의 말에, 교무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른 교사들도 몸을 움찔거렸다.
“강문고가 사업비 진행, 성적 관리에서 다소 미흡한 점을 보였지만, 본인들도 그 점을 반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말을 이으면서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가 말하는 반성을 하는 사람은 아마 나를 말하는 거겠지.
‘교감 선생님, 대회는…….’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임 부장, 한 교감이 서로에게 속삭이듯이 이야기를 했다.
“장학관님, 그럼 7월 넘어서 열릴 대회들에 발표 항목을 추가하는 형태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이미 준비해 둔 대회들을 제치고 새로운 대회를 열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학사 일정대로 맞춰진 대회들이 있을 텐데 새롭게 뭔가를 하기는 어렵겠죠.”
“네. 그래서 말인데, 과학탐구보고서 대회를 ‘과학탐구보고서 발표대회’로 바꾸고, 보고서 역량과 발표 역량을 동시에 평가하면 어떨까요?”
“강 선생?”
한 교감이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나는 한 교감에게 걱정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바꾸면 괜찮겠네요.”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교감 선생님과 여러 연구부장 선생님들께서, 변하는 입시에 맞춰 우리도 발전하자고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이제 이쯤에서는 적당히 포장이 들어가야 한다.
“바로 다음 달에는 시사RPG대회라는 신규 대회가 열립니다. 이번 인문융합대회에서 진행하는 대회입니다. 교감 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덕분에 재미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컴퓨터 게임 같고 재미있겠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하겠는데요?”
“과학탐구보고서 대회도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만들었습니다. 특히, 수시 전형에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 개선안들이 두각을 드러낼 테니,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나를 보곤, 장학관이 한 교감을 향해 말했다.
“강문고에 이런 선생님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 강 선생님이 좀 독특합니다.”
“그런 강 선생님을 교감 선생님이 지원해 주고 계셨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입니다. 다시 봤습니다.”
장학관이 껄껄 웃자, 한 교감도 어색하게 껄껄 웃으려 애썼다. 다소 거짓된 웃음이기는 했지만, 기분이 한껏 들뜬 장학관의 기분을 맞춰 주기에는 충분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을 때, 젊은 장학사가 돌아왔다.
“어땠나?”
교실과 급식실을 둘러보고 온 그는 특이한 광경을 봤다면서 보고를 했다.
“교실, 급식실 운영 모두 문제없었습니다. 하나 좀 독특했던 게 있는데…….”
그는 잠깐 장학관의 눈치를 살피고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3학년 3반 교실에서 과학 선생님인 윤기준 선생님과 학생 한 명이 로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동아리 활동 아니야?”
“로봇동아리 활동이기는 한데, 그냥 만드는 게 아니고 뭔가 어려운 이론을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장학관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나를 쳐다봤고, 이어서 한 교감과 임 부장을 번갈아 봤다.
“아, 그, 그거. 아마 최동석이 로봇대회 나가는 거 윤 선생에게 이야기했었는데, 그거 수업하고 있었나 보네, 허허허.”
한 교감의 말에 장학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장학사에게 물었다.
“그 어려운 이론이 뭔가?”
“무슨 물리 교과 지식과 연관 지어서 설명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문과 출신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윤 선생님이 동석이랑 같이 있으면서 잘해 준 것 같았다. 속으로 맑게 웃으면서 젊은 감사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끼어들었다.
“아마 로봇의 작동 원리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해 주고 계셨을 겁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과과정 내에서요.”
“아, 그렇지, 그렇지. 동석이랑 윤 선생 이야기를 내가 저번에 강 선생에게 했었지!”
한 교감의 첨언에 눈살이 찌푸려질 뻔했다. 나는 가까스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장학관이 새롭다는 듯 말했다.
“오늘 감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 아마 윗선에서도 좋아하실 것 같군요.”
장학관의 신호에 맞춰 젊은 장학사도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강명문 선생님.”
“네?”
“대회와 수행평가, 성적 처리 방향들. 방금 개선한다고 이야기한 방법들 있죠?”
그가 임 부장과 나를 눈빛으로 가리켰다. 그 시선이 따가웠는지 임 부장은 얼굴을 푹 숙였다.
“두 분이 같이 정리해서 저한테 보내 주세요. 잘만 하면 내년에 우수 사례로도 보여 줄 수 있겠습니다, 하하하!”
“아…… 네, 감사합니다.”
비웃음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그의 웃음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한 교감과 임 부장이 교무실을 나가는 감사반장과 행정감사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가는 길에서도 강문고가 많이 변했다느니, 새로운 시도가 눈에 돋보인다느니 하면서 밖으로 향했다.
“……강 선생.”
두 사람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임 부장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런 건 우리 부장들이 알아서 할 일이야. 왜 껴들었어?”
“죄송합니다.”
감사에 평교사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그저 수업 잘하고, 학생들 잘 케어해 주면 될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내 행동은 연구부장인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지나친 간섭은 도움이 아니라 월권이라는 생각 안 해 봤나?”
“됐어, 그만하게.”
한 교감이 임 부장을 말리면서 분위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강 선생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한 것도 사실이잖나.”
“장학관님이 우리한테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만약 일이 잘못됐으면…….”
“임대원 선생.”
목소리를 낮게 내리깐 한 교감의 목소리가 교무실 한구석을 음산하게 만들었다.
“됐다고 하지 않았나.”
사납게 눈을 치켜뜬 한 교감 앞에서 임 부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다. 부장이 아니라 선생으로 불린 그가 입술을 조금 씰룩거렸다. 무언가 반항이라도 해 볼까 고민이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내 한 교감에게 굴복했다.
“……주의하겠습니다.”
끝까지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임 부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이빨을 부득부득 갈았다.
“강 선생도 마찬가지야. 오늘 고맙긴 했는데, 또 뭔가 구상 중이면 내일 감사 전에 나한테 언질 좀 해 주게.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나?”
어차피 두 번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남은 감사 일수는 이틀. 그 이틀 동안 나는 열심히 수업하고 열심히 상담을 해 줄 생각이었다.
‘오늘처럼 액션을 취하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지.’
그럼에도 나는 한 교감을 향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무언가 있으면 미리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한 교감은 내 말에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교감실로 들어갔다.
* * *
남은 이틀의 감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학생들은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교사들은 열심히 수업을 했다. 연구부장들은 감사 항목에 맞춰 미리 준비해 둔 자료들을 감사 담당자들에게 건네주었다.
장학관, 장학사, 행정감사관 3명까지 총 다섯 명의 감사가 3일간 이루어졌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강문고는 아래의 3개 결과를 받게 되었다.
‘목적사업비 집행 부적정’
‘학업 성적 관리 부적정’
‘교내대회 운영 관리 부적정’
목적사업비 집행이야, 교사 연수에서 부당하게 결재를 올린 건일 것이다. 나머지 두 개가 바로 첫날 장학관과 이야기를 나눈 항목들이었다.
“강문고는 대회는 다양하게 열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평가 기준도 지금보다 디테일해야 합니다.”
“일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집중된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해도 풀어내셔야 하겠습니다.”
행정감사관들의 지적에 담당 연구부장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런 연구부장들의 뒤로 장학관이 이야기했다.
“월요일에 강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랑 이야기 나눈 거 전달받으셨으면, 개선하기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그의 말에 임 부장의 눈썹이 미묘하게 떨려 왔다.
나는 그런 교무실 분위기를 살피면서 최대한 그들과 마주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일. 이 3일 안에 나는 내 목적을 최대한 달성해냈다.
이제 대회 운영 규정, 평가 방식도 바꿔야 할 것이고, 수행평가 역시 변화가 필요했다.
다행히 장학관이 내 의견을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그 덕분에 한 교감도 관련해서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괜찮겠지?”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의 열연에 장학사분이 감동하신 것 같더라고요. 잘하신 거죠, 그럼.”
감사가 끝난 다음 날, 윤 선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가 했던 연기 덕분에 감사에서 내 입지를 더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윤 선생이 가장 골치 아파했던 대회 규정을 손볼 수 있게 되었다.
“이걸로 첫 스텝 내디딘 겁니다.”
“남은 건 한목대 특강인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윤 선생은 수업으로 비어 있는 지석 선배의 자리에 털썩 앉고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한목대…… 한목대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윤 선생이 마른 침을 꼴딱 삼켰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수상한 그의 행동에 의문이 들어 물었다.
“진짜 괜찮을까?”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한목대에서 발표도 했습니다.”
수요일인 어제, 한목대는 올해 입시에서 MMI 면접을 새로 도입하겠다고 기사를 내보냈다. 아직 홈페이지에 면접 관련 자료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며칠 후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늦기 전에 이걸 신청해야 한다고 윤 선생에게 주장했다.
“그럼 이거를 한 교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잖아.”
“네, 이건 윤 선생님께서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신청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아니,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위험했다.
‘임 부장의 말도 일리는 있어.’
최근 한 달간, 회귀하고 나서 초임교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활개를 치고 다녔다. 그런 모습이 한 교감이나 동료 교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임 부장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었다. 특히나 임 부장은 연구부장 타이틀을 달고 싶어서 단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니 일을 늘리는 내가 눈엣가시처럼 보일 게 분명했다.
‘만약 이런 시점에서 내가 한목대까지 이야기하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는 인문 계열 선생님이다. 한목대 특강은 MMI 면접의 중요성을 알려 주기 위한 시간이다. 그런데 자연과학 교사가 아니라 인문계열 교사가 이를 신청하면서 한 교감을 설득한다? 적절한 명분이 서기 어려웠다.
“저보다는 과학 선생님인 윤 선생님 주장이 더 그럴듯할 겁니다.”
윤 선생이 잠시 고민하고는, 힘겹게 알겠다고 답했다.
특강을 윤 선생에게 맡긴 나는 탁상달력을 펼쳤다.
한목대 특강이 7월이나 8월 중으로만 잡히면, 이제 남은 건 대회들이었다. 달력을 6월에서 7월로 넘겼다.
그리고 나는 회귀하고 가장 먼저 별표를 해 둔 날짜에 시선을 고정했다.
7월 23일, 24일(금)(토)
- 동석이 전국 로봇경진대회(일산)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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