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감사 (1)
주말이 지난 월요일, 나는 논술 문제 답지를 들고 온 정석이에게 시사RPG대회에 관해서 설명했다.
아직 공식 포스터가 나가지는 않았다는 점과 함께 대회의 특징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리고 동석이의 발표 준비도 도와주면 좋겠다는 점까지.
“동석이가 생각보다 발표를 많~이 못해. 그래서 스피치 기본부터 알려 주면 좋겠다.”
이 정도 일은 별거 아니라며 가슴을 팡팡 치는 정석이가 꽤 믿음직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부모님은 별말씀 없으셨어?”
“네, 그다지…… 여름방학 때 나갈 준비를 하라는 것 말고는 없었어요.”
조금 침울해지는 녀석을 보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정석이 어머니와 상담하면서 생각했던 사항들을 정석이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 그렇게 안달할 필요는 없다.
“정석아.”
“네.”
“미란이랑은 계속 연락하고 있지?”
내 물음에 정석이가 밝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제가 여친한테 얼마나 잘하는데요.”
“그 마음 계속 유지해라.”
정석이가 주먹을 꽉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시늉을 했다. 여름방학 때 해외로 나갈 준비 하라는 부모님의 말에도 마냥 행복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헤어지면 안 된다.’
정석이가 한국에 남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란이와 사귀고 있어야 한다.
만약 중간에 헤어지기라도 하면, 녀석은 미련 없이 해외로 유학을 떠날 마음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퓨쳐 컨설팅의 도움을 받아 튀니지로 유학을 가겠지.
그리고 몇 년 뒤에,
<강남 명문고 학생들의 범죄 행위를 눈감아 준 담임>
이라는 타이틀이 생길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고개를 좌우로 휘저으면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아무튼 잘 사귀고, 이번에 동석이 도와서 같이 팀으로 나가 봐.”
“쌤 당연하죠. 이렇게 도와주시는데 그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뭔 소리야?”
정석이가 짐짓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나에게 말했다.
“연애 문제 도와주시는 쌤은 처음 봤거든요. 만약 쌤마저 미란이랑 헤어지라고 하셨으면, 진짜 자퇴했을 수도 있어요.”
“또, 또 헛짓거리 하려고 한다.”
“농담이 아니라 그땐 정말 자퇴 생각도 했었어요.”
며칠 전 자신이 했던 무단지각을 떠올리는지, 녀석이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무언가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눈을 뜨고는 힘차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쌤이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거죠. 연애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아니, 별로 그런 건…….”
“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연애도 완벽히! 대학도 퍼펙트하게! 성공해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치인들의 공약 인사처럼 말하고 꾸벅 인사하는 정석이를 애써 무시하면서, 책상 위 출석부로 눈을 돌렸다.
옆에서는 정석이가 부담스러운 눈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서는 이런 상황이 재미있다며 웃고 있는 박 선생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아프게 하지 말고 빨리 올라가기나 해. 논술 답안지는 이따 보고 다시 알려 줄게.”
“넵! 감사합니다!”
“아 쫌! 조용히!”
나는 교무실 구석에서 감사를 받는 연구부장들의 눈치를 보면서 정석이에게 눈치를 줬다. 연구부장들이 제시한 자료를 보고 있던 감사관 중 한 명이 이쪽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요즘 학생들 중에도 파이팅이 넘치는 녀석이 있네요.”
“아, 그게…….”
“강문고에서 저런 학생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등학생에게도 사랑은 중요하죠.”
중년 감사관의 말에 성적처리연구부장인 임 부장이 나를 쏘아봤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왜 나한테 그래.
그런 임 부장의 시선을 따라가던 감사관의 눈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유쾌한 선생님이네요. 아마 작년에 새로 오신…….”
“……강명문이라는 초임교사입니다. 초임이라 그런지 의욕이 넘치죠.”
40대 중반쯤 된 감사관이 껄껄 웃으면서 나를 다시 쳐다봤다.
“이해합니다. 임 부장님도 힘드시겠어요.”
“아닙니다, 장학관님.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나저나, 어떻습니까?”
장학관은 웃음을 거뒀다. 아마 이번 감사팀의 감사반장일 그는 잠시간 침묵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고는 임 부장이 만든 서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정말 열심히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딱히 크게 지적할 부분이 없습니다.”
그 말에 임 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이어지는 장학관의 말에 임 부장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말씀이신지…….”
“올해부터 결과보고서를 디테일하게 챙겨 보겠다는 교육청의 언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감사 기준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아요.”
“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하나요?”
“걱정 마세요. 최대한 조율해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학관이 옆에 서 있는 젊은 장학사에게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네주었다.
“이거 들고 교실이랑 급식실도 한번 돌고 와 봐.”
“네, 알겠습니다.”
서류를 받아든 젊은 장학사가 교무실 문밖으로 향했다.
“아이고, 오래간만입니다, 김 장학관님. 어째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 임 부장이 만든 자료에 문제라도 있었나요?”
한 교감의 말에 장학관은 방금 임 부장에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한 교감은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숨기지 못하고 닦아 내야만 했다.
“우리끼리만 있어서 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성적 처리에 문제가 좀 있네요.”
“성적에 어떤 문제가…….”
“임 부장님. 슬슬 수행평가 점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보셔야 하는 시점이지 않습니까?”
그는 감사 항목 중 ‘정기고사 수행평가 범위 출제 부적정’을 예시로 보여 주었다.
“임 부장님이 가르친 학급 중 한 개 학급에만 쪽지시험 범위를 제대로 알려 주었다더군요. 그래서 다른 학급 학생들이 큰 피해를 봤다는 신고가 있었습니다.”
장학관의 지적에 임 부장과 한 교감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3학년 수행평가 조작 사건>
이 사건은 강문고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의 일이었지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었다.
한 교감은 특정 학부모의 요청으로 그 학생을 전교권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그 부정행위에 가담한 선생이 바로 임 부장이었다.
‘원래는 여기서 장학관이 봐주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나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다른 것보다도 저를 납득시킬 만한 대안을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감사결과에 중징계 의결로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장학관-감사반장-이 강하게 말했다.
감사를 받고 가장 무난하게 넘어가는 방법은, 감사 담당자들로부터 주의만 받고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교감은 지금까지 우호적이던 감사반장이 저렇게 나오는 걸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중징계라는 단어에만 꽂힌 그가 결국 일을 터트리려 했다.
“김 선생, 거 우리 사이에 왜 그러나.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한테 서운한 거라도 있어?”
“이제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교감 선생님. 보는 눈이 많아졌어요.”
“에헤이, 그렇다고 이렇게 매정하게 굴 거야? 자꾸 이러면 우리도 감사받기 힘들어~”
딴에는 능청스럽게 한다고 했겠지만, 한 교감의 말은 결국 장학관의 얼굴 낯빛을 당혹스럽게 바꾸기만 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강 선생? 지금 감사 중인 거 안 보이나?”
여기서 한 교감이 말하는 것처럼 적당히 봐주는 형태로 들어가면, 여름방학 전체가 피곤해진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준을 애매하게 잡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초임들만 개고생했지.’
애매한 기준의 수행평가는 또다시 형평성의 문제로 불거졌다. 특히나 입김 좀 있다는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학교에 몰려온 날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한 교감, 임 부장은 결국 학부모들을 달래기만 했고, 모든 뒷수습은 초임교사들이 도맡아서 해야 했다.
“수행평가를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지 말씀드리면 조금은 긍정적인 평가로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내 말에 중년 감사관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정석이와의 대화가 크게 들려서 내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방금 연애지도 선생님?”
“강명문이라고 합니다. 강문고 3학년 3반 담임이자 국어 교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직책으로 나를 부르는 감사관을 보면서 이 별명들을 싹 다 엎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방금 연애 상담은 인상 깊었습니다. 연애와 공부를 다 잡는 것만큼 청소년에게 낭만적인 게 없지요, 하하하!”
뭐가 그리 즐거운지 중년 감사관이 감탄스럽다면서 말했다.
“아무튼, 그렇단 말이죠. 그렇다면 제가 평가를 바꿀 만한 수행평가 개선방안이 있나요?”
그는 웃음을 멈추고 한 교감과 임 부장을 돌아봤다.
“쪽지시험 범위를 이제 정확하게 전달하면…….”
“그러다 또 어느 학급 빼먹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니면, 이제 수행평가 비중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변별력을 낮추면…….”
“지금도 강문고 수행평가 반영비율 10%밖에 안 되는데 더 줄이시게요? 변별력을 높이면 높였지, 낮추면 안 됩니다.”
“아, 아니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쪽지시험 난이도를 낮추면 범위를 잘못 알려 줘도…….”
“그러니까 그렇게 변별력을 더 낮추면 어쩌시려고요. 네?”
예상대로 한 교감과 임 부장은 똥볼만 연속해서 찼다. 지금 감사관에게 필요한 건 본격적인 수행평가 개선이지 당장의 눈을 피할 방법이 아니었다.
“여기 계신 열정적인 강명문 선생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더는 두 사람으로부터 뽑을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중년 감사관이 나에게 물었다.
“쪽지시험‘만’ 보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면, 쪽지시험으로 10점, 발표로 10점, 총 비중을 20% 정도로 생각해서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중년 감사관이 눈을 빛냈다.
“발표는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서 학생들이 반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발표문 제출 일자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분량 역시 정확하게 알려 주면 됩니다. 그 범위에 들어오지 못하는 학생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들고 온 노트와 펜에 간단한 표를 그렸다. 그 표를 지켜보던 감사관이 아주 좋다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식으로 하면 문제없겠네!”
“감사합니다.”
중년 감사관은 만족스럽다며 표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옆에서 한 교감이 불안한 눈동자로 물었다.
“그런데, 발표를 못 하는 학생은 그만큼 불이익받는 거 아닌가?”
“더 넓은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학생들은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통 능력을 키우는 데 가장 적합한 활동이 발표, 토론입니다. 우리 학교에서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진정한 강남 명문 학교로 우뚝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한 교감도 딱히 토를 달지 못했다. 아마, 한 교감이 뒷돈을 받은 학생이 발표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라 발표를 넣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발표는 어디까지나 예시입니다. 방식이야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을 듣던 중년 감사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교감에게 말했다.
“그럼 이런 형태로 수행평가 평가방식을 ‘개선’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네?”
멍청하게 묻는 임 부장에게 중년 감사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주의’를 줬고, 선생님들은 ‘개선안’을 알려 주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는 흐뭇한 눈빛으로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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