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강문고 실세
“하…… 생각보다 힘들겠네 이거.”
나는 책상 위에 두었던 볼펜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다음 작전을 구상했다.
입시 코디 시절,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대필을 해 달라는 학부모와 몇 날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필은 절대 금지였지만, 당시 나에게 주어진 돈은 꽤 매력적이었다.
대필 한 번으로 무려 1억 원. 들키지만 않으면, 한 번에 큰돈을 쥘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이걸 거절했었다.
대필하거나, 없는 이야기를 위조하는 서류 위조로 합격한 학생들의 말로를 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방금 정석이 어머니가 퓨쳐 컨설팅에 원서를 맡긴다고 했을 때 흥분했던 것이었다. 그런 위험한 업체에 맡겨서 유학을 가면 정석이는 입학 취소를 당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게 뻔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정석이가 자퇴라도 해 버리면 나로서도 곤란했다. 정석이는 어디까지나 학교에 남아서 동석이 발표 연습도 도와주어야 했으니까.
“야, 방금 그 사람 정석이 어머니 아니야?”
옆에서 지석 선배가 다가오더니, 들고 온 서류들을 내려놓았다.
“네, 선배도 알아요?”
“알지. 찬오랑 친해서 찬오 어머니랑 같이 한 번씩 오시던데. 오늘은 혼자 오셨나?”
순간, 정석의 어머니가 이야기한 친구 엄마로부터 들었다는 정보가 생각났다.
“선배, 혹시 찬오 유학 준비하나요?”
“아니? 걔는 그냥 수능 봐서 가려고 할걸? 왜?”
“아닙니다. 그냥 정석이가 유학 가려고 한다길래 찬오도 그런가 궁금했어요.”
내 말에 선배가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선배는 의자를 빙빙 돌리면서 고개를 목받이에 턱 소리 나게 받쳤다.
“결국 걔도 그러냐.”
“정석이요?”
“그래. 걔도 유학 간다 그러냐고.”
선배는 공허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처럼 천장을 올려봤다.
“뼈 빠지게 가르치면 뭐하나 싶다. 돈만 있으면 다들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이전에도 애들이 유학을 많이 갔어요?”
“그래. 최상위 여섯 개 대학교 못 갈 바에는 안 가고 만다면서 유학 보내는 부모만 벌써 열 명은 넘게 만났다.”
강문고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코디를 하던 시절에도 강남, 서초권 학생들이 상담을 오면 항상 그렇게 물어봤다.
[해외 대학 졸업하고 국내 대학 갈 수 있나요?]
[유학은 언제부터 고민하면 될까요?]
[미국이 좋아요, 일본이 좋아요?]
이런 류의 질문들을 숱하게 들어왔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유학을 반대하는 파였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올 때마다 대답을 적당히 회피하면서 교육프로그램을 판매하기 바빴다.
“걔들 유학 준비 어디에서 하는지 혹시 아세요?”
혹시나 싶어서 선배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내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퓨쳐였나 휴치였나 하는 유학 전문 학원에서 준비하더라.”
선배의 말에 의하면, 이미 많은 졸업생들이 퓨쳐 컨설팅을 거쳐 갔다. 개중에는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목표한 나라로 입학했다고도 한다.
선배가 알고 있는 십여 명의 학생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격을 했다고 하니, 퓨쳐 컨설팅의 수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근데 거기 좀 말이 많아.”
“대리 원서, 대필, 원서 조작. 맞죠?”
“어? 어떻게 알았어?”
어떤 상황인지는 파악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혹시 퓨쳐 컨설팅이 찬오네 부모님이랑 관련이 있습니까?”
내 질문에 선배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면서 신기해했다. 나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선배를 재촉했다.
“아, 빨리요.”
“알았어, 알았어. 나도 잘은 모르는데, 찬오네 아버지가 퓨쳐컨설팅 원장이랑 아는 사이라는 정도만 알아. 친구인지 선후배인지는 모르겠고.”
이것만 들어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찬오는 상담해 봤어요?”
“할 게 뭐 있나. 등급은 안 나오는데 무조건 자기는 스카이 아니면 안 간다고 하니까, 할 말 없지. 안 되면 재수라도 하겠다 그런다.”
상담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제스처를 취하는 선배를 보면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영어토론 대회 참가신청서를 박 선생에게 건네주고, 인문융합 탐구대회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 *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학생들은 여전히 반은 공부, 반은 학원 숙제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녀석들에게 벌점을 주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윤 선생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내 태도를 보면서 불안해했다.
“다음 주에 감사 온다더라.”
그런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건 목요일쯤 되어서부터였다.
“감사 온다고 우리가 할 게 있어요? 부장 선생님들이나 정신없지.”
“그거야 그렇지만, 또 뭐 시킬 수도 있잖아. 기말고사 준비도 해야 하는데 이걸 왜 지금 시즌에 하는 건지. 참나.”
교무실에 모여 있는 교사들로부터 그런 불평들이 튀어나왔다.
사실 감사가 평교사들에게 중요한 업무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귀찮은 일에 불과했고, 심지어는 [어떤 분야 감사 나올 테니 미리 준비해 두세요.]라고 일러 두기까지 했다.
그래서 목요일부터, 오늘 금요일까지도 골머리가 썩고 있는 건, 역시나 성적처리 연구부장이었다.
“하…….”
감사를 준비하는 성적처리부장 임대원 선생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시발 이걸 언제 다 하라고!”
그의 고함이 교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임 선생에게 면박을 주지 못했다.
사실상 그는 한 교감을 제외하면 가장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임 선생님, 교감 선생님께서 이것도 준비하시라고…….”
눈치 없이 다가가던 1학년 담임 이진웅 선생이 다가가자 임 선생이 피식 웃었다.
“내려놔.”
“네? 네.”
그렇게 말하는 임 선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펼쳐서, 이 선생이 들고 온 서류 더미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촥!!
임 선생의 손바닥에 날아간 종이뭉치들이 그의 주변으로 흩어졌다. 아연실색한 이 선생은 떨어진 서류들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임 선생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 선생.”
“네, 네, 부장 선생님.”
“내가 아직도 그냥 선생인가?”
“……아닙니다. 부장 선생님이십니다.”
임 선생은 이 선생이 호칭에서 부장을 빼서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똑바로 하자. 응? 감사도 며칠 안 남았는데 우리 교감 선생님 곤란하시지 않게 해야지?”
“며, 명심하겠습니다.”
쥐잡듯 이 선생을 쥐어뜯은 임 선생이 교무실의 다른 교사들이 모여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뭘 봐, 시발. 구경났어? 너네들이 와서 도와줄 거야?”
임 선생의 말에 모든 교사들이 얼굴을 돌려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일이 없지만 있는 척하는 교사들 사이로 나도 서류를 정리하는 척을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아요?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옆에서 같이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정리하던 박 선생이 불평을 했다.
임 선생의 성격이 워낙 불같기로 유명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가만 계세요.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닙니다.”
나는 박 선생을 향해 작게 이야기했다. 입을 삐죽 내민 그녀가 한층 더 몸을 숙이고는 물었다.
“근데 누구를 설득하려고요?”
“그러게. 누군지 들어나 보자.”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교무실에 있는 이유는 바로 곧 나타날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됐어요. 말해도 안 믿을 거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내 말에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기대를 말아야 한다며 서류를 파일철에 끼웠다.
“곧 올 겁니다.”
계속 서류를 정리하면서, 과거 2년 차 때 감사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분명 감사가 있기 며칠 전에 한 귀부인이 찾아왔었다. 내가 강문고에 있었던 5년간, 이 사람의 얼굴을 본 건 정말 한 손가락으로 꼽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귀부인이 곧 나타났다.
“임 부장, 그쯤 하면 됐잖아요. 진정하세요.”
교장실을 벌컥 열고 나오는 귀부인의 뒤로 강철면 교장과 한명심 교감이 뒤따랐다. 한 교감은 임 선생을 보자마자 손가락질을 했다.
“예끼 이 사람아! 지금 이사장님 오셨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강문고는 사립학교이다 보니 재단 내 이사장이 존재했다. 지금 임 선생 앞에 서 있는 귀부인이 바로 이 학교의 이사장인 강은숙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필을 해야 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임 부장, 감사가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렇게 화가 나 있으면 쓰나요. 너무 긴장하지 마요. 강 교장, 한 교감이 다 도와준다 합니다.”
강은숙의 말에 임 선생도 화를 삭이게 되었는지, 침착한 어투로 답했다. 나는 슬슬 교무실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선생님 뭐 하세요?”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박 선생이 물었다.
“야, 너 설마 설득한다는 사람이…….”
지석 선배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붙잡으려 했다.
“지금 움직일 겁니다. 거기서 기다리세요.”
지석 선배의 만류를 뿌리치고 살금살금 교무실 바깥으로 몸을 숙이고 지나갔다.
돌아보니 박 선생은 내가 간 방향을 불안하게 보면서도, 정리한 서류를 다시 다 빼서 또 정리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정리하다가 종이가 너덜너덜해지지 않을까 생각도 들 정도였다.
“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호호, 아니에요. 그럼 세 사람 모두 이번 감사도 잘 부탁해요.”
임 선생이 이사장에게 인사를 했고, 그녀도 그에 화답했다. 그러고는 교무실 출구로 몸을 돌렸다.
‘조금만 더.’
이사장의 발걸음 소리와 그림자가 다가올 때, 나는 일부러 교무실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시선은 손에 든 서류 뭉치, 걸음은 경쾌하게. 그리고 이사장과 부딪히기 직전에 걸음을 급하게 멈췄다.
“어이쿠!”
“어머낫!”
화들짝 놀란 이사장과 얼굴이 창백해진 강 교장, 한 교감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매우 놀랍고 죄송하다는 얼굴을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대회 생각을 계속하다가 앞을 못 봤습니다.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자네, 미쳤어! 지금 이분이 누군지 알고…….”
강 교장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어찌나 귀에 사납게 때려 박히는지 귓가를 살짝 막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짐짓 태연한 척 이야기했다.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괜찮으세요? 많이 놀라셨죠.”
한 교감의 뒤로 서 있던 박 선생이 내 어설픈 연기를 보면서 푸흡 웃었다.
아, 웃지 마. 제발. 차라리 선배처럼 걱정을 해 줘.
다행히 내 앞의 세 어르신들에게는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네, 괜찮아요. 선생님 이름이…….”
“강명문입니다.”
“강 선생님.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대회 준비 하시나 봐요?”
이사장의 물음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이번 인문융합 탐구대회 준비를 제가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장님, 차량 준비됐습니다.”
바깥에서 수행기사가 왔는지 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앞의 이 사람이 이사장인 걸 전혀 모르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수행기사의 저 말이 정말 반가웠다. 만약 수행기사가 없었다면, 어색하게 어떤 분인지 물어봐야 했을 것이다.
“혹시 강은숙 이사장님…….”
이사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잘되고 있나요?”
“네, 오늘 이렇게 이사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강 선생을 알게 되어서 기쁘네요. 대회 준비에 뭔가 필요한 게 있나요?”
“아 그게…….”
나는 옆에 서 있는 강 교장과 한 교감의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이것 역시 짜여진 각본. 여전히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웃음을 참는 듯한 실루엣이 보이기는 했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괜찮아요. 말해 보세요.”
“그…… 이번에 준비하는 대회가 시사롤플레잉대회입니다.”
“시사롤플레잉이요?”
“네. 줄여서 시사RPG대회인데, 역사 속 위인이나 현대의 위인 역할을 학생이 한 명씩 맡는 겁니다. 그리고 주어진 문제에 각자 맡은 위인의 입장에서 답변하는 대회인데…….”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본론을 꺼냈다.
“대회에서 이야기할 현대 위인으로 우리 강문고등학교의 설립자이신 강진 어르신을 포함시켜도 되겠습니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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