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9화 (19/252)
  • 19화. 카운터

    “정석아, 찬오랑 안 지 좀 됐니?”

    “찬오랑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그 뒤로는 그냥저냥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왜요?”

    “걔 어떤 애냐?”

    내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정석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적당히 녀석에게 둘러대고 정보를 더 얻기로 했다.

    “그냥, 알아두면 너희 부모님 상담드릴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 엄마가 찬오네 어머니랑 가끔 만나시기는 할 거예요. 찬오는 그냥 공부도 평범하게 잘하는 편이고…… 취미는 조금 은밀하기는 해요. 저한테도 집에선 뭐 하는지 이야기를 안 해 주더라고요.”

    은밀한 취미가 뭐지? 한창때의 남학생들이 감상하는 그런 건가?

    “흐음…… 공부는 어느 정도야?”

    “적당히 상위권이에요. 모의고사는 1등급 후반이었나 그랬을걸요?”

    아마 정석이는 이번에 치른 6월 모평 점수를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성적표가 이제야 막 나왔으니까. 하지만 이전까지의 성적이 1등급 후반이면, 이전의 내가 알던 조찬오와 똑같았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야?”

    “부모님은 예전에 잠깐 뵌 적은 있는데, 찬오 공부시키려고 엄청 학원 많이 보내시고 그러세요.”

    그렇게 말하며, 정석이는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하는 표정을 머금었다.

    “찬오는 공부할 만하다 그러니?”

    “맨날 다크써클 내려오고 그러고 있죠, 뭐. 좀 안쓰러워요.”

    그게 친구로서 바라보는 조찬오의 모습일 것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다크써클 내려올 정도로 공부 안 하냐?”

    “네? 아니, 쌤. 저 이제 막 정신 차렸는데…….”

    핑계를 대는 정석이의 머리통에 가볍게 딱밤을 날렸다.

    “아!!”

    “가서 공부하고, 논술 기출문제도 다시 풀어 봐. 그리고 너 글씨체 엉망이니까 이거도 연습하고, 일단 기출문제 답안은 워드로라도 작성해 보고. 알았어?”

    나한테 기습 딱밤을 맞은 녀석이 입을 앞으로 삐죽 내밀고는 답했다.

    “치. 네.”

    “치이이?????”

    발음을 몇 음절 올리면서 고개를 기울여 정석이를 노려봤다.

    녀석이 입을 확 틀어막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뇨! 알겠습니다!”

    정석이는 품에 논술 기출문제를 소중하게 안고는 후다닥 교실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조찬오가 정석이와 친하다는 사실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정보였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석이를 통해 조찬오의 행동이나 집안 특징들을 알아낸다면 지석 선배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해도 되는 일인가.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지석 선배가 훗날 큰 문제를 겪게 된다.

    사학 비리 폭로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석 선배 같은 확실한 내 편이 꼭 필요하다.

    ‘확, 내가 조찬오 조사 좀 해 봐?’

    근데 무슨 명분으로 조사를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쌤, 밖에 누가 오셨어요.”

    지난번에 상담했던 정아가 나를 부르러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려고 하니, 밖에서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다가온 중년의 부인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강명문 선생님이시죠?”

    나는 그녀가 단박에 누구인지 알아봤다.

    “안녕하십니까, 강명문입니다. 정석이 어머님 되시죠?”

    내 말에 정석이의 어머니가 입을 가리면서 소박하게 웃었다.

    “어머, 바로 알아보시네요. 정석이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겠어요?”

    나는 정석이의 어머니를 마치 집사가 에스코트하듯이 안내했다.

    “정석이에게 논술을 공부하라고 하셨다고요?”

    자리에 앉은 정석의 어머니가 곧장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우리 애는 해외로 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 대학 입시는 필요 없어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해외로 유학을 보내시려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정석이는 꼭 좋은 학교를 나와야 해요. 그래야 무시를 안 받고 삽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른 학교 여자애한테 홀려 가지고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 뒤로 흔히들 이야기하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네. 그건 그렇기는 한데, 굳이 해외로 나가려는 이유가 있나요? 지금 시점에서는 유학 준비를 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유학 간다고 해서 꼭 좋은 학교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야 아이 아빠가 그쪽에서 사업을 할 거니까 그렇죠.”

    “그럼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거군요?”

    “맞아요.”

    나는 컵에 남아 있던 커피를 쭉 들이켜고,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방법이 유학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올해는 유학을 안 가는 게 좋습니다. 특히 튀니지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녀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는 눈썹을 사납게 세우다가, 튀니지를 언급하자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자세를 취했다.

    “왜죠?”

    “튀지니에서 올해 대규모 시위가 있을 겁니다. 그 여파는 내년까지도 이어질 거고, 중동에서 반정부 시위가 연달아 일어날 거예요.”

    2010년 하반기, 튀니지에서 시작되는 반정부 시위. 아랍의 봄이 바로 이때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그 시점에 튀니지로 유학을 가면, 반정부 시위에 휘말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성공한 운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정석이로서는 배울 점도, 느낄 점도 하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만 남을 게 뻔했다.

    “튀니지 내부 사정은 들으셨죠?”

    “네, 아이 아빠한테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현지인들 아니면 이야기 안 돌던데.”

    미래에서 회귀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화제를 바꿨다.

    “그런 상황이라는 걸 알고 계신다면 위험하다는 건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유학을 간다 한들 좋은 학교로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정석이 어머니가 입을 씰룩거렸다. 나는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게다가 해외 유학이 지금도 유행이지 않습니까? 어설프게 다녀왔다가는 유학파들이 넘쳐나는 미래 시대에 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석이는 아랍어도 못 하잖아요. 위험요소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럼 선생님은 정석이가 한국에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대답하자마자 정석이 어머니는 핸드백 안에서 편지 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는 평소 보던 촌지와는 달랐다.

    “아이 아빠가 쓴 편지예요.”

    봉투를 열자 말 그대로 편지가 들어 있었다.

    “잠시 읽어 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요.”

    나는 천천히 봉투 안의 편지지를 꺼냈다. 아니, 편지지는 아니고 한글파일을 인쇄한 인쇄지였다.

    편지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을 위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깊게 담겨 있었다.

    내용을 모두 읽은 나는 조심스럽게 인쇄지를 접었다.

    “정석이가 유학을 가기 싫어하는 건 알고 계시죠?”

    “그건 애가 아직 어려서 그래요. 나이 들고 하면 우리가 해 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될 거예요.”

    “그럼 유학은 어떻게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친한 친구 엄마한테 들어 보니까 유학 전문 컨설팅 학원이 있더군요. 거기서 원서를 준비하려고요.”

    그 말에 나는 흠칫 몸을 움직였다. 불길했다.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그 학원에서 준비를 시키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혹시 그 학원, 퓨쳐 컨설팅 아닙니까?”

    내 말에 정석이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선생님도 아세요?”

    “그냥 들어는 봤습니다.”

    피우지도 않는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면서 정석이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가시면 안 됩니다.”

    “네?”

    “거기, 가시면 안 됩니다.”

    그곳만은 가서는 안 된다.

    “거기는 돈 받고 없는 원서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퓨쳐 컨설팅. 한참 유학이 유행하던 시절, 퓨쳐 컨설팅은 불가능하다고도 생각되는 해외 명문대에 학생들을 합격시키는 학원으로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재력이 있는 집 학생들은 대부분 이 컨설팅 학원을 통해 해외 유학을 고민하곤 했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이 학원이 무너지게 된 계기는 다른 게 아니었다.

    <위조 성적표, 위조 상장으로 수십억 챙긴 해외 유학 컨설팅 업체 구속>

    이게 향후 3년 뒤 언론에 오르내리게 될 퓨쳐 컨설팅의 미래였다.

    여기에서 그치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위조된 서류로 입학한 학생들은 전원 입학 취소를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관련된 학생들은 전부 입학 취소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학부모는 바로 그런 위험한 컨설팅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없는 걸 만들어 주니까 좋은 거 아닌가요?”

    “너무 위험합니다.”

    “걱정할 거 없어요. 정석이가 공부를 안 했을 때를 대비해서 이미 현지 투자자에게도 이야기해 놨으니까.”

    “설마 대리 여권까지 만들었습니까?”

    나는 책상에 손을 강하게 짚었다. 쾅 소리가 나면서 책상 위에 놓인 서류가 살짝 흔들렸다.

    “다른 곳은 몰라도 퓨쳐 컨설팅은 절대 안 됩니다. 나중에 걸려서 입학 취소라도 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걱정하죠?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나오면 경찰에 신고해도 되나요?”

    정석이 어머니가 핸드폰을 들고 신고를 하는 시늉을 했다.

    “……잠시 흥분했네요. 죄송합니다.”

    “됐어요. 고의로 그러신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정석이가 정말 걱정되셨겠죠.”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선생님은 어디 학교 나왔어요?”

    “저는 고구려대 국어교육과를 나왔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학교 나오셨네요. 그쵸?”

    마치 그런 내가 부럽다는 듯 그녀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자신감도 넘치는 것 같고.”

    “무슨 말씀이신지…….”

    “명문대를 나온 선생님은 모를 거예요. 제대로 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오는지. 순식간에 돈을 벌건, 높은 자리에 앉건, 사사건건 학교가 내 삶을 옥죄어와요.”

    “……그런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입시 코디를 하던 시절, 그런 문제를 겪는 부모들이 하소연을 했었다. 그리고 꼭 자식만큼은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해 왔었다.

    그런 스토리를 상당수 받아 온 내가, 그걸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는…….”

    “그건 선생님이 공부를 잘하셨으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야 해요.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승진에 밀리고, 몇 년이나 후배인 팀장을 모시고 살아야 하죠. 아무리 큰 공장을 가졌어도, 출신 대학 때문에 직원들이 무시하기도 해요. 외부 사업을 따오기도 어렵고, 정부 사업이라도 한 번 하려 하면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아요?”

    알고 있다.

    “대학도 안 나온 게 깝친다고 해요.”

    말을 이어 가는 정석이의 어머니 눈이 촉촉해져 갔다.

    “나는 우리 아들에게 그런 미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생각하신 게 대리 원서입니까?”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든, 저랑 아이 아빠는 정석이를 꼭 유학을 보낼 거예요. 어차피 국내 대학 가기 힘들다면, 쉽게라도 갈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그게 돈만 많은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그녀가 다시 구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면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정석이는 그걸 원치 않지 않습니까.”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괜히 헛바람 넣지 말아 주세요.”

    꾸벅 인사를 하는 정석이 어머니에게 나도 인사를 했다.

    그녀는 조용히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면서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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