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감사 대비
그날, 종례가 끝나고 나는 한 교감에게 끌려갔다.
“강 선생, 뭐라고?”
“논술 특강을 오픈하려고 합니다.”
한 교감은 내 말에 푸욱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여기가 강남구인 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죄다 쟁쟁한 논술 학원에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겠네?”
“네, 물론입니다.”
한 교감은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는지, 목소리 톤을 더 저음으로 깔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우리 학교에서 논술 특강을 오픈하려고 그러나?”
“학원에 다닐 생각도 못 하는 학생도 있고, 이제 다니려 한다 해도 이미 수강 인원이 꽉 차서 듣지 못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숨을 한번 고른 후 교감실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본 뒤에 천천히 한 교감에게로 다가갔다.
“학교에서 학원에 다니라고 하는 것보단, 학원에서 하는 걸 학교에서 해 주는 게 더 좋고 홍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공교육 강화에 힘쓰고 있다는 걸 보여 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봤다. 6월 21일까지 이제 1주일 남았다.
“1주일 뒤에 교육청에서 감사를 나옵니다. 그때 이걸 강조하면, 한국고보다 나은 학교가 되기 위한 방안을 쌓아 갈 수 있을 겁니다.”
한 교감은 ‘한국고’라는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눈을 번뜩 빛냈다. 한국고를 이길 수 있는 카드를 내가 만들어 보겠다. 그렇게 선언하는 초임교사에게 한 교감이 반대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여기서 잘 되면 본인 덕분이라 할 거고, 안 되면 내 탓으로 돌리겠지.’
한 교감에게 있어서는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 강 선생, 논술 좀 가르쳐 봤나?”
“논술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새끼 강사를 한 적이 있고, 지금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임용고시 보기 전에는 논술 과외도 많이 했고요. 명색이 국어 선생님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그제야 한 교감도 껄껄 웃으면서 내 등을 마사지하듯 두들겼다.
“좋아, 해 봐. 교감 권한으로 만들 수 있게 해 줄게. 대신 확실하게 준비하고, 수강 인원도 확보해.”
“솔직히 수강 인원을 많이 확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신이 난 한 교감의 말을 잠시 끊었다. 한 교감이 달력을 보다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소리인가?”
“말씀하신 것처럼 강남구는 여러 학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스타 강사들도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미리 학원에 등록해 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들을 만한 녀석들은 이미 학원에서 듣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한 교감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학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이나 공부에 뜻이 없었던 학생들을 찾아야 합니다. 이 아이들은 교육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강남구에 있으면서도 많은 차별을 받고 있죠. 저희는 이 부분을 이번 교육청 감사에서 어필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산 운용 및 편성의 적절성 부분, 공직사회의 적극성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만약 한 명이라도 특강 수강자가 대학에 합격하면…….”
“언론에 홍보할 수도 있겠군!”
내 말에 한 교감이 손뼉을 마주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귀가 울려왔다.
“정말! 영특해! 내가 왜 여태 자네 같은 인재를 못 찾았나 몰라!”
“과찬이십니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이번 감사가 눈엣가시였는데 아주 잘됐어! 좋아! 이번에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형태로 준비해 봐! 곧 오픈하는 대회들도 그렇게 설정해서 만들어 보고!”
“네, 교감 선생님.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감실 문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한 교감은 껄껄 웃으면서 만족스럽다는 듯 문 앞에 서 있었다.
* * *
강명문이 나간 후 한명심은 뒤집어 놓았던 핸드폰을 들었다.
“어떤가?”
강명문을 주목하고 있던 한명심은, 강명문이 논술 특강을 오픈하겠다고 하자마자 지금의 자리를 마련했다. 핸드폰은 민지정에게 전화를 걸고서 엎어 두고, 그녀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도록 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 정도로 권력욕이 넘칠 거라고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네. 만약 이렇게 교육청 감사를 이용해서 학교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실적까지 난다면…… 대박입니다. 한국고를 이기는 방법으로 정공법이 아닌 우회적인 방법을 꺼낼 줄은 몰랐습니다.]
한명심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교감실 의자에 앉았다.
감사까지는 앞으로 일주일. 그 일주일 동안 저 강명문이라는 초임교사가 어떤 행보를 보여 줄지 궁금했다.
“맡겨 놨으니 한번 보자고. 어차피 잘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야. 하지만 이번 일이 잘되면…….”
[네, 강명문은 반드시 교감 선생님 라인을 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깥에서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강명문을 보면서 한명심은 생각이 많아졌다. 권력욕이 넘치는 이 초임교사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과연 그가 자신을 따라서 강문고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사립학교여서 선생님이 바뀌는 일이 별로 없으니, 그 부분도 분명 생각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들이 여럿 들었다.
한편으로는 저런 멋진 교사를 학교에서 어떻게 키웠냐는 언론의 인터뷰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켰지만,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한국고를 이기기만 하면 다음 교장은 본인이 될 테니 말이다.
‘기대되는군.’
능력 좋고 권력욕도 넘치는 초임교사가 자신의 밑에서 얼마나 열심히 실적을 올려줄지 계산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라인에서 강명문을 어떤 역할을 맡길지 설계해 나갔다.
* * *
‘됐다.’
한 교감과의 미팅은 만족스러웠다. 그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살살 긁어 주니 즉각 반응했기에 쉽게 마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 특강은 성공만 하면 강문고에서 자신의 이름이 더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스타강사급 논술 수업>
<성적 낮다고 명문대 가지 말란 법 있나요? 강남구 국어 교사 강명문의 교육 철학!>
머릿속에서 자신을 인터뷰하는 여러 기사들을 상상해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이미지를 만들어 두면, 향후 비리 폭로 때도 언론 플레이를 하기에 수월할 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없는 선생님보다는, ‘학생을 위하는 청렴결백한 선생님의 폭로!’라고 하는 편이 더 나으니까.
“흐히히히히.”
“쌤, 또 이상하게 웃어요.”
어느샌가 은장이가 옆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자세히 보니 이번 7월에 열릴 대회 참가자 신청서였다.
“아, 벌써 걷었어?”
신청자 명단을 넘겨보니 꽤 많은 학생들이 신청했다. 거기에 다른 반 학생들 신청자까지 포함하면 영어토론 발표대회 신청자만 20명이 넘었다.
“신청자가 꽤 많네?”
“다 제가 열심히 홍보한 덕분이죠.”
은장이는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듯 어깨를 한껏 들어 올렸다. 확실히 선수로 뛰기보다는 뒤에서 서포트해 주는 역할이 적성에 맞는 모양이었다.
“잘하고 있어. 지금까지 했던 것들 메모지에라도 적어 둬.”
“왜요?”
“왜기는. 그래야 나중에 생기부 적어 줄 때 참고할 거 아니야. 친구들에게 대회 홍보할 때 어떻게 홍보했는지, 예를 들면 포스터를 만들어서 뿌렸는지,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면서 설득을 했는지 같은 것들. 아, 먹을 거로 꼬시려 했다거나 그런 건 당연히 빼고. 알았지?”
이제는 내가 쏟아내는 이런 설명이 익숙한 모양인지, 은장이는 순순히 알겠다고 답했다.
“강 선생, 잠깐 괜찮아?”
윤 선생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옆에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네, 괜찮습니다.”
“그럼 커피나 한잔하지.”
나는 은장이에게 신청서를 내 책상 위에 올리라고 이야기한 다음, 윤 선생과 함께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급적 학생들과 교사들이 잘 오지 않는 구석진 자리를 찾았다.
“다음 주잖아.”
“네.”
“괜찮겠어?”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기억하는 바가 맞다면, 강문고에 걸리는 심사 중 부적정 판정을 받은 항목은 ‘목적사업비 집행’과 ‘학업 성적 관리’, ‘학교 대회 운영’이었다. 그 외에 회계 예산 이월 문제 같은 여러 항목도 부적정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두 개였다.
‘두 항목에 대비해서 썰을 잘 풀어야 해.’
이번 감사는 작년의 문제점을 올해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매년 모범우수사례까지 감사결과보고서에 포함되어서 감사 결과 공개에 업로드된다.
내가 노리는 건 바로 이 ‘모범우수사례’였다.
이번 감사를 위해 강문고에 방문하는 감사관들에게, 나는 이후의 개선 방안을 설명할 계획이었다.
“내가 할 건 없을까?”
“선생님께서는 그날 동석이와 박 선생님이랑 같이 동아리 활동을 해 주시면 됩니다.”
“그거면 돼?”
“네. 아, 대신 감사관들이 들어온다 싶으면, 로봇 안에 들어 있는 물리적 원리들을 설명해 주시면 돼요.”
“했던 걸 또?”
“어차피 감사관들이 거기까지 갈 일은 거의 없을 거긴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윤 선생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마시던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알았어. 그럼 강 선생만 믿는다.”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마 다음 주에 있을 감사가 그에게 있어서는 큰 변환점이 될 것이었다.
내가 이전에 작전을 알려 주었을 때도 이번 감사가 중요한 지점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감사에서 내가 하나 터트려 주지 않으면, 나도 윤 선생도 앞으로 교사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테니까.
자리에 돌아오자 정석이가 교무실을 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나 찾냐?”
화들짝 놀란 정석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곧 오신대요.”
“잘했어.”
나는 다른 이야기는 빼고 녀석의 어깨를 툭툭 마사지해 주었다.
“저도 같이 있을까요?”
“아냐. 넌 올라가서 공부해라. 논술 기출은 풀어 봤어?”
내 물음에 정석이가 품에서 다른 종이뭉치를 꺼냈다. 내가 지시했던 대로 별도 논술 답안지를 구해서 수기로 작성해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를 받아든 나는 얼굴을 심하게 구겼다.
“이게 뭔 글씨야?”
“네? 여기 보시면…….”
정석이가 여기저기 설명을 해 주는 동안, 이전에 동석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은장이한테 펜을 빌리려고 했는데 자리에 없어서 정석이 글씨를 보게 됐다고.
그리고 그 글씨가 정말, 악필 중의 악필이었다고 말이다.
“……글씨 연습부터 해라.”
“너무 심한가요……?”
종이를 다시 정석이에게 건네고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괜히 눈까지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큰일 났네, 제대로 글씨도 못 쓰면 내용 좋아도 광탈인데.”
내가 미간을 좁히며 고민을 이어 가자 눈치만 보던 정석이가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왔다.
“쌤, 그렇지 않아도 미란이가 저 글씨부터 고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찬오한테 좀 배우려고요.”
정석이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밖으로는 티 내지 않으면서 물었다.
“찬오? 조찬오?”
이번 연도에 지석 선배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학생인 조찬오의 이름이 정석이에게서 나왔다.
괜히 불안한 마음이 커지면서, 정석이에게 조찬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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