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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13화 (13/252)

13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나는 차가운 소파와 테이블이 정중앙에 놓인 방으로 끌려들어 왔다. 그 위에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아직 뜯지 않은 과일주스 병 3개가 올려져 있었다.

“인사드리게. 김영훈 변호사님이시고, 옆에 계신 분은 최예진 교수님이시네. 누군지는 알지?”

“지난번 이후로 다시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김영훈입니다.”

그는 은장이의 아버지였다. 그 옆에는…….

“안녕하세요, 최예진입니다.”

은장이의 어머니였다.

“안녕하십니까, 강명문입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했다. 한 교감이 자리에 앉으라며 소파의 한 자리를 가리켰다.

내가 자리에 앉자 잠시간 침묵이 돌았다. 어색한 침묵을 깬 사람은 쥬스를 한 모금 마신 한 교감이었다.

“지난번에 강 선생이 은장이 상담을 아주 잘해 준 모양이야. 두 분께서 선생님 칭찬이 끊이지를 않으셔.”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밝은 모습의 딸은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은장이의 아버지인 김영훈이 살짝 목례를 했다.

“그런데 두 분께서는 어쩐 일로…….”

말끝을 흐리면서, 왜 나를 이 교감실로 들여보냈는지 설명하라고 눈빛을 보냈다. 이에 한 교감이 헛기침을 뱉었다.

“크흠, 강 선생이 은장이를 서울한국대에 보내 주겠다고 했다며?”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은장이 입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직접 오신 거 아닌가.”

나는 조용히 김영훈과 최예진을 바라봤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딸이 서울한국대에 갈 수 없음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불쑥 나타난 3학년 담임이 보낼 수 있다고 하니까 혹해서 학교로 온 것이었다.

현시점에서 서울한국대에 갈 방법은,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부정한 방법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하하, 은장이는 제가 입시 쪽으로 도와줄 테니,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은장이가 지치지 않도록 격려만 많이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자 은장이의 아버지가 가방에서 작은 서류봉투를 꺼냈다. 한눈에 봐도 매우 두툼했다.

“저희가 뭐 법만 공부하고 광고만 공부했지, 입시를 알겠습니까. 이걸로 선생님도 식사라도 한 번 챙겨 드시고, 은장이도 잘 ‘격려’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들, ‘격려’라는 단어를 이렇게 오해할 수가 있나. 나는 망연한 얼굴로 한 교감을 돌아봤다. 그는 빨리 안 받냐면서 고갯짓을 했다. 그래, 너한테 기대한 내가 바보지.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표현할 길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표현할 길은 이런 형태의 촌지뿐이었다. 그래서 아마 이들도 봉투를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학원을 운영할 때도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게다가 이걸 잘못 받았다가 미래에 더 큰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봉투는 열어서도, 안에 있는 돈은 손도 대서는 안 된다.

“식사는 교직원 식당도 있어서 괜찮습니다. 은장이도 이걸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걸로 은장이 입시 끝나면 예쁜 옷이라도 사 주세요.”

내가 봉투를 밀어내자, 김영훈이 살짝 당황했다. 옆에서는 한 교감이 자신을 난처하게 하지 말라며 눈치를 줬다. 그래도 나는 그의 봉투를 거절했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봉투 안에는 상당한 금액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만약 현시점에서는 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5만 원권이 들어 있다면, 족히 500만 원은 가뿐히 넘을 정도였다.

‘500만 원쯤은 내가 돈 좀 아끼고 살면 돼.’

어쨌든 폭로전에서 내가 승리하고, 복수하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눈앞의 유혹을 참지 못하는 순간, 나는 영원한 패배자란 낙인이 찍힐 테니까.

은장이의 어머니는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신기하다며 말했다.

“우리 은장이가 하는 말이 진짜이긴 한가 보네. 정말 안 받으실 거예요?”

“은장이가 제 이야기를 했나요?”

“네. 자기가 지금껏 본 선생님 중 가장 인간적이고 멋지다고 했던가. 일하면서 대충 들은 거라 기억은 잘 안 나네요.”

학교에 이상한 소문을 내더니, 은장이가 부모님에게도 이야기한 모양이다.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봉투는, 은장이를 위해서라도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입시 전형이 바뀌면서 관련된 불법적인 합격생들에 대한 조사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은장이에게도 여파가 끼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에 걸려도 다 제 후배들이 담당일 텐데 무서울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아서…… 제가 초임이다 보니 겁이 많습니다, 하하.”

미래의 2015년에 여기 있는 한 교감을 비롯해 비리와 연계된 모든 이들이 조사를 받는다.

그때, 입시 비리를 저질렀던 학생들의 경우 입학 취소를 받기도 했다.

아무리 제 실력으로 합격시켜도, 뒷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 안 된다. 그때는 나도, 은장이와 동석이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게 분명했다.

“강 선생이 아직 우리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교풍을 잘 몰라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십쇼, 허허.”

한 교감이 당황해하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은장이의 부모님은 교풍이라는 단어에서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표정을 고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주 참된 선생님을 뵌 것 같아서 영광이었습니다.”

“은장이에게 오늘 이야기를 해 줘도 되나요?”

“그냥 상담하고 오셨다 정도만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정말 도울 부분이 없을까요?”

“은장이가 인문학과 광고를 같이 준비해야 한다는 점은 알고 계시죠?”

내 물음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은장이가 내 이야기를 이상하게 퍼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시 준비는 잘 말씀드린 모양이었다.

“은장이가 광고와 인문학, 콘텐츠를 동시에 공부할 수 있도록 어머님께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야 어렵지는 않지만…… 방송국 견학이라도 시켜 줄까요?”

“견학보다는 인터뷰가 좋고, 인터뷰 같은 거창한 것보다는 인문학책 추천을 많이 해 주시는 쪽이 좋습니다.”

지금 은장이의 동아리는 학생회와 방송부였다. 3학년이기 때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방송부의 활동과 학생회의 활동을 연계해서 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코앞에 있었다.

“아, 일단 나가서 말씀 나누실까요?”

그때까지도 옆에서 멍하니 서 있는 한 교감을 보면서 제안했다.

“어, 어, 그래. 나가서 마저 상담 잘해 드리고, 두 분 오늘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 선생이 이상한 이야기라도 하면 부담 없이 바로 저한테 이야기하십쇼.”

자리에서 일어난 한 교감의 소파 의자 위에는 작은 봉투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한 교감이 은장이의 부모님에게 잘해 주는 이유는 명확했다. 뒷돈을 챙겨 주기 때문. 때로는 격려, 때로는 응원이라고도 이야기하는 그것. 한 교감의 세상은 바로 그것으로 움직였다.

“강 선생은 이따 상담 끝나면 나한테 찾아오고. 알았지?”

묘하게 한 교감이 나에게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게 신경 쓰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교무실의 내 자리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 한번 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그런데 선생님.”

김영훈, 은장이의 아버지가 현재를 파악하기 위한 냉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진지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압도될 뻔했다.

“선생님, 은장이가 지금 수능 성적으로 서울한국대를 준비하는 건 어렵습니까?”

차분하게 물어보는 그에게 나도 최대한 예의를 담아 말했다.

“네, 모의고사가 2등급입니다. 재수생, 반수생들이 모이는 수능에서는 현 점수를 유지하기도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수시입니까?”

“수시를 준비하면 갈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 수능보다는 훨씬 높아요. 전형을 설명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어차피 들어도 잘 모릅니다.”

그의 말에 은장이의 어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은장이가 꼭 스카이에는 들어가야 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알다마다. 은장이의 부모님은 지난 삶에서 나를 찾아와,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는 상담만 한 시간을 넘게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아는 게 없었기에 연신 죄송하다만 반복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래서 제가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도 도와주셔야 합니다.”

“아까 인터뷰가 필요하다 하셨죠? 누구를 인터뷰하면 될까요?”

“은장이가 방송부에 가입되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네. 작년에 그거 때문에 공부를 잘 안 하는 것 같더니…… 어휴.”

“작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이 방송부 덕을 보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메모지에 인터뷰 대상의 조건을 적어 주었다. 메모지를 받아 든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내가 적어 준 내용을 보면, 이런 사람들을 왜 인터뷰하냐는 소리부터 나올 게 뻔하니까.

“연예인도, 방송 PD도 아닌 막내 작가, 막내 AD, 조명팀 막내, 막내 카피라이터, 막내 광고기획자, 카메라팀 막내…… 전부 막내로요?”

“전부는 아니고, 한 분만 와 주시면 됩니다.”

“이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게 왜 필요하죠?”

“스탭이니까요.”

여전히 메모지를 바라보며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두 사람에게 은장이의 학생부를 보여 주었다.

“지금 은장이에게 필요한 건 스토리텔링입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방송이나 광고 분야의 메인이 아니라, 뒤에서 노력하는 스탭으로 잡아야 합니다.”

은장이의 학생부 중 방송부 동아리 내용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방송부 부장으로서 교내 행사를 준비하는 데 열정을 보임. 특히 사회를 진행하기로 했을 때는 후배에게 사회 자리를 양보하고 무대 뒤를 챙기기도 하여 후배들로부터 신뢰를 얻음.]

“이 내용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스탭 활동이 필요하다는 게 어떤 뜻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언제까지 섭외하면 될까요?”

“이제 곧 기말시험이니…… 8월 초나 중순 정도로 잡아 주시면 됩니다.”

“촬영 일정을 좀 봐야겠네요. 안 되더라도, 우리 회사 막내 기획자랑 카메라팀 정도는 섭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거 제 번호니까 이쪽으로 연락 주시겠어요?”

두 사람에게 내 명함을 건네주었다.

“네, 연락드릴게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은장이 잘 챙기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꾸벅 인사를 하면서 멀어졌다.

자리에 다시 앉기 전에 우선 한 교감에게 가야 했다.

“교감 선생님.”

“아, 그래. 상담은 잘했고?”

“네, 분위기 좋게 잘 마무리했습니다.”

“그래그래. 여기 앉아 봐, 강 선생.”

불안하게 말하는 한 교감을 보면서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봤는지 안 봤는지, 한 교감은 작은 봉투를 꺼냈다.

방금 김영훈이 한 교감에게 주고 간 봉투였다.

“자, 이거 받고.”

그가 봉투에서 5만 원권 지폐를 몇 장 꺼내더니 내 손에 쥐여주려 했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교묘했는지, 그가 손에 주던 주스와 함께 자연스레 손을 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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