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화 (12/252)

12화. 대회 준비? 상담 준비!

“대회 평가 항목에 ‘발표역량’을 추가해 주세요.”

윤 선생은 말도 안 된다며 손을 내저었다.

“한 교감이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니까? 결과물로만 평가하는 대회를 열어야 나명천이가 상을 받잖아.”

“그래서 한목대 교수님을 부르는 겁니다.”

그게 무슨 연관성이 있냐는 듯 나를 째려보는 윤 선생을 향해 말을 이었다.

“발표 점수를 넣으면, 나명천은 어차피 아버지가 작성해 준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제대로 발표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 그렇다 치자. 발표역량을 넣는 명분은?”

“명천이 학부모가 한목대 의예과를 노리고 있다면, 한목대 입시전형을 준비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MMI는 단순히 공부만 잘한 학생을 선발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인성, 소통능력 등의 면을 발휘하여 자신의 소신을 발표하고, 평가하는 시험이에요. 그러니 본인이 만든 보고서에 대해서 발표도 못 하면 MMI 면접 합격이나 하겠어요? 이런 이야기들로 교감을 설득해야죠.”

손에 든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상상했다. 대회 수상에 실패한 나명천. 십중팔구, 명천이는 발표 실력이 부족해서 수상을 못 할 것이다.

그런 나명천에게 대치동 입시 코디인 내가 MMI 면접 수업을 해 준다면? 그렇게 해서 한목대 의예과를 합격시킨다면? 한 교감으로부터도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폭로 전까지는 한 교감에게 밉보일 필요가 없으니, 이 정도 작업은 필요했다.

“강 선생은 입시를 참 잘 아는 것 같아.”

“아, 제가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갈공명이라도 보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는 윤 선생 때문에 살짝 민망하게 웃었다. 부담스러운 눈길을 슬며시 피하면서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이거군.”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윤 선생은 내가 말했던 공문을 찾았다.

<2010년 연간감사계획>

계획에는 서초구 일대 학교를 감사하는 날짜는 6월 21일이었다. 모의고사를 보고 1주일 뒤. 그때 강문고 대회 수상 규칙을 바꾸는 일보를 디뎌야 한다.

“진짜 있었네.”

“감사 계획표를 평교사가 확인하는 경우는 별로 없죠.”

“그런데 강 선생은 확인했다는 거 아닌가?”

“별로 없지만, 저는 본 거죠. 저도 우연히 봤습니다.”

나는 정말 할 게 없어서 찾아봤다며 살짝 웃었다.

“아무튼, 이제 학교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자중하도록 하죠. 퇴근 시간 이후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윤 선생과 함께할 이번 작업은 학교에 소문이 나서는 절대 안 되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감사관의 평가, 한목대 교수의 조언에 따라 우리 강문고도 맞춰 간다는 설정이었다.

“알았어. 걱정 마.”

“네. 그리고 다른 동료 선생님들께도 비밀은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특히 류 선생님이요.”

윤 선생은 진중한 편이어서 믿음이 갔다. 하지만, 류 선생은 아니었다.

지난번 테니스 코트에서 만났을 때 느낀 점이 있었다.

류 선생은 윤 선생과 친해지려고 테니스를 치고 있지 않았다.

사교를 위한 활동이 테니스라면, 염탐을 위한 활동 역시 테니스였다.

즉, 류 선생은 내가 당직을 서던 그때, 윤 선생과 친해짐과 동시에 특이하다 할 지점은 없는지 감시한 것이었다.

“류 선생님을 강조하는 이유라도 있나?”

“워낙 사교성이 좋은 분이셔서 이야기가 잘못 새어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서야, 그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리의 밀회는 그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었다.

* * *

하지만 그 결심은 하루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강 선생님, 어제 윤 선생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했어요?”

다음 날,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박 선생과 마주쳤다. 나는 그녀의 인사를 받으면서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박 선생은 나와 윤 선생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아, 그냥 바람 좀 쐬러 다녀왔습니다. 동석이 건 도와주셔서 감사하기도 했고요.”

“에이, 그러기에는 두 분 다 너무 조용하시던데요? 뭔가 밀회라도 하셨어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나는 능글맞게 웃는 박 선생을 향해 눈을 흘겼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박 선생님, 이번에 영어 대회 준비하시죠?”

“네, 이번에 토론 대회 준비해요.”

“자유 주제인가요?”

“아직 주제는 구상 중이기는 한데…… 강 선생님 반에 추천해 줄 만한 인재 있어요?”

“은장이를 내보낼까 해서요.”

내가 은장이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는 듯, 박 선생은 잠시 고민했다.

“음…… 은장이면 잘할 것 같기는 한데…… 영어 회화는 잘했던가…….”

“아, 은장이는 대회 스텝으로 참여할 겁니다.”

박 선생이 무슨 소리냐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회 스텝은 학생회에서 하는데요?”

“그러니까 은장이가 해야죠. 은장이도 3학년 3반 반장입니다.”

사실 강문고에서의 반장은 말이 반장이지, 숙제 걷기와 유인물 나눠 주기 정도만 해 왔다. 은장이 역시 자기만의 장점을 보여 주기 어려운 활동들만 해 왔기 때문에, 서울한국대 준비를 위해 특별한 활동을 해야만 했다.

“뭐…… 강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은장이를 대회 준비 스텝으로 스카웃해야죠.”

박 선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탄식했다.

“대신 부탁이 하나 있어요.”

어쩐지, 너무 쉽게 오케이한다 싶었다.

“어떤 건가요?”

나는 박 선생이 어떤 부탁을 할지 기다렸다. 내가 알고, 기억하고 있는 그녀라면, 어려운 부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부담이 있지는 않았다.

“대회 준비 좀 도와주세요.”

“네?”

“토론 대회 준비한다고 했잖아요. 강 선생님도 도와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게 있나요? 영어과에서 준비하지 않아요?”

“에이, 그럼 학생회 애들이 어떻게 다 하겠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 설마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 게…….”

“네. 어떻게 학생들한테만 준비하라고 맡겨요. 무대 세팅도 해야 하고, 방송 테스트도 해야 하는데, 사고가 날지도 모르잖아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말하는 박 선생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나 보고 학생들을 도와서 노가다 작업을 해 달라는 뜻이었다.

“현수막도 달고 그쵸?”

“그럼요, 심사위원들 다과 준비도 해 주시고요.”

“……마이크 테스트도 하라고 하시죠?”

“어머, 그건 생각 못했는데. 역시 강 선생님이세요.”

한마디도 물러서지 않는 그녀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박 선생이 이렇게 나에게 부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종의 테스트인가? 아니면, 그냥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나?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알겠습니다. 안 도와드리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것 같네요.”

“그럼요. 동석이랑 은장이를 이렇게 도와드리는데, 이 정도는 괜찮으시죠?”

박 선생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동석이와 은장이를 위해 힘써 주고 있는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도와주어야 했다.

근데 대회 심사위원을 해 달라거나 주제 선정을 도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노가다를 도와달라니…….

“대회가 언제 열리나요?”

“7월 초에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열릴 거예요.”

“시험 끝나자마자 쉴 틈도 없겠군요.”

“어차피 시험 기간에 우리가 할 건 따로 없으니까요. 그때 쉬어 두세요~”

박 선생과 거래를 하고 교무실에 혼자 앉아서 생각했다.

동석이는 슬슬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동상이라도 좋으니 수상을 하면, 그걸로 연천 인재 전형을 준비하면 된다.

은장이는 이번 대회 스텝을 하면서 무대 뒤의 주연들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그리고 7월에 열릴 UCC대회와 1학기 동아리 발표대회에서 수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그리고 나명천은…… 일단 다음 주 월요일에 있는 감사부터 준비해야 했다.

‘윤 선생이 잘해 줘야 할 텐데.’

멀찍이서 하릴없이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는 한 교감이 눈에 들어왔다.

‘한 교감도 가능하면 좀 피하고.’

당분간 윤 선생과 둘이 회동하는 일도 없도록 해야 했다. 까딱 잘못하다가 한 교감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어떤 의심을 살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고개를 휘휘 젓고 출석부를 챙겼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일단 업무를 진행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3반으로 올라갔다.

* * *

모의고사를 치르기 전까지 나는 세 명의 학생을 더 상담했다.

김성욱, 안태성, 나명천.

성욱이는 입시에 대한 생각이 깊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대학이든 진학해서 빨리 이 고등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했다. 우리 반이 문과 위주 반이니까 적당히 어문계열로 가겠다는 게 녀석의 심산이었다.

태성이는 논술을 준비하고 있고, 안 된다면 재수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말이 문과지, 이 녀석도 입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 근데 이 녀석 모의고사 3등급 안 나오던데…… 괜찮으려나.

그리고 나명천. 명천이는 자신이 반드시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력이 따라 주지 않아서 지방의대도 힘들 수 있다는 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명천아, 너 어떻게 가려고?”

“아, 저희 부모님이랑 같이 생각해 둔 게 있어요. 쌤은 신경 끄셔도 돼요.”

이 자식 봐라?

“그래도 담임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말해 봐. 어떤 방법인데.”

“아, 귀찮게…….”

“……뭐라고?”

“아니에요.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끝났죠? 저 학원 가야 하니까 갈게요.”

너도 모평 끝나고 추가 상담이다.

* * *

6월 모의고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떤 학생들은 모의고사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며 엎어져 있었고, 어떤 학생들은 사생결단하는 마음으로 임하기도 했다.

특히 은장이는 서울한국대와 고구려대 최저 등급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봤다.

명천이도 열심히 보는 듯했지만 이내 집중력이 흐트러졌는지 탐구 시간에는 조는 모습을 보였다.

“쌤. 망한 거 같아요.”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 날, 은장이는 얼굴이 죽상이 되어서 나타났다. 가채점을 해 봤는데 엉망이었던 모양이다.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이네…… 수능 공부 좀 해야겠다. 성적표 나오면 그걸로 상담 좀 하자.”

“네.”

“동석이 넌 잘 봤어?”

은장이와 같이 교무실로 내려온 동석이는 어느새 윤 선생에게 쪼르르 달려가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구상한 로봇 설계도와 만들다 만 로봇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저기까지 만들었냐.

동석이가 만든 로봇은 곤충 모양의 몸체와 프라모델 상체가 결합되어 있었다. 초기 구상 모델대로 잘 구상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건담 팔을 움직여서 물건을 잡게 해 보고 싶거든요.”

“그럼 관절 안에 서보모터를 달아 줘야 해. 하지만 서보모터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팔이 얇은데?”

“그러면 팔을 바꿔야 하나요?”

“그게 편하긴 하지. 현실적으로 로봇 대회에서 많이 쓰는 디자인은 사각형이야. 코딩 칩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나오기 때문이거든. 그러니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윤 선생님이 동석이를 잘 지도해 주고 계신 것 같다.

“강 선생, 잠깐 볼까요?”

그리고 그때, 동석이를 바라보던 내 옆으로 한 교감이 다가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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