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발표가 중요해
그날 점심시간 이후부터, 나는 학생들로부터 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은장이가 교실에 무슨 이야기를 퍼트렸는지는 동석이를 통해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뇌물 따위 받지 않는 청렴결백 교사.’
‘저소득층 학생을 도와주는 인성 교사.’
‘학생 진로 때문에 부모님과도 싸워 주는 인생멘토.’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큰일이다. 이렇게 청렴한 이미지가 정착되면 농담으로라도 ‘너희를 이용하겠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아,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동석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내 자리 앞에서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쌤, 근데 진짜 인생멘토 같으셔서 좋아요. 헤헤.”
“너까지 왜 그러냐. 제발 날 내버려 둬…….”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허리를 푹 숙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대학교 잘 가도록 돕는 게 왜 인성교사지?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동석이처럼 어려운 집안 학생 도와준 건 새로운 실적이 될 수도 있다. 은장이처럼 진로로 고민하는 학생을 상담해 주고 동기부여를 해 준 것도 마찬가지다.
이거, 어쩌면 색다른 수식어를 만들 만한 좋은 기회 아닌가?
“오, 인성 교사쌤 여기 계셨네?”
그러나 나의 긍정적인 사고는 놀리듯 날아온 지석 선배의 멘트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
“선배까지 왜 그래요, 진짜.”
“아니, 뭐 소문 다 났던데 왜 그래? 우리 강 선생, 동석이랑 은장이만으로 벌써 이런 이야기 도는 걸 보니 보통이 아니야.”
“아 쫌……!”
“인생멘토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동석이는 오늘도 상담?”
박 선생도 나를 놀리면서 인사를 했다. 저 입꼬리 올라가서 키득대는 것 좀 보라지. 대놓고 나를 놀리는 모습에 한숨만 나왔다.
* * *
며칠이 더 지나는 동안, 나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종례 시간에 모의고사 이야기를 했다.
“이번 주 목요일에 모의고사를 본다. 알고 있지?”
““네~””
“너희들, 이제 고3이다. 대학교에 가기 싫은 녀석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헬조선 시대에는…….”
말을 하다가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이 시대에는 안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요즘 같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대학교를 제대로 나오고 못 나오고의 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다.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학벌 위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 명심들 하고, 모평 끝나면 성적표 들고 순번대로 교무실 찾아와!”
입시 준비의 꽃이라면 꽃인 6월 모의고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준비하는 이번 모의고사는, 처음으로 재수생이 합류하는 중요한 모의고사였다.
따라서 이번 시험의 점수로 각자의 입시 전략이 변경되기도 하고, 정해지기도 한다.
“특히, 최저 있는 전형 준비하는 녀석들.”
나는 수능 최저가 들어가는 수시 전형을 준비할 법한 녀석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너희는 내신 성적 아무리 좋아도 수능 못 보면 말짱 꽝이니까 확실하게 준비하고. 이번에 못 봤다고 해서 포기하지도 말고. 알겠지?”
“네!”
수능 최저를 준비해야 하는 은장이가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저 녀석, 또 이상한 소리 하면 안 되는데.
“그럼 오늘 종례는 여기서 끝. 들어가라.”
“전체 차렷! 인사!”
은장이의 구호에 맞춰 학생들이 인사를 했다. 나는 교실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무실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윤 선생이 나를 불렀다.
“끝났어?”
“네, 서둘러 왔는데 조금 늦었나 봅니다. 어디로 가실까요?”
“괜찮아, 내가 빨리 왔지. 여기 학교 앞에 카페 하나 생겼던데 커피 한잔 어때?”
오늘은 거래 대가로 윤 선생을 도와주기로 한 첫날이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윤 선생을 흘끗 쳐다봤다. 그는 어딘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주문 번호 10번인데 테이크아웃으로 해 주세요.”
머그컵에 커피가 담기려는 순간, 나는 테이크아웃으로 주문을 변경했다. 당황해하는 윤 선생에게 말했다.
“잠깐 걸으실까요?”
우리는 각자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들고 학교 바깥을 향했다. 뜨거운 커피가 뜨거운 초여름 햇빛을 더욱 강하게 몸을 데워 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무슨 말이지?”
“학교 근처 카페라고 해서 스파이가 여기저기 심어져 있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 말에 윤 선생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진짜 무서운 곳은 여기가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과의 술자리 같은 곳이죠. 무슨 미션 임파서블도 아닌데…… 도청하고 염탐하진 않습니다.”
“……그렇겠지, 영화도 아닌데. 하하…….”
그렇게 말하며, 윤 선생은 손에 쥔 아메리카노 잔을 움켜쥐었다.
“강 선생.”
“네.”
“교감이 이번에 나명천이 밀어주라더라.”
역시. 나명천은 3반, 즉 우리 반에 있는 남학생이었다. 성적은 1등급 후반 정도. 과학 분야 중에서도 의대를 꿈꾸고 있는데, 실력이 제대로 따라가지 않는 녀석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 빽으로 수시 전형에 어떻게든 밀어 넣으려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전형적인, 돈 있고 빽 있는데 실력이 안 되는 고3이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도 공부하는 것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보나마나 뒤에서 챙겼겠지.’
그런 나명천에게 과학 대회 수상을 밀어주라고 지시한 건 한 교감이었다.
“과학탐구보고서 대회인가요?”
“그래. 이번에 과학의 날 행사 연장선으로 만든 그거. 근데 이게 어떻게 생긴 건지 알아?”
“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과학의 날인 4월에는 전국의 학교에서 여러 과학 관련 대회들이 오픈한다. 강문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토론, 발명, 과학시사발표 등.
하지만 나명천은 이번 과학의 날에 그 어떤 대회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자 명천이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와-정확히는 한 교감을 찾아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나왔다.
요약하자면 이런 거였다.
‘우리 애를 챙기지 못한 건 다 교감 선생님이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
‘그러니 우리 애를 챙겨 줘라.’
즉, 명천이를 위한 대회를 열어 달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윤 선생은 그런 대회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 대회 중에서 구상하고 있는 게 바로 ‘과학탐구보고서 대회’였다. 아직 학생들한테 확정 공지가 나가지는 않았지만, 한 교감은 이미 이거에 꽂혀 있었다.
“탐구보고서로 하려는 이유가 아버지 믿고 그러는 거죠?”
“그거 아니면 명천이가 상을 받을 수나 있겠어? 다 의사인 아버지가 대필해 주는 거잖아.”
회귀하기 전의 삶에서도 나명천은 아버지의 의사 지식을 믿고 3학년 과학 대회들 중 소논문, 보고서 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물론, 그 상을 받게끔 한 데는 한 교감의 입김이 작용했다.
“하…… 솔직히 까라니까 까기는 하는데, 이게 교사가 할 짓이냐?”
“그렇죠. 할 짓이 못되지요.”
“젠장. 한 교감 지 혼자 뒷돈 챙기지, 나한테 돈 만 원이라도 밥 사 먹으라고 주기를 했어, 뭘 했어. 휴가를 제때 챙겨 주기라도 했냐고. 해 주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은.”
윤 선생의 욕을 들으면서 학교 주변을 몇 바퀴 돌았다. 윤 선생은 이제 할 말은 다 끝났다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까?”
“요는 명천이가 대상을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는 교감을 욕하면서도 나명천의 부모를 욕했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나명천도 욕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그런 놈에게 어떻게 상을 주냐’였다.
하지만 한 교감 눈치도 있고 해서, 아예 안 줄 수는 없었다. 윤 선생도 이런 생각을 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작게 읊조렸다.
“그게 쉽게 되겠냐.”
“평가 요소를 바꾸면 됩니다.”
“그것도 해 봤지. 그런데 결국 한 교감 입맛대로 바꾸는 걸 어떡해.”
“선생님 혼자 하시니까 안 되죠, 당연히.”
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더니 이내 놀라서 소리쳤다.
“뭐? 일정이 나와 있었어?”
“네, 있을 겁니다. 미리 움직여서 나쁠 건 없죠.”
과거 윤 선생은 이런 부조리한 대회 운영을 혼자 도맡아서 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지쳐 갔고, 중요한 문서들을 놓치기도 했다.
나는 그가 놓친 문서 중 <2010년 연간감사계획>을 이야기했다.
“근데 감사 그거, 어차피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그리고 한 교감이 가만히 있을까?”
“당연히 감사 하나로는 부족하죠. 여기에 대학교와도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고교·대학 연계프로그램을 신청해야죠.”
대학교의 교수진과 입학사정관이 신청한 고등학교에 방문해서 입시에 대해 알려 주는 프로그램. 즉, 일종의 설명회라고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거 한다고 많이 들을까?”
“스무 명만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그 연계프로그램으로 찾아온 교수님과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몇 가지 물어보면 됩니다.”
“어떤 걸 물어보려고?”
“수시, 정시의 면접 방식입니다.”
2011학년도 수시 전형에서부터 의예과는 MMI 면접을 도입한다.
이른바 다중 미니 면접(Multiple Mini Interview).
캐나다와 미국의 의대에서 사용하는 면접 방식으로, 지원자의 인성역량을 평가하는 면접시험이 바로 MMI 면접이다.
지원자가 여러 방을 거치면서 방마다 5~10분간, 제시된 상황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 형식이다. 예비 의사의 소통능력과 인성을 파악하는 시험이었다.
그리고, 이 면접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2014년에는 수능 자연계열 원점수 만점자가 서울한국대 의대를 지원했다가 이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이번 2011학년도에 MMI 면접을 도입하는 학교는 한목대였다. 한목대는 나름 의예과 중에서는 중위권~중상위권 레벨을 꾸준히 유지하는 학교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지방에 있지만 대형 대학 병원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목대에 연락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찾아가는 한목 아카데미’를 신청해야죠. 전체 설명회처럼 될 수 있도록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말을 잠시 끊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윤 선생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반드시 의예과 교수님 한 분이 오셔야 합니다.”
나는 다 마신 테이크아웃 잔에서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방울을 털어 넣었다. 이 집 커피 괜찮네.
“그리고 선생님은 감사 끝나고 한목대 특강도 끝나면, 과학탐구보고서 대회 규정을 바꿔 주세요. 꼭 감사, 한목대 특강 둘 다 끝나고 해 주셔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감사관들이 오면 올해에 심사할 부패 영역을 물어보려 합니다. 그러면 한 교감은 아무 말도 못 할 거예요.”
“왜?”
“올해부터 감사 기준이 빡세지거든요.”
2010년은 부정 청탁 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이지만, 이미 그 움직임이 나오는 시기였다. 학교의 청렴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품수수 의혹, 공금횡령, 부정 청탁 등의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나오는 때였다.
이전에는 한 교감이 어영부영 넘어가도록 조치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과거 한 교감의 행동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가 끝나고 한목대 강의가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강의 시작하기 전에 제가 한목대 교수님께 의대생에게 필요한 역량을 강조해 달라 요청할 거고요. 그때 MMI 면접 진행 방식을 설명해 주실 겁니다.”
“M…… 뭐?”
하긴, 아직 MMI 면접 방식이 유행하기 전이니 윤 선생이 잘 모를 만도 했다.
“어떤 건지는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아무튼, 명천이 부모님은 한목대 의예과를 목표로 하고 있을 겁니다.”
“뭐? 진짜?”
“네. 그게 그나마 타협점이겠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평가 기준에 들어가야 하는 영역이 있다. 나는 윤 선생에게 그 영역에 악센트를 주면서 말했다.
“대회 평가 항목에 ‘발표역량’을 추가해 주세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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