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어쩌다 보니
다음 날, 출근길에 은장이와 마주쳤다. 녀석은 눈에 띄게 밝은 모습을 내 앞을 지나갔다.
“쌤! 안녕하세요!!”
어제 부모님과 이야기는 잘 나눈 모양이었다. 내가 일러준 전략대로 이야기가 되었다면, 이제 은장이에게는 확실한 동기가 부여되었을 것이다.
‘남은 건 학부모 면담이고…….’
천천히 교무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다음 상담자 리스트를 체크했다. 최동석, 김은장. 우선 이 둘만 제대로 합격시켜도 학교에서 내 실력은 인정받을 게 틀림없었다.
내신 5등급 이하 학생이 연천대를 합격하고, 모의고사 2등급 학생이 서울한국대에 합격한다. 게다가 은장이의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광고계 인사다.
‘미디어나 법적인 부분에서도 아군이 생기면 좋아.’
비리 폭로는 피해 갈 수 없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윤 선생이 폭로할 테니까. 그리고 그때 나는 폭로에 앞장서느냐, 한 교감의 뒤에서 몸을 사리느냐 둘 중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
편하게 간다면 한 교감의 뒤에 서는 걸 고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입시 코디를 하던 도중 지석 선배와 오래간만에 술자리를 가지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다들 한 교감 은퇴하면서 짤렸어.]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교감도 언젠가는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한 교감의 입김도 약해질 것이다.
그러니 어설프게 한 교감 라인을 잡았다가는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그래서 지금 여러 인맥을 형성해 내 스스로의 힘을 키워나가야만 했다.
‘그래도 기본 포석은 깔아뒀다.’
내 실적을 책임질 학생 두 명이 교실에서 나를 보며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올해 입시가 끝날 때를 기대하면서 오늘 1교시 수업을 준비했다.
* * *
점심시간에 나는 박 선생과 함께 동석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다 만들었어?”
동석이는 윤 선생과 같이 만든 곤충 로봇을 보여 주었다. 로봇은 동석이가 입력한 대로 움직였다. 오오~ 옆에서 박 선생도 감탄하면서 동석이가 만든 로봇을 감상했다.
“잘 만들었는데?”
“그러게요. 동석아 진짜 잘 만들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쌤 그리고 이거요. 윤기준 선생님이랑 만든 보고서예요.”
나는 동석이가 건넨 종이뭉치를 받아들었다. 어림잡아 1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보고서. 하지만, 내용에는 온갖 어려운 물리 공식, 이론이 들어가 있었다. 정말이지, 윤 선생이 제대로 도와준 모양이다.
“고생했다. 근데 느낀 점은?”
“아 제일 마지막에 보시면…….”
동석이가 황급히 마지막 페이지를 찾더니 나에게 느낀 점을 보여 주었다.
[느낀 점: 로봇을 직접 만들어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미간을 좁히고 동석이를 노려봤다. 박 선생은 그 느낀 점을 보면서 깔깔 웃었다.
“아하하하! 동석아, 이렇게 쓰면 쌤들이 뭐라고 피드백을 주니, 깔깔!”
“박 선생님, 그만 웃으세요. 저는 심각하단 말입니다.”
동아리 특기사항 작성 권한이야 박 선생에게 있지만, 결국 이럴 때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담임이었다. 입시 코디 때도 학생들 활동 느낀 점 꺼내 주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모른다.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동석이에게 물었다.
“배운 점은 뭐야.”
“어…… 로봇에 들어가는 과학이론이요?”
“그니까 거기에 들어간 이론이 뭐냐고.”
“아, 명령 신호와 구동 장치…….”
동석이의 말을 들으면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래서 뭘 느꼈냐.”
“어…… 뿌듯했다?”
“확, 씨.”
“죄송합니다…… 즐거웠습니다?”
“……체벌 강화 시절 매맛 좀 볼래?”
후우…… 담배라도 피우듯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동석이를 뒤로하고 나는 샘플 문장을 타닥타닥 입력해 줬다.
[평소 책과 논문으로만 봐왔던 이론을 토대로 직접 곤충 로봇을 제작해 보면서 로봇이 작동하는 원리, 명령 신호의 전달 과정, 구동 장치 연결 프로세스 등을 체험해봄. 이를 통해 물체의 힘과 운동, 중력의 원리를 알아가면서 향후 제작하고 싶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더 다양한 원리를 익히고자 목표를 다져 봄.]
입력을 마치고 모니터를 보여 주었다. 박 선생이 감탄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와…… 그냥 강 선생님이 다 써주시면 되겠는데요?”
“안 됩니다. 면접에서 물어봤는데 동석이가 중력 원리를 이해 못 했다면 설명할 수가 없어요. 나중에 ‘그런 게 학생부에 있어요?’ 라고 답변이라도 하는 순간 끝입니다 끝.”
동석이는 내가 써 준 내용을 보더니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었다. 뭔가 고민을 이어 나가더니 동석이가 이야기했다.
“쌤, 저 그럼 이렇게 써도 돼요?”
“어떻게?”
“원리와 실습을 같이 해보니 공부했던 원리대로 입력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걸 기준쌤께서 잡아 주셨거든요.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제가 만들고 싶은 로봇을 만들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여러 로봇들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도 생각했고요.”
내가 써 준 예시 내용을 보더니 동석이가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래, 네가 느낀 점이 없을 리가 없지. 단지 동석이는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쌤이 로봇대회 나가 보라고 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그게 왜?”
“저 곤충 로봇 만들면서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그걸로 나가 보고 싶어요.”
완벽한 스토리라인. 혼자 공부한 지식을 토대로 동아리에서 직접 로봇을 만들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이론과 실습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배운 내용을 토대로 대회에 만들어보고 싶은 로봇의 주제까지 생각해 냈다.
“이렇게 잘 얘기할 수 있으면서 아까는 왜 그랬어! 그래, 뭘로 나가 보려고?”
어깨를 팡팡 치는 나를 보며 동석이가 부끄러운 듯 헤헤 웃었다.
“프라모델을 상체에 두고 곤충형으로 하체를 만들어보려고요.”
“그니까 위는 건담이고 아래는 곤충?”
“네, 맞아요.”
설명만으로는 매우 꺼림칙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설명이었다. 근데 그거 건프라에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동석아 그거 데빌건……”
“이야 특이한 로봇이겠네! 그럼 그 로봇으로 뭐 해 보려고?”
박 선생의 말을 후다닥 끊고 동석이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기의 오타쿠 지식을 뽐내려다가 실패하자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프라모델 관절이 그래도 일반 로봇보다는 자유롭게 움직이니까 그걸로 뭔가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국로봇대회에서는 물건을 집어서 분리수거를 하는 로봇대회도 있었다. 확실히 프라모델을 응용해서 만들면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대회 규정에는 괜찮나? 모르겠다, 윤 선생님이 잘 봐주시겠지.
“좋아좋아. 근데 내신 공부도 해야 한다?”
“네!”
“동석아 필요한 준비물 있으면 동아리 비용으로 지원해 줄 수 있으니까 신청해. 신청서 내가 줬지?”
박 선생의 말에 동석이가 가방에서 종이철을 하나 꺼내서 보여 주었다. 그 종이를 보면서 그녀가 설명을 했다.
“그리고 프라모델 관절이 제대로 움직이려면 마스터 그레이드 정도는 구해야 하거든? 7월에 나오는 리얼그레이드도 괜찮지만 너무 작아. 퍼펙트까지 가면 너무 비싸고 가성비를 생각하면 역시 퍼스트 건담 MG(마스터 그레이드)가…….”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동석아 은환 쌤이랑 더 이야기 나누고 대회 준비 잘 해보자.”
잠깐만요! 옆에서 박 선생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교재를 들었다. 나가면서 슬쩍 보니 그녀는 동석이에게 ‘너는 들어줄 거지?’라며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동석이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박 선생의 설명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쌤.”
교무실 밖에는 마치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은장이가 서 있었다.
“응?”
“어제 부모님하고 이야기 잘 나눴어요.”
“그랬니? 잘했다. 다른 말씀 없으셨고?”
우리는 같이 교실로 향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네. 언제 학교 가면 되냐고만 물어보셨어요.”
“다음 주 평일 아무 때나 오시라고 말씀드리면 돼. 넌 괜찮니?”
“네, 괜찮아요. 그런데 쌤……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은장이가 교무실에서 박 선생과 대화를 하고 있는 동석이를 보다가 다시 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왜 이렇게 갑자기 저희를 도와주세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하긴, 초임교사 1년차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한 몸 챙기기 바빴었다. 그러다 보니 반 학생들과 대화도 못 해 봤었고, 그건 이번 2년차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지금 회차의 나도 5월까지는 정신없었겠지. 그랬던 담임이 갑자기 동석이와 자신을 도와주니까 은장이 입장에서는 좀 이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회귀한 입시 코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목적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너희가 좋은 학교 가야 나도 살아. 합격하고 나면 합격한 덕 크게 받아먹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에이 제가 뭘 사드려요. 돈도 없는데.”
“누가 뭐 얻어먹겠대? 자판기 커피 하나라도 사 오기만 해 봐라. 바로 돌려보낸다.”
“네?”
“난 너희들 합격하면 합격생 케이스로 여기저기 다 보여 줄 거야. 후배들한테 특강도 해 주라고 할 거고, 책 쓸 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어. 너희들 사례는 그렇게 쓰려고 상담해 주고 준비 도와주는 거니까 딴 생각 말고 대학이나 잘 가.”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동석이와 은장이가 연천대, 서울한국대에 합격하면 얘네들 합격 덕을 볼 생각이었다.
졸업생 합격 케이스부터 시작해서 내 진학 능력을 여실히 보여 준 후, 학교 내 인지도를 대폭 끌어올릴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교사들 몇 명을 모아서 책을 집필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명문대 입학한 졸업생 입시특강까지 시킬 생각이었다. 이런 행사를 하나하나 준비할 수 있다는 것도 교사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이었다. 그리고 이 권한이 그 교사의 힘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5년만 지나면 부정청탁 금지 법률이 제정된다. 딱 사학비리 폭로 시점과 맞물려 있는 시기. 그때 합격 실적 좋은 선생이 학생들, 학부모로부터 과거에 금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언론 먹잇감으로 딱이다.
그래서 지난번 은장이 아버지한테서도 봉투 하나 안 받았고, 앞으로도 싹 다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은장이는 내 말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혼자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참 교사…….”
“……뭐?”
“쌤! 진짜 존경합니다! 저 무조건 서울한국대 갈게요! 아니, 고구려대도 붙어서 골라서 갈게요!”
연신 인사를 하면서 목청을 높이는 은장이 때문에 복도를 지나가던 학생들이 모두 이쪽을 주목했다. 누가 보면 충분히 오해를 살 법한 장면이었다. 지나가던 선생님들도 웅성웅성 대면서 무슨 일인가 지켜봤다. 은장이의 눈에 투명한 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꼭 합격해서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학교에도…….”
“자자 진정하고~ 얼른 교실로 들어가자. 5교시 준비해야지?”
“훌쩍……네, 쌤. 푸헹!”
어느새 주머니에서 휴지까지 꺼냈는지 코를 팽 푸는 은장이를 교실로 허겁지겁 올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도망치듯이 교직원 화장실에 들어갔다. 학생들, 선생님들 모두 복도에서 사라졌을 때쯤, 슬그머니 나와서 수업 교실로 들어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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