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은장이의 일대기
은장의 아버지. 서울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대형로펌 변호사로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갖춘 엘리트. 잠깐 들어와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권위를 형성하려는 듯한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강명문입니다. 제가 은장이 담임입니다.”
그런 은장이 아버지를 향해 나도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가 밝게 웃으면서 반갑게 답했다.
“은장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 그런가요. 나쁜 이야기가 아니어야 할 텐데요 하하하.”
그가 오늘 무슨 목적으로 방문했는지는 짐작이 갔다. 아마 입시를 목전에 둔 은장이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류 선생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은장이 아버지는 ‘마음’을 많이 보여 주신다고 했다. 내 생각이 끝나자마자 그가 은장이에게 잠시 자리를 비키라며 말을 했다.
“은장아, 잠깐 친구들이랑 있어.”
“……알았어.”
이전의 나였다면 분명 이때 아무런 말도 못 했을 거다. 아무리 재력가, 권력가 자제가 많은 강문고라고는 해도, 초임교사에게 있어서 은장이 아버지 같은 사람은 평소 만나기조차 힘든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부장검사 출신인 대형로펌 변호사라니. 내가 일반 직장에서, 아니 강문고처럼 강남서초권 학교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럴 일이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입시 코디를 하면서 어지간한 대한민국의 재력, 권력가는 다 만나봤다. 소위 말해 있는 집 자식들은 자식들의 역량이 다소 부족할 경우여도 학부모들이 안달을 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리를 비키려는 은장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가긴 어딜 가? 오늘 너 상담이잖아.”
“네?”
“잠깐 아버님이랑 말씀 나누고 바로 상담할 거니까 옆에 있어. 그리고 아버님도 시간 괜찮으시면 은장이 상담 때 같이 계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방긋 웃으며 말하자 은장의 아버지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상황만으로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챘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줄 마음을 받을 생각이 없다.’
그의 안주머니에서 봉투 끝자락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지금 한 마디로 그는 봉투를 꺼내기 어려워졌다. 아무래도 딸이 보는 앞에서 촌지를 건네는 건 그로서도 쉽지 않은 일일 테니 말이다.
‘참아야 한다.’
얼마가 들어 있을까. 류 선생이 말한 많이의 기준은 50만 원일까 100만 원일까. 그것도 아니면 1천만 원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돈은 받아서도, 내 눈에 보여서도 안 됐다.
<강남구 명문고의 추락. 학부모로부터 10년간 받은 ‘용돈’만 수십억>
2015년 주요 일간지에 실릴 헤드라인 기사였다. 물론 이 당시에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 않아서 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남서초의 고등학교 교사들이-강문고가 명문은 아니지만- 학부모들로부터 로비를 끊임없이 받아왔다는 사실은 추후 폭로 사건에서 언론을 움직일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있을 폭로전에서 ‘수억의 금품 유혹을 이겨낸 이 시대의 참 선생님’이라는 타이틀로 언론 앞에 설 생각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음료수를 꺼내서 은장이 아버지에게 권했다.
“이거 참, 감사합니다. 제가 드려야 하는데 허허.”
“아닙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쩐 일이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이제 곧 입시 시즌 아닙니까. 은장이가 잘하고 있나도 궁금하고, 요즘 수시 전형이 많아졌다는데 우리 은장이가 스카이를 갈 수 있을지도 알고 싶고요.”
질문은 노골적이었다. 빙빙 돌려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으로 보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시점에서 스카이를 준비하기는 힘듭니다.”
내 말에 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은장이와 상담하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기는 했는데…… 솔직히 지금 은장이가 수시도 정시도, 스카이를 노릴 수 있는 레벨은 아닙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 방법은 비현실적인지라…….”
내가 뒷말을 흐리자 은장의 아버지가 물었다.
“은장이가 머리는 좋습니다. 다만, 안 해서 그렇지요. 선생님께서 조금만 신경 써 주시면 알아서 잘할 애입니다.”
그리고 그가 손을 양복 안주머니로 넣었다. 나는 일부러 그걸 못본 척 시선을 돌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가장 문제입니다.”
“어떤 게 말입니까?”
“안 해서 문제입니다.”
내 말에 은장이가 억울한지 속내를 들켰는지 모를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은장의 아버지는 자기 딸을 놀리는 것으로 인식했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은장이의 가장 큰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정확하게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같지만요.”
“무슨 말씀이시죠?”
“오늘 은장이와 상담하면서 확실하게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근데 은장이가 아무래도 첫 상담부터 부모님 동석이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나는 조심스럽다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잠깐이면 되니까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은장의 아버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의 손이 양복 주머니에서 스르르 빠져나왔다.
“……알겠습니다. 우리 딸이 곧 학원에 가야 하니…….”
“네, 10분이면 됩니다. 걱정 마셔요.”
그가 은장이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상담 잘 받고 와라 딸.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미소는 정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마, 그가 스카이를 강조하는 이유도 그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학벌이 매우 중요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하게 딸이 걱정돼서 학벌을 돈으로 사려고 한다. 의도가 순수할지라도 방법이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교무실을 나가는 은장의 아버지를 보며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왔다.
“은장아.”
“네 쌤.”
“솔직히 말해. 공부하기 싫지?”
“그건…….”
우물쭈물 답변을 하지 않는 은장이를 보며 확신했다.
“너 사실은 광고 촬영 현장에서 일부터 배우고 싶은 거 아냐?”
“네!?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은장의 아버지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엎어둔 종이를 뒤집어서 보여 줬다. 은장이가 쓴 ‘나의 일대기’. 이번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 숙제로 제출한 종이에는 광고에 대한 관심이 알게 모르게 적혀 있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광고 현장을 구경하면서 광고 촬영 현장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법원 견학도 자주 다녔습니다.
……
가끔 잡지 속 광고를 보면서 광고가 가진 문구의 의미를 해석해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평생건강, 국민행복’이라는 국민건강보험의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
그러나 저는 광고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은 광고 분야가 매우 힘들고, 야근도 많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아이디어가 조금이라도 끊기면 도태되는 시장이라고 합니다.
……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제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야근이 많아도 어떻게든 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로스쿨로 진학을 하는 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잘 맞는 분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이렇게 저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게 광고와 법입니다. 그리고 저는 광고가 아닌 법이나 정치분야로 진로를 생각하고 공부하려고 합니다.]
두서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상한 글. 제출 시간에 쫓겨서 억지로 채워 넣은 글. 은장이가 쓴 글에서는 그런 고충이 엿보였다.
그런 글에서도 내가 포인트를 잡은 특징이 세 개가 있었다.
우선, 광고가 가진 문구의 의미를 분석해 본 경험이다.
또 하나는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특징은 법 이야기는 거의 없고 광고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광고 의미 분석은 누군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였다. 은장이는 이 내용을 아마 분량 늘리기 위해 적었을 것이다. 즉, 은장이가 가장 빨리 기억해 내서 쓸 수 있는 자신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법 이야기가 거의 없는 내용 속에서 야근이 많은 촬영 현장을 극복해 내는 자신을 상상해봤다? 당연히 광고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법 이야기가 거의 없는데 쓴 건, 광고 분야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 원인은 아마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겠지.
“은장아, 광고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그……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제가 공부를 잘하지도 못해서…… 서울한국대 정도 나와야 우리 엄마처럼 일할 거 같아요.”
은장이 목소리를 죽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평소 밝고 붙임성 좋은 은장이가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떨구자, 내 주변 공기가 무거워졌다.
우리는 잠깐 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내가 천천히 이야기했다.
“광고 분야 중 뭘 해보고 싶어?”
“저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대학생이 되면 뭘 해보고 싶어?”
“저 방송국 알바 해 보려고요. 그리고 일러스트도 배워서 광고 포스터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럼 서울한국대에 입학하고는 뭘 하고 싶니?”
은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표가 없는 공부. 은장이가 타고난 유전자 덕분에 머리가 좋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지간한 천재가 아닌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문대를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석이도 미래에 천재로 불리는 녀석이지만 입시 준비를 하지 못해서 지방국립대에 입학하지 않았나. 물론 지금은 연천대를 가기 위해 윤 선생님과 로봇 키트를 만들고 있겠지만.
따라서, 은장이에게 필요한 건 입시를 준비할 만한 동기였다. 그 동기는, 앞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은장아, 서울한국대 가고 싶니?”
“잘…… 모르겠어요.”
“가자.”
내 말에 은장이가 고개를 들었다.
“네, 수능 공부 열심히 할게요.”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넌 광고분야 공부도 해. 부모님 눈치 보지 말고.”
“네? 그런데 그러면 저희 부모님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은장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쌤이 몰라서 그래요. 저희 엄마는 제가 광고 공부한다고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집에서 내쫓으려고 한다니까요?”
은장이의 아버지를 만나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논리적인 사고만 보여 준다면, 은장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지지해 주실 것이다.
문제는 어머니다. 실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그녀가 은장이의 진로를 지지해 줄까? 쉽지 않겠지.
은장이도 이 부분이 걱정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은장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나가면 되잖아? 그때쯤에는 성인인데.”
은장이가 당황해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이게 선생이란 사람이 할 소리인가 싶었겠지.
“대학교 가기 전까지는 숨기면 되잖아.”
“근데 아까는 광고 공부하라고 하셨잖아요. 공부하고 있는 모습만 들켜도 큰일인데…….”
“목표는 서울한국대 인문계열 광역계열1학과. 여기를 목표로 공부하면 돼.”
나는 은장이에게 미리 인쇄해둔 <2011년 서울한국대 모집요강>을 보여 주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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