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7화 (7/252)
  • 7화. 본격 상담 시작!

    지난 주말에 주문한 로봇키트가 도착했다. 어렵지 않은 키트였지만, 그래도 동석이의 활동을 보조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며칠 전 지석 선배가 7만 원을 보내주었다. 선배니까 몇 천 원이라도 더 쓴다며 문자를 보냈을 때는 괜히 감동받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 동석이는 입시 준비의 초입으로 들어섰다. 키트를 들고 출근을 한 후 윤 선생에게 키트를 보여 주었다.

    “별로 어렵지 않은 건데, 내가 도와줄 게 있나?”

    “네, 이따 동아리 시간에 동석이가 만들다가 잘 모르는 부분 있으면 알려 주시고, 키트 작동 원리, 물리, 수학 원리를 같이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윤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변에 누가 없는지를 살핀 후 나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건 언제 알려줄 건가?”

    “조만간 금요일쯤 시간 한번 잡겠습니다. 진로진학시간 있으니 외부강사 특강 때 잠깐 뵙죠.”

    그는 내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옅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윤 선생과 헤어진 후 나는 바로 3반으로 올라가 조회를 시작했다. 빠르게 출석을 부르고 월요일에 내준 숙제는 제대로 했는지를 확인했다.

    “자, 오늘이 대망의 수요일이다. 다들 숙제 해왔지?”

    ““…….””

    “이것들이 단체로 벙어리가 됐나. 해 왔지?”

    ““네에…….””

    “좋아. 이따 은장이가 걷어서 국어 시간에 나한테 제출해.”

    “네.”

    “그럼 조회 마친다. 국어는 6교시니까 숙제 안 한 사람 있으면 점심시간에라도 수기로 써서 제출해라.”

    아마 몇몇 애들은 숙제를 안 했을 거다. 안 한 애들을 노려서 말을 마치고 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러자 옆에서 박 선생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동석이 시작하죠?”

    “네, 이따 동아리 시간에요. 키트도 사다 놨습니다.”

    학생들의 인사에 답해 주며 박 선생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먼저 동석이는 제가 사 준 키트로 로봇을 만들고 로봇의 원리를 알아갈 거예요.”

    “간단한 원리라면 동석이가 다 알고 있는 내용 아니에요?”

    “이미 알고 있겠죠. 하지만 입시에서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놓치고 있는 것. 그건 바로 ‘개연성’이다. 즉, 이 학생이 정말 이 정도의 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

    자사고나 과학고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어려운 실험을 준비하거나 심화학습을 탐구하기에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강문고처럼 수능에 더 힘을 쓰는 학교는 이런 과정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가끔 자기 스스로가 뛰어난 학생이라거나, 학교 선생님이 전교권 학생이라고 해서 과하게 작성해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우선 서류의 진실성부터 문제가 생긴다. 설령 1차에 합격한다 해도 면접에서 무조건 들통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 동석이에게는 스토리가 필요했다. 다행히 지석 선배가 적어 준 고2 때의 학생부 문구가 도움이 되었다.

    [기계, 로봇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연구논문을 자발적으로 찾아보면서 공부할 정도로 분야에의 호기심과 이를 해결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학생임.]

    행특에 있는 이 한 문장이 동석이가 2011학년도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쉬운 점은 지금까지의 활동들 중 로봇을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기껏해야 건프라. 건프라를 만들면서 로봇의 구조나 보행로봇의 원리 등을 공부한 내용이라도 적혀 있으면 모를까, 지금의 동아리 활동 내용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동석이는 가장 기초적인 로봇부터 만들어 보는 것이 필요했다. 아무리 외부 수상 실적이 있어도 이런 로봇을 보자마자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동석이가 이번 키트를 시작으로 이후에는 어려운 난이도의 로봇을 만들어서 외부대회 수상까지 노려 보도록 할 생각이었다.

    “강 선생님은 입시를 잘 아시네요.”

    “아, 그냥 요즘 대학교 사이트 돌면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답하자 박 선생이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하긴, 갑자기 동석이 입시 준비시킨다고 이래저래 뛰어다니는 걸 보면 이게 초임교사가 생각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은 동석이를 챙기고, 국어 시간에 일대기 걷어서 상담하는 게 우선이다. 순차로 어떤 학생들을 도와줄지 머릿속에서 리스트를 그리면서 1교시를 준비했다.

    * * *

    은장은 인쇄해 온 종이를 보면서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옆에는 다른 친구들이 어제 있었던 연예계 사건을 이야기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일대기. 결국 광고기획자를 꿈꾼다고 쓰지는 못했다. 광고분야에서 일을 하는 어머니 영향을 받아 미디어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정해진 진로가 없다고 작성했다. 은장은 자신이 쓴 일대기를 보면서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바꿀까?’

    펜촉이 들어간 볼펜으로 한 일(一) 자를 찍찍 그어가면서 내용을 수정할까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야 어디가?”

    “잠깐 화장실.”

    친구들로부터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다 복도에서 같은 반 로봇 덕후인 최동석을 발견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서 웃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옆에는 담임인 강명문 선생이 있었다.

    지난주에 담임과 상담하러 간 뒤로 동석이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처음에는 뭐 맛있는 밥이라도 사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정말 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동석이는 그냥 얼굴이 핀 수준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쌤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어, 그래. 너도 밥 먹었니?”

    “네~ 오늘 계란찜 나와서 두 개나 먹었어요.”

    “맛있었겠네.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아 이거 이따 제출할 숙제…… 인데…….”

    강명문이 종이를 물끄러미 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동석에게 말했다.

    “그럼 간다. 동석이는 동아리 늦지 말고. 은장이도 숙제 잘 걷어서 모아 줘.”

    “아, 네~ 걷어서 수업 때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담임이 사라지고 은장은 교실로 들어가려는 동석을 붙잡았다. 동석이 놀라서 당황해하며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왜, 왜 그래?”

    “담임이 너네 동아리쌤이야?”

    동석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럼 왜 담임은 동석이에게 잘해 주는가. 은장은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도 동석이처럼 웃으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도 알고 싶었다.

    “담임이랑 저번에 무슨 이야기 했어?”

    “어, 언제?”

    “그때 조회 시간에 책 걸렸을 때.”

    “아, 어…… 나 입시 준비 도와주신다 하셨어.”

    “입시?”

    며칠 전 교무실을 찾아갔을 때 담임이 무슨 일을 벌인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었다. 그녀는 당시 지나가던 심지석 선생님이 담임에게 준비는 잘 되어 가냐고 물어본 일을 떠올렸다.

    “근데 그건 왜?”

    “아니 너 평소랑 많이 달라져서 그냥 궁금했어. 종 치겠다 들어가자.”

    그녀는 동석의 물음에 가볍게 답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동석이는 입시 준비를 할 형편이 안 될 텐데. 숨겨진 자식이지 않은 이상 담임이 그렇게 열성을 가지고 도와줄 리가 없었다.

    * * *

    6교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국어시간. 어떤 학생은 불안한 표정으로, 또 어떤 녀석은 망했다며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일대기를 써 오라는 숙제를 주었고, 숙제를 걷어 감과 동시에 쪽지시험을 봤다. 기습 쪽지시험에 녀석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 이렇게 하면 어떡해요, 쌤.”

    “꼬우면 네가 선생해라? 오늘 성적은 내가 잘 기억해두고 있다가 교과에 반영할 거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

    보니까 반 학생들은 내가 교과에 반영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내신 성적에 반영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말한 교과 반영은 ‘교과목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신 성적에 반영이 되는 양아치 짓을 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나쁘게 적어 줄 생각도 없었고.’

    어쨌든 수업시간이 끝나갈 무렵 반 녀석들 얼굴은 꽤나 볼 만했다. 하긴 갑작스런 일대기 숙제에 쪽지시험까지, 놀랄 만도 하지 암. 나는 악마 같이 웃으면서 일대기를 읽었다. 그러다 종이 울리기 직전에 입을 열었다.

    “김은장이.”

    “네, 쌤.”

    진지하게 이름을 불러서 그런가 은장이가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이따 종례 끝나면 교무실로 와라.”

    “혼자요?”

    “그래. 짧게 상담할 거야. 학원 안 늦게 끝내줄게.”

    “네, 감사합니다.”

    짧은 상담이라고 밝히자 은장이의 표정도 한결 편해졌다.

    은장이는 겉으로 봤을 때는 성격도 좋고 친구들도 잘 따라서 반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학생이었다.

    봄에 있었던 체육대회에서도-나는 회귀하느라 옛날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단합이 잘 안 되는 친구들을 위해 응원도구도 직접 만들고 구호와 율동까지 만들면서 친구들이 즐기도록 도와주었다.

    이 외에도 작년 축제 때의 활약이라던가, 수학여행 때의 장기자랑 등 은장이는 다재다능하기로 학교에서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공부도 최상위권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중상위권과 상위권을 오가는 성적이어서 국어랑 영어 과목 멘토링을 해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런 글을 썼단 말이지.’

    은장이의 일대기 인쇄물에는 여러 번 볼펜으로 그으려다 만 흔적들이 보였다. 볼펜을 뽑지는 않고 펜으로 휙휙 그어둔 흔적들. 꾹꾹 누르면서 고칠까 말까 고민한 흔적이었다.

    입시 코디 시절, 한창 자기소개서가 유행할 때 이런 종이를 받아 본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본인이 쓴 글에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자기가 생각할 때도 과하게 소설처럼 쓴 녀석도 있었고, 학생부에 있는 내용이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헤매는 녀석도 있었다.

    그중 가장 지도하기 힘든 학생은, 본인이 원하는 분야와 부모님이 원하는 분야가 다른 학생이다. 그런 학생들은 작성한 자소서 내용을 계속해서 수정하다가도, 부모님의 기세에 눌려 그대로 제출하기도 한다.

    때로는 갑자기 고집을 부려서 실기고사를 준비한다며 1년 입시를 다 포기하기도 한다. 마치 2년 전 지석 선배가 겪었던 학생처럼 말이다.

    ‘생각보다 힘들겠는데.’

    은장이의 일대기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학생부를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류 선생에게 물어볼까.’

    아니다. 지금 류 선생에게 또 빚을 만들어두면 더 힘들어진다. 그때 박 선생이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를 향해 후다닥 일어섰다. 박 선생은 내가 벌떡 일어난 탓인지 흠칫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생님 깜짝 놀랐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은장이 아시죠?”

    “네 은장이야 워낙 유명하죠. 왜요?”

    “은장이 수업 때 어땠습니까?”

    박 선생도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의아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담임인 내가 모르는 정보를 박 선생이 더 많이 아는 것도 이상했다. 게다가 은장이는 동석이처럼 조용한 성향도 아니고,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니는, 소위 말해 교내 인싸가 아닌가.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엄청 성실하다? 공부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애죠. 대학교도 잘 가지 않을까요?”

    “음…… 그렇군요.”

    그녀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렸다. 은장이가 성실하고 활발한 아이는 맞다. 하지만 미래에 은장이는 입시를 포기하게 된다. 평소 성실하고 공부도 나쁘지 않은데다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은데 미래에는 입시를 포기하게 되는 김은장.

    그렇다면 이건 학교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교무실 문을 연 은장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은장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뭔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의 뒤로 중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은장이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