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6화 (6/252)
  • 6화. 새로운 준비

    윤 선생과 거래를 확정한 그때, 류 선생이 젖은 머리를 스포츠타월로 털며 들어왔다.

    “두 분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시원시원하게 내뱉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사람이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이니 그의 실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두가 류 선생을 좋아했지.

    “네, 선생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요. 그리고 선생님, 김은장이 작년에 담임하셨었죠?”

    “네, 참 성실하고 예쁜 학생이죠. 제가 10년만 젊었어도 하하하.”

    딴에는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류 선생을 보며 차분하게 답했다.

    “은장이가 참 성실합니다. 그나저나 곧 은장이 상담을 해야 하는데, 작년 학생부 내용에는 ‘진짜’ 참고할 사항이 별로 없어서요.”

    나는 일부러 특정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 살짝 류 선생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밝게 웃었다.

    “강 선생님, 오늘 좀 다시 보이네요! 작년에는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서 우리가 이런 면모를 몰랐었나?”

    “아닙니다, 다 멋진 선배님들 곁에 있어서 배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지금 시점에서 류 선생과 등을 돌릴 필요는 없다. 그의 교내 위치는 꽤나 높은 편이었다. 경력이 십 년이 넘을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살갑게 대하는 성격 덕분에 윗선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싹싹한 성격,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 게다가 강의력도 꽤 뛰어났다. 잘생긴데다 성격도 좋고 실력도 좋다! 라는 게 딱 류 선생에게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이용해야지.’

    류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3년 뒤, 심각한 사건이 터져 교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니 깊은 관계가 되면 위험했다.

    “그러면 은장이 어떤 걸 알려 주면 좋을까?”

    이거 봐라? 슬그머니 반말을 섞는다 이거지?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가요?”

    “부모님이라…… 음…….”

    은장이의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은장이가 입시에서 실패한 이유는 알고 있다. 그건 은장이가 하고자 하는 분야와 부모님이 원하는 분야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습게도, 은장이는 상위권 대학교인 원희대에 합격했음에도 대학교 입학을 포기했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사실 그 뒤가 더 문제였다. 어떻게든 명문대를 보내려는 은장이 부모님은 불법적인 분야까지 손을 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은장이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은장이의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내야 했다. 게다가 은장이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학생이니 은장이의 호감을 사두는 것도 향후 활동에 있어 나쁘지 않았다.

    “이건 강 선생이니까 알려 주는 건데, 은장이네 집이 꽤 부자야.”

    이제는 아예 말을 다 놓아 버린 류 선생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무슨 일 하시나요?”

    “아버지는 서울대 법학과, 서울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고, 어머니도 서울대 국문과 졸업하신 L기업 소속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야. 그래서 기본적인 머리는 있는데, 애가 열심히 안 한다, 라는 게 부모님들의 생각이지. 은장이가 공부를 조금 하기야 하지만 또 엄청 잘하지는 않잖아?”

    “스카이를 갈 성적이 아니기는 하죠.”

    “그래. 그게 문제야. 부모님은 서울대 졸업했다 보니까 자기 애가 못 가도 연천대나 고구려대는 가야 한다는 입장이지. 그래서 가끔 인사하러 오시면 애 성적 좀 잘 봐달라고 마음을 많이 보여 주시는 분들이기도 해.”

    그렇게 말하는 류 선생의 검지와 엄지가 동그라미를 형성했다. 손가락 원을 가슴팍 안으로 흔들면서 그가 씨익 웃었다.

    “근데 강 선생은 고3 담임이라 좀 빡쎄기는 하겠다. 괜찮겠어?”

    나는 류 선생의 손가락 원을 따라하면서 대답했다.

    “해 봐야죠.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그가 크게 웃으면서 등을 두드렸다. 속으로 욕을 한 사발 들이키며 테니스장 바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 *

    월요일은 모든 학생들, 선생님들이 무기력해지는 날이었다. 이런 날일수록 마음을 굳게 잡아야 한다.

    “자자 정신들 차려! 수능이 얼마나 남았다고 대가리를 책상에 처박고 있냐!”

    하지만 우리 반, 3학년 3반 학생들은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로 등교를 했다. 1교시가 국어시간이고, 3학년 담임이다 보니 수특-수능특강- 교재로 수업 중이었다. 그러나 내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학생은 고작 25명 중 5명이었다.

    “김성욱.”

    “……쿨…….”

    “……아주 꿀잠 드셨네그려.”

    교재를 활착 펼쳐 놓고 침을 질질 흘리는 성욱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기습적으로 귀를 후벼팠다. 녀석은 호들갑을 떨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으아악! 습격이다! 누구야!”

    “앞으로 나와.”

    한 5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학급 전체에 폭소가 터졌다. 친구들의 반응을 살피던 성욱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자, 김성욱 앞으로 나옵니다.”

    “아 쌤 진짜 죄송해요. 안 잘게요.”

    “죄송하면 앞에 나와서 이거 읽어.”

    나는 교재에 있는 비문학 지문을 보여주었다.

    “여기 한 문단만 읽어 봐.”

    “네…… 흠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만의 정보를 기반으로 일대기를 남기려 한다. 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 스스로를 향한 메시지다. 일대기를 작성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많은 경우……]”

    “오케이, 여기까지. 자 다들 잘 들었지?”

    ““네에””

    “그럼 내일모레 수요일까지 각자의 일대기를 써 오도록 한다.”

    ““네에…… 네?!””

    나의 돌발 발언에 학생들이 방금 빚은 왕만두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숙제야.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서 진로와 연관 지은 내용의 일대기를 A4 2페이지 내외로 작성해라. 글씨크기는 10포인트, 자간, 여백은 기본으로. 설정 바꿔 가지고 늘린 거 걸리면 두 배로 늘려서 줄 줄 알아. 수기로 써도 되지만 수기로 쓸 거면 분량 생각해서 알아서 많이 써 와라.”

    학생들이 원망 어린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참고로 이 숙제를 내주는 건 성욱이가 적습을 받았다고 소리칠 정도로 깊게 주무셔서 그런 거니 원망은 성욱이한테 하렴.”

    성욱이를 향해 빙긋 웃으면서 녀석에게 자리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야 너 때문이잖아! 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소곤대며 들려왔다. 교실 뒤쪽에 앉은 동석이만 이런 상황에 조용히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럼 수요일까지 숙제 잘 해 와라. 안 해 오면 1주일간 봉사실적 없는 급식당번이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종이 울렸다. 교재와 출석부를 챙기면서 교실 문을 나섰다.

    사실 일대기 숙제는 괜히 내준 게 아니다. 원래 내주려고 했는데 성욱이로 장난 좀 친 것뿐이다. 나는 아직 우리 반 학생들에 대해 잘 모른다. 그나마 동석이는 미래에 유명해져서 정보가 있었지만, 다른 애들은 그렇지 않다.

    그때마다 모든 학생들 이전 담임쌤과 만나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학생부에 기재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즉, 이번 일대기 숙제는 내가 상담을 할 때 참고하기 위해서 내준 숙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대기라는 핑계를 대고서 각자 상황에 맞는 입시상담을 해 줄 계획이다.

    ‘우선, 은장이부터 하자.’

    * * *

    은장은 담임에게 받은 숙제를 고민하면서 집에 들어왔다. 인근 학원에서 내신 수업을 듣고 귀가한 시간은 밤 12시가 조금 넘었었다. 서울 학원법상 밤 10시 이후에는 학원 수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를 지키는 학원은 거의 없었다.

    “딸 왔어?”

    “……응.”

    늦은 시간이지만 은장의 어머니는 깨어 있었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온 딸이 기특해서가 아니었다. 은장의 어머니는 컴퓨터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키보드를 계속 두드렸다.

    “아직도 일해?”

    “응. 치킨 남은 거 있으니까 배고프면 그거 먹어.”

    “아빠는?”

    “출장. 내일 아침 일찍부터 대구에서 재판있대.”

    “알았어. 나 치킨 먹는다?”

    은장은 치킨을 들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콜라를 꺼내러 다시 나갔을 때 은장이 망설이다가 물었다.

    “엄마.”

    “응?”

    “나 숙제 해야 하는데.”

    “노트북 써. 저번에 사 줬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일대기를 써오는 거라던데. 진로에 맞춰서.”

    “그런데?”

    “나는 광…… 딱히 진로가 없잖아.”

    은장은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가 하는 업무 분야를 항상 동경해 왔고, 몰래 잡지에 있는 광고 포스터들을 스크랩해 오기도 했었다.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했을 때 어머니는 절대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카피라이터이기 때문이다.

    은장은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항상 옆에서 봐 왔다. 어머니는 일이 끝나면 피곤해 죽겠다며, 너는 이런 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장은 어머니가 일을 할 때면 눈에서 빛이 나온다고 느껴졌다. 어릴 때는 가끔 광고 촬영 현장에 찾아가서 연예인을 만나기도 했다. 연예인들은 은장을 보며 귀엽다면서 사인도 해 주고 사진도 찍어 줬다.

    그러나 그때 은장의 눈에 들어온 건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이나, 화려한 촬영 세트, 조명 따위가 아니었다.

    ‘멋지다.’

    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 기사들, 전체 현장 지휘를 하는 감독, 광고의 방향성을 기획한 광고기획자와 카피라이터 등. 은장은 방송국 스탭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훨씬 멋있어 보였다.

    몇 번의 견학 후 은장은 부모님에게 광고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얼마나 가혹한 시장인지를 두 사람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은장은 몇 번이고 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 보았다. 광고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서 책도 열심히 읽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마케팅 용어들도 공부해 봤다. 그런 열정을 보여 주어도 부모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대학교만 잘 나오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까 서울한국대부터 나와. 그리고 광고는 절대 안 돼!’

    어쩌면 어머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잘 나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게 우리나라의 학벌주의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장은 부모님께 성적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2등급밖에 안 나온다거나, 내신도 1등급이 나오는 건 국어, 영어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3등급을 찍는다거나 하는 사실들. 스카이는커녕 중문대도 못 간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어떤 말을 들을지 몰랐다.

    ‘재수해서라도 스카이 가라고 하겠지.’

    그래서 은장은 자신의 진로를 ‘광고기획자’라고 하려다가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괜히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왜 또 그런 소리를 하냐부터 공부부터 잘 하자는 잔소리가 쏟아질 게 분명했으니까.

    “진로랄 게 있니? 그냥 서울한국대 나와서 적당히 취업하든 고시공부를 하든 한다고 하면 되지.”

    “성적에 들어갈 수도 있단 말이야.”

    “엄마 바쁘다. 내일모레 촬영이라 준비해야 해.”

    “……알았어. 치킨 잘 먹을게.”

    은장은 방으로 들어가 남은 가슴살을 씹었다. 엄마 맛없는 것만 남겨 놨네. 투덜대며 생각했다.

    ‘어차피 제출만 하고 엄마랑 아빠한테 보여 줄 건 아니니까.’

    고민을 마친 은장은 노트북에서 한글을 열어 첫 문장을 작성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광고 현장을 구경하면서……]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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