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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5화 (5/252)

5화. 사교도 중요해

반 학생들 학생부를 뒤적이다가 퇴근을 한 나는 지석 선배와 학교 앞 식당에서 만났다.

우리가 만난 장소는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 중 가성비가 손꼽히기로 유명한 <시댁집 식당>이었다. 순댓국 2인분을 주문하면 4인분이 나오는 매직을 경험할 수 있는 식당이어서 학생들, 교사들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교사를 하던 시절에는 정말 이 가게에 많이 왔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쫓겨난 뒤로는 한 번도 이 가게를 찾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먹는 느낌을 받았다.

“크, 여긴 여전히 맛있네. 이모~ 소주 한 병 더요!”

“뭔 오래간만에 온 것처럼 말을 해? 지난주에도 왔잖아?”

“아, 그랬나요?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소주잔을 비웠다. 슬쩍 잔을 내려두면서 안주로 나온 제육볶음을 한 점 집어 먹었다. 알싸하면서 달달한 맛이 혀를 자극했다.

“그래, 올해는 좀 다닐 만하냐?”

선배가 술을 따라 주면서 물었다. 생각해보면 이전 삶에서도 초임교사 1년은 정신없이 지나갔었다. 그래서 이전에 선배가 똑같이 물어봤을 때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었다.

근데 이제는 다닐 만했다. 입시 전형 형태도 모두 알고 있었고, 우리 반 학생들이 어떻게 입시에서 광탈 했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퇴근 직전에 반 학생들 학생부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전의 내가 지금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학교에 더 오래 있었을까. 아니면 더 빨리 학교를 나와 학원을 차렸을까. 어느 쪽이든 이제는 의미 없는 가정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가정을 계속했다.

“강 선생?”

“아,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나은 거 같습니다. 잠깐 작년 생각을 하느라고 하하.”

“하긴, 작년에 진짜 초임들 정신없이 지나갔지. 나는 너랑 박 선생, 차 선생이랑 챙긴다고 또 바빴고.”

우리는 다시 한번 잔을 부딪치고는 술을 입안으로 들이켰다. 시원한 알콜이 목을 휘감았다.

“그러고 보니 선배는 애들 상담 안 해요?”

“나도 이제 해야지. 근데 얘네 다 수능공부 하느라고 상담을 해 줄 게 있으려나 싶다.”

선배는 딱히 본인이 할 게 없다면서 어깨를 살짝 움직였다. 사실 올해 지석 선배는 반에서 가장 위험한 학생 한 명만 조심하면 됐다. 조찬오. 공부를 잘하는 편이지만 부모의 욕심이 컸다. 올해는 어떻게든 성실대학교에 합격하지만, 그 과정에서 입시 비리가 들통이 나서 입학 취소가 된다. 그것도 입학 후 2년 뒤에 말이다.

지석 선배도 찬오의 3학년 담임을 했었기에 검찰 조사를 받았었다. 그때 선배가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이걸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밝힐 수는 없다. 회귀했다고 밝히면 술 취했냐고 면박만 받을 게 뻔했다.

때문에 선배에게도 상담을 권했다. 만약 상담을 하면 위험한 정보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란말이를 추가했다.

“선배, 그래도 애들 상담은 한 번씩 다 해보세요. 혹시 알아요? 몰랐던 내용들 알게 될지.”

“어떤 거?”

“왜 그런 애들 있잖아요. 이과로 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문학을 좋아했다거나, 뼈 빠지게 수능준비 시켰더니 체육학과 가겠다거나 하는 애들이요. 그것뿐인가요? 애는 국문과 가려고 하는데 부모님은 경영학과 보내려고 해서 다투기도 했잖아요.”

“아…… 하긴, 그런 애들도 있었지.”

아이고 머리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선배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비어 있는 선배의 술잔에 소주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잊고 있었네. 2년 전에 수능 끝나자마자 나한테 와서 체교과 가겠다고 재수하겠단 애도 있었어.”

“그러니까요. 애들 좀 만나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아니면…… 그때도 상담 대충해서 그 사단이 벌어졌던 거 아니죠?”

“대충은 무슨, 이제 나 놀리냐? 낄낄.”

선배의 농담에 나도 따라 웃으면서 잔을 비웠다.

“그나저나 동석이는 어때?”

“아 맞다, 선배 저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로봇 공구 안 할래요?”

무슨 소리냐며 나를 쳐다보는 선배에게 스마트폰으로 쇼핑몰의 한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풍뎅이 로봇 키트’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걸 내가 왜 사?”

“아 좀 같이 사 줘요. 동석이 입시에 필요하단 말이에요.”

“얼만데?”

“12만 6천 원이요. 절반만 부탁드림다.”

나는 뻔뻔하게 웃으면서 잔을 내밀었다. 내가 너무 밝게 웃었는지 선배는 이런 녀석이 다 있냐면서 황당해했다.

“이거 꼭 사야 해? 그리고 이거 만든다고 연천대 붙을 수 있을 것 같아?”

“선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잖아요. 나중에 다른 것도 해야죠.”

“어휴 이거 말고 또 뭘 할지 그게 더 무섭다 인마. 알았어! 대신 오늘 술 네가 사!”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는 이번 달 월급도 다 털리겠다면서 한탄하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근데 왜 이렇게 동석이에게 잘해 줘? 뭐 죄지었냐?”

“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동석이가 사실 엄청난 천재인데 나중에 지방대 간 걸로 쌩고생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스카이 합격시켜서 미래 전망도 밝혀 주고 저는 그걸로 명성 쌓아서 데모할 때 힘 좀 얻으려고 합니다!

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하 웃기만 했다.

* * *

다음 날, 주말임에도 나는 학교에 출근했다. 당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짜증이 났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미래 입시 정보를 가지고 회귀한 김에 우리 반 애들 정보도 좀 얻고, 학교 내부도 차분히 돌아다녀 볼 심산이었다.

게다가 당직하는 주말이면,

팡! 파앙!

테니스를 치는 선생님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과거에 나는 테니스를 같이 하자는 선생님들의 권유를 거절했었다. 그냥 어울리기 싫은 게 아니라, 운동을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니스를 치는 초임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는 나중에 입김에서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렸다. 테니스는 학교 내에서는 일종의 사교 활동이었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당직도 있겠다, 선생님들과 교류를 해보기 위해 테니스장을 찾았다. 이제 막 점심시간이 되는 시점에 스포츠음료를 두 개 사서 들고 갔다.

“어? 강 선생이 드디어 테니스에 관심을 가지나?”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수건으로 닦는 이 선생은 3학년 물리선생님인 윤기준 선생이다. 윤 선생은 사학비리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학교를 그만뒀었다.

“안녕하십니까, 윤기준 선생님. 류지훈 선생님도 안녕하세요!”

나는 윤 선생, 류 선생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류 선생은 테니스 공을 정리하다가 내 말에 격하게 반응했다.

“강 선생님~ 당직 서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같이 테니스 치러 오셨어요? 저희 여분 라켓도 있는데 한 게임만 같이 치시죠!”

류 선생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류 선생은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잘생겨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매년 발렌타인데이 시즌만 되면 여학생들에게 받는 초콜렛만 열 개가 넘어서 교무실 선생님들에게 나눠 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류 선생과는 친해져서는 안 된다. 3년만 지나면 그가 우리나라 대표 혐오 사이트 커뮤니티 관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로 인해 그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학생들로부터도 욕이란 욕은 다 먹게 된다.

그래도 지금은 류 선생을 만나야 했다. 류지훈 선생은 우리 반 반장인 김은장의 2학년 담임이었으니까.

“아, 아뇨. 그냥 잠깐 인사만 드리러 왔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우리한테?”

“네, 정확히는 윤 선생님, 류 선생님께 각각 하나씩요.”

내 말에 윤 선생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했다. 테니스공 정리를 대충 마친 류 선생이 내가 가지고 온 스포츠 음료를 마시면서 말했다.

“크으, 역시 강 선생님, 센스가 있으시다니까! 잘 마시겠습니다!”

“이미 마셔 놓고는. 그리고 넌 선배한테 먼저 권하지도 않고 혼자 홀랑 마시냐?”

“선배님 음료는 여기 새것 있지 않습니까. 자 여기 제가 따서 드리겠습니다!”

크흠. 둘의 콩트를 보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류 선생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었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본론을 이야기했다.

“윤 선생님, 혹시 키트 실습 같은 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키트? 혹시 그거 최동석이 때문에?”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금 학교 안에서 최동석이랑 강 선생 모르는 사람이 없지. 강 선생이 연천대 가자고 호언장담했다고 하던데. 뭔가 비법이라도 있는 거야?”

이게 그렇게 유명해질 일…… 은 맞긴 한 것 같다. 잘 됐다. 차라리 이번 입시가 교내 교사들에게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 준다면? 분명 사학비리 폭로 때 더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을 숨기면서 나는 테니스공이 굴러갈 정도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계획은 다 짰는데, 부족한 게 있기는 합니다.”

“그게 키트야?”

“네, 제가 국어교사이다 보니 기계나 코딩, 로봇 이런 거에 약해요. 동석이 동아리 선생님도 박은환 선생님이셔서 과학 분야는 잘 모르시고…… 그래서 선생님께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윤 선생은 턱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낮게 신음했다. 아마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단칼에 거절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때 한 번 더 매력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

“도와주시면 제가 크게 한번 도와드리겠습니다.”

“에이 그게 언제인 줄 알고 그러나.”

“대회 수상자 결정 때문에 매년 정신없지 않으십니까?”

“!!”

윤 선생은 흠칫 놀라더니 내 눈을 살폈다.

“……누가 그러디?”

“지난번에 지나가다가 한숨 쉬시는 거 봤습니다. 슬쩍 보니까 대회 준비 중이신 것 같아서요.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봤다는 건 거짓말이다.

“허어, 감으로 이렇게 때려 맞춰? 무슨 선무당이야?”

어이가 없다며 작게 웃은 그가 류 선생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럼 전 잠깐 몸 좀 씻고 이따 오겠습니다.”

수건 하나만 들고 자리를 비워 준 류 선생 덕분에 나는 윤 선생과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윤 선생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그가 지속된 한 교감의 몰아주기식 대회 수상 때문에 피곤해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게 그가 학교를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였다.

윤 선생은 한 교감으로부터 전교권 학생들도 아닌, 부잣집 자제나 권력가 집안의 자제들에게 수상을 몰아주라는 권유 아닌 강요를 받아왔다.

윤 선생도 막 전근 온 1, 2년은 참았다. 하지만, 3년째가 되던 해, 정말 말도 안 되는 의뢰를 받게 된다.

이때 윤 선생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었다. 결국 자신이 겪은 일을 모조리 고발하고는 학교를 나가게 된다. 그리고 1년 뒤에 사학비리 문제가 물 위로 떠올랐다.

‘사실 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비리가 바깥으로 드러나지도 않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윤 선생에게 제안했다.

“교감선생님이 만들라고 요구하는 대회들이 어떤 성격인지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에게 몰아주라고 하고 있는지도 말이죠.”

“…….”

“2학기 대회랑 앞으로 열릴 대회들에서 교감선생님께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나중에 국어과 대회에서 적극 지원해드릴 거고요.”

“방법이 있나?”

“네, 물론이죠. 그러니 동석이 로봇 수업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윤 선생은 하늘을 잠깐 올려봤다가 나를 바라봤다. 아마 방법이 뭘지 가장 궁금해했을 거다.

“거참 방법이 참 궁금한데…… 지금 알려 줄 순 없고?”

“저도 얻는 게 있어야지요. 확답 주시면 방법은 빠른 시일 내에 알려드리겠습니다.”

흠…… 잠깐 고민하던 윤 선생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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