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4화 (4/252)

4화. 최동석 코디 전략 (2)

“야 너 최동석이한테 연천대 갈 수 있다 그랬다며?”

“네. 그게 왜요?”

“교무실에서 그거 듣던 선생님들이 다들 신삥이가 헛바람만 켜서 큰일이라고 그러더라.”

그거라면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 교감이 방금 ‘최동석이 신경 쓸 시간에 나명천이나 챙기지?’라고 훈계를 하고 갔었다.

“방금 교감선생님도 그러던데, 준비하면 안 되나요?”

“뭐 어떻게 보내려고? 논술 공부라도 시키게?”

“아뇨, 입사관제요.”

“여태 준비 하나도 안 했던 애를 무슨 수로 합격시키려고 그래? 게다가 입사관제는 빽 있고 돈 있는 애들이나 하잖아. 동석이네 집은…….”

“저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죠. 그나저나 이따 술안주는 생각해뒀어요?”

입학사정관제. 훗날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뀌게 되는 이 전형은 대한민국 입시의 구멍을 여실히 보여 주는 전형이었다.

그나마 학생부종합전형이 자리를 잡아가는 2016년 이후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 전이었던, 특히나 규제가 모호했던 시절에는 온갖 꼼수를 활용하면서 입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봉사점수를 뻥튀기해서 봉사만으로 성실성대에 합격한 학생, 대학 교수 아버지 빽으로 면접은 프리패스한 이강대 합격생 등.

지금 시기의 입학사정관제는 각종 편법과 비리로 얼룩져 있었다.

‘물론, 비리로 합격한 애들이 나중에 싹 다 신고 먹기는 했지만.’

비리로 합격했던 학생들 대부분은 훗날 입학 취소를 당하거나,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 전형에서도 불법이었던 형태로 준비해서 민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모두 미래의 이야기다.

그리고 최동석이는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데 있어 아주 바람직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일반고 내신 5.5등급의 대역전 신화>

<로봇만 좋아했던 로봇박사>

<일반고도 꿈꿀 수 있다! 개천에서 용이 된 학생!>

이렇게 각종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학생이 바로 최동석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문고 교사들은 입학사정관제의 단점만 이야기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시키는 일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교 생활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담임 선생이 입시 제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 대비할 수가 없다.

학생의 희망 전공, 진로에 맞춰서 학생부 내용도 작성해 주어야 하고, 대회도 챙겨주어야 한다. 게다가 입시 시즌에는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면접까지.

‘그래서 많이들 손도 안 댔었지.’

챙길 일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회귀하기 전의 세계에서도 다들 기피하는 전형이 바로 입학사정관제였다.

물론, 준비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자제들. 이들은 부모의 경제력을 빌려 외부대회에 참가하거나, 해외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과 상장, 외국어 시험 성적으로 특기자 전형에 합격하곤 했다.

지석 선배는 동석이가 그런 특기자 전형을 준비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 지석 선배의 우려가 거짓말은 아니었다. 입사관제, 학종 전형은 설령 합격시킨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욕을 먹기가 부지기수다. 게다가 강문고는 정년퇴임을 앞둔 선생이 다수인 학교였다. 그러다 보니 고3 담임은 신입 선생들이 많이 맡았다. 경력자들은 수능만 노래 불렀고, 심지어는 대치동 학원에서 수업 들으라는 소리까지 하는 교사도 있었다. 이런 학교에서 입시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치동 입시 코디만 15년을 넘게 했던 나는 할 수 있다. 내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알고 있었고, 현재 입학사정관제의 맹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당시의 합격케이스 역시 꿰고 있다.

게다가, 동석이가 합격하면, 이걸 합격 케이스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케이스는 학교는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10년은 먹어 주는 사례가 된다. 5년 뒤 비리 폭로 때 내가 힘을 갖기 위해서도 동석이는 반드시 합격시켜야 했다.

“동석이가 들고 다니는 ‘로봇도감’을 봤어요. 걔는 붙습니다.”

“그거 하나로 되나? 수능 점수가 안 나오는데. 저기 강원도 캠퍼스도 못 가!”

나는 그런 선배를 향해 빙긋 웃었다. 내가 회귀한 입시 코디라고 밝힐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 선배에게 정말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었다.

“판도가 바뀔 거예요. 바뀌는 현실을 보세요.”

* * *

그날도 종례가 끝나고 동석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동석아 너 프라모델 조립부라며?”

“……네, 그리고 명칭은 로봇동아리예요.”

“그래? 근데 지금까지 건프라만 만들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만…….”

“됐고, 올해 동아리계획서 보여 줘 봐.”

동석이가 가방에서 동아리 계획서를 꺼냈다. 계획서를 보면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들고 싶은 로봇 만들기, 만들고 싶은 로봇 만들기, 만들고 싶은 로봇 만들기…… 의 반복.

말 그대로 그냥 각자 만들고 싶은 건프라 사 와서 만드는 동아리였다. 하나를 매주 만들 수는 없을 거고, 한 개를 1년 내내 만든다고 핑계를 댔을 것이다.

만약, 이 내용이 학생부에 적힌다면 동석이의 입시는 끝이다. 아직 3학년 학생부 기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부터의 활동이 중요했다.

나는 동석이가 보는 앞에서 박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강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에요?]

몇 번의 통화대기음이 울리고 박 선생이 정말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동석이 로봇동아리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내 말에 박 선생이 금새 눈치를 챘는지 바로 대답했다.

[동아리 담당으로서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어떤 계획이 있죠?]

나는 전화기 너머로 씨익 웃었다.

“계획은 있어요. 근데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박 선생에게 요청한 건 딱 하나였다. 동아리 계획서에 맞춰서 활동을 하되, 진짜 로봇을 만들어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건프라 말고 다른 걸로요?]

“네, 사실 건프라여도 상관은 없습니다.”

[네, 알겠어요. 어떤 거 만들려고요?]

“동석이가 만들고 싶은 로봇을 만들 겁니다. 내일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박 선생이 알겠다고 답함과 동시에 동석이를 바라보았다. 만들고 싶은 로봇이 대체 무엇인지 몰라 궁금해하는 동석이에게 <로봇도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석아, 너 거기에서 설계도 꺼내 봐.”

동석이가 <로봇도감> 사이에 끼어 있는 설계도 종이들을 꺼냈다. 국어 선생인 내가 이걸 본다고 뭘 얼마나 알겠나. 다만, 내가 보려고 하는 부분은 동석이가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로봇이었다.

‘찾았다.’

몇 장을 넘기자 하나의 로봇 설계도가 눈에 들어왔다.

<지능형 휴머노이드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 미래에는 대다수의 고등학교에서 로봇 키트를 구매해서 동아리 활동으로 활용하게 되지만, 2010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다못해 3D프린터라도 활성화되어 있다면 괜찮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동석아, 지금부터 메모해라.”

“네.”

“우선, 준비할 전형은 연천창의IT인재육성 전형이야.”

“연천IT……네?”

“연천창의IT인재육성 전형. 그냥 연천인재전형이라고 쉽게 생각해.”

동석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 순서를 기본적으로 따라가야 해. 첫째, 간단한 로봇을 만들어 본다. 둘째, 대회용 로봇 설계도를 그리고 설계도 기반으로 로봇을 만들어본다. 셋째, 한국로봇산업협회에서 이번에 전국로봇경진대회 오픈한다. 거기에 참가한다.”

동석이 혼자 만들어서는 이 대회에서 1등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기에서 동상만 받을 수 있다면 연천인재전형을 준비하기에 훨씬 수월해진다.

“네 쌤, 다 적었어요.”

“좋아, 계속해서…….”

나는 동아리를 시작으로 독서활동계획, 자치활동 계획, 진로활동 계획, 교과목 세특 계획까지 모두 알려주었다. 동석이는 내 말을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잘할 수 있어?”

“네, 해 볼게요. 근데 쌤, 저 진짜 연천대 가도 괜찮아요?”

“무슨 소리야?”

“거기 솔직히 등록금 비싸잖아요…….”

“장학금 나와.”

“네?”

“이 전형으로 합격하면 합격자 전원 4년, 아니 석박사까지 7년 등록금 면제라고. 몰랐어?”

연천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연천창의인재육성 전형은 합격자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준다. 그것도 석박사과정까지 모두 말이다.

게다가 매달 학부 때는 용돈으로 40만원, 석박사 때는 150만원을 지원 받는다.

무엇보다도, 동석이네 집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차상위계층에 들어가지 못해 일반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기회균형 전형도 준비할 수 없었다. 성적도 5등급, 8등급이 섞여 있기에 교과 중심 전형으로 지원할 수도 없었다.

반면, 이 전형은 1단계에서는 우수성 입증자료, 자기소개서, 추천서로 평가를 한다. 이후 2단계에서는 면접평가와 서류를 종합평가한다.

즉, 정해진 비율이 없는 정성평가이기 때문에 동석이처럼 특출난 능력을 지닌 학생들에게 유리한 전형이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걱정할 것 없었다. 베테랑 입시 코디가 지도를 해 줄 텐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동석이에게는 빵빵한 외부 실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걸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든 채워나간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쌤 그럼 저 이걸로 합격하면 등록금 안 내도 되나요?”

“당연하지.”

“수능 성적도 안 봐요?”

“이 전형은 수능 최저도 없어.”

“쌤, 저 붙을 수 있을까요?”

“동석아.”

“네 쌤.”

“너 나 믿냐?”

무슨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잡자 동석이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손에 들고 있는 설계도를 꽉 쥐면서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반응 봐라. 믿냐니까?”

“네.”

“그럼 내가 하라는 거 잘 따라와. 하나라도 놓치면 합격 가능성 낮아진다. 알겠어?”

“네. 알겠어요.”

“그럼 오늘은 이만 들어가고, 대회용 로봇 설계도 생각해 봐. 저 휴머노이드 설계도는 면접용으로 남겨두고. 그리고 연천대학교 홈페이지도 좀 찾아봐. 내일 토요일이니까 연천대학교에도 갔다 오면 좋고. 2호선 타면 금방이다.”

동석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동석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교사 컴퓨터에서 NEIS를 열었다.

최동석.

지난 2년의 기록을 보니 정말 백지나 다름이 없었다. 저렇게 많은 논문을 봤는데도 교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에는 논문 공부 내용은 전혀 없었다.

동아리는 건프라를 만들었다는 내용조차도 없었다. 봉사활동은 학교 운동장 정화 정도만 있었다. 그나마 작년 2학년 담임이었던 지석 선배가 행특만큼은 잘 적어 줬다.

「평소 조용하지만 진중한 성격으로 학습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줌. 기계, 로봇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연구논문을 자발적으로 찾아보면서 공부할 정도로 분야에의 호기심과 이를 해결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학생임.」

여기까지는 참 잘 써 줬는데…….

「다만, 좋아하는 공부 이외에도 다른 과목을 공부하면 더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이건 왜 써 준 거야?

그나마 담임선생님이 학생을 관찰하고 상담한 내용이 적혀 있어서 1학년보다야 낫기는 하다. 하지만 학생의 발전가능성을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렇게 약점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건 좋지 않았다.

하다못해 ‘타 교과목도 성장할 여지가 보일 정도로 미래가 기대되는 학생임’ 이라고 적어 주던가.

‘하긴, 이거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아예 없는 것보다는 지금처럼이라도 기재되어 있는 게 나았다. 이제 이걸 기반으로 해서 3학년 1학기 때 변화한 모습을 내가 작성해 주면 되니까.

나는 동석이의 자료를 닫고 다른 학생들의 자료도 이어서 열어 보았다.

“얼씨구?”

3학년 3반, 우리 반 학생들의 자료를 모두 열어서 점검해 보았다. 생각보다 여러 전형을 준비할 수 있어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왜 과거의 나는 이런 학생들을 몰랐을까. 입시 공부 좀 미리 해 둘걸.

돌아온 두 번째 기회에 감사하면서 다음 주부터는 모든 학생들을 상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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