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3화 (3/252)
  • 3화. 최동석 코디 전략 (1)

    교직원식당에서 후다닥 급식을 먹고는 지석 선배의 자리로 향했다.

    오늘은 지석 선배 주관으로 진행되는 입시 강의 시간이었다. 사실 학기 초에 선배에게 부탁했었다. 당시 나는 초임교사였고 입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시 지원 전략을 어떻게 구상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지석 선배가 윗선에도 했던 모양이다. 지나가던 교감도 응원의 눈길을 보냈다.

    “밥 먹고서도 고생들이 많아. 이번 입결 기대해 봐도 되겠죠?”

    “네, 교감 선생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앉아 있던 초임교사들 중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엉거주춤 고개만 숙였다.

    “자 그럼 계속 해 볼까? 결국 수시와 정시 두 전형으로 나뉘지만, 교과 전형이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수능 공부는 필수야. 교과 전형으로 합격할 수 있는 애들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아? 그리고 교과로 합격해도 수능최저 못 맞추면 헛방이야. 이런저런 전형이 많이 생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전형들도 대충 준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지석 선배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학생들마다 상담하면서 각자 모의고사 성적표 토대로 부족한 점 짚어 주는 게 첫 번째 단계야. 곧 6월 모평 있으니까 그 성적 토대로 하면 돼.”

    “선배님, 그럼 논술이나 특기자 하고 싶다는 애들은 어떻게 해요?”

    영어 교사인 박은환 선생이 물었다. 나와 함께 비리 재단 고발에 동참했지만, 소극적이었던 선생이다. 그래도 나름 의리는 있었는지 그 사건 이후 자발적으로 퇴사하고 교육회사에 입사했다고 들었다. 꽤 큰 회사였는데, 유원이었나 소교였나? 아무튼 지금의 박 선생은 학생들을 챙겨 주려고 애를 쓰는 열정 가득한 초임교사였다.

    박 선생의 질문에 지석 선배는 달리 대안이 없다는 듯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알아서들 준비하라 그래. 솔직히 이런 말 하기 그렇기는 한데, 논술이나 특기자를 준비해줄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아. 그 반만 따로 개설해줄 거야? 경쟁률이 몇 십 대 일은 기본으로 넘어가는데? 진짜 깜냥 있는 애들 아니면 합격 못 해.”

    알아서들 준비하라는 말은 강남서초에 있는 논술 학원이나 특기자 학원을 다니라는 의미였다. 지석 선배의 말도 일리는 있기에 다들 반론을 달지는 않았다. 이 동네 학원이면 전국에 내로라하는 일타강사는 기본으로 깔려 있을 테니까.

    “자자, 이제 곧 종 칠 시간 되었으니까 이 정도로 합시다. 상담하다가 잘 모르겠는 거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해. 퇴근하고 시댁집에서 순댓국에 소주라도 하게.”

    “네, 선배님, 감사했습니다!”

    국사 선생인 차석기 선생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디서 무술이라도 배웠는지 애들 혼낼 때 주먹부터 날아가곤 해서 신고를 먹기도 했었다. 그래도 정의감 넘치고 시원시원해서 나랑도 꽤 친했던 선생이다. 지금이야 올해 막 들어와서 교류가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차 선생의 인사를 신호로 박 선생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잠깐 괜찮아요?”

    “응 왜?”

    목을 축이는 지석 선배에게 나는 최동석의 이름을 꺼냈다.

    “선배, 작년에 동석이 담임했었죠?”

    “동석이? 최동석? 맨날 책만 보는 걔?”

    “네. 걔 작년에 어땠습니까?

    “지금이랑 똑같을걸? 책만 보고 친구 별로 없고 숫기 없고 좋아하는 거라고는 로봇밖에 없고. 성적도 겨우 5등급, 6등급 하는 수준. 근데 동석이는 왜?”

    “오늘내일 중에 상담할 건데 궁금해서요. 공부는 잘 못 하네요? 맨날 논문 보길래 잘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야, 걔 머리 좋아.”

    당연히 좋겠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선배에게 물었다.

    “모의고사가 잘 나와요?”

    “아니 모의고사도 잘 나와 봤자 3등급? 그나마 수학이랑 과학은 2등급 나올 거다. 국어랑 영어는 5등급 아래야. 저번에는 8등급도 봤다.”

    8등급이면 그냥 찍고 잤다는 소리다. 대충 동석이의 교과 학업수준은 3~5등급 사이였다.

    “근데 무슨 머리가 좋아요?”

    “항상 책 읽잖아? 뭐 모아둔 책. 그거 대학교 석박사들이 쓴 논문이야.”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근데 내신은 5등급이라면서요? 흉내만 내는 거 아니에요?”

    “그건 내신만 그래요. 걔,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어지간한 오타쿠 이상이에요.”

    내 질문에 대답한 건 선배가 아니라 박 선생이었다. 박 선생이 동석이를 어떻게 알지? 내가 알고 있는 기억들을 떠올려봤다.

    “아, 선생님 동석이 동아리 담당이시죠?”

    “네. 프라모델 동아리기는 한데 아무튼, 동석이가 동아리 시간에 프라모델도 제대로 안 만들고 공부만 하길래 뭐하나 봤거든요. 그랬더니 노트에 생전 처음 보는 수식들을 적으면서 설계도? 같은 걸 그리고 있었어요.”

    천재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동석이가 논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면, 공부하고 이해한 내용을 토대로 자기가 만들고 싶은 로봇 설계도를 구상해 본 걸 거다.

    “그리고 걔, 영어 논문도 봐요.”

    “영어 논문을요? 영어가 등급이…….”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예요. 시험을 치는 요령이 없는 건지, 대학교에 관심이 없는 건지…….”

    박 선생의 말만 들어보면 동석이는 정말 분야에 있어서는 천재가 맞았다. 그뿐 아니라 영어 실력도, 시험을 위한 머리는 없어도 논문을 읽는 실력은 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어때요?”

    내 말에 지석 선배가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들도 별로 애한테 관심이 없어. 정확히는 뭘 해 주기가 어려워. 가정형편이 좋지는 않아. 대학교 가는 것도 고민하고 있을 거다.”

    “아, 그래서…….”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박 선생이 물었다.

    “그래서, 요?”

    “아, 아닙니다. 선배 정보 고마워요, 나중에 술 사겠습니다! 박 선생님도 고마워요!”

    교과서를 들고 다음 수업인 3학년 1반으로 이동하면서 생각했다.

    동석이가 지방국립대에 입학했던 이유. 아마 장학금 혜택이 컸을 것이다. 전 학년 학비 무료에 최신 노트북 제공, 연구실 지원, 희망자는 연구실 조교도 할 수 있게 해 주는 국립대가 몇 있다. 동석이는 아마 그런 혜택을 받으면서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수업을 마치면서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새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상담 준비를 했다.

    * * *

    종례가 끝나고 교무실 자리에 앉아 최동석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최동석이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고 있었다. 저러다 한나절 걸리겠다.

    “동석아, 날밤 샐 거냐?”

    “!!”

    열심히 달려온 –내가 보기에는 빠른 걸음 수준의- 동석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손에는 예의 <로봇도감>이 들려 있었다.

    “줘봐.”

    동석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살피며 책을 건넸다. 로봇도감에는 정말 말 그대로 로봇의 원리들에 대해 정리된 석박사 출신 교수들의 논문들로 빼곡했고, 앞으로 발전할-실제 미래에 발전하기도 할- 새로운 기술들의 예측에 대한 신문 사설들도 스크랩되어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동석이가 그렸는지 로봇 설계도도 어설프게나마 그려져 있었다.

    <로봇도감>을 한번 쭉 훑어본 나는 책을 탕! 소리 나게 덮었다. 그 소리에 동석이가 흠칫 놀랐다.

    “엄청 좋은 내용들만 가득하구만. 뭘 그렇게 쫄고 그래?”

    진심이었다. 실제로 동석이가 보고 있는 ‘로봇도감’에는 각종 로봇의 작동 원리, 그에 따른 물리학적 원리들이 다양하게 적힌 논문들이 들어 있었다. 개중에는 박 선생의 말대로 영어원서논문도 몇 개 포함되어 있었다.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칭찬 받아 마땅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동석이는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무슨 일 있어?”

    “아…… 그게…… 저…….”

    혹시……?

    “너 친구들이 이거 보고 재수 없다고 놀렸냐?”

    “!!”

    이 논문들은 적어도 석사급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논문들이다. 그도 그럴 게 대부분 박사 졸업 논문이거나 학술지 중에서도 공학계열로 유명한 포스트대학교나 K과기원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었으니.

    공부도 잘 못 하고, 붙임성도 없는 최동석의 ‘로봇도감’은 그들에게는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선생님들한테도 이걸로 혼났지?”

    “!!!!”

    그리고 그들에는 친구들뿐이 아니라 학교 선생들도 포함이었다.

    과거 입시 코디를 할 때도 그랬다. 학생들이 학생부를 들고 나를 찾아오면 그런 히스토리가 보였다. 원하는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그 앞길을 막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에게는 의대를 강요한다거나, 공부를 못 하는 학생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거나.

    그랬던 학생들이 불현듯 생각이 나서 기분이 불쾌해졌다.

    동석이의 경우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에 괜찮은 조언자가 없었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었다. 길을 조금만 터 주면 알아서 물길 타고 흘러가는 학생이었다.

    “동석아. 너 대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

    “잘 모르겠어요…….”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동석이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어이가 없었다. 물론 동석이는 이 한숨을 자신에게 한심하다 하는 한숨으로 들린 모양이었다.

    “로봇이 좋니?”

    “……네?”

    “두 번 안 물어본다. 로봇 좋냐고.”

    “……네, 좋아요.”

    “왜?”

    “만들어 보고 싶어요.”

    “뭘?”

    내 질문에 동석이가 조금 고민하더니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사실 저희 어머니께서 사고를 당하셨어요.”

    “…….”

    “그래서 도와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나는 최동석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미래에 이 녀석이 재활로봇을 만들어서 천재 공학자로 떠오르지만, 지방국립대 출신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이야기다. 지금의 최동석이 재활로봇을 만들 생각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동석이에게 집요하게 물어봤다. 동석이가 대학입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로봇공학과 관련된 측면에서 말이다.

    “재활용 보행로봇을 만들 거예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재활 보행로봇?”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어봤다. 동석이가 잠깐 눈을 빛내면서 대답했다.

    “사고로 다리가 불편하신데 재활운동 하기가 쉽지 않으세요. 제가 학원 안 다니니까 도와드리기는 하는데, 병원 갈 형편도 안 되고…… 그래서 제가 만들어서 어머니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럼 대학을 가야 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만 등록금 걱정도 되고,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동석이가 고개를 다시 푹 숙이고는 자신감 없이 대답했다. 미래의 최동석이 해낼 업적. 보행재활로봇이 개발되고 상용화되면서 전국 보건소와 병원에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녀석은 재활치료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지금 상담을 통해 확신했다. 이 녀석은 어릴 때부터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다. 입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 지금 동석이처럼 확고한 진로 의지가 없으면 지치기 마련이니까.

    내가 잠시 말을 하지 않자 자신의 대답이 잘못되었나 녀석이 불안해했다.

    “쌤 제가 잘못한…….”

    “연천대.”

    “네?”

    중간에 말을 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너 연천대 갈 수 있어.”

    스카이 중 하나라는 연천대. 그곳에 입학시키기 위한 최동석 입시전략계획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동석이는 옆에서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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