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내 집인데 내 집이 아니야
심지석 선배는 교사 생활 당시 나를 도와주었던 사수이자 대학교 선배였다. 비리 폭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지석 선배는 내 의견을 조금이나마 지지해 준 동료 선생님이었다. 때문에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아왔다.
그 선배가 나보고 학교로 ‘출근’하라고 했다.
‘이게 무슨…….’
그제서야 나는 내 손에 잡힌 핸드폰이 내 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초임교사 시절에 쓰던 초창기 스마트폰이었다.
그리고 핸드폰의 캘린더에는 2010년 5월 30일이 찍혀 있었다.
2030년 아니었어 오늘……?
주위를 둘러봤다. 어제 밤 늦게 느꼈던 기시감. 내 방은 누군가 청소를 해서 깨끗한게 아니었다.
20년 전에 쓰던 TV, 20년 전에 쓰던 게이밍노트북, 20년 전에 쓰던 식탁, 20년 전에 쓰던 냉장고.
간단히 정리해 보자.
이거 설마 과거로의 회귀? 그런 건가?
아무리 살펴봐도 20년 전 내가 살던 모습의 집이었다. 현관문을 나가서 보니 최신식 도어락이 보였다. 창문 바깥으로는 15년 전에 망해서 사라진 카페 엘라가 있었다.
진짜야?
혹시 꿈은 아닌지 뉴스도 틀어 보고 냉장고 안에서 깔라만시 원액도 마셔 보고-당시 내가 깔라만시 원액 매니아였다는 점에서 더 충격을 받았다- 샤워까지 했는데도,
내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되었지, 2030년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즉, 지금 이 현실은, 바로 20년 전 강문고 초임교사였던 강명문의 삶이었다.
* * *
“오늘 여러분을 교무실에 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제 곧 시작되는 대입 때문입니다.”
내가 회귀한지 1주일쯤 지났을 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직은 학교의 비리가 밝혀지기 전.
그러니까, 선생님들끼리 의기투합하고 단결이니 뭐니를 외치던 때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초임교사 시절이었던 강명문은 이제 막 1년을 넘기고 2년차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사건은 3년만 더 있으면 터진다.
그리고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당시 강문고 한명심 교감은 현재도 비리로 얼룩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는 많은 교사들이 같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물론 이걸 알고 있는 초임교사는 없었다. 그가 말하는 부분 어느 하나 잘못된 건 없었다.
“우리 강문고 입결이 올해는 한국고를 뛰어넘을 겁니다!”
입시결과(입결). 모든 고등학교의 레벨은 입시결과로 평가된다. 서울한국대를 비롯한 스카이를 그해 몇 명이나 보냈는지, 재수생이나 삼수생은 어느 학교에 입학했는지 등. 이 결과에 따라 대학교에서도 같은 성적이어도 학교별로 평가를 달리하고 있었다.
가령 자사고(자율형사립고)는 평범한 일반고에 비해서 내신 점수를 보다 후하게 쳐주는 식이었다. 같은 3등급이어도 자사고 학생은 수능 1등급이 나오고 일반고 1등급 학생은 수능 2등급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면접 때 학생의 역량을 더 좋게 평가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강남, 서초구의 학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시결과가 상대적으로 좋은 한국고는 주변의 여러 학교들 중 면접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 결과가 좋다 보니 학부모들은 다른 학교보다 한국고를 보내려 했다.
그러다 보니 기본 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한국고로 대거 몰려갔다. 이는 심각한 학생 수준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교감도 교감 나름대로 입시결과가 안 좋으면 평가가 깎일 테니 똥줄이 타겠지.
한명심 교감은 강문고가 바로 옆 한국고에 비해 입결이 좋지 않다며 매년 입시결과에 목을 매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2010학년도 입시가 우리 학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내뱉던 한명심 교감이 숨을 헐떡였다.
교감이 말하는 내용 중 2010학년 입시가 아니라 2011학년도 입시였지만,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옆에서는 심지석 선배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의 다른 교사들도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교감의 라인을 잡은 몇몇 교사들만 ‘네!’ ‘올해는 걱정 마십쇼!’ 하며 맞장구를 쳤다.
“자 그럼 오늘도 열심히 학생들을 위해 일해 봅시다! 마지막으로 구호!”
““구호준비! 시작!””
““합격! 합격! 입결! 대박!””
마지막 구호까지 외친 후 우리는 각자의 반으로 향했다.
“합겨억 합긔어억~ 입겨으얼 뒈에봐와악~ 지랄을 한다 진짜.”
옆자리에서 사회 교과서를 챙기던 심지석이 말했다. 나도 자리에서 출석부와 교과서를 챙겼다.
<강문고 3학년 3반 담임 강명문>
……20년 만이다.
1주일 수업 하면서도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우선 화가 났다.
입시 코디 하면서 많이 벌어 둔 게 아까워서냐고? 15년이나 코디를 해도 집이 신림동이고 겨우 1.5룸 집에서 이사도 안 가고 있는데다가 차도 없는데 무슨. 다른 이유가 아니다.
나는 학교가 싫었다.
무엇보다도 강문고에서 교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장 화가 많이 났다.
솔직히 회귀하자마자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찾아볼까 생각 안 한 것도 아니다. 주식을 사는 것도 방법이었고, 미래 유망 직업을 미리 선점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택시기사의 말이 계속 귓가에 멤돌았다.
[돌아가면 그런 학생들 꼭 합격시켜주세요.]
택시기사가 말한 그런 학생들이 누가 있을지 생각해보면서 1주일을 보냈지만, 마땅히 이렇다 할 학생은 없는 것 같았다.
‘괜히 신경 쓰인단 말이지.’
그래서 다른 일보다는 입시실적을 끌어올리고, 앞으로 있을 사학 비리 폭로를 대비하는 데에 힘을 주고 있었다.
주식에 넣은 돈이 없기도 해서 일찍 포기한 건 비밀이다.
“강 선생, 이따 점심 때 약속 없지?”
그래도 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게 지석 선배였다. 과거, 아니 이제는 미래인 비리 폭로 때도 나를 지지해 준 몇 안 되는 사람.
“네, 없습니다.”
“그럼 이따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초임교사 입시연수 해 주라는 주임 선생님 특명이 내려왔거든.”
방금 생각했던 말 취소다.
“그거 어차피 정시 얘기만 할 거 아니에요?”
“뭔 소리야? 당연히 정시 얘기를 해야지. 논술 이야기 하려고?”
“저 잘 거 같은데…….”
“이게 얼마 전까지는 해달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갑자기 왜 이래? 30분만 할 거니까 밥 먹고 내 자리로 와.”
정시 얘기만 할 게 뻔한 입시 이야기. 2010년이면 이미 입시의 판도가 변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런데 수능 위주인 정시 이야기만 할 거라니.
잠깐.
“선배, 혹시 수시 전형들은 이야기 안 해 주실 거예요?”
“복잡하게 수시를 왜 준비해. 애들 수능 공부가 제일 중요하지. 나도 수능으로 많이 보내 봤잖아.”
이거다. 회귀하고 나서 처음으로 나는 입가에 미소를 가득 띄었다.
“선배.”
“왜?”
“고맙습니다.”
“낯간지럽게 왜 이래? 빨리 네 반으로 가.”
손을 훠이훠이 내젓는 지석 선배를 보면서 3반 문을 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실적 제대로 내 보자.’
약 3년 뒤에 시작될 강문고의 사학비리 사건. 이번 생의 나는 그 사건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똑같이 폭로를 할지, 아니면 참가조차 하지 않을지. 그것도 아니면 나도 비리에 가담할지.
정답은, 이거였다.
‘학교에서 최고의 입시선생님이 되자. 딱 3년만 강문고에서 합격 실적 제대로 쌓아서 힘을 키우자.’
내가 15년 동안 공부해 왔던 입시 코디로서의 능력을 이번 생에서 여과 없이 펼쳐 볼 계획이다. 지금이 딱 적기이기도 했다.
아직은 수시 전형이 생소했던 2010년. 이때는 소위 말하는 극소수의 학생들만 수시 전형을 알고 있었다. 준비 방법 역시 엉망이었다. 그로부터 5년은 지나야 사람들의 입에 수시 전형, 학생부종합전형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수시 종합전형이 유행하기 전에 우리 반 학생들을 명문대에 합격시키는 거였다.
‘입결만 좋으면…….’
강문고 사학비리 사건 때 다른 교사들이 나를 무시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제 막 부임한 초임교사가, 라는 이유가 아니다.
[애들 학교도 제대로 못 보내 본 새끼가……]
심지어 학부모들도 ‘우리 애 대학교 못 가면 책임 질 거냐’며 멱살을 잡기도 했었다.
즉,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입시실적, 입시결과라는 무기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미래에는 분석이 모두 끝난 현 수시 전형의 특징들은 이미 머릿속에 모두 들어 있다. 이걸 활용하면 베테랑 선생님들 이상으로 뛰어난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교탁 위에 가만히 서 있자 반장인 은장이 말했다.
“선생님, 오늘 조회는 없나요?”
“어? 아니, 아니지. 출석부터 부른다. 김성욱”
“네!”
“김은장.”
“네~”
“윤병흠.”
“쌤 여기요~”
……
나는 예전에 쟤네가 어떤 학생이었는지 떠올리면서 출석을 불렀다. 김성욱은 쾌활한데 눈치가 없는 녀석이라 자주 혼났었고, 김은장은 카리스마도 있는데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았지? 공부도 적당히 상위권이랑 중상위권 왔다갔다했던가. 계속해서 출석을 부르다 한 이름에서 시선이 멈췄다.
<최동석>
이 이름을 어디선가 봤는데, 누구더라…… 계속 생각이 나지 않아 고민을 해봐도 퍼뜩 떠오르는 사실은 없었다.
최동석…… 최동석…….
“최동석.”
“…….”
“최동석? 없어?”
“아, 네!”
잠깐 얼이 빠져 있는 안경 낀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면서 대답했다. 학생의 책상 위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아마 책을 보느라 출석에 집중을 못 한 것 같았다.
“그 책 뭐야?”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은 나중에 하고, 그 책 뭐냐고.”
나는 성큼성큼 동석이 앞으로 다가갔다.
“서, 선생님, 죄송해요. 안 볼게요.”
“뭐라 하는 게 아니야. 진짜 무슨 책인데 그래?”
최동석의 책상 앞으로 가서 녀석이 숨기려던 책을 획 뺏었다.
<로봇도감>
표지에는 책 제목이 라벨지로 소심하게 적혀 있었다. 슬쩍 펼쳐 봤다. 보니까 녀석이 관심이 있는 논문을 인쇄해서 모아둔 개인 공부 노트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기억에도 최동석은 특이한 학생이었다. 혼자 책을 많이 읽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체육 시간에도 운동장 구석에서 장난감 같은 걸 만들기만 했던 녀석이었다.
근데 지금 보니까 이건 그냥 책이 아닌 것 같았다. 이거 설마……,
‘그 최동석인가!’
퍼뜩 떠오른 생각에 나는 급하게 동석이를 불렀다.
“최동석.”
“네, 네!”
“그거 가방에 넣고 일단 HR에 집중해.”
“네 죄송합니다!”
내가 책을 압수하지 않은 것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는지 최동석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대신…….”
나는 녀석이 가방에 넣은 공부 노트를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이따 학교 끝나면 그거 들고 교무실로 찾아와.”
최동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마 HR에 집중하지 않은 벌로 책을 압수하거나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2010년 6월. 내가 살아왔던 시대와 동일한 세계라면 지금의 입시제도는 입학사정관제다. 3년만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점차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뀔 것이다.
즉, 올해 입시는 입학사정관제의 중반 모델이었다. 초기 도입 후 겨우 3년 지난 뒤의 모델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최동석은 미래에서 지방국립대 출신의 로봇공학자로 전 세계에서 유명해지는 천재 공학자였다. 다만, 지방대라는 한계 때문에 천재성에 비해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최동석은 더 클 수 있었음에도 성장의 길이 막혀 평범한 공학자가 되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다. 나도 2025년쯤이었나 그 기사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 너드였던 동석이를 잠깐 떠올렸었다.
만약 최동석이 지방국립대가 아니라 스카이 중 한 곳을 갔다면 어땠을까? 학연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런 천재 공학자를 키워낸 사람이 바로 강명문 선생님이라면? 내신 성적도 안 좋고 붙임성도 떨어지는 학생을 스카이에 합격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3학년 3반의 담임선생님인 강명문 선생이라면? 미래 내 부가가치가 몇 배, 몇 십 배는 뛸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그 잘난 교감 라인도, 학부모들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쿠푸흐후훕!”
“쌤 이상하게 웃어요.”
“아, 미안미안. 어디까지 했지?”
은장이의 지적에도 계속 웃음이 나왔다. 대충 칠판에 갈겨쓴 학사일정을 토대로 이번 6월에 해야 할 공부들을 알려 주면서 생각했다. 이 회귀가 내 인생의 전환점을 줄 것이라고.
반복되는 나의 이상한 웃음소리에 쌤 미친 거 같다며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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