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화 (1/252)
  • 1화. 대치동 입시 코디 강명문

    “안타깝지만 서울한국대학교는 불가능합니다.”

    무거운 공기가 상담실을 가득 채웠다. 50대가 이제 막 되어 가려는 아주머니가 숨을 삼켰다. 옆에 앉은 남학생은 그런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잠깐 숨을 고른 학부모가 말했다.

    “……넣어 볼 수도 없나요?”

    “넣어 볼 수야 있기는 하지만……”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짱구를 굴렸다. 지금 성적과 학생부 내용, 모의고사 성적표로 서울한국대에 지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No 였다.

    하지만 앞에서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는 달랐다. 어떻게든 해달라는 눈빛을 빛내는 학부모에게 서울한국대 자료를 보여 주었다.

    “만약 지금 시점에서 준비한다면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학과를 현실적으로 바꾸는 겁니다. 그리고 면접 비중이 높은 전형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어떤 전형이죠?”

    “학생이 수리논술 공부를 한 경험이 있을까요?”

    내 물음에 옆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인문논술을 공부한 경험은?”

    녀석은 이번에는 고개를 젓지 않고, 당당하게 ‘없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면 지금 시점에서는 지역균형선발전형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적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학교 친구들이 학교추천을 포기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받지 못하면요?”

    나는 이때다 싶어서 미리 준비해둔 전단지를 슬그머니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전단지를 눈치채지 못하게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그때는 일반전형으로 준비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학과는 컴퓨터공학과는 너무 경쟁률도 높고, 과학고 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지원해요.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보다는 수리과학부로 지원하는 게 낫습니다. 아무래도 자연과학계열은 기계공학이나 빅데이터 학과보다는 인기가 훨씬 낮아서 경쟁률 부담도 없을 겁니다.”

    “면접 준비하기에도 괜찮을까요?”

    “면접 준비가 조금 어려울 수는 있지만, 사실 스카이를 준비한다면 어떤 전형이든 다 어려운 겁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지요. 그래서 저희 학원에서는 서울한국대 면접 대비 특강반을 오픈 중입니다.”

    나는 꺼내둔 전단지를 펼치면서 우리 학원 프로그램의 좋은 점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학부모와 학생이 꽤 관심을 가지고 듣다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 학생부는 괜찮나요?”

    “아 학생부요? 수리과학부로 확정하신다면 3학년 1학기 학생부 내용은 손을 좀 봐야 하기는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생이 묻자 나는 미리 열어둔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기 보면 2학년 2학기까지의 활동들이 모두 컴퓨터에 맞춰져 있잖아요?”

    “네.”

    “그런데 바로 이 교과목. 미적분 교과목 세특을 보면 수학의 실용적 측면을 과학분야로 화장시켜서 탐구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 활동이 3학년 1학기 활동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3학년 때는 창체동아리에서…….”

    그렇게 나는 학생의 학생부를 꼼꼼히 확인해주고 검토, 보완점을 설명해 주었다. 중간에 우리 학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학생부 보완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자세히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구 저희가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는 않았나 싶네요.”

    문득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예정된 1시간을 넘어 2시간 가까이 상담을 해 주고 있었다. 만약 뒤에 상담이 잡혀 있었다면 컴플레인이 일어났을 사안이었다.

    뒤에 추가로 상담 예약이 없음에 안도하면서 학부모에게 물어보았다.

    “네, 어머님, 그럼 스카이 목표로 준비하는데 서류 준비를 저희가 도와드릴까 합니다. 어떠신가요?”

    “그런데 금액이 좀 비싸서…… 얼마라고 하셨죠?”

    “시간당 15만 원으로 면접 특강은 180만 원입니다. 그리고 지금 등록하시면 얼리버드 혜택으로 30% 할인해드리고, 제가 분석한 입시자료집, 면접 기출문제집을 제공해드립니다.”

    “포트폴리오랑 면접 준비, 학생부까지 다 여기서 진행하면 합격할 수 있을까요?”

    학부모의 질문에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교과 성적표와 모의고사 성적표, 그리고 학원의 진단 프로그램 화면을 보여 주었다.

    “상담 초반에도 말씀드렸듯이 가능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와 함께 준비한다면 최대한 가능성을 끌어올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까, 100%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는 거네요.”

    학부모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는 별 감흥 없다는 얼굴을 하면서 출구로 향했다.

    “네, 알겠어요, 그럼 고민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문을 닫고 나가는 학부모와 학생을 보면서 괜히 애간장이 탔다.

    입시 시즌이지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학생을 등록시켜야 했다.

    그래야 한철 벌이로 살아가는 입시 코디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날 하루가 다 가고, 이틀이 지나도록 그 학부모로부터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 * *

    “하…… 존나 피곤하네.“

    상담실을 환기하면서 투덜거렸다. 이래저래 정리하다 보니 야경이 아름답다고 말할 시간마저 지나 버린 새벽 1시였다.

    내가 운영하는 학원은 대치동에 있는 작은 입시학원이다. 소성학원이나 너토스 같은 대형 학원은 아니어도 그런 학원에 있는 사람들보다 실력은 더 뛰어난다고 자부한다.

    ……아니 솔직히 그렇다고.

    이전에는 나한테 특강을 요청하기도 했고, 합격실적도 좋았으니까.

    “그것도 다 옛말이다.”

    원래 나는 강남구에 있는 강문고등학교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처음 들어간 직장이었다.

    그때는 만나는 모든 학생들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학교를 도와주려다가 5년을 채 못 채우고 쫓겨나듯이 사표를 던져야 했다.

    “……젠장.”

    벌써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 나를 배신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재단비리로 인해 학생들의 등록금을 갈취한 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서 학교의 부당함을 외치기로 했던 사람들. 당시 우리는 그걸 사학비리 폭로라 불렀고,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폭로에 동참하는 인원이 모이는 듯했다. 전체 선생님 90명 중 70명이 비리 폭로에 동의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결사의 날에는 겨우 5명만 현장에 모습을 보였다.

    그럼 나머지 65명은 어떻게 되었냐고?

    당시 권력 탑이었던 한 교감에게 달라붙었지 뭐. 그때 교감에게 달라붙은 선생들은 이후 학교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나 같은 폭로파들은 사실상 짤린 거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로는 1인 학원으로 대치동에서 어떻게든 살아왔다. 다행히 합격실적이 나쁘지 않아 입소문을 잘 탔다.

    그래도 너무 솔직하게 컨설팅을 한 게 독이 되기도 했다. 오늘도 솔직하게만 하다 보니 프로그램 등록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으니까.

    ‘입시는 현실이지.’

    입시 코디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환상을 알려 줘야 수익을 내는 것도 현실이었다.

    후…… 좀 속물처럼 일해서 돈이나 많이 벌 걸 그랬나. 오늘 상담 온 학부모에게도

    [이렇게만 준비하면 당연히 합격하죠! 합격 못 하면 제 손목을 자르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야 했었나. 다른 학원은 그렇게들 잘도 말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호언장담이 여전히 입에 붙지 않았다.

    “날씨 좋네.”

    여름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왔다. 미리 불러뒀던 택시가 앞에 섰다.

    “신림역으로 가 주세요.”

    택시에 타자마자 조금이라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내일은 상담이 딱 두 건뿐이니까 오늘은 쉬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창 밖을 바라봤다.

    “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한숨을 쉬던 나에게 택시 기사가 말을 걸었다.

    “아, 선생하던 시절이 생각나서요.”

    나는 창밖으로 비치는 화려한 네온사인들을 보며 졸린 눈을 비볐다.

    “하던 일도 다 때려 칠까 싶기도 하고요.”

    “후회되는 일이었나 보죠?”

    “후회라기보다는 화딱지 나는 일이었죠. 그때 힘만 있었어도…….”

    택시기사는 룸미러로 나를 보면서 물었다.

    “어떤 힘이 부족했나요?”

    “아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학교 비리 폭로하다가 잡혔거든요. 입시 실적도 떨어지는 선생이 명문고 흠집내려 한다고.”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연차가 많이 쌓인 교사들보다 이렇다 할 입시결과를 내지 못했던 나는 여론몰이의 표적이 되었었다.

    “입시 결과가 중요한가 보네요.”

    “그럼요. 이래뵈도 강남 명문고 선생이었습니다.”

    “돌아간다면 입시실적에 힘쓰시려나요?”

    택시기사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라며 호기심을 가졌다.

    “그렇겠죠?”

    “연차가 낮아도 실적이 있어 보이려면 뉴스에 나올만한 애들을 합격시켜야겠네요.”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 애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생각은 안 나네요.”

    “강남이어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돌아가면 그런 학생들 꼭 합격시켜주세요.”

    “하하,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하루 벌어먹기도 힘든 입시 코디인걸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운전석에서 계속 말을 거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대꾸할 힘도 들지 않았다.

    그대로 피곤한 몸을 등받이에 기댄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 * *

    “손님, 도착했어요.”

    택시 기사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아…… 네, 감사합니다.”

    “새벽까지 회식한 거 같은데, 불안하게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십쇼.”

    회식이요? 하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우……웁…….”

    “나가서 해요, 나가서!”

    황급히 차에서 내려 입을 벌렸다. 우웨엑. 알콜 냄새가 비릿한 토사물과 함께 입안에서 빠져나왔다.

    뭐지? 나올 때 술은 안 마셨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또다시 구토가 올라올 것만 같은 속을 부여잡고 겨우 엘리베이터에 탔다.

    이상하다. 오늘 많이 피곤했나? 그런데 이런 입시상담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이것 때문에 그럴 리는 없는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시원한 냉수나 한 잔 하고 빨리 자야지.

    하지만 내 휴식 계획은 불을 켜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알 수 없는 위화감.

    분명히 방 정리를 한 기억은 없었다. 도둑이 들었나? 아니다, 도둑이 들었으면 더 어질러져야지. 돌아가신 어머니? 유령이 올 리도 없고. 그새 나도 잊고 있던 여자친구? 그럴 리 없지. 난 교사에서 잘린 뒤부터 줄곧 솔로였다.

    ……생각하니까 괜히 열받네.

    아무튼 중요한 건 누군가 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물건들도 싹 다 정리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벽지까지 새것으로 갈아낀 것처럼 깨끗했다. 화장실 바닥도 땀방울조차 미끄러질 듯이 깨끗했다. 마치 처음 내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때처럼 말이다.

    ‘그때는 모든 게 신축이었지.’

    처음으로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얻은 집. 이곳에서 교사의 꿈을 키웠고, 배신을 당했고, 지금의 입시 코디 생활을 하고 있다. 인생이 참 얄궂다.

    “으…… 빨리 물…….”

    상념에 사로잡혀서 그런가 더 머리가 어지러웠다. 보니까 도둑이 든 것도 아니고 뭘 훔쳐간 것도 아닌 듯하니 빨리 잠이나 자야지.

    물을 마시고 나는 모든 걸 내려놓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날따라 유독 새로 간 장판에서 잔 듯이 포근했다.

    * * *

    다음 날 아침,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냈다.

    <심지석 선생님>

    화면에는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교사시절 선배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지석 선배가 갑자기 왜 전화했지.

    “……흐아암. 오래간만입니다, 선배님.”

    [야! 강 선생! 너 지금 어디야!]

    “네?”

    [그리고 어제도 봐 놓고 뭔 오래간만? 술이 덜 깼냐? 됐고 후딱 씻고 나와! 출근이나 해!]

    “……선배 지금 제 학원 앞이에요? 내가 주소 알려 줬었나?”

    전화기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귓가에 사자후가 들려왔다.

    [빨리 학교 오라고! 벌써 지각이잖아!!!!]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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