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니스 로드-463화 (463/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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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혼 여행-- >

    김현중 소위가 면목 없다면서 고개를 숙인다. 열댓명으로 보아 서른명이 넘는 소대는 아닌듯 하고 대충 분대쯤 되는 모양인데 정신 머리가 썩어 빠졌다.

    ...... 아니, 아니지. 루이넬의 색기 탓이구나. 일반인도 덮치게 만드는 농염한 색기는 단순하게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유혹한다.

    군인이라고 하더라도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본능이 이기는건 당연한 일이지.

    사람이 개가 되는 순간, 자제력을 잃는 순간이면 흔히 술을 퍼마신 후를 생각하면 된다. 그때는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다. 루이넬의 색기는 그런쪽으로 사람의 자제심을 없에는 것이다.

    이해 못할건 아니다. 그래도 기분은 엄청 더럽다.

    "재차 사과드립니다. 저들은 이후에 군법회의에 넘기는 것으로....."

    "?

    어, 루이넬이 팼으니까 그걸로 퉁치자. 나야 끓어오르고 있지만 참도록 할테니까"

    비교적 괜찮다. 루이넬이 힘이 없었다면 큰일이 났겠지만 잘된게 잘된거고 어찌?

    건 무사하니까.

    널부러진 녀석들은 깨운 후에 가까운 본진으로 돌아가 합류시켰다. 본인들도 어렴풋이 뭔짓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했던지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물러났다.

    이거 말하면 영창가고도 남는다지. 부녀자 강간 미수니까.

    그래도 그럭저럭 해결이 되서 분위기는 괜찮아졌다.

    내가 저녁 식사를 30명분쯤 만들어서 다같이 하니 오랜만에 사람 사는 분위기도 나고 1년동안 루이넬이랑 까마귀 빼고 이야기 한적 없는 나도 들떠서 여러뭐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아직 30대다. 세대차이가 있어도 기본적으로 20대인 군인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조금 어긋나는것이 있다면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라고 할까? 아직 가상현실까지는 구현되지 않은 시대지만 그래도 컴퓨터의 그래픽이라던지 대체적인건 다 발전된 시대인것 같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땅이 좁아서 뭉칠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다른 나라와 다르게 국력과 사회를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 소수부족들이 모여있는 중국은 아마 티벳도 또 따로 분리해서 나라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영토의 크기와 평소 정치의 차이지. 어찌?

    건 우리 나라는 휴전국이니까.

    ...... 큰일이다.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라고 칭해버렸다. 고향은 그렇다고 쳐도 나도 모르게 한국도 마찬가지로 고향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천생 한국 사람이구나. 마치 로버트 할리같다고 할까.

    일도 무난하게 끝났으니 한가하게 밥이나 먹자고 했다. 전부터 계획했던 고생하는 국군들 밥 먹이기지 뭐, 내가 아무리 다른 차원 사람이고 이 지구엔 연이 없다곤 하나 한국은 한국이다. 가뜩이나 징병당해서 군대로 끌려가는거나 마찬가지인데 먹을거라고 잘 챙겨줘야지.

    나는 요리사면서 마인드는 쉐프라고 불릴 어디 별 몇개짜리 호텔의 주방장보다는 동네 요리집의 연로하신 할머니 같은 마음이다.

    배고픈 녀석이 있다면 먹인다.

    밥을 굶었다면 먹인다.

    비쩍 말랐다면 먹인다.

    건강하고 살쪘어도 일단 먹인다.

    그 외 할머니들이 손자 보는 눈은 다 삐쩍 말라보인다고 하지 않은가. 나야 할머니가 없는 2대째니까 모르겠지만 친구들 말로는 배부르게 먹어도 더 먹으라고 한다고.

    나도 그런 마음이지. 어쩐지 이해할것 같다.

    큰 요리집에서나 쓸법한 큰 통에 고기랑 기타등등 여러가지를 넣고 팔팔 끓인 다음에 부속 재료들을 넣어 잡냄새를 없에고 여러 작업을 더해서 시간까지 조절해 겨우 30분 만에 사골국을 끓었다. 진한걸로.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대사가 기억난다. '뭘 많이 맥여야제'.

    구수한 발음과 사투리로 떠올려지는 대사를 실천한다.

    "폐까지 끼쳤는데 식사까지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이런 곳에서 야영하고 하려면 위험하고 그렇잖아? 게다가 먹어봤자 짬밥밖에 더 먹어?"

    "..... 혹시 언제쯤 제대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제대 안했어. 군대도 사정이 있어서 고등학교 중퇴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녀가지고"

    "군면제?!"

    "아냐, 아니라고. 내가 고아인데 면제는 무슨"

    우리 나라가 고아에게까지 면제해줄 정도로 좋은 나란줄 알았냐. 소년가장들도 군대 보내는 나라인데.

    난 그때 몸이 좋아서 현역 1급 나왔다. 지젼, 내가 여태껏 1급 받은건 그거 하나밖에 없을껄.

    "크윽......."

    "네가 고생이 많구나"

    나는 문득 눈물을 흘리는 소위의 어께를 두드려 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한국으로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건 왜?"

    "제가 본 결과 킹 클래스의 ADC를 곁에 두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시고 개인의 능력을 파악해보니 S급 적합자 이상이십니다. 지금 한국은 여러뭐로 인력이 부족하기에..... 게다가 해로가 봉쇄되다시피 되어졌기에 다른 나라의 조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나마 아직은 항공기쪽으로 연료값이 비싸긴 하지만 적합자를 지원받을수는 있다고 하나 절대적인 강자쪽이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거기다가 내가 가면 루이넬이랑 저 까마귀도 따라오니까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그런 마음이 없진 않습니다"

    "당연한거야, 솔직해서 좋네"

    나는 기본적으로 바보라 돌려말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복잡한 말은 더더욱.

    그렇기에 뭔가를 숨기고 꾸미는 녀석은 싫어한다. 흔히 귀계의 마왕이나 그림자의 마왕같은 녀석을 말이야. 일루전 로드는 그나마 괜찮았지, 그녀석은 계획은 짜도 스스로 나서서 싸우니까.

    솔직한건 좋은거다. 상황을 보고 이야기 해야하긴 하지만.

    "뭐 좋아. 가도 딱히 상관 없겠지. 사실 그냥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괜한 문제 일으키기 싫기도 하고 국적이랑 신분도 없거든. 대신에 이쪽에서도 몇개 조건을 걸었으면 하는데"

    "상부에 말하면 적합자로서 등급을 검사한 후에 적절한 보상과 대우가 주어집니다. 그중에서 국적 문제는 적합자에게는 자유롭기 때문에 막말로 두시간이면 해결될겁니다"

    "지젼"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을껄.

    "일단 내가 원하는건 국적.... 아, 이건 ?

    다고 했고. 그리고 어느정도의 돈이랑 거처. 그리고 우리 루이넬도 마찬가지로 신분이 필요하고 이 까마귀도 기왕이면 반입해 주었으면 하는데"

    "아, 유래없는 길들여진 킹 클래스의 ADC면 연구자들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들여올겁니다. 아마 걱정 하실 필요는 없으실겁니다"

    이놈이 멸종 위기종이였나.

    아무튼 상부에 보고를 위해 다음날 소위는 본진으로 합류하려고 돌아갔다. 루이넬까지 마중 나와주다니, 고마운줄 알아라.

    우리 루이넬이 제일 귀여워. 부정하는 놈은 그 누구라도 봐주지 않아!

    나중에 소식 전해준다니 그때 가야지.

    "한국으로 가는거야?"

    "응, 기대돼?"

    "일단은, 팬텀이 살았다는 나라니까"

    "정확하게 그쪽은 아닐껄. 시간대 차이도 있고 차원이 다르기에 세세한 쪽에서 문제가 있을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기 기대하지는 말아줘. 게다가 진짜로 내가 살던 지구는 데려가주지 못할것 같은데"

    "응? 어째서?"

    "그쪽에서 개인적으로 할일이 있어서..... 여러뭐로 좋은 분위기는 못낼것 같거든. 게다가 얼마 있지도 않을거라서 말이야"

    일단 제자를 들인다. 예전부터 고대해왔던 똘똘한 녀석을.

    그리고 그 뒤에 일.... 내 고아원에 들러본다던가 모교도 방문해본다던가 그런걸 처리한 후에는 조금 알아봐야 할것도 있다.

    그 뒤에는 제자녀석을 거둬서 키워준다. 언젠가 뭔가 될 녀석이니 키워볼 맛도 쏠쏠하겠지. 나는 가르치는 재능은 쥐뿔도 없지만 실전 경험과 똘똘한 녀석 특유의 재능으로 나에게서 뭔가를 알아내 스스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일이 될 것이다. 수틀리면 이리저리 박살내야할테고 지금과 같은 분위기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지. 게다가 제자 가르치는데 나는 옆에서 아내랑 노닥거리면 꼴불견일테니까.

    며칠 뒤, 우리는 드디어 국경선 너머의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일단은 적합자라는 녀석들이 대우를 받으니 나는 적합자로서 행동해줄 생각이다. 신분이나 거처, 그리고 돈. 복지가 잘 되어있다고 하고 시간과 차원이 달라도 한국은 한국이지.

    다른 나라보다 설령 더 잘해주겠냐?

    나라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좀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거나. 둘중 하나일 뿐이다. 아예 달라지려면 나라가 부서지고 다시 한번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원래에 있던 체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요컨데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적합자의 대우가 낮을거다. 그건 확실하다.

    대우해줘야 하는 사람은 대우해주지 못하고 정작 솔선수범해서 나서야 하는 사람은 오히려 느긋하게 쉬며 돈이나 버는게 세상이지.

    사실 별로 기대도 안했다.

    "등급 확인을 위해 테스트에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무난하게 가자, 무난하게. 그리고 그 수준을 올리고 이정도다 싶을 때부터 시작해보는거지.

    처음으로 테스트 하는것은 근력 테스트였다. 마치 오락실의 펀치 머신마냥, 하지만 좀 더 단단해보이는 형식으로 맞춰진 기계가 배치된 방으로 들어갔다.

    -근력의 측정에 들어갑니다. 전력으로 앞의 측정기를 쳐 주세요.

    "진짜 전력으로?"

    -측정기는 이론상으로 SS급 적합자의 근력도 측정 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서지지 않아요.

    목소리에서 비웃는 소리가 난다. 좋아, 너 뒈졌다.

    나는 몸에 중심을 잡고 전력으로 후려쳤다.

    이전에 마왕의 몸으로서 최대의 힘을 써서 쳤던 드래그니티를 다시 눈앞에 둔것처럼. 몸의 무게와 근력을 담아서 단숨에 팬다.

    콰아아아아앙!!!

    측정기가 부서지고도 모자라 벽면이 찌그러지며 이내 뜯겨나간다. 그것마저도 모자라서 거센 바람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그 여파로 인해서 스피커마저도 고장난건지 끽끽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대체 무슨!

    "전력으로 치라며?"

    시비는 니가 먼저 걸었다. 나는 시비걸어온 녀석을 봐줄만큼 좋은 성격은 아니라서.

    이후 다른 테스트는 조심히 진행되었다. 상황을 보면 나를 무시한 녀석은 따로 불려가서 갈굼 받는듯 했다.

    다음 테스트 부터는 조심히, 기기가 부서지지지 않도록 하라면서 부탁받고 했지만 그래도 조절해도 금가는것 정도는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뭐 이렇게 약해 빠졌어?

    날 측정하려거든 슈퍼맨을 데려와라. 대마왕의 힘으로는 슈퍼맨과 싸우긴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같은 육체파인 헐크정도는 치고박고 싸우면서 나라 하나 부숴먹을 자신 있다.

    대충 몇개 더 측정한 후에 결과를 기다린다. 주변에서 괴물을 보는 표정으로 나를 힐끗힐끗 보는게 느껴진다.

    왜, 뭐, 어쩌라고.

    그렇게 구르다 얻은 힘인데 이정도가 당연한거지. 세상은 불공평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공평하기도 하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신다. 형은 홍차파지만 나는 커피파. 형제라도 취향은 다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뒤 결과가 나왔는지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와서 나에게 이야기 해준다.

    "에..... 류한씨는 테스트 결과 총 등급 최소 SS+급 으로 측정되셨습니다"

    "SS급이면 어느정돈데?"

    "전 세계에 S급 적합자는 1만명대쯤 됩니다. A급은 10만. B급은 30만. C급은 100만. 이렇게 됩니다"

    "SS급은 한명도 없어?"

    "네, 류한씨는 세계 최초의 SS급 적합자분이세요. 축하드립니다"

    더 힘을 줄여놓을껄 그랬나. 아니 차라리 날파리가 꼬일지언정 강한 힘을 보이는쪽이 더 편하다. 어느쪽이던 날파리가 꼬인다면 좀 걸러져서 귀찮은 수준의 날파리가 오는게 나으니까.

    그럼 그 이하는 뭐냐고? 뭐긴 뭐야 파리도 아니고 그냥 개미 수준이지. 모르고 있으면 지나가다 밟는 수준.

    "저기, 그리고 ADC 세포학 연구소에서 레드윙의 세포 데이터에 대한 거래를 원한다고 합니다만......."

    "냅둬. 찾아오지도 않고 걸러서 부탁하는 녀석의 의견은 들어둘 생각 없어"

    하찮게 여긴다는 증거니까.

    엿이나 먹으라지.

    아무리 대우를 잘 안해주는 한국이라도 최소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어느정도 적당한 대우는 해주는것 같다. 그래봐야 한국이지만.

    다른 나라보다 대우가 꽝일 것이다. 다른 나라는 돈이다 뭐에 여러 혜택을 주겠는데 여기는 돈밖에 안주더라.

    그나마 내가 부탁해서 거처도 마련?

    지만 기분이 나쁘다.

    개새끼들, 역시 사람은 좋은 사람은 좋겠지만 쓰레기는 쓰레기다.

    도심 한가운데의 아파트. 그래도 수도권이다. 시간이 지나도 대체적인 지역의 명칭은 바뀌지 않는건지 경기도 광명시 쪽의 한 아파트가 내 거처로 주어졌다.

    근데 가구는 알아서 사라네. 젠장할.

    어차피 딱히 가지고 있는 가구는 다 수제고 짐도 그리 많지 않다.

    "으흠, 여기가 한국이라는 곳이구나. 중국과는 많이 다르네"

    "당연히 다르지. 중국보다는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난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진짜 발달이 되지 못한 나라가 아니고서야 각 나라마다 장단점은 있어"

    단점이 더 많은게 단점이기도 하지.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은.

    비록 차원과 시간대가 다르더라도 같은 나라는 나라다. 바뀌지 않는다. 어찌?

    던 같은 지구니까 분기점이 있더라도 거의 같으니 익숙한 느낌은 다르지 않다. 미묘하게 다른점은 신경쓰이지만 그래도.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건 편하네"

    "뭔데 그래?"

    "..... 여자한테 중요한거야. 딱히 관심 가질 필요는 없어"

    "자꾸 그러면 신경쓰이잖아? 뭔데 그래?"

    "읏.... 보, 보지마!!"

    루이넬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것 같아서 찾아보니까 그게 나왔다.

    그거 있잖아, 그거. 여자들이 한달에 한번 있는 마법의 날에 쓰는 그거. TV에서도 가끔 광고하는데 옆에 여자 있으면 민망해지는 그런쪽의 물건.

    직설적으로 내뱉자면 생리대다.

    ..... 그러고 보면 중간계나 마계에서는 생리대가 없던가. 수제라면 또 모를까 공장제는 아직 발달하지 못했으니까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루이넬은 그럼 평소에 어떻게 처리한거지?

    "마법으로"

    "마법은 역시 만능이네"

    그나저나 일단 한국에 들어왔고 돈도 있겠나 거처도 있으니 일단 밖으로 나가서 고대하던걸 먹어보자.

    "응? 된장찌게라던가 김치는 평소에도 가끔 먹었지 않아?"

    "한국에 맛있는 음식은 그것만 있는게 아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먹었을법한게 있지"

    "뭔데?"

    "치킨"

    집 근처에서 거리마다 하나씩은 꼭 있다는 치킨집. 아마 서양에서 닭 요리는 맛이 없다고들 했던것 같은데.

    치느님은 내가 믿는다면 믿을만한 유일한 종교다. 심슨도 그랬지. 누군 소고기를 안먹고 누군 돼지고기를 안먹지만 닭고기는 누구나 먹지 않느냐고.

    나도 어쩐지 치킨은 직접 잡아다 튀기는 것보다 가게에서 먹는편이 더 맛있겠더라. 맛 자체는 내쪽이 더 맛있어도 뭔가 다르던데.

    맥주가 빠져서 그런가?

    "응? 그런데 루이넬, 까마귀는 어디갔어?"

    "아마 아파트 옥상에 있지 않을까?"

    헐, 그게 만폐 아니야?

    한국에 정착한 후로 루이넬과 단 둘과의 시간을 보내고 여러가지 기타등등의 과정을 거쳐 옥상위에 까마귀 녀석이 살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음속을 넘는 속도로 날 수 있더라도 이 근처에서 녀석이 끼니를 채울만한 동물은 보기 힘들다. 그나마 불안정한 차원이 비틀려서 가끔 나오는 ADC 뿐이다. 그나마 제일 가까운 곳이라면 바다나 국경선 너머쯤일텐데 매일 왕복하기에는 녀석도 귀찮은 모양이다.

    그래서 고기를 사는데 식비가 꽤 든다. ADC의 고기도 구입할 수 있는 가게다 있다. 이녀석들도 어느정도 등급이 낮은 녀석들은 먹을수도 있다. 백마리, 천마리를 혼자 먹어도 적합자는 커녕 부적합자도 안되고 몸은 좋아지니 보약이나 몸보신 취급하는 가게처럼 팔기에 돈 들여서 사온다.

    빌어먹을 까마귀놈.

    하여튼 나는 괜찮은 아파트에서 루이넬이랑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딱 일주일만.

    "적합자 관리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잡상인 안받아"

    나는 느닷없이 방문한 남자가 한 말을 듣고 인터폰의 수화기를 껐다. 세상 참 좋아졌네, 예전에는 수화기로 하던데 요즘은 화질이 무슨 휴대폰 카메라 수준이야? 몇만 화소지 이거?

    아무리 세기말이 되어도 기술은 발달했다는 거구나.

    내가 인터폰을 끄자 쿵쿵거리면서 이제는 문을 두드린다.

    "이야기 할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류한씨! 그리고 이렇게 대하신다면 앞으로 불이익은 전부 본인이 부담하셔야 합니다!"

    슬슬 날파리가 꼬이기 시작하는것 같다.

    루이넬이 느긋하게 자다 일어나서 방에서 나왔다. 아마 시끄러워서 잠이 깬듯하다.

    "누구야? 잡상인?"

    "아니 더 나빠, 날파리"

    "귀찮게 ?

    네. 혹시 국가 관련쪽이야?"

    "아마 그럴껄? 적합자라는거 국가쪽에서 관리하는 모양이니까"

    "어느곳이나 권력을 가지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조직의 관계자는 귀찮은걸. 난 방에 들어가 있을께. 아침 드라마라는거 요즘 재미있더라"

    루이넬이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를 본다고 하니까 어쩐지 소름이 돋는다.

    그 막장의 결집체를 본다고? 확실히 재미쪽으로 본다면 막장이 막장인만큼 재미는 있다. 사람들도 나뉘는 비중을 보면 소설에서 개연성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완전히 막나가는 막장을 좋아하거나 하지 않은가.

    어쩐지 루이넬이 일리엘을 찾은 후에

    '가지지 못할바에야 부숴버리겠어!'

    하고 소리치는것만 같은 미래가 눈에 들어오는것 같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했다. 내가 기분이 안좋아서 그런지 인상이 별로다.

    "안녕하십니까. 적합자 관리 협회의 하진영이라고 합니다"

    "류한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무슨 볼일?"

    "적합자에 대한 여러가지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는데 전화로 하기엔 아닌것 같아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나는 먼저 자리를 권했다. 이런 녀석에게 커피도 아깝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인스턴트라도 끓여다가 주었다.

    근데 빌어먹을 요리사의 본성이여. 인스턴트 커피라도 미묘한 설탕과 커피의 양을 조절해 덜어서 물조차도 적당한 온도를 파악해 딱 맞는 물의 양을 부어서 인스턴트 커피조차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낸다.

    "우선 국가 소속 적합자가 되셨으니 그 의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무? 무슨 군대도 아니고 의무가 있어?"

    "기본적으로 적합자에게 주어지는 연봉이 나라에서 나오니 그만큼의 일은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협회에서 의뢰를 받아 얻는 돈은 세금도 붙지 않습니다"

    한달에 한번, 어느정도 실적이 있어야만 적합자 라이센스가 주어진다.

    각자의 등급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데. C급이라도 폰 클래스의 ADC 몇마리 정도만 잡아오면 된다고.

    "하지만 유래없는 SS등급의 류한씨는 이게 조금 복잡해져서..... S급의 적합자분도 비숍 클래스의 ADC를 잡아오신다면 약 석달간은 실적으로 인정해줍니다. 킹 클래스 만큼은 아니겠지만 비숍 클래스도 수는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나도 실적 올리려면 잡아와야 한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나이트 클래스의 ADC 한마리라면 한달 실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B급 적합자도 죽을힘을 다한다면 한마리쯤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니 SS급의 적합자 분이시면 간단히 잡으실 수 있으실겁니다"

    그건 괜찮은 소식이긴 한데. 그러면 까마귀를 넘기면 년 단위로 아무것도 안하고 쉴 수 있다는거지?

    좋은걸?

    "그리고 다음 문제입니다만...... 현재 이 아파트 옥상에서 사육중이신 레드윙의 소재 관련입니다"

    "그 까마귀? 뭐가 어때서?"

    "...... 명색의 킹 클래스의 ADC입니다. 게다가 한반도에 있는 유일한 킹 클래스이기도 하죠. 거기에 더불어서 사람의 말을 듣는 ADC라면 더더욱. 아직까지도 ADC의 길들이기는 연구중인 문제입니다"

    우린 길들인게 아니라 저 까마귀가 멋대로 따라온거다.

    사실은 다르지만 그렇게 인식하고 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하는것도 복잡하지 않고 괜찮겠지.

    "본래 포획 및 사냥한 ADC는 국가로 귀속됩니다만....."

    "귤이나 까라 그러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까마귀 녀석은 길들인게 아니라 그냥 멋대로 우릴 따라온거야. 확 지 혼자 놀라고 풀어줘버린다?"

    "킹 클래스라고 한들 못잡을것 같습니까?"

    "대신 적합자라는거 싸그리 절반쯤이 뒈져나가겠지. 내가 SS급이면 S급 녀석들 실력도 알만하다"

    인력은 언제고 중요하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한들 인구수가 적다면 밥도 죽도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에서 인구수 늘리는게 기본이잖아.

    하물며 일꾼도 아니고 저그쪽이라면 울트라리스크, 테란이라면 시즈탱크 정도인 적합자를 그냥 날리려고 하진 않겠지. 아, 왜 프로토스가 없냐고? 난 저그랑 테란만 쓰거든.

    일단 S급 능력자가 얼마쯤 있던 이 한국 내에 있는 녀석들은 아무리 많아야 몇백명 수준. 그나마 백자리 단위는 1아니면 2정도 쯤 될거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인구수가 많은 한국이라고 했을 경우다.

    땅이 좁아서 덕분에 뭉치는데에는 편하기에, 그리고 그 이점으로 다른 나라보다 인구수는 예전에 비해 보존했을 것이다. 현재로서 면적당 인구수를 보자면 한국이 가장 많을거다.

    "난 딱히 다시 국경선 너머로 이주해도 상관 없어. 어차피 들어오는것도 안사람이 한번 와보고 싶어서 그런것 뿐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날 사람의 기준으로 측정하려고 하지마. 허튼 수작 부린다면 그대로 청와대로 쳐들어가주마"

    "하, 하지만 청와대에는 S급 적합자가......"

    "S급이랑 SS급. 둘중 어느놈이 더 쌜것 같냐? S급이란 놈들이 한군데 몰려있데?"

    몰려있어봐야 한순간에 박멸이겠지만.

    빙염의 창 특대 하나로 청와대는 가뿐하게 날아갈거다. 적합자도 다함께.

    "........... 그럼 레드윙의 소재지는 개인 연구용으로 두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연구소에서 협조가 들어온다면 응해주셔야 합니다"

    "누가 뭐래? 난 안말려, 돈 받을 생각도 없는데? 가끔 와서 지들이 먹이 좀 주고 깃털 좀 뽑아가도 신경 안쓸거야. 솔선수범하는데 내가 간섭할 이유는 없지. 처음부터 저 까마귀는 우리 소유도 아니고 그냥 정들어서 데리고 있는것 뿐인데"

    "그렇습니까?!"

    ADC의 세포는 아직도 연구 대상이라는데 그중에서도 킹 클래스의 ADC라면 누구나 연구하고 싶어할테니까, 마음껏 연구하라는데 좋으면 좋았지 나쁠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뒷말은 삼켰다. 괜히 분위기 망칠것 같아서.

    그 까마귀가 지 싫다고 날뛰면 끝이지 뭐.

    ============================ 작품 후기 ============================

    슬슬 나갔다가 빨리 끝내야지.

    이 속도면 대충 내일이나 낼모레 중으로 끝장을 볼 수 있을것만 같군.

    작가는 3시간 후에 돌아온다.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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