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468 회
< --일상-- >
레이지랑 레이트는 돌아갔다. 인상 더럽게 생긴, 그리고 레이지가 크면 딱 저렇게 생겼을까 싶은 녀석이 와서 데려갔다.
성격은 엿같아 보이는데 강해보이더라. 형이 말하길 그것도 전성기에 비하면 약하다고 하는데.
아무튼 성에 남은건 기껏해야 시엔느나 레이드다.
"아빠, 심심해"
"레이드 병 수발이나 좀 들어주지 그러니?"
"그래도 심심해"
레이드 녀석, 지금쯤 쓸쓸하게 병상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거다. 아무리 회복을 빠르게 해도 최소 일주일은 있어야 하는 중상이니까.
설마
'나 똥?
다고오!'
같은 대사를 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마치 손톱이라도 회전시켜 쏴서 날릴것 같은 캐릭터가 될것 같은걸.
아무튼 우리 시엔느가 심심하다고 한다.
무언가 이 지루함을 달래줄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시엔느가 무언가를 뒤적뒤적 거리면서 품속에서 통을 하나 꺼냈다.
무슨 통이야 저거?
사주팔자 볼때나 쓸법한 각이진 통이다. 그 안에는 다각다각거리면서 나무로 만든 작대기 같은게 들어있다.
아무리 봐도 용도를 모르겠는데.
"이거, 마룡왕 언니 방에서 찾았어"
"뭐에다 쓰는건데?"
시엔느가 퐁! 하고 뚜껑을 열었다.
바깥에서 안쪽이 보이도록 투명한 재질로 뚜껑을 만들어놨는데, 그걸 분리하니까 통과 작대기들만 남는다.
어, 잠깐만. 어쩐지 갑자기 저 물건의 용도가 생각나기 시작한다.
"그럼 대마왕 게임 하자!"
보통은 왕게임이라고 하지 않나 그거.
자꾸 이상한 일로 마왕들을 소집하는건 꽤나 대마왕으로서 실격이라고 하겠지만.
핑계가 있다. 시엔느가 '심심해'라는 안건을 올렸고. 내가 대마왕이자 아빠로서 승인했다.
이게 바로 마왕과 대마왕이 둘이서 짜고 시작하는 불합리함이지.
"...... 그래서 고작 하자는게 대마왕 게임?"
"보통은 왕 게임이라고 하는데"
"마계에선 별로 안하는 게임인데. 기껏해야 정당한 이유로 숙청할때나 쓰는거지"
"아니, 뭘 하길래 숙청씩이나?!"
이게 그렇게 무게감 있는 게임이였나?
보통은 여행지나 술을 마시고 하는 분위기 띄우기용의 놀이의 일종이다.
왕의 제비를 뽑은 사람의 명령을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 기본적으로 제비에 번호가 매겨져 있으니까 그걸로 랜덤 명령을 내린다.
아무튼 그런 형식의 게임...... 이긴 한데 마계에선 다른 모양이다.
"대마왕의 제비를 뽑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지. 하지만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있어. 다만 그 경우 그 사람은 다음 대마왕 제비를 뽑아도 다시 뽑게 되지"
"뭐, 번호가 써져있다 그런건 아니고?"
"번호? 번호가 왜 필요한데?"
내가 알고 있던 룰을 루이넬에게 이야기 해준다.
루이넬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한다.
"음, 그것도 괜찮은 규칙인걸. 조금 추가해서 해볼까?"
"기왕 할꺼면 누가 누군지 모르고 하는게 훨씬 재미있을것 같군"
마룡왕이 수긍하고, 다른 녀석들도 수긍하는 눈치.
기왕 할거면 그냥 순순히 포기하고 즐기자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게 숙청용 게임이야?
"응? 아아, 한번 명령을 거부하면 다음 명령은 반드시 해야하거든. 설령 그게 자살이라도 말이지"
"으아아아아아, 무슨 게임이 그렇게 살벌해?"
하기야 생각해보면 무력적으로 강한 사람에게 왕의 제비를 뽑는건 손쉬운 일.
누구 하나를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죽일 수 있는 것이겠지.
"자, 전부 9명이니까 대마왕 제비를 빼고는 8개에 숫자를 새겼어. 다들 자기 번호를 모른채 명령을 내리는것도 재미있겠지"
나는 한발 물러나본다. 내 능력이라면 첫판부터 제비를 뽑을 수 있으니까.
"그럼 엇나가면 죽는 대마왕게임. 시작!"
멘트가 흉흉해!
다들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아니, 이놈들아 게임은 즐기라고 있는거지 자꾸 그럴래.
통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내용물을 섞는다. 그리고 각자의 패를 뽑아 자신의 숫자나 혹은 대마왕인지 확인한다.
참고로 내 패는 3이 나왔다.
다른 녀석들은 다들 자기 패를 가리고 숨긴다. 대마왕, 대마왕으 누구냐.
"와! 대마왕이다!"
"...... 이런 세상에"
첫판부터 시엔느가 나왔다. 큰일인데.
어떤 명령이 나올지 모른다. 어린애의 성정상 하늘의 별을 따달라느니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도 나올지 모른다.
나라면 따올 수 있지만. 그런데 별은 더럽게 크잖아..... 가져오면 어떻게될지는 모르지만 행성에 악영향이 끼친다.
저 위에 달만 하더라도 없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면, 인력 때문에 밀물 썰물에 이상이 생겨서 생태계가 무너진다. 여튼 그만큼 시엔느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뜻.
"그럼 2번이랑 7번이 뽀뽀!"
"시엔느으으으! 그런건 진짜 술자리에서 하는거라고! 거기에 수준이 저질이야!"
"응? 왜 저질이야 아빠?"
그렇게 물어오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보통은 장기자랑이나 그런거나 시키겠지. 아니면 술 퍼마시기 같은거나.
그런데 여긴 술판이 아니니까 그런게 나올수가 없다.
"아무튼 2번이랑 7번 누구냐?"
"아, 일단 2번은 저요"
루카크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로르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 젠장. 이거 잠깐만.
미국에서는 키스는 그냥 인사라고, 마계에서도 그냥 뽀뽀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줄수 있다. 여자랑 여자라고 해도 미관상은 괜찮고 그냥 인사치례로 보이니까 괜찮다.
그런데 남자랑 남자라면 문제가 된다.
고정관념과 여러가지의 차이가 되려나. 나도 선입견 같은건 별로 안가지자는 주의긴 한데 남자랑 남자가 뽀뽀하면 꼭 동성애자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루카크랑 로르덴이라.
다른건 몰라도 루카크의 외형은 지금 시엔느보다 약간 클뿐인 소녀스런 외형이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남자아이일리 없어!'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스러워서 이상한 취향의 남성들에게는 인기 있을 법한 그런 모습.
"괜찮아, 문제 없어"
"짧게 말해서 문제 많아아아아!!"
"일본어 발음으론 다이죠부, 몬다이나이"
"일본어는 또 뭐야!"
루카크가 쑥쓰러운지 얼굴을 붉힌다.
남자애인데 얼굴에 홍조가 든데다 원래 여성스러워서 딱 그 나이대의 소녀가 수줍어하는것 같다.
"저, 저는 괜찮아요"
"으어어어어어어!"
결국은 했다. 아주 살짝, 겨우 루카크가 로르덴의 볼에 입술을 대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범위 내라서 통과.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시작한다.
이번에 내가 걸린건 숫자 5다.
"우! 이번엔 내가 대마왕이다!"
"큰일이다!"
여러가지로 큰일이다. 카르덴이라면 결과는 정해진거니까.
분명 나를 노릴꺼다. 하지만 아무리 카르덴이라도 마왕들이 재각각 빠르게 숨긴 패의 숫자를 알 수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확률은 8분의 1이다.
기묘하게 웃으며 카르덴이 나를 노려본다.
내 번호를 투시라도 해서 보려는것 처럼.
"우우우우....... 확률은 겨우 8분의 1...... 그렇다면 운명에 건다! 1번이랑 왕이랑 아이만들기!"
"어, 아니네"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지. 이중에서 1번 누구냐.
라시드? 로르덴? 루카크? 듀랜달?
마왕중에 남자인 녀석들은 전부 봤지만 아닌 눈치다.
어, 젠장. 제기랄. 설마.......
"...... 내가 1번이야"
"우?"
"루이네에에에에엘!!!"
이건 이거대로 아니다. 아까는 남자대 남자로 기껏해야 뽀뽀 수준이였는데 이제는 생물학적상으로 불가능하다.
여자랑 여자가 아이 만들기라고?
나랑도 아직 안했는데 무슨.
"우우!! 명령 취소오오오!!!"
"한번 내린 명령은 철회가 불가능하지. 한번 말한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까. 그게 이 게임의 규칙이다"
"요상한데서 리얼리티가 넘쳐나는데"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
루이넬이 거절하는것.
이건 진짜 불가항력적인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루이넬은 다음에 대마왕의 제비를 뽑아도 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된다.
아무튼 다음으로 넘어가는 차례. 별거 한거 없는데도 벌써 3회전이다.
"........ 이번엔 내 차례로군"
"마룡왕 너도 만만치 않은 다크 호스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깜짝 상자와 같다고 할까? 마룡왕도 성격이 그러니까 정해진 명령이 나올만한 건수가 없어서 어떻게 예측할 수가 없다.
음흉하게 웃던 마룡왕은 무언가를 생각해냈는지 명령을 내린다.
"8번이 4번의 허벅지를 핥아라"
".......... 야"
내가 8번이다.
그런 4번은?
"시엔느가 4번이야!"
아, 이건 무리다.
히익, 페도필리아.
"2번이 웃통 까고 물구나무서서 성 한바퀴 돌아와"
"8번은 다음 차례가 올 때 까지 내 의자가 되라"
"5번은 나가서 손 쓰지 말고 입에 생선 물어와"
"에라 나도 모르겠다. 3번은 인간이 못하는게 해봐"
여차저차해서.
라시드가 웃통을 벗고 물구나무 서서 다크 로드 캐슬을 한바퀴 돌고 오고.
카르덴이 마룡왕의 의지가 되고.
루카크가 나가서 청새치를 물고 왔으며.
듀랜달이 목을 등 뒤로 돌리는 관절상 안되는 기행을 보여줬다.
이놈들이.
이제는 아예 재미를 넘어서서 감정 싸움 수준이 되가고 있다. 큰일이다.
서로 헉헉 거리면서 묘한 적의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루카크는 가져온 청새치를 우적우적거리면서 화를 삭힌다.
큰일이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어.
이러다간 누구랑 누가 죽일 기세로 싸우라고 명령할지도 몰라.
아무튼 여태까지 대마왕으로 안뽑힌 사람은 루이넬과 루카크 정도다.
"어, 이번에도 또 내가 대마왕이다"
"대마왕이 대마왕이라니"
"말장난 하지마. 그거 재미없어"
그러니 이번엔 뭘 할까.
나도 모르겠다, 그냥 나도 막해야지.
"남자 녀석들은 자기가 쪽팔렸던 경험 한가지씩 말해봐"
"....... 사악한 녀석"
불만 있으면 네가 대마왕 제비 뽑아보던가 듀랜달.
아무튼 이것도 재미있는 소재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쪽팔릴 때가 있으니까.
"일단 저부터입니까?"
라시드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첫번째는 무난한 사람으로 해야 스타트 끊는게 좋으니까
"......... 저는 예전부터 잘 때 침대 한가운데에 웅크려서 잠을 잡니다"
"어, 고양이들이 몸 웅크리는것 같이?"
"네, 마치 습관처럼 그렇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큰 침대 한가운데에 몸을 웅크리고 느긋하게 자는 라시드가 떠올랐다.
다들 풋, 하고 웃음보가 터졌다.
그 라시드가 귀엽게 고양이처럼 잔다니. 안맞는것도 유분수가 있지.
"자, 다음 타자는 로르덴"
"......... 난 꽤 오랬동안 오줌 못가렸던 적이 있어"
"몇살까지?"
"......20살"
아니, 그거 인간 시점이나 마족 시점이나 여러뭐로 웃기잖아.
마족의 성장은 인간과 비슷하다. 다만 젊을때가 길 뿐.
설마 아기일때가 수십년일려고. 아기인 시기는 짧다가 성장해서 성인이 되면 이후에 청년기와 중년기가 길 뿐이다.
그래도 인간보단 아기일 때의 시기가 약간을 길테니까. 대충 20살 때 까지가 인간으로서는 십대 중반?
그때까지 소변을 못가렸다는건 상당히 부끄러운 소리지.
다시 한번 웃음보가 터져서 회의장이 개판이 된다.
"다음은 루카크"
"........ 에, 저기 전 피망을 못먹어요"
"애같은 주제에 진짜 애같이 편식이냐? 시엔느도 반찬은 안가리고 잘 먹는데?"
이런 짱구같은 녀석.
"다음은 듀랜달"
"....... 예전에, 고위 마족들이 모인 공석상에서, 쓴 투구룰 벗다가 머리카락이 꽤 많이 끼어서....... 그것도 모르고 확 벗었다가 앞머리가 숭덩 빠져서 비명을 질렀었지"
누구나 한번쯤 비오는날 우산을 썼다가 우산 살에 머리카락이 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 낀건 뺄수 없기에 뽑아야 하지.
한두가닥이면 어떻게든 참아보겠는데 그게 숭덩 빠진다면.
그 고통을 예상치 못했다면 아무리 듀랜달이라도 비명을 지를 수밖에.
문든 듀랜달이 '끄악'하고 형편없게 비명 지르는 상상이 지나갔다.
다시한번 웃음보가 터졌다.
쪽팔림에 얼굴이 붉어진 4명이 씩씩 거리면서 화를 삭히는게 보인다.
"다시 돌려, 이번엔 널 굴려줄테다"
"대마왕 제비나 뽑고 말해"
그리고 대마왕 게임은 그날 저녁까지 지속?
고.
게임주제에 마왕들과 대마왕의 마음에 깊은 스크레치를 남겼다.
"그래도 재미있었어!"
우리 딸이 재미있었다면 그걸로 괜찮지만.
============================ 작품 후기 ============================
다음 화 부터 본격적인 마신 파트 돌입.
빨랑 빨랑 진행시키자. 빨리 소설 하나 끝내야 편할것 같음.
지금 쓰는 소설중에서 빡시게 쓰면 완결 낼 수 있는게 다크니스 로드랑 레이지 스트라이크. 끝낼 수 있는건 빨리 끝내야지.
예전에 소설 한두개 쓸때만 못하는 현실.
이제 진짜 완결까지 얼마 안남았네요. 이거 완결 내면 당분간은 다른거 연재에 집중해야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