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468 회
< --천계-- >
고작해야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
분노한 팬텀과 그를 따르는 마족들은 천계의 수도, 트라이븐 앞에 진형을 치고 대기중이다.
마음 같아서 팬텀은 단숨에 쳐들어가 천왕의 목을 따고 싶지만 지금의 그로선 무리다.
침식률이 45퍼센트. 아니 이제는 47퍼센트에 다다라서 겨우 여유분은 3퍼센트 정도.
로드의 힘을 쓰지 못하고 절반 이상 먹힌 정신 세계에 겨우 3퍼센트만, 그리고 그중에서도 힘을 제대로 쓴다면 침식률은 더 빨라지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 가능한 의지는 기껏해야 1퍼센트 안팍.
간신히 마왕의 힘 정도나마 사용할 수 있다.
육체마저도 슬슬 약해지고 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을 공격에마저 생채기가 생긴다.
물론 그정도야 재생력으로 회복이 되기에 다른 마왕들이나 마족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팬텀은 그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신성력에도 버거운 느낌이 드는 것을 체감한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다지만 이전처럼 절대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력으로 보호하면 완전히 신성력이 차단되고 강대한 의지로 보호받기 때문에 견고한 마력의 벽에는 신성력도 상쇄하기가 힘들어서 마왕들보다 수월하게 천계에서 버틸 수 있다.
조금 귀찮다 뿐이지 천계에서 영원히 체류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집중해서 벽을 쳐야 할정도.
팬텀은 그런걸 걱정하지 않았다.
일리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는게 더 걱정될 뿐.
"오, 생각보다 성이 좋은데. 여태까지 대충 지어논 목책 비슷한건 봤는데 성은 본적이 없어서 천계엔 성이 없나 생각했는데 딱 하나 있는것 같은데?"
"심미적으로 볼때는 상당히 뛰어납니다. 마족과 달리 천족은 예술성을 중시하는것 같군요"
"대리석이라도 깍아서 만든걸까요. 하얗네요"
"솔직한 감상으로는 예쁘지. 마계에서는 색이 검정색이라 칙칙하고. 많이 봐줘도 무섭다거나 웅장한 느낌이지 깨끗한 느낌이 안드니까"
"아니, 그러려고 검은색으로 성을 짓는거 아니였어?"
"다크 로드 캐슬이 검정색이라 다른 마왕들도 검은색으로 리모델링 했거든. 유일하게 다른게 있다면 파리틴의 마왕성 정도일껄?"
"거긴 애초에 양식이 다르잖아. 타지마할같이 생겼는데 뭐"
"아빠, 타지마할이 뭐야?"
천족의 성은 솔직한 감상으로 말해서, 마족의 심미성으로 보더라도 아름답다.
아무리 예술성을 중시했다곤 하지만 성은 성. 마계의 성보다는 공략하기 쉬울것 같아도 상대가 신성력을 쓰는 천족이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다.
성이 약한 만큼 상대가 쓰는 힘에 의해 공성전은 약해진다.
"성동격서다. 어디서 주워 들은거지만 성벽쪽으로 병력이 집중된 틈을 타서 소수 정예로 잠입. 그리고 일리엘을 구출한다. 지금도 일리엘이 무사하다는것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남은건 들어가는 것 뿐"
"...... 야, 이녀석 진짜 괜찮은거 맞냐? 평소에 병법은 커녕 책한권 읽는거 본적이 없던 녀석이 왜 이렇게 갑자기 똑똑해졌어?"
"똑똑해진게 아니라 그냥 머리가 좀 빨리 돌아가게 된것 뿐이야"
"큰일이군, 안그래도 괴물같은 녀석이 머리까지 좋아졌어"
"어차피 지금 상황에 이득은 없어"
절박함에 몰린 만큼 팬텀의 머리를 빠르게 돌아간다. 평소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그의 머리가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끌어내서 쓰는 중이다.
다만 루이넬은 그걸 조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때는 그냥 저돌적으로 돌파했으면서"
"아니, 그때는 진짜 그것밖에 없었잖아. 그때 내가 군대가 있었어, 네가 납치를 당했어? 무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그런것 뿐이지, 그리고 지금도 일리엘 구하는건 무력 쓰잖아?"
"어쭈, 언변도 늘었어?"
루이넬의 톡 쏘아붙이는 말에 팬텀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당황했다.
공처가이자 애처가인건 다급해져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예의 차릴 필요 없지. 준비가 되는대로 돌격해 들어간다"
그리고 최종 목적.
"일리엘을 탈환한다"
천왕은 성의 중심에서 저 멀리 진형을 짜고 있는 마족들을 보며 웃었다.
느껴지는 기척이 여럿. 그중에서 뛰어난 기척이 대략 열댓.
그중에서도 또 뛰어난 자를 꼽자면 아홉 정도다.
천왕 라즈키엘은 마계의 실력자가 대부분 왔을 거라고 추측했고 그 추측은 적중했다.
하지만 일리엘이, 대마왕의 반려인 일리엘이 자신의 수중에 있으니 주도권은 이쪽에 있다.
인질이란 묘한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란 것으로 협박하여 상대를 겁박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죽는다면 그냥 끝이다, 오히려 분노한 상대에게 잔혹하게 죽임 당할 뿐.
하지만 아직 살아있고 가치가 있는 인질은 훌륭한 거래 대상이 된다.
같은 지배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잡고 있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어째서....... 간신히 진정되고 있는 천계에, 이런 짓을 해서 많은 희생을 낳게 만드는건가요? 천왕이라면 천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지 않나요?"
"그래, 물론 그렇지. 나도 죽는 천족들의 희생이 가슴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희생을 막기 위해서 병력을 수도로 집결한 것이지"
사실 압도적인 병력 차이에서 오는 전쟁에서 분산된 병사들은 쓸데없을 뿐이다.
각개격파 당하면서 전체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하지만 한군데 모여있다면 한번에 쓸려나갈 위험성도 있지만 반대로 조금이나마 이길 수 있을 확률도 올라간다.
마족의 군대가 몰려온것으로 보아 대마왕은 일리엘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번 대마왕은 약한 모양이군"
"그럴리가 없어요"
"설마? 이전의 대마왕보다는 약하지. 만약에 그가 전 대마왕의 반만이라도 강했다면 군대를 몰고와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팬텀의 무력은 기껏해야 마왕급. 그래서 군대를 몰고와 천계를 공격중이다.
만약 최소한 일리엘의 납치 사실을 알고 분노하기 전의 무력만 있었어도 단신으로 일리엘을 구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정도 무력만 하더라도 일방적인 학살을 할 수 있을테니까. 감각은 물론이고 '변환'의 능력까지도 마음껏 써가면서 구출 할 수 있을테니까.
절대적인 무력이 없고, 우세를 취할 수 있는 패가 있다면 승리하는건 천왕이다.
"전 대마왕은....... 괴물이였다"
일루전 로드에서 떨어졌다지만 로드.
그 무력은 마신의 이름을 지우고 마계 전체를 세뇌시켰다.
천왕은 아직도 그날의 일을 생각해보면 악몽처럼 되살아나 그를 괴롭힌다.
차라리 그때 죽었다면 새 천왕이 태어나 천계를 다스렸을 것이다.
'대마왕입니다아, 만나서 반가워 천왕씨'
웃으면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걸어들어온 대마왕.
그 전에 이미 천계의 국토 20퍼센트가 날아간 뒤였다.
이후 덤벼든 천족들은 전부 참살되고 목숨이 날아갔다.
마치 장난감처럼.
어린아이에게서 끔찍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모른다는 것이다. 오로지 흥미와 재미를 위해서 행할 뿐.
개미를 밟아 죽여도 생물에 대한 살생의 죄책감 보다는 통쾌함과 재미를 느낀다.
순수함 덕분에 잔혹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마치 일루전 로드가 그랬다.
"태어난 이후로 나를 보좌해준 천족들이! 형제와 같던 자들이 내 앞에서 죽었다!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학살당했다........ 차라리 그때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대마왕은 나를 살려주고 상처를 입은 천계를 두고 떠났다! 아직도 그때만 떠올리면 비명을 지르는 천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단 말이다!"
일리엘은 천왕의 오열을 들으며 생각했다.
천족과 마족의 골은 대마왕으로 인해 건너지 못할 곳을 건너버렸다.
일루전 로드의 단신 침공 이후 태어난 일리엘이나 다른 천족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세대에서 살아남은 천족들에게 대마왕이란 이름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대마왕이란 이름을 가진 자는 제어되어야만 한다. 강대한 무력은 둘째 치더라도 저렇게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이 된다"
"팬텀님은 그런 성격이 아니예요. 시간이 지나면 천계와의 교류도 생각하고 있으셨어요"
"교류? 교류 좋지. 역대 천왕은 물론 나조차 생각하지 않았을것 같나?"
"...... 네?"
천왕과 역대 천왕이 마계왕의 교류를 생각했다고?
"이전의 천왕들은, 마계의 다수의 마왕들이 지배하는 체계 때문에 분란에 휩싸일까 걱정되어 함부로 나서지 못했지. 애초에 천왕들에게 주어지는 기본적인 지식은 지극히 객관적인 지식들이다. 마족에 대해서는 '천족의 적이자 적대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계에 살며 마력이라는 신성력과 상충되는 힘을 가진 주민'이라는 형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만약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마족에 대해서는 같이 생각을 하고 사는 세계만 다를 뿐인 존재로서 서로 교류하고 존중할 존재로 생각할 것이다.
천왕이 그렇다면 이후 천계와 마계도 이어질 수 있다.
"대마왕은 그런 생각을 배신하고 짖밟았다! 이야기도, 협상도, 회유도 통하지 않는 괴물처럼 잔혹하게 학살을 자행했지. 그날 이후, 나는 마족과 교류할 생각을 버렸다!"
그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천왕이 격은 공포와 절망, 그리고 증오는 아무리 일리엘이라 하더라도 감당해낼 수 없는 영역이다.
"너를 기회로 삼아 대마왕을 부릴 것이다. 다시는 이전의 참사가 나오지 않도록. 더 이상 천족들이 죽어나가는건 내가 용납하지 않을테니까"
"슬슬 시작해볼까"
팬텀에 레기온을 들었다.
약해졌다지만 아직은 마왕. 저 멀리 중앙의 성에 일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까지 별다른 외상이나 특이한점이 없는걸로 보아 어느정도 대접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그 옆의 짙은 금발의 미청년. 등에는 네쌍의 깃털의 날개가 달려있는 남자도 보였다.
하급은 한쌍, 중급은 두쌍, 그리고 상급은 세쌍. 하지만 그 이상의 날개를 가진건 단 한존재 밖에 없다.
천왕. 네쌍의 날개는 오로지 그만의 상징이다.
"너구나, 이 빌어처먹을 자식. 일리엘을 납치했지만 잘 대해준건 고마운데. 그러니 사지를 찢는 중에 팔 한짝은 봐주마"
일단 최소한 사지분할은 확정되어 있던 중이였다.
참고 있지만 팬텀의 분노는 식을 줄 모른다.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느니 차라리 천왕을 죽이는 쪽이 훨씬 더 빠르다.
분노할 대상에게 분노를 푼다면 그의 분노가 사라질테니까.
팬텀에게 지금 끌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연륜이 없다.
감정을 절제하고 스스로 제어할 경험이 적은 것이다. 그냥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방출해낼 뿐, 때를 모른다.
감정대로 행하는것은 솔직해서 좋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말해서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날아서 들어간다. 성동격서에 성동격서. 각각 다른 방향에서 알아서 쳐들어가서 병력을 분산시키고. 혹시나 위험하거든 재빨리 물러나"
"어차피 무력적으로 마왕급인 녀석은....... 천왕 한명 뿐이군. 그 이하로 가는 녀석은 상당히 많지만"
"천족은 나이에 따라서 알아서 성장하기에 그렇습니다. 천왕이란 특이한 자를 제외한다면 나이에 따라 성장할 뿐이니까요"
"시간만 있다면 상급도 가뿐히 닿을 수 있다는건가. 어쩐지 불공평한 종족인데"
"그만큼 나쁜것도 많아"
동족끼린 임신도 안되지, 반대로 말해서 나이가 안된 천족들은 대우받기 힘들지.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많은 종족이다. 하지만 나이만 먹으면 재능이 없는 마족들은 강해질 수 없는 영역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메리트다.
"잡생각은 가만히 두고........ 성 중앙에서 일리엘을 발견했어. 혹시 여유 있는 녀석들은 중앙으로 오고, 혹시 무언가 섬뜩한게 느껴지면 그대로 튀어"
"...... 무슨 일이 있는지도 알려주지도 않고. 이제 나도 몰라! 흥!"
루이넬이 삐졌다. 예전에 삐진걸 겨우 돌려놨는데 또 삐졌다.
나중에 한동안 고생할듯 싶다.
"부탁할께. 일리엘을 구하고 싶어. 결혼식도 못올렸는데 이런일 격게 하고 싶진 않아"
"하기야 동정 대마왕인데"
"하하, 넌 나중에 죽었다 로르덴"
"사실을 말하는 마왕의 간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대마왕은 속이 좁구나!"
"그건 간언이 아니라 그냥 시비지"
전투 전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감을 풀었다.
다른 마왕들은 모르나 팬텀은 약간이지만 긴장했다.
일리엘의 모습을 보자 조급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팬텀이랑 같이 가겠어"
"어? 아니, 잠깐만. 따로 가자고 했잖아"
"물론 따로 갈꺼야. 중간에 상대하는 녀석들을 내가 대신 상대하고 팬텀이 먼저 가면 되잖아? 그때 까지만 동행하는거라고"
"........ 어쩐지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
하고 말하는 주인공 동료가 생각하는데"
"생각만 날 뿐이지, '느낌'은 아니지?"
"응"
약해진 팬텀의 감각으로도 루이넬의 안전은 알 수 있다.
마왕급의 감각은 예전에도 그녀의 위험을 알아챘으니까.
다만 감각이 경종을 울리는건 일리엘 쪽이다.
최대한 빠르게 일리엘을 구출하는게 목표.
"하늘에 더럽게 많은걸. 저거, 어떻게 하게?"
"별거 아니고 큰거 한방이야"
하늘에는 빼곡히 천족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노려보고 있다.
저것을 돌파하려면 상당히 귀찮아지고 시간이 걸리는건 당연한 일. 그렇다면 해치우고 구멍을 만들어 돌파한다.
팬텀은 레기온을 들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능력 사용에 지장이 생겨 무한이라 할 수 있는 마력은 아니지만 마왕의 하트를 유래가 없을 정도로 먹은 팬텀의 마력의 최대치는 이미 다른 마왕들을 합쳐도 따라올 수 없다.
레기온에서 뿜어지는 대량의 마력들은 유형화되면서 강기로 뭉쳐진다. 검은색의 거대한 강기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솟아 올랐다.
그대로 가뿐하게 휘두른다. 이제 힘을 아끼는건 그쪽이 오히려 낭비다. 힘을 쓸 수 있을 때 사용해서 나중에 못쓸때 후회하는 것 보다 좋기 때문이다.
일격에 천족들의 몸이 잘려나가며 여파에 의해 진형이 무너진다.
실력있는 천족들이나 강기가 닿지 않는 거리에 있는 천족들은 간신히 피했으나 압도적인 힘에 의해 전의를 잃는다.
그리고 구멍이 뚫렸다.
빽빽한 천족들 사이로 벽이 사라진듯 일부분에 길이 생겼다.
"비켜! 우리 일리엘 구출하러 간다!"
팬텀을 비롯해 8명의 마왕들이 돌격했다.
천족의 병력을 분산시킨다. 천왕은 무력적으로 강하지만 이런 전쟁중이라면 분명 친위대도 어느정도는 최전방에 나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포위되지 않게 8명의 마왕들이 각각으로 나누어져서 각각 병력을 소모시킨다.
일개 천족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하지만 그냥 두면 천왕에게 갈 수 있기 때문에 막을 수밖에 없을터.
정확히 말해서 마룡왕, 라시드, 카르덴, 로르덴, 루카크, 시엔느, 듀랜달. 이렇게 7명이 트라이븐 성 여러곳으로 분산되어 흩어진다.
루이넬은 팬텀과 함께 중앙의 내성으로 직행한다.
천계에서는 마계의 마법을 쓰지 못한다. 쓴다 하더라도 오로지 자신만의 마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그런 루이넬이 선택할 수 있는건 육체를 강화해 근접 전투를 벌이는 것.
그녀의 마력은 전부 육체 강화에 쏟아부워서 쓰고 있어 팬텀의 달리는 속도도 따라 잡고 있었다.
"........ 아니, 잠깐만. 내가 팬텀을 따라잡아?"
"왜 그래? 딱히 이상한건 아니잖아"
"충분히 이상하거든? 내가 팬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것 같아?"
엄밀하게 말해서 루이넬은 팬텀을 따라잡을 수 없다.
육체를 강화해도 전력으로 직선 코스로 달리는 속도가 팬텀이 싸울 때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속도랑 비슷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팬텀이 느려졌다는 소리다.
"나중에 이야기 들으면 바가지를 박박 긁어줄꺼야. 삐져서 그냥 무시해버릴꺼야. 당분간 각방 쓸거니까 각오해"
"그건 싫어!"
팬텀이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 전장 한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사이, 그들의 앞을 천족들이 가로 막는다. 지상으로 길을 돌파하는 상대를 막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지상에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하늘을 날던 천족들도 팬텀을 발견하고 일부 몰려들어 막기 위해 앞을 가로막는다.
다른 마왕들은 모르나 팬텀은 곧바로 중앙의 성으로 향하고 있다. 제 1순위로 막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방해하지...... 루이넬?"
"몸도 안좋은것 같은데. 힘을 아껴"
팬텀이 레기온을 휘두르려다 땅을 차고 먼저 나아가는 루이넬을 보았다.
그녀는 양손의 손톱에 마력을 불어넣고 강화시키고 가로막는 천족들의 허리를 일격에 양단시킨다.
내장이 흩뿌려지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될것 같지만 그 천족의 몸은 이내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다.
천족의 죽음은 시체가 남는것이 아니라 가루가 되어 흩날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딱히 장례식을 할 필요가 없다.
좋은점이라면 좋은 점이지만 죽은 사람을 떠올릴 무언가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슬픈 면모도 있다.
"팬텀 너는 천왕이랑 싸워야 할지도 몰라. 예전이라면 하나도 걱정 안할텐데 지금은 엄청 약해졌으니까 조금이라도 힘을 아껴야지. 만약 아까 전에 그걸 알았다면 차라리 우리들끼리 틈을 만들어줬을 꺼야"
"마누라랑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야"
"칭찬해도 바가지 긁히는건 변하지 않아!"
덤벼오는 천족의 어께를 힘차게 베어내면서 루이넬이 소리쳤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근접 전투 경험이 적다.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최적의 움직임으로 공격하거나 피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분명 수준이 떨어진다.
특히, 자세라던가.
팬텀은 다시 루이넬 앞으로 나섰다.
"양발은 어께 넓이로! 시선은 앞으로! 양손을 앞으로 뻗고 손목을 서로 맞붙이고 약간 허리를 숙여!"
"어? 이렇게?"
양손을 앞으로 내뻗은 두사람의 손은 마치 손가락이 이빨이라면 동물의 입과 같은 모습으로 뻗어져 있었다.
팬텀이 오래전에, 이제는 언제인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옛날에 만든 자세.
그때는 꽤나 잘 쓰였지만 이후로 강해져서 딱히 안써도 될 무력을 얻자 자주 쓰지 않은 형태다.
그의 싸움은 단순 무식. 형태를 가진 자세나 움직임보다는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쪽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약해졌기에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야하는 상태.
십지용왕(十指龍王).
후방은 모르지만 전방에서 오는 적은 완벽하게 대처 가능한 자세. 그리고 팬텀이 만든 형이 있는 몇 안되는 것들중 하나.
땅을 차고 두사람은 동시에 돌진. 정면에 있는 천족의 명치 부근에 손가락을 찔러넣고 양손을 벌려 몸을 찢어낸다.
어차피 팬텀이나 루이넬이나 재생력 때문에 금방 회복이 가능하니 후방은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양주먹을 허리에 붙이고!"
류한살식 쌍월 죽이기.
양 주먹을 동시에 내지른다.
보통 지르기란 허리의 비틈과 몸의 중심을 움직여서 무게를 담아 내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형식으로 주먹을 내지른다면 제대로 무게가 담기지 않아 위력은 줄어든다. 하지만 반대로 동시에 양손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방보다 약해도 여러방이 중요할 때. 소수가 다수를 상대할 때 사용하기 좋은 기술이다.
"우와, 엄청 좋은걸?"
"내가 옛날에 쓰던거니까, 아무튼 빨리 가자!"
대략적으로 성의 외곽은 전부 돌파했다. 남은건 내성 뿐.
하지만 그 내성은 천족중에도 정예가 대기해 지키고 있었다.
그래, 대마왕 일루전 로드가 이전에 천왕만 살린것이 아니다. 수도에서도 상당수가. 그리고 병사중에서도 생각 외로 많은 수가 살아남았었다.
당시 중급 천족이였던 천족만 해도 상급 천족은 가뿐히 될 시간.
거기에 분노와 증오로 얼룩진 동기만 있다면.
"거기까지다, 대마왕"
이때까지와는 다른. 필사의 각오로 천왕에게 가는것을 막겠다는 듯 백색의 갑옷을 입은 200명의 천족들이 길을 가로 막았다.
"너희들은 좀 다른것 같은데"
"물론이지. 오래전 참사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천족중에서도 강한 우리들이다. 천왕님을 지키기 위해 상급 천족 중에서도 최고로 강한 정예중의 정예지"
싸울 일이 없기 때문에 천족은 비교적 강하지 않다.
물론 인간 입장에서는 강하다. 소드 마스터는 커녕 그랜드 마스터가 와도 중급 천족 중에서 강한 자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같은 인간 이외의 입장에서는 경험도 적고 힘만 많을 뿐인 상대는 약하기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천족에게 목적 의식과 계기를 만들어주고 시간을 준다면?
천족중에서도 강한 정예가 탄생하게 된다.
"팬텀, 여긴 나한테 맡겨"
"........ 무슨 일 있으면 튀어. 다치지 말고"
"누가 할소린데?"
루이넬이 오히려 반문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화처럼 누가 상대해준다고 다른 사람을 고이 보내주지 않는다. 그저 기회를 만들어 줄 뿐.
"비켜"
팬텀은 단호하게 말하고 레기온을 앞세우고 돌진했다.
그의 전법은 단순 무식. 그저 앞을 가로 막는것은 무엇이 되었건 부수고 본다.
지극히 간단하지만 지극히 효과적이다.
땅을 차고 단번에 가속. 바람을 끌어들여 1초만에 제로백은 가뿐하게 돌파해 음속까지 치닿고 천족의 몸을 꿰뚫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레기온에 천족의 몸 3구가 틀어박히고, 그대로 죽어 가루가 되어 바스라진다.
정예조차 상대할 수 없는 마왕의 힘. 아직까진 팬텀에게 그정도의 힘은 남아 있다.
"큭! 보내줄 수 없다!"
"그건 오히려 내가 해줘야 할 말인걸?"
루이넬이 이번에는 반대로 천족들을 가로막았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참격이 휘날리고 그에 거리를 벌리며 천족들이 물러난다.
일대 다수. 루이넬이라도 근접 전투로 200여명이나 되는 정예 천족을 상대로 버티는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녀와 팬텀"
"일리엘을 구해서 다녀올께"
팬텀이 내성 안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용량이 많아지는건 슬슬 작가가 소설을 늘리기 싫다는겁니다.
아,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냥 수긍해 버리자.
나중에 회상씬 같은걸로 없던 기억도 만들어서 출현시키면 되겠지 뭐.
엉엉엉, 일리엘찡. 작가가 이래서 미안해.
아무튼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저도 크리스마스는 여친이랑 보내서 행복하네요.
어찌나 여친이랑 사이가 좋아보이던지. 동생이
'형, 기생수 봤어? 왜 오른손이랑 대화함?'
하고 말할 정도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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