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니스 로드-411화 (411/468)

411/468 회

< --혼돈-- >

어제 무슨 짓을 저지른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일이다, 아니 젠장할 요즘 들어서 '큰일이다'라는 말을 몇번이나 하는거야?

사람이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긴다는게 이런건가 싶다.

뚜렷한 정신, 내 몸이 아마 자고 일어나니까 간 기능이 활성화되서 알콜을 다 분해해서 숙취가 없는것 같다.

문제는 일리엘이 옷 한가지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나를 껴안고 자고 있다는거지.

그래, 여기까진 문제없다. 조금 코에 피가 쏠리는것 같긴 해도 한두번 있었던것 같으니까.

근데 나도 옷벗고 있다.

나도, 일리엘도, 성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마냥 태초의 모습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와 옷을 입고 조용히 의자에 걸터앉아 고뇌에 빠진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상념에 빠진다.

어제 내가 뭘한거지?

생각해봐, 난 어제 술 좀 퍼마시다가 취해서...... 그 다음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엄밀히 잘 살펴보자. 일을 치뤘나 안치뤘나가 중요하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분별력은 있었을거다. 성관계를 맺는건 아직 내 용기론 안되니까 안했겠지. 게다가 정사의 흔적도 없다.

아무렴, 내가 잠시 당황해서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직 일을 치르지 않았다.

근데 왜 일리엘이랑 내가 알몸으로 서로 비비적 거리면서 자고 있었던건데?

아무리 그래도 둘중 한사람은 옷을 입고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으으으, 진짜 내가 어제 뭘한겨.

루이넬에게 사과도 해야하고........ 숙취는 없는데 두통이 몰려온다.

"아...... 일어나셨어요 팬텀님?"

"저기 일리엘, 내가 어제 뭐 했어?"

"에, 그러니까. 술주정부리셨어요"

일리엘의 입에서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다행히고 그 이상의 일은 역시 안한 모양. 다행이다, 보통 남자들은 술취하고 옆에 여자가 있으면 덮치고 본다는데 나는 아닌것 같다.

"어떻게?"

"온몸에 토사물이 뭍고....... 그렇게 들어와서 기절하고, 그래서 제가 옆에서 부축해드려서......."

"몸이 그럭저럭 개운한데, 혹시 나 씻었어?"

"....... 네"

아니, 잠깐만. 술에 취해서 일리엘이 날 부축했다고 했잖아.

필름이 끊겼는데 그때 내가 내 스스로 몸을 제어할 수는 없었을거다.

그렇다는건.

난 어떻게 씻은거지?

"......... 제, 제가 씻겨드렸어요. 흐에엥!"

어제 기억이 안나는게 통한일 뿐이다. 제기랄.

정리를 하자면 내가 어제 토하고 지랄하고 들어온 뒤에 일리엘이 나를 끌어 들고 옷을 벗긴 다음에 씻긴 후에 침대에 안착.

내가 하도 개지랄을 떨어서 일리엘도 옷에 뭍은 물이나 토사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옷을 벗어야 했다고 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그냥 잔거니까 생략한다.

하, 제기랄. 루이넬에 이어서 이번엔 일리엘이야! 기분이 좋은데 안좋아! 미묘해!

일리엘이 내 몸을 씻겨준건 뭐라고 해야하나....... 솔직히 말해서 좋은 일이지만 내 몸의 이곳저곳을 봤다는 소리니까 어쩐지 부끄럽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일의 원인을 잊지 않았다! 루이넬에게 심한 말 한거!

아니,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바로바로 마음속에서 말이 나가버렸다. 생각 한번 거치지 않고 그냥 직설적으로.

우리 루이넬이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 아니, 부모님은 물론이고 혈연 조차 없는 애한테 친정 없다는 소릴 했어? 그냥 대놓고 패드립치지 그랬냐?"

"나도 반성하고 있어. 솔직한건 좋은건데 너무 솔직해서 생각이 바로 나가버렸거든"

"미친놈,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패드립에는 화나지. 네가 잘못했어"

형의 말에 나는 더욱 고심했다.

어떻게 하면 루이넬의 화를 풀 수 있을까?

"그건 일단 조금 나중에, 일리엘이랑 알콩달콩 있는다는걸 알면 루이넬이 더 화낼것 같아"

"뭐, 제수씨는 질투심이 좀 있으니까. 기본적인 여성과 같지. 그러고 보면 아직도 안했지?"

"뭘?"

"섹스"

아니, 이사람이 대놓고 이야기 하지마.

"뭐 어때서? 섹스란건 그냥 남녀간의 성교를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야, 성교나, 섹스나, 다 거기서 거기인 단어라고. 그리고 섹스 없었으면 너나 나나 태어나지도 못했어 얌마"

"그래도 말하는데 조금........"

"그저 부끄럽다는 감정, 그리고 그 부끄럽다는 감정도 사람들이 대놓고 할 수 없으니까 나오는 것일 뿐이야. 단어 자체에는 죄가 없지. 룬어같이 문자에 의미가 담겨있는것도 아니고 무슨 앙탈이냐"

"근데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데?"

"조금 섹드립같겠지만 비교적 흡혈귀는 대개 인간의 정(情)을 먹거든, 그게 피를 먹는걸로 발전했을 뿐이고 그게 편하기도 하니까. 대를 올라가면 서큐버스랑 인큐버스랑 같은 과가 흡혈귀야"

"아, 서큐버스나 인큐버스도 인간이랑 해서 살아가니까........"

"흡혈귀도 완전히 피 없이는 못살잖아?"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루이넬이랑 싸운거랑 지금 상황에 갑자기 그런쪽 이야기가 나온거랑 연관성은 찾기가 힘들다.

"비슷한 만큼 흡혈귀도 남녀간의 성교를 통해서 정을 얻거든. 효율은 피를 빠는것 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상대방이 여자라면 오히려 그쪽을 선호하는 편이지. 둘이서 첫날밤을 보내면 그 뒤로는 딱히 제수씨가 피를 마시지 않아도 될껄?"

"어. 진짜로?"

"여성의 성적 쾌감은 남성이 느끼는 쾌감에 최소 7배야. 게다가 흡혈귀라면 그 이상이고. 대신에 그쪽으로 의존도가 높아지지"

"무슨 19세 미만 관람 불가 만화 소재도 아니고 '이젠 너 없는 살 수 없어'같은거야?"

"비슷해, 그래서 정력만 받쳐준다면 여성 흡혈귀는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지, 하지만 어찌?

건 상대가 흡혈귀잖아?"

형이 스윽,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고 목을 긋는다.

죽음을 뜻하는거지만 그 죽음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무지 빨린다"

순간 해본적도 없는데 어쩐지 등쌀이 싸 했다.

일리엘, 일리엘을 천계로 보내자.

루이넬에게 사과해야 하고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리엘만 두면 그냥 그 사이에서 끙끙거릴것 같다.

일리엘 성격상 그냥 보고 있진 않을테고 일리엘이 나서서 루이넬에게 화해를 주선하겠지.

직접 나서지 않는 나, 중재하는 일리엘을 보고 루이넬을 더 화가 나겠고. 선행이 화를 불러오는 결과가 될거다.

잠깐 일리엘을 천계로 보내도록 하자.

잠깐만 보내자, 아주 잠깐만. 그래 딱 10일 정도.

원래는 5일에서 일주일 정도 체류시킬 생각이였지만 그건 짧으니까 조금 더 늘렸다.

열흘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 이번만 하고 다음에 천계에 가는건 교류를 위해서, 혹은 그 뒤다.

"챙길 짐을 다 챙겼..... 아, 원래 챙길 짐이 없구나"

"네, 개인적으로 필요한건 없으니까요"

화사하게 웃는 일리엘이 너무 예쁘다. 아 좋다.

일리엘은 기본적으로 여자들이 챙기는 화장품이라던가 손수건이라던가 전부 안쓰는 편이다. 루이넬이야 화장 안해도 예뻐서 화장같은건 안하고 대부분은 아공간에 넣어놓고 다닌다.

그런 고로 일리엘은 맨몸, 더군다나 가는 곳은 천계라서 아티펙트는 버티지 못한다.

신성력과 마력은 반발하니까, 대기에서 마력을 끌어들여 쓰는것은 물론 자체적으로 마정석을 써서 자급자족하는 아티펙트도 쓰질 못한다.

흠, 가면 몸을 보호해줄 뭔가도 없을텐데........

걱정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는건 일리엘 하나다, 마중까지는 나갈테지만 일리엘이 가는것 뿐.

딱히 이상은 없겠지. 불안하긴 하지만 일리엘 혼자기에 더욱 안전하다.

"열흘인가요?"

"미안, 그 이상도 할수는 있지만 네가 걱정되서. 다음에 천계와 교류가 생기면 그때는 마음껏 천계에 있어도 돼"

"아뇨, 그거면 충분해요, 잠깐 보러 다녀 오는거니까요"

역시 일리엘은 착해, 날 이해해 준다니까.

나는 심호흡을 하고 심장에서부터 힘을 끌어낸다.

데스티니 브레이커.

창조의 절대자인 아버지가 몸을 보호하라고 넣어준 착지만 '창조'의 능력이 담긴 힘.

그리고 그 힘에서 생겨난, 설령 그것이 운명이라도 단 한가지는 절대적으로 부술 수 있는 능력.

보자면 원리나 그 법칙은 어떻게 되먹은 것인지 정작 사용하는 나도 모른다.

마치 컴퓨터 명령어나 게임처럼 '부순다'라고 인식되어서 절대적으로 부수는 것. 그런 느낌이다.

차원을 찢는다.

공간의 상위 개념을 잡아서 부수듯 그어낸다.

흡사 거친 사포를 찢는듯한 느낌, 사포가 질기다면 맨손으로 찢는게 힘들지만 장갑을 끼고 있다면 쉽다.

데스티니 브레이커가 장갑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내 차원을 이루는 가장 작은 물질, 하지만 육안으로도 충분히 보이는 반투명한 파편들이 휘날리면서 안쪽에서 울렁거리는 느낌의 가득한 신성력이 느껴진다.

"자, 가실까요 숙녀분?"

"네, 기꺼이요"

내가 허리를 가볍게 숙이며 댄스 신청하듯 한손을 내밀자, 일리엘이 한손을 올려 승낙의 표시를 했다.

천계로 간다.

나와 일리엘은 손을 맞잡고 찢어진 차원의 틈새로 들어갔다.

출렁이는 듯 눈으로도 보이는 밝은 신성력.

여기도 분명 어딘가의 행성일텐데, 이런 기이한 환경이라니, 식물 하나 제대로 자랄까?

어디까지나 좋은것도 과하면 못쓰는 법이다. 이런 신성력이라면 중간계 식물은 과다 성장으로 죽지 않을까?

신성력은 대체적으로 좋은 작용을 한다, 상처를 치료하거나 성장을 돕거나, 독을 제거하거나.

일반적으로 식물에게 쓴다면 빠르게 성장하지만, 그건 도움을 주는것에 불과할 뿐. 그에 대한 양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뭐, 생각해보면 파괴적인 힘에 가까운 마력이 가득찬 마계도 인간이 보면 살지 못할 곳이긴 하다.

하지만 거기도 살고 있는 생물과 식물도 있다.

천계도 마찬가지로 그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있겠지.

"내가 바래다 줄 수 있는 곳은 여기 까지...... 우에에에에에에엑!"

"패, 팬텀님?!"

"아니, 천계 공기는 왜 이래..... 신성력 때문인가?"

낮선 감각,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낮설지는 않다, 신성력은 일리엘 뿐만 아니라 가끔 본적 있던 신관들에게 격어서 알고 있지만 평균 대주교급의 신성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밀집되어 있는 공기는 마력을 가진 나에게 아주아주아주 좋지 않다.

마치 숨 쉴 수 있는 청산가리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버틸수는 있는데 속이 안좋다. 똥개도 자기 집에선 한수 먹고 들어간다는데 이정도면 마족이라도 함부로 천계는 못온다.

이정도의 차이가 있구나, 천계는.

"일리엘 네가 마계 공기에 맞지 않아서 아팠던것도 이해가 된다. 속이 뒤집어질것 같은데"

"괜찮으신건가요? 아프신거면 지금이라도........"

"아냐, 맘만 먹으면 버틸만 해"

몸에서 마력장을 퍼트린다. 마력의 막으로 주변의 신성력을 차단해서 접촉을 막는다.

숨쉬는건 예전에 그만둬도 지장이 없다. 로드로서의 힘만 없다 뿐이지 아직도 나는 명실상부 초월자다. 겨우 호흡정도로 곤란하진 않다.

이렇게 하니 괜찮아졌다. 다만 지속적으로 마력을 써야 하기에 다른 마족들은 천계에 오래 못있을것 같다.

싸우려면 단기전인가.

내 이하의 마족들 중에서 정예, 리벨리온 군 녀석들이라도 약한놈이 최대 보름 정도....... 하지만 싸운다면 고작해야 5일도 못버틴다.

"10일, 기다려 줄께. 10일 뒤의 이 시간에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던 차원의 틈새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네, 신성력 때문에 몸이 안좋으실텐데. 먼저 돌아가 계세요. 루이넬씨에겐 안부 전해주시고요"

일리엘이 웃으면서 화답한다.

자신의 고향이자 사는데 알맞은 환경에 돌아오니까 한층 더 좋아진것 같다. 아니, 이젠 신성력 때문에 후광이 비칠 지경이다.

엉엉엉, 여신님이 따로 없네. 중간계 내려와서 먹보에 짝사랑이나 하는 주신 따위. 자비심이라곤 일말도 느껴지지 않지.

진심으로 생각하건데 일리엘은 무슨 자비의 여신같은걸로 태어나려다가 잘못태어난게 아닐까?

"그럼 열흘뒤에 보자. 데리러 올테니까. 지인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

일리엘은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했다.

서서히 벌어진 차원의 틈새가 닫히고, 이내 일리엘이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앞으로 열흘, 아니 중간계 시간으로 치면 더 적나.

그때까지 루이넬의 화나 풀어줘야겠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만 괴로운거 아닙니다. 저도 괴롭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절대자를 욕하세요.

루이넬의 위험도 옛날에 감지했었던 팬텀이 일리엘의 위험을 감지 못할리가 없죠.

로드로서의 능력은 소실?

다고 하지만 그 능력을 쓰는 의지는 남아있습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거든요.

일루전 로드가 전성기의 힘을 찾아 돌아와도 팬텀의 감각을 못속이는데. 절대자의 방해가 아닌 이상 팬텀이 눈치 못챌리 없거든요.

나는 이번 파트 끝나고 쓸 일리엘 환생 외전이나 써야겠다.

제 소설에서 비중 있는 인물 누군가가 죽는건 처음이네요. 뭐, 나이트 로드에서는 1부 부터 죽일거지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