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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 >
나는 난생 처음으로, 아니 그 전에 생전 처음으로 여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빌어봤다.
그 예전에 엄청 약했을 때도 유혹의 마왕에게 굽힌적 없는데.
지금 나는 루이넬 앞에 고개 숙여 빌고 있다.
"그래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루이넬의 싸늘한 말을 듣는다.
이거 위험해.
내가 오체투지한 이유는 하나다.
'내가 일리엘을 사랑하니까 결혼할래요. 딱 한명이면 되니까. 이번 한번만 양다리를 봐주세요'가 간략하게 말한게 되겠다.
솔직히 내가 루이넬이라도 못해주겠지?
생각해봐라. 이제 곧 결혼할 사람이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한명 더 있으니까 같이 결혼하자고 말한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도가 있지.
어떤 여자가 또 여자가 생겼다는 소리를 반겨주겠어......... 아, 막내랑 막둥이 어머니는 할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무리다.
하지만 남자란 능히 무리를 도전해 성공으로 이끌어내는것! 그렇기에 나는 도전한다!
"이상한 생각 하지마, 내 마음이 어떨지 알고 있어 팬텀?"
무리였다아아아!!!
루이넬의 시선이 차가워, 무서워 이거. 로드였어도 저건 시선만으로 사람을 능히 죽일 수 있어. 아니, 분명 그래. 일반인이라면 째려보는 것 만으로도 죽일 수 있는게 마왕이니까.
엉엉, 미안해 루이넬.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자각해버렸는데.
나는 일리엘을 사랑하고 있다. 양다리라는게 조금 걸리지만.........
"미, 미안........"
"왜 미안하다는건데?"
"네가 화 났으니까 일단 사과를 해야할것 같아서 그런건데........"
사람이 미안한 짓을 했으면 일단 사과해야지.
어느 부분에서....... 아니 확신은 가지만 아무튼. 루이넬이 화났으니까 사과해서 조금 진정을.........
"팬텀 넌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큰일이다! 이거 큰일이야!
글로만 봐오던 대사를 직접 들었어!
큰일이다! 여친이 하면 대답할 수 없는 말중에서 '나 요즘 살찐것 같지 않아'와 엇비슷한 수준의 말이야!
"어...... 그게, 그러니까. 일리엘이랑 결혼하려고 해서?"
"딱히 일리엘이랑 결혼한다고 화내는건 아냐. 다만 속에서 뭔가 자꾸 끙끙거리면서 올라올 뿐이지"
아니, 그거 화내는 거잖아.
정작 말과 하는 짓이 달라. 엉엉 예전에 순수했던 우리 루이넬을 돌려줘.
"......... 뭐, 좋아. 허락할께"
"지금 뭐라고?"
"허락한다고. 일리엘이랑 결혼 해. 아, 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빼고 하라는 소리같잖아. 물론 나도 같이야. 같은 날 잡아서 결혼식 올리면 되지?"
"어...... 정말 승낙하는거야? 진짜로?"
"물론이야"
루이넬이 허락했다.
일리엘이랑 결혼해도 된다.
너무 상황이 좋잖아 이거.
핫?! 설마 지금 이거 루이넬이 나를 시험해보는거 아닐까?
정작 결혼한다고 하면 또 톡 쏘면서 바가지를 긁는다거나...... 으으으.
"그런짓 안해. 진심으로 허락하는거야"
"기쁘긴 기쁜데 어쩐지 믿을 수가 없어서 큰일이다. 보통의 루이넬 같았다면
'혼자만 행복해지려하다니!'
하면서 칼들고 내 배때지를 찌를것 같은데........"
"뭐야 그거? 정신병있는것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 배를 왜 찔러? 찔러도 죽는 사람도 아닌데"
"그건 그렇지?"
"대륙 한개 정도 날려버릴 마법을 때려박는다면 좀 아플까"
"...... 저기, 루이넬. 내가 전에 준 콜로커스의 마법서. 어떻게 했어?"
"잘 연구해서 내걸로 만들었지. 덕분에 요즘 새 마법 하나 구상하고 있고"
큰일이다. 큰일이야. 진짜로 나이스 보트 엔딩이 눈앞에 서려지는것 같다.
덤으로 중간계 대륙 사람들도 바이바이.
"아무튼! 허락 했어! 나도 고심하고 또 고심한 결과야. 나는 팬텀의 옆에 있어줄 지언정 뒤에 있어주지는 못해. 하지만....... 일리엘은 할 수 있지. 나도 나 혼자서 팬텀을 전부 감당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근래에서야 내린 결론이니까"
"그럼 정말로 승낙한거지? 지금 결혼 반지 3개 맞추고, 드레스는 2벌 준비하고........ 그래도 되는거지?"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일부일처제를 말하면서 나만 봐주던 팬텀이 딱 한명. 결혼하게 해달라고 하는거잖아? 카르덴이 유혹해도 끄떡도 안했는데, 스스로 자진해서 결혼하게 해달라고 그러는거면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어. 그리고........"
"그리고?"
"그, 그러니까...... 남편을 이해해 주는게 아내의 아량이잖아? 그렇다고 일리엘 말고 또 바람피우면 그때는 가만 안둘꺼야!"
"아이고, 우리 루이넬!"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뻐서 참지 못하겠구나!
나는 루이넬을 껴안고 제자리에서 춤추듯 빙글빙글 돌았다.
"읏?! 수, 숨막혀! 부끄러우니까 껴안지 마!"
우리 루이넬이 귀여워서 참을수가 없엉!
일리엘에게 고백하기로 했다.
결혼하자고.
그래, 요컨데 프로포즈다. 결혼식 반지도 뭣도 없지만....... 마음만은 지금 당장이라도 밝히고 싶다.
비장한 각오로 가자.
그래 흡사 대마왕, 일루전 로드를 앞둔 그 때의 그 마음처럼.
프로포즈 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단 한마디.
'결혼해줄래?'
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건 쉬워도 그 뒤의 일이 걱정될 뿐이다.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지?
일리엘의 호의가 사실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단순함 호감에서 나오는 거라면?
사실 일리엘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거라면?
저번에 말했던 일리엘의 고백이 사실 이성으로서 좋아한다는게 아니라 가족같은 사람으로서 좋아하는거라면?
'저희 그냥 친구 사이로 지내요'같은 대답을 듣는다면?
막상 프로포즈를 앞두려니까 온갖 망상이 다 떠오른다.
"우, 팬텀. 무슨 생각하고 있어? 오랜만에 왔더니 왜 명상중이야?"
"뭐야, 카르덴이야? 아니, 약간 생각좀 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등장한 카르덴. 그러고 보니 이녀석도 어느정도 현장에 직접 가서 일하는 마왕중에 한명이라서 꽤 오랜만에 본다.
나와 루이넬, 그리고 라시드가 마왕성에서 서류로 행정을 본다면 카르덴과 루카크, 그리고 로르덴이 현장에 가서 일을 본다. 듀랜달은 문지기 하고 있고 마룡왕과 시엔느는 애초부터 제외.
일단 당사자는 아니니까 말해도 되겠지?
"저기 카르덴"
"우, 왜?"
"나 오늘 일리엘한테 프로포즈 할꺼야"
"우, 그럼 나한테는 언제 할꺼야?"
"안할꺼야. 루이넬이 일리엘 빼고 다른 여자하고 바람피우면 끝장이라고 했어"
결혼은 아직 안했지만 이혼 도장 찍어야 할지 모른다.
키스하고 동침까진 했지만 아직 기정사실까지는 만들지 못했고 딱 깔끔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우우우우우우! 나한테는 왜 안해! 나도 팬텀 좋아하는데!"
"아니, 너랑 루이넬이랑 일리엘이랑 같아?"
"....... 우, 그럼 뭐가 다른건데?"
"어, 성격?"
"우! 늑대는 한 반려만 보는데! 로맨티스트인데! 팬텀이 죽으면 평생 독수공방 할건데!"
어떻게 하지, 카르덴은 징징거리면서 바닥을 구른다.
마치 장난감 코너에서 애들이 떼쓰는것 같은 모습이다.
이럴때는.
"무시하는게 상책이지"
나는 카르덴을 내버려두고 일리엘을 찾으러 이동했다.
프로포즈할거다.
팬텀이 카르덴을 버리고 간 후, 남은 카르덴은 씩씩거리며 일어나 화를 냈다.
"우! 나만 빼놓다니........ 치사해"
카르덴은 예전에 계획해둔 것이 있었다.
아무리 막나가고 바보인 그녀라도 간단한 생각정돈 할 줄 안다. 아,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무슨 어린아이........ 비슷하지만 아무튼.
루이넬과 팬텀이 결혼한다는건 기정사실. 애초에 루이넬이 팬텀에게 고백할 때 그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중 한명이 카르덴이다.
팬텀과 루이넬은 확실히 결혼한다. 중요한건 그 다음.
결혼 한 후 신혼 생활은 어느정도 간다. 인간이라면 3달 정도. 마족이라도 3년은 가뿐하게 간다. 아마 팬텀과 루이넬은 30년정도 깨가 쏟아지는 것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뒤. 결혼 한 부부는 언젠가 서로에게 화낼때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서로를 아껴주는 부부라도 서로 다른 개인. 의견차이가 발생하면 반드시 싸운다.
루이넬에 성격에, 그런 루이넬에게는 항상 굽혀주려는 애처가이자 공처가인 팬텀.
루이넬이 화를 내면 팬텀은 굽히려고 들고, 그 굽히려고 드는걸 못마땅한 루이넬은 더 화를 내고, 더 굽히고....... 무한 반복하다가 어느새 부부싸움이 되어 폭발한다.
그럼 그때가 카르덴이 나선다.
부부 싸움으로 소원해진 관계 사이에 끼어들어 팬텀을 낚아챈다! 늑대가 사냥감을 덮치듯 옆에서 기다려온 해바라기 속성과 함께 야생녀 속성을 겸비해 나오는 여유로움으로 팬텀을 사로잡아 결혼!
루이넬도 결혼까지 하면 적대는 해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카르덴의 계획.
틈이 많지만 솔직히 못할것은 아니다. 만약 팬텀이 루이넬과 결혼한다면 언젠가는 부부싸움을 할 날이 온다.
어차피 마족이라 수명은 길다. 남은건 시간문제일뿐.
하지만 여기서 일리엘이란 변수가 작용한다.
팬텀이 부부싸움으로 하면 카르덴이 아니라 다른 여자인 일리엘에게로 간다.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현모양처력(力)은 일리엘이 몇십배나 위다. 아마 53만쯤. 3단 변신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겨우 물리적으로 2단 변신 하는 카르덴이 상대할 수 있을만한 상대가 아니다. 여자로서 비교해도 확실히 진다.
팬텀과 일리엘이 결혼하면 옆에서도 뒤에서도 끼어들 수 없는 완벽한 부부 관계가 되어버린다.
"결혼하는걸 막아야 해"
프로포즈를 막는다.
카르덴은 그렇게 생각하고 일리엘을 찾아 나섰다.
팬텀의 감각 안에는 분명 일리엘을 찾아 곧장 성큼성큼 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걷는 수준. 오히려 팬텀은 프로포즈의 부담감 때문에 평소보다 보폭이 적은 것이다.
카르덴은 후각을 활성화해서 이 다크 로드 캐슬 내부에 있는 일리엘의 냄새를 찾는다.
팬텀보다 빨리 일리엘을 찾는다.
두발이 아니라 마치 짐승처럼 엎드려서 무게 중심으로 앞으로 둔 후 내달린다. 카르덴은 그에 마치 진짜 늑대처럼 빠르게 복도를 질주해 달려간다.
마침 다행히도 일리엘은 카르덴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다크 로드 캐슬 정원에서 화단을 구경하고 있는 일리엘을 발견했다.
딱 팬텀도 오기 전.
"아, 카르덴씨. 카르덴씨도 꽃 구경 하시러 나오신건가요?"
"우, 그건 아닌데........."
팬텀을 막는건 무리.
그렇다면 일리엘이 도망가게 한다.
"우, 일리엘. 혹시 팬텀한테 무슨 짓 했어?"
"네? 무슨 짓이라니요? 글쎄요...... 딱히 신경쓰이는 것은 없는데요?"
"우....... 팬텀이 무지 화난것 같아. 지금 진지한 표정으로 일리엘을 찾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어"
"네?!"
진지한 표정으로 오는건 맞다. 프로포즈 직전이니까.
웃음을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 팬텀이 오고 있다.
팍 지은 표정은 아니나 충분히 인상 쓰고 있다는 모습.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봐도 그의 주변의 공기가 그의 의지에 따라 굳어있는게 느껴진다. 로드로서의 강대한 의지가 새어나간 결과다.
"흐, 흐에에에엥?! 저, 전 아무것도 한적이 없는데.........."
"우, 여긴 내가 막아서 진정시켜볼께. 혹시나 팬텀이 계속 따라가거든 다른 마왕들이나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해서 팬텀을 막아달라고 해. 원래 뒤끝은 진짜 심한짓을 하지 않는 한 없는 팬텀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화가 풀릴꺼야"
"고, 고맙습니다 카르덴씨!"
"일단 얼른 도망가! 만나는 사람한테 도움을 청하고!"
일리엘은 두발이 아니라 오랜만에 날개를 퍼덕이며 중력법칙을 거스르는 반중력의 특성을 이용해 날아서 도망쳤다.
한발 늦은 팬텀은 날아서 도망치는 일리엘을 보고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카르덴에게 물었다.
"일리엘 지금 어디가는거래?"
"우, 그렇게 비장한 얼굴로 오는데 간 큰 여자가 아니고서야 도망가지 않을까?"
"........ 아, 이런. 오해를 풀어야겠네"
팬텀은 그대로 일리엘을 ?
아가고.
카르덴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웃었다.
계획대로.
============================ 작품 후기 ============================
카르덴도 의외로 머리 쓸데는 똑똑합니다. 기본 유전자에 늑대가 들어가서 그렇죠. 원래 늑대가 머리를 좀 좋습니다.
다만 평소에 생각이 없어서 안쓸 뿐이지. 보통 사람은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는데 카르덴은 그냥 마음 가는데로 머리를 안거치고 무조건 반사식으로 튀어나옵니다. 이런 그지깽깽이 같으니라고.
덕분에 팬텀의 프로포즈는 웃자고 한 일이 죽자고 커지죠.
연참은 이걸로 끝.
그래도 외전 2개는 오늘 내일 중으로 2개 올라와서 400화 찍으니까 걱정마세요. 외전 하나는 오늘 3시대에 올릴까.
다른 소설은 진짜 비축분이 제로고 나이트로드나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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