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니스 로드-93화 (93/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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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킬 자격이란.

    -- >

    겨우 수업 하나가 끝나고 나는 쉬는 시간을 얻었다.

    형이 꺼내준 빵을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체력을 회복했다.

    마왕성 밥을 먹던 나지만. 배고플때 먹으니 이런 빵도 맛있더라.

    조금 뻑뻑한 느낌이긴 하지만.

    "이거나 마셔"

    "응? 이게 뭔데?"

    연한 붉은색. 정 말하자면 분홍색 느낌의 액체가 든 플라스크다.

    전에 받았던 엘릭서는 확실히 아니다.

    "포션이다. 재생력이 좋다고 해서 피가 만들어지는 속도까지 빠른건 아니잖아. 마셔둬"

    "고마워"

    나는 플라스크의 마개를 따고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약간 박하맛이 나는 느낌이다.

    나의 재생력은 어디까지나 육체 관련. 피는 상관없다.

    물론 어느정도 피가 만들어지는 속도도 빨라졌으나. 몸에 상처가 나서 출혈이 생기는걸 생각하면 느리다. 그것도 엄청.

    "아, 그런데 밖은 괜찮을까? 나 서류 결제 해야 하고 연회에도 참석해야 하는데"

    "걱정마. 내가 2일정도 여유 시간을 받아내 왔어. 게다가 이 디멘션 큐브 안에선 최대 하루를 12일 정도로 바꿀수 있지"

    "2시간을 하루로?"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이곳을 운용하려면 그정도가 적당해. 바깥에서의 30분을 하루로 바꿔서 하면 몇시간 못써"

    30분을 하루로. 우와, 그거 뭐야.

    만약 하루를 통째로 그렇게 한다면............. 하루를 48일로 바꾼다는 거잖아.

    "그나저나, 너. 제수씨좀 신경 써라"

    "제수씨? 루이넬을 말하는거야?"

    "그래. 400년전 있었다던 반역의 시기때 뭔가 트라우마가 있는 모양이야. 기억을 읽어낼수도 있지만, 그러는건 너무 사생활 침해인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루이넬이 라시드의 아버지를 죽게 했다고 들은적이 있어"

    "그녀석의 아버지? 그럼 흑야의 마왕 아니냐?"

    "맞아"

    루이넬의 과거사는 꽤나 복잡하고 무언가 많이 얽혀있다.

    나조차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된 무언가.

    "아무튼 알았어. 루이넬한테 신경좀 쓸께"

    "제수씨는 니가 챙겨줘야지. 않그러면 내가 널 박살낼꺼니까"

    ".......... 그런데 루이넬 호칭이 왜 제수씨야?"

    "그건 두사람 행동 보면 아는데? 거 완전 신혼 부부더만"

    "아냐!!!!"

    ............ 솔직히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루이넬하고 결혼이라니. 애초에 그거 범죄라고.

    나이는 약 천살정도지만. 겉모습은 중학생. 그것도 발육이 더딘 중학생이다.

    결혼하거나 욕정을 품으면 남자로서 실격이다. 그건 변태니까.

    ............. 아니, 그런데 마계에서는 합법인데?

    애초에 나는 마왕. 초법적인 존재라 누가 나한테 법을 들이밀어도 통하지 않는다.

    새,생각하지 말자 루이넬하고 결혼할 생각을 하는거냐?

    나는 생각을 끄고 남은 빵 부스러기를 입속에 털어 넣어 식사를 끝냈다.

    "소화할때까지 기다려줄께"

    "왜?"

    "쳐맞다가 먹은거 토하면 어떻하냐? 아깝잖아"

    그건 또 그렇다.

    형한테 수련받으면 안에 있는거 전부 게워내고 토하고 난리다. 오죽하면 위는 비어있는데 위액만 토하고 다닐까.

    나는 소화시킬동안 잠시 생각했다.

    빙염의 마왕이라..............

    살육의 마왕때는 루이넬을 강간하려 들었기에. 마룡왕때는 그 종족간의 나와 원한이 있기에(근데 졌다). 유혹의 마왕때는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 왔기에 죽였다.

    빙염의 마왕은.......... 음.

    저쪽에서 먼저 과잉반응을 한 감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저쪽은 충분히 할만한 대응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마룡왕 빼고 옆 영지의 마왕 2명이 전부 한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대비를 않한다면 그건 바보지.

    나라도 군사 모아서 준비하겠다.

    과연 이게 잘하는 일일까?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수같이 본능으로 행하는 생명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이성적인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내가 나아갈 자격이 있을까?

    어쩐지 마음이 심란하고 혼란스럽다. 고민된다.

    "과연 이게 잘하는 일일까?"

    "뭐? 전쟁?"

    "응, 조금 양심이 찔려서"

    내가 조금 참기만 했다면. 생명의 정글이 날아간 정도로 일이 끝났을 것이다.

    조금 참기고 생각을 많이 했다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거다.

    예를들어 갈곳을 잃은 카르덴과 만월의 일족을 내 영지로 데려와 땅을 주면 되었을 일.

    내 섣부른 행동 하나로 수천, 수만명이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이 벌어진다.

    내 욕심 하나로 수만의 생명이 죽어가는 전쟁.

    고작해야 반푼이 마왕인 나에게 그런 생명의 무게를 짊어질 자격이나 있긴 한걸까?

    "이야기 하나 해줄테니까 잘 들어봐라 동생아"

    "이야기?"

    "그래, 듣고 대답해봐"

    형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 한 옛날.

    부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농부가 있었어요.

    그 농부는 모든게 평범했지만. 딱 하나, 자랑스러워 하던게 있었어요.

    그건 바로 농부의 딸.

    탐스러운 금발에 청안. 잘 빠진 몸매까지.

    옆 영지에서 사람이 몰려와 청혼을 할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날. 농부가 사는 영지의 영주가 나타나 농부에게 말했어요.

    너의 딸을 내 첩으로 내놔라.

    영주의 옆에 있던 기사에 의해. 농부는 할수없이 자신의 딸을 내주었지요.

    그리고 농부는 그날밤 배게에 얼굴을 묻고 울었답니다.

    하지만 이내 자기 위안을 했어요.

    괜찮아, 영주의 첩이라도 지금보다 호화로운 생활을 할수 있겠지.

    딸의 아버지로서. 딸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사는걸 바란 그는 안심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농부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어요.

    바로 영주의 첩으로 들어간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지요.

    농부는 당장 들고 있던 괭이를 던지고 영주성으로 달려갔어요.

    내 딸의 시체를 보여줘.

    적어도 자신의 딸의 장례식을 자신이 치뤄주고 싶다는 농부의 바람이였어요.

    하지만 영주는 거절했고. 농부는 매만 맞고 ?

    겨났어요.

    딸의 시체도 볼수 없었던 농부는 그대로 돌아가려던 찰나. 영주성에서 일하던 하인 하나의 도움으로 딸의 시체를 볼수 있었답니다.

    온몸에 피멍이 들고 지져지고, 곪아버린 딸의 시체.

    에전의 그 미모는 도저히 찾아볼수 없고. 처참하게 난도질 당해 있는 시체.

    그래요. 영주는 여자를 학대함으로서 쾌락을 느끼는 변태였던 거예요.

    농부는 분노했어요.

    평생 순수하게 땅만 갈아온 농부는 분노했어요.

    딸의 복수를 하고 싶다.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망정 이렇게 만든 영주를 죽이고 싶다.

    하지만 농부에게 그런 힘은 없었어요.

    반쯤 자포자기. 그리고 반쯤 미쳐버린 농부는 그대로 드래곤이 살고 있다는 곳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외쳤어요.

    진심으로 분노를 담아, 살의를 담아, 증오를 담아, 절망을 담아, 광기를 담아.

    다른건 필요 없어. 그저 그 영주를 죽일수 있는 힘이 필요해.

    그리고 그 순간 드래곤이 나타났어요.

    보통 인간의 말을 벌레만도 못하게 알아듣던 드래곤이지만. 엄청난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 농부에게 호기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에게 힘을 주었죠.

    오우거보다 강한 힘. 트롤보다 강한 재생력. 엘프보다 빠른 속도. 드워프보다 강한 근성. 자신과 맞먹는 마나까지.

    강대한 힘을 얻은 농부는. 더 이상 농부가 아니게 되었어요.

    그리고 복수를 위해 영주를 찾아갔답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도 그때 영주성엔 마왕을 처치하려고 하던 용사 일행이 있었답니다.

    물론 둘을 충돌했지요.

    오우거보다 강한 힘은 용사에게 무너졌고.

    트롤보다 강한 재생력은 마법사의 마법에 역부족.

    엘프보다 빠른 속도는 궁수에게 막혔으며.

    드워프보다 강한 근성은 성녀의 도움을 받은 용사일행에게 쓰러졌지요.

    드래곤과 맞먹는 마나요?

    그건 용사가 그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어 못쓰게 되었어요.

    용사는 의기양양하게. 영주를 죽이려고 했던 괴물의 머리에 검을 박아 넣었어요.

    그제서야 농부는 정신을 차렸고. 단 한마디를 말했답니다.

    딸이 보고 싶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

    "................. 뭐야 그거. 꿈도 희망도 없잖아"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느낀점은?"

    "당연히 영주랑 용사 개새끼라는거?"

    "어째서?"

    "하아?"

    형이 반문을 해왔다.

    아니, 난 오히려 반문을 하는 형이 이해가 안된다.

    분명 용사랑 영주가 나쁜놈이고 농부가 착한 자일텐데.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누가 착하고 나쁜놈인지 판단할수 있을것이다.

    "영주는 자기를 죽이려고 한 농부를 죽이려고 했고. 용사는 정의롭기에 괴물인 농부를 죽였을 뿐이야. 각자의 바람을 행한거지. 누구에게나 싸울 권리나 목숨을 지킬 권리는 있어"

    "그게 뭐야. 그런 그 둘이 착하다는거야?"

    "그건 또 아니지"

    무슨 소리지?

    한쪽이 나쁘면 분명 한쪽이............. 아.

    그런거였나.

    난 중요한것 한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엔 절대적인 악이란건 없어. 그저 자신만의 정의로 나아갈 뿐이지"

    "......... 이해했어"

    이 세상은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간다.

    그로인해 무한대에 가까운 이해관계가 생겨나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싸운다.

    그 이득이 정당할때도. 부당할때도 있지만. 그것을 결정하는건 그들이다.

    "그런 정의를 관철하는 방법중에 가장 가까운건 무력(武力). 줄여서 둘중 쌘놈이 옮다는 소리야"

    그렇게 간단하게 말해도 되냐. 여태까지 심오한 말은 다 해놓고.

    아무튼 형의 말은 빙염의 마왕이나 나나 둘중 착한놈은 없고 나쁜놈도 없다, 라는 뜻이다.

    그걸 결정하는건 오로지 싸움뿐.

    스스로의 정의를 지켜나갈수 있을만큼 강한자만이 남는다.

    간단하지만. 그것은 진실.

    "둘중 강한 녀석만이 자신의 의지를 유지할수 있는거고. 앞으로 나아갈 자격을 가지는거지"

    "............ 그래서 난 빙염의 마왕과 싸워야 한다?"

    "맞아"

    빙염의 마왕.

    간접적으로 들었지 실제론 어떤 마왕인지 잘 모른다.

    서류 결제를 할때 그의 영지와의 교류가 활발한걸보아(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그리 폭정을 일삼는 마왕은 아닌것 같다.

    처음에 카르덴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영지중 일부를 주고 자치권을 인정해 줄 정도니. 성격이 호탕하다고 봐야하나.

    ............ 어째 싸우기가 껄끄러워진다.

    차라리 나쁜놈이였다면 자기 합리화로 '죽여도 되는놈이니 죽이자'하고 눈 딱감고 해보겠건만.

    어쩐지 더 망설여진다.

    "너도 네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빙염의 마왕도 자기가 지키고 싶은것을 위해서 싸우는거다"

    "............"

    "강해져. 그리고 진짜 마왕이 되라. 이름뿐이고 반푼이인 마왕이 아니라. 진짜 마왕이. 중간계를 일신으로 멸망 시킬수도 있는 무력을 가진 마왕이"

    과연 내가 될수 있을까?

    내가 살던 고향에는 얼굴한번 보지 못했지만 8서클 마법사가 십수명. 그랜드 소드 마스터도 한 15명정도 있었다.

    과연 내가 그런 강자들을 전부 쓸어버릴수 있을만큼 강해질수 있을까?

    기껏해야 상급 마족이 덤벼들어도 죽을 내가?

    "가능해. 앞으로 자주 이 디멘션 큐브를 사용해 시간을 절약하면 얼마든지"

    내가 책임지고 짊어져야 하는 사람들.

    이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들.

    ........... 순간 머릿속에 루이넬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전에 어떤일을 격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어떤 고통을 격더라도.

    여태까지 무모한 나를 따라 같이 여행하고. 그런 나는 좋아해준 애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어서 나를 따라와준 애다.

    그 작디 작은 몸으로 벌벌 떨며 울 정도로 심한 고통을 격은 애다.

    지켜주고 싶다.

    내 모든걸 바쳐서 지켜주고 싶다.

    예전에 약속한 그녀를 지켜주겠다는 말 때문이 아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지켜주고 싶을 뿐이다.

    "자기 여자는 자기 손으로 지킬줄 알아야 남자지"

    "그건 그렇지?"

    내가 짊어진 모든걸 지킨다.

    그중에서도 루이넬만큼은 절대적으로 지킨다.

    나는 그날 그렇게 맹세했다.

    만약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고. 반드시.

    "훗, 그래야 우리집안 남자지"

    어쩐지 형의 등 뒤로 이말년이 보인다.

    ============================ 작품 후기 ============================

    마음을 다잡은 팬텀.

    이제 루이넬과 팬텀이 위험에 빠지면 팬텀이 죽는겁니다. 아자!

    루이넬의 목숨이 +1이 ?

    네요.

    13년 3월 3일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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