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68 회
< --루이넬의 트라우마.
-- >
"아빠! 아빠! 아빠! 이 무책임한 아빠!!! 돌아왔으면 먼저 집에 들려서 엄마랑 나한테 얼굴을 비춰야지!"
"아, 미안. 이쪽도 일이 좀 바빠서 그랬어"
"엄마도 나도 무지 걱정했는데! 혼자서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고!!!!"
와, 엄청 말괄량이.
하긴 공작 딸이니 누가 뭐라 할사람이라곤 가족밖에 없겠지.
아, 공작인 데이레스도 가능하겠지만. 그녀석은 마왕성에서만 사니까 무리.
그리고 시선을 돌려 가르잔 쪽을 보자면.
"아버님. 불사의 마왕님의 행방을 찾으시는건 좋지만. 적어도 정기적으로 집에 연락을 해두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미,미안. 내가 잘못했어"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신으로 가문의 전력의 3분지 1이나 다름없는 아버님이신데. 그렇게 말도 없이 나가시면 어떻하십니까? 가문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신건가요?"
"그,그게 아니라..........."
단 한마디도 반문하지 못하는 가르잔.
녀석, 마왕인 나한테 까지 욕하면서 대드는 놈인데(예전엔 죽이려 했지) 딸한테는 쪽도 못쓰는 팔불출이다.
와, 누구나 하나쯤은 약점이 있기 마련이구나.
"그런데, 너. 여기서 뭐하냐?"
"아니, 얘네들이랑 같이 길 잃어버려가지고. 여차저차해서 길 찾아 왔어"
"하긴, 나도 데이레스 없이는 이 마왕성 구석구석 다니지는 못해. 더럽게 넓더라"
가르잔이 내 안부를 물어온다.
그리고 루미나와 아리아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린다.
꽤나 놀란 표정.
............ 어째서?
"당신, 아버님이랑 아시는 사인가요?"
"아니, 아는 사이라기 보단. 그건..........."
"상관이랑 부하 사이에 가깝지 않나 그거? 뭐, 나도 그렇지만"
뭔 소리냐 하는 눈빛으로 라미네스에게 두사람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이쪽, 마왕이야"
잠시 장소를 옮겨 마왕성 중심의 손님 대접용 방.
중간에 데이레스를 만나 설명을 들어봤는데. 공작과 후작의 영애면 만나서 약간이나마 대화를 해보는게 예의라고 한다.
"시,실례를 저질렇습니다. 아리아스 데인하트 플레임. 이번에 새로 등극하신 마왕님께 인사드립니다"
"............ 루미나 헤라신즈 아이스버그. 마왕님께 인사드립니다. 이전의 행동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갑자기 두사람의 태도가 바뀌었다.
부?
, 마왕이란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새삼 느낄수록 엄청나다니까.
하지만 말이야.
"................ 갑자기 존댓말 들으려니까 오그라 드는데"
"네? 그,그러신가요?!"
"저는 원래 이런 말투입니다. 자비를 배풀어주시길"
"으악, 오그라든다. 차라리 아까 전처럼 그냥 편하게 대하는게 좋은데"
라시드와 데이레스의 약한 경어체도 답답해 하는 나다.
차라리 가르잔이나 라미네스처럼 마왕 나에게도 편하게 대하는게 나도 편하고 저쪽도 편하다.
두사람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당황하고 있을때.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가르잔이 쳐들어왔다.
"너 이자시이이이이이익!!! 우리 딸한테 뭐하는거냐아아아아아!!!!"
"아무짓도 않했는데?!"
"우리 따님을 곤란에 빠트리다니!!!! 죽어랏!!!!"
이 팔불출 녀석! 가서 서류 결제나 하고 있을것이지!!!!
아니, 그전에 딸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마왕이자 지 상관을 죽으려 드는놈이 어디있어?!
"뒈져라 약골 마왕!!!!"
"안죽는다! 저번에도 안죽었는데 지금 죽을것 같냐!!!!"
순간적으로 나를 향해 차가운 한기가 뿌려진다.
아니, 뿌려진다기보단 한기가 응축되어 그대로 창처럼 찔러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얼음도 아니고, 고작해야 한기인데. 저번에 내가 팔 한짝 뜯은 남작보다 더 강한 느낌이다.
............ 후작급 마족은 도대체 얼마나 먼치킨인거야?
나는 아주 잠깐 사이. 그대로 정신을 집중했다.
떠올리자, 내가 강기를 뿜어낼때의 느낌을.
지금 레기온은 없지만. 어지간한 무기처럼 단단하게 단련된 내 양손이 있다.
가르잔 저새끼 지금 반쯤 날 죽일 기세로 오고 있다. 저거 맞으면 내 재생력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중상이다.
찔러들어오는 한기의 응집체는 5개.
단숨에 쳐낸다.
우우우우웅!!!!
양손에 마력을 집중! 강기를 뿜어낼 곳이 2개라 어째 레기온을 쓸때보다 힘들지만. 그래도 검은 안개를 쓸때보다는 편하다.
내가 강기를 뿜어내는 손은, 수도를 펼치는것이 아닌. 마치 야수의 손처럼 살짝 웅크려 사냥하는 맹수의 발톱같다.
그 모양 그대로 강기가 뿜어진다.
레기온을 쓸때와는 달리. 아직 나의 마력을 컨트롤 하는 힘이 모자라서 손에 부담이 간다. 하지만 그건 내 재생력으로 매순간 회복.
그대로 짙은 검은색의 강기가 덧씌인 손을 휘둘러 한기의 창을 쳐낸다.
형이 나를 후려치던 속도에 비하면 저건 보통 사람이 던지는 공과, 메이저 리그 선수가 던지는 공만큼 차이가 있다.
전부 쳐낸다.
파악! 파악! 파악! 파악!!!
처음 쳐낸 한개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조금 손이 얼얼하지만, 전부 쳐냈다.
그리고.
"마왕님께 무슨짓입니까 아버님!!!!!"
퍼억!!!!!!!
루미나가 가르잔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나이스 헤드샷.
한참 뒤에 상황이 대충 정리되었다.
조용해진 상황. 다만 신기한게 있다면 방 한구석에서 무릎꿇고 양손을 들어 마치 어린애 벌서는것 마냥 있는 가르잔이랄까.
아니, 이건 평소에도 본적 없는 상황인데?
"사정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아무리 그래도 마왕님이신데. 너무 무례하신건 아닙니까?"
"아,아니. 그게 아니고..........."
"변명을 필요 없습니다"
"넵!"
............. 와.
마왕 말도 않듣는 가르잔을 저렇게까지 조교(?)할 줄이야.
루미나가 저렇게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가르잔이 그정도로 팔불출인건지.
"......... 아무튼 굉장하네"
"......... 다시 봐도 굉장하네"
순간 아리아스랑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곧바로 눈을 내리 깐다.
........... 아니, 이래서는 마치 내가 고등학교 교실에 한명쯤은 꼭 있는 일진같잖아.
"편하게 대하라니까. 편하게"
"그,그렇지만............"
"아까같은 여자치고 괄괄한 성격 어디 갔어?"
"누가 괄괄하다는 거야!!!!!"
"오케이. 그정도면 딱 좋다"
다시 예전같은 상황이 되었다.
이게 편하지, 아까같이 닭살돋는 존댓말 듣느니 차라리 이게 더 좋으니까.
지금의 아리아스는.......... 마치 루이넬을 떠올리게 한달까?
"어라? 그러고 보니.........."
"왜,왜그러시는 건가요?"
".......... 그냥 아까처럼 대하라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루이넬이랑 만난지 뜸하다.
서류 결제하고 루이넬을 만나러가면 먼저 자고 있고. 피곤한걸까?
"지금 만나러 갑니다"
나는야 기분파.
소녀는 꿈을 꾸었다.
자신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그녀의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현실을.
꿈이란걸 자각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진실.
그것도 예지몽같은게 아닌, 이미 벌어졌던 일.
일의 전말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저주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누구때문에 죽는지도 모르고 목숨만 날아갈 뿐이다.
간단한.
아주 간단한 이유로.
그 간단한 이유로 자신에 의해 전쟁이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면.
과연 그 소녀는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약간이나마 괜찮아지겠지만.
가끔씩, 그 생각이 날때.
과연 그 소녀는 그 죄책감을 견뎌낼수 있을까?
루이넬은 눈을 떳다.
아까전에 데이레스의 호의로 일단은 입을 드레스의 사이즈를 재고 시간이 남아 잠깐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었다.
그리고는 이모양. 꾸고 싶지 않았던 악몽을 꾸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대체적으로 체온이 낮다.
본래 루이넬은 흡혈귀라 보통 마족보다도 체온이 더 낮지만. 지금은 마치 한겨울 날씨에 바깥에 나갔다 들어온것 같은 체온이다.
호흡이 가프고 꽤나 괴롭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하다.
요즘엔 뜸하지만, 예전엔 거의 매일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꾸었던 악몽.
꿈속에 나왔던 사람들 전원 그녀를 원망하고 죽어간다.
"악몽이라도 꾼거냐?"
"아, 당신은........."
그레이다.
팬텀의 형이자, 9서클 마스터의 마법사이자. 무력으로는 마왕도 간단히 이길 강한 인간.
그것 외엔 아무것도. 심지어 나이조차 모른다.
"꽤나 심각한 악몽인가보네. 그것도 심신이 전부 지칠 정도로"
"........... 네"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개인 사정이니까 묻진 않겠어. 다만, 힘들면 언제든지 기대도 돼"
그레이는 느긋하게 창가에 기대 책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평소에 발목까지 오는 장발을 가리기 위해선지 꽤나 거치적 거릴것 같은 회색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런데......... 뭘 읽으시는 건가요?"
그레이는 일단 팬텀의 형. 그리고 마족의 입장에서 봐도 한 학파를 만들어도 될 정도의 마법사다.
그녀도 같은 마법사를 지향하는 자로서, 그리고 그에게서 수많은 마법적 지식들을 배우고 있으니 존댓말을 사용한다.
"마계의 역사. 비극의 반역의 시기편"
움찔.
루이넬이 심하게 몸을 떤다.
부들부들, 마치 비에 젖은 들고양이 마냥 떨며 얼굴엔 창백하다 못해 시퍼렇게 질려있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감정은 공포, 죄책감, 미안함, 절망.
그런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지독한 트라우마.
평소때의 그녀라면 이를 악물고 버텨낼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방금 악몽을 꾸고 일어났다.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는데, 마치 때린데 또 때린것 마냥 치명적이다.
이불을 뜯어질듯 강하게 쥐고 눈동자가 떨리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것 같다.
"거 참,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그레이는 보던 책을 덮고 아무데나 던졌다.
있는대로 웅크려 않그래도 상당히 작은 체구인데. 지금은 가볍게 껴안을수 있을 정도로 떨고 있는 루이넬.
그는 자신의 보던 책을 힐끔 보고 대충 눈치챘다.
마계의 400년전의 반역의 시기. 그때와 관련이 있다.
현재 약 1000살인 루이넬에게 400년전아면 고작해야 600살.
인간으로 치면 기껏해야 7살에서 10살 사이.
도대체 어리디 어렸던 그때의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걸까.
"상담이라도 해줄까?"
"아뇨........ 됐어요....... 괜히 민폐끼치는것 같아서........."
"기대고 싶으면 마음껏 기대도 된다고 했잖아"
"아뇨, 그렇다고 폐를 끼칠순 없는.........."
"아니, 누가 나한테 폐끼치래? 아까도 그렇고 뭔가 오해하고 있는것 같은데"
그레이는 문쪽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고 가리켰다.
그리고 그순간 벌컥 문이 열리며 팬텀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저녀석한테 기대란 소리였는데? 내가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인물이냐? 동생 녀석 애인은 안건드리거든?"
"어라? 난 왜?"
"일단 자기 애인 못챙긴 죄로. 넌 좀 맞자"
그리고 그레이가 팬텀을 두들겼다.
자진모리장단으로. 신나게.
"쿠엑?! 어째서?!"
"넌 맞아도 싸거든?"
"그러니까 어째서?!"
"니 애인이나 보고 말해라"
그리고 팬텀이 루이넬을 보았다.
갑작스런 팬텀의 등장으로 그쳤긴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울고 있던 눈물과 그 자국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표정을 굳힌 팬텀은 자신의 옷 소매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무슨일 있었어?"
"........... 아무일도. 그냥 하품하다 나온 눈물이야"
"그냥 좀 가지고 그렇게 울리가 없잖아. 하품했다고 나오는 눈물도 아니고. 이정도로 울 정도면 심한 일이였겠구만"
우느라 안그래도 붉은 눈동자인데. 붉게 충혈된 루이넬의 눈동자를 보며 팬텀이 걱정했다.
어째선지 루이넬은 팬텀에게 옛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라시드를 만나고 해준 약간의 이야기가 전부.
"조금 진중한 이야기를 해봐야 하니까. 잠깐 나가 있어봐"
"뭐? 나 방금 들어왔는데?"
"5분이면 충분하니까 얼른"
그레이의 재촉에 팬텀은 머리를 긁적이며 걱정스럽게 루이넬을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그레이와 루이넬. 두사람만 남아있다.
"과거에 어떤일이 있었는지.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나는 물론이고 동생 녀석도 몰라. 나라면 마법으로 기억을 볼수도 있지만"
"....................."
"물론 그러기는 싫어. 그럴 생각도 없고"
그는 손을 들어 루이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하지만 네가 뭘 했든. 그건 적어도 고의는 아니였다고 본다. 그렇지?"
".............. 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 팬텀이 절 멀리할까봐............."
그에 그레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사실인진 몰라도 동생 녀석이 너를 멀리할것 같냐?"
전혀 아니다.
팬텀의 성격이라면
'그까짓거 뭐 어때?'
하고 시원하게 넘어갈것이다.
"어떤 이유건간에. 설령 나쁜 일이라도 동생 녀석이라면 절대로 널 포기하지 않을꺼야"
"............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시는건가요?"
"우리 집안 피가 다 그래. 적어도 자기 여자는 어떤일이 있어도 포기 하지 않는 애처가니까"
이상하지만 어쩐지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앞으로는 그런 얼굴 보이지 말라고. 특히 동생 녀석 앞에서. 알았지 제수씨?"
"네, 알았어요"
그리고 문득 루이넬이 물었다.
"그런데 제수씨가 무슨 뜻인가요?"
"....................... 좋은 뜻이야. 그것만 알아둬"
============================ 작품 후기 ============================
에라 모르겠다. 그냥 땡겨서 연참.
그나저나 루이넬찡ㅠㅠㅠㅠㅠㅠ.
루이넬을 구원하기 위해선 팬텀이 굴러야 합니다. 모두 기도합시다.
13년 3월 3일 수정 완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