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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그룹-322화 (에필로그) (322/322)

< --에필로그-- >

혹한에서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자유당은 몰락을 하고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총 480석의 의석 중 382석을 차지하여 모처럼만에 정권을 잡은 것이다. 그 결과로 다시 한 번민주당 당수가 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가, 제93대 총리에 이어 두 번의 총리를 지내게 되었다.

그는 선거 공약에서 대한연방과의 친교를 강화할 것이며, 일한의 다툼 중에서 아무 역할을 못한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오키나와 현의 미군 후텐마 기지 철폐를 강력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전후 평화체제 헌법으로 돌아갈 것을 수상 당선 제1성으로 토해냈다.

아무튼 일본과 우리가 그의 당선으로 다시 예전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해가는 가운데서 나는 잠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어느덧 어머니의 팔순 연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2년 전에 팔순을 넘기셨고, 이제 어머니 차례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변함없이 검소한 잔치를 표방하여 아무도 알리지 않았고, 나의 가까운 친척들만 초대를 하였다. 이에 세 부인은 물론 나의 아들딸들이 다 모여들었

다. 동생들과 매제들이 모두 참여했음은 물론이었다.

어느덧 마흔 살이 된 나의 맏딸 다정은 결혼하여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었다. 신랑은 서울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를 받은 홍 진명이라는 사람이었다. 또 철산도 결혼을 해 역시 1남1녀를 두었는데, 부인은 하버드대학 유학시절 사귄 미국인 여성이었다.

외국인이라 나와 수정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둘이 좋아하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혼을 종내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었다. 그는 18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현재 기획이사로 우리 그룹의 한 중추를 담당하고 있었다.

또한 수정의 딸 효정 또한 결혼을 했는데, 로스쿨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당시 건장한 청년이었다. 명희의 딸 인정 또한 결혼을 했는데, 사내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이 역시 우리의 반대가 심했지만 콩깍지가 씐 딸을 끝내 만류할 수는 없었다.

나머지 나의 두 아들 중산과 소산은 각각 나이가 33살과 31살로 아직도 미혼이었다. 중산 또한 미국으로 유학을 가 지금은 미주 지사에서 차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막내아들 소산은 우리 그룹의 경리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무튼 미국에 있는 중산만 못 오고 나머지는 할머니의 팔순을 맞아 모두 내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우리는 지난번 칠순연처럼 어머니의 팔순연을 무사히 잘 치렀다.

그리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 2019년이 되어, 어느덧 내가 대통령에 직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 이에 우리나라를 세계 3대강국 더 정확히는 2대 강국으로 이끈 나의 위업을 기려, 한 번에 한 해 더 연임시키자는 국민들의 여론이 많았지만, 나는 이를 거부하고 노무현 총리를 대통령 후보로 밀었다.

야당에서는 박근혜 씨를 새누리라는 당명으로 바꾸어 대통령 후보를 연속 2회 출전시켰다. 그 결과는 또 우리 당의 압승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총선에서는 과반수 획득에 실패해 야당이 정권을 쥐는, 여야 동거정부가 탄생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미 경제와 정치가 안정된 지금 나는 큰 혼란은 없으리라고 보고 홀가분하게 대통령직을 물러날 수 있었다. 모든 인수인계가 끝나고 이임하는 날, 나는 온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모처럼 마음 편한 여행을 떠났다.

내가 처음으로 별장을 지어 유독 많은 정이 갔던 강원도 동해안의 화진포 별장이 그곳이었다. 이즈음 우리 그룹도 꾸준히 성장해, 전자, 반도체, 헬스케어, 조선, 철도차량, 항공기 제작 및 여객 부문, 건설엔지니어링, 원자력 이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제1위를 점령하여, 대정그룹은 포춘지 선정 세계 제1의 기업으로 랭크되어 있었고, 나의 부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1위로, 나는 그룹의 경영에도 크게 안심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화진포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세 부인을 데리고 해변의 산책에 나섰다. 이 때 나의 63세고, 수정은 64세, 미정이 나랑 동갑으로 63세, 명희는 한 살 어려 62세였다. 즉 모두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들은 집안의 넘치는 부로 피부며 건강관리를 잘해, 적어도 50대 중반, 심지어 50대 초반으로 볼 정도의 젊음(?)을 아직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만은 타고난 동안에도 불구하고 50대 후반으로 보여 내가 제일 늙어보였다.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새치가 듬성듬성한 나였다. 현대의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않은 탓이었다.

쌀쌀한 날씨 탓에 모두 외투 깃을 세우고 거니는 해변의 산책은 나의 감사로 시작되었다.

"당신들 덕분에 대통령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우리 그룹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제1의 기업들이 되었소.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오."

"그게 어찌 우리 덕분이겠어요. 다 당신이 열정을 갖고 열성적으로 움직이신 덕분이지요."

미정의 겸사에 크게 웃은 내가 말했다.

"겸양을 할 줄 아니 늙어서 철이 났군."

"뭐예요?"

미정이 쌍심지를 하고 달려들자, 나는 못이긴 척 달아나며 말했다.

"그 힘은 밤에나 쓰라고, 일찍 파김치 되지 말고."

"저 이가 정말........!"

나의 말에 쫓는 것을 단념하고 천천히 걸어오는 미정이었다. 이때 명희가 나를 불렀다.

"여보!"

"왜?"

"나, 약 안 가져왔다."

"안 가져와도 상관없어. 신랑만 안 잊어버리면 돼."

"쳇, 당신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달려들면 어떻게 해요."

"제발 좀 그래라."

"뭐예요?"

이번에는 명희가 쫓아왔다.

나는 또 달아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수정이 중간에서 말렸다.

"얘들도 아니고 육십이 넘어서 뭔 짓들 이예요?"

"마음만은 청춘이잖아. 그리고 당신은 호르몬 주사라도 좀 맞아."

"왜요?"

"물이 너무 안 나와, 내가 힘들어."

"뭐예요?"

이번에는 수정의 눈이 하얗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저 이 혼자 재웁시다."

"옳소."

"동감!"

미정의 말에 일제히 동조하며 나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저희들끼리 뒤돌아서서 가는 세 여인이었다.

'내가 너무 했나?'

속으로 생각을 해보지만,

'이 정도 농담쯤이야!'

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세 여인의 뒤를 쫓았다. 이때 멀리서 다가오는 세 그림자가 있었다.

여섯 살, 네 살의 각각 딸과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십이 넘어 중년이 다된 다정이었다.

"왜 벌써 돌아오세요?"

"네 아빠가 염장을 질러서 도저히 같이 산책 못 하겠다."

"호호호........! 그 연세에도 다투세요?"

"그럼, 늙어 죽을 때까지 지지고 볶는 게 부부란다."

"할머니 나도 내 짝꿍이랑 싸웠다."

유치원에 다니는 첫 외손녀의 맹랑한 말에 미정이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왜?"

"자꾸 나한테 예쁘다고 뽀뽀를 하려고 해서."

"잘했다, 잘했어. 그런 싸기지 없는 놈은, 뺨이라도 한 대 때리지 그랬니?"

"엄마!"

다정이 모친의 과격한 발언에 소리를 지르고, 아이는

'그래야 되는가?'

혼란을 일으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다. 이때 또 한 사람 우리 쪽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니 외국인 며느리 비비안이었다. 화사한 외모에 백옥 같은 피부가 철산이 반할만한 미모였다. 품에는 세 살배기 사내아이가 안겨있었다.

"추운데 왜 데리고 나오니?"

친 시어머니인 수정의 말에 비비안이 답변했다.

"아이가 자꾸 보채서요."

억양이 좀 이상하지만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이리 줘라."

내가 손자 녀석을 달래 번쩍 안아들었다. 그러자 영악한 첫 손녀가 말했다.

"할아버지, 나도."

"그래? 너도 이리 오너라."

나는 녀석도 등에 들쳐 업고, 한 손을 뒤로 돌려 내려가지 않게 받쳤다. 그러자 다정이 말했다.

"할아버지, 힘들다."

다정의 '할아버지'는 말에 나는 갑자기 손에 힘이 빠지며 두 아이를 놓칠 뻔 했다.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인지를 하면서도 새삼 서운하게 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꺆!"

손녀가 비명을 지르자 일제히 달려들며 한 마디씩 하는 세 부인이었다.

"얼른 내려놓으세요."

"남 말 하더니 당신도 다 됐네요."

"힘들어요. 그냥 내려놓으세요."

'젠장, 젠장.........!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두 아이를 자갈밭에 내려놓았다.

아이를 내려놓고 천천히 걸어가는 내 앞길에는 석양빛이 그나마 온기를 떨구고 있었다.

잔디밭 중앙의 공터에는 화톳불 하나가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명멸하는 불빛이 명암을 수시로 바꾸고 있었다. 주변에는 많은 소주병과 막걸리 병이 나뒹굴고 있어, 많은 술을 마셨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불을 쪼이고 있어도 앞은 따뜻하지만 등은 시려운 법이라, 나의 파카를 걸치고 계신 어머니께 내가 말했다.

"어머니, 한 번 업어 봐요."

"업긴 뭘 업어."

사양하는 어머니께 나는 기어코 등을 들이대고 어머니를 등에 업었다.

바람이 불면 행여 날아갈까 연세가 드심에 따라 많이 야위어진 어머니셨다. 나는 이런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장난을 쳤다. 속에서는 슬픔이 복받쳐 올라왔지만.

"어머니, 너무 무거워서 제가 힘드네요."

나는 말과 함께 비틀거렸다.

"꺅!"

"어머!"

"여보!"

별 희한한 소리들이 다 들렸지만 압권은 외손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 봐, 기운이 없으신가봐. 가벼운 증조할머니도 못 업으시고."

그 말에 까르르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나는 무표정으로 바로 어머니를 고추 세워 업고 모닥불 둘레를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지요?"

"그래, 엊그제가 내 나이 스물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내 머리는 백발이 다 되었구나!"

"덧없는 게 인생이지만, 사시는 날까지는 하루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사세요."

"그래야지. 하루 햇볕이 새로운 나이거든."

"혹시 어디 가고 싶거나, 하고 싶으신 일 있으세요?"

"그래."

"뭐든지 말씀해보세요."

"나나 아버지나 얼굴에 주름 좀 폈으면 좋겠다."

"네?"

"우리가 주책이냐?"

"아니 예요. 젊어지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 똑같은 마음이죠. 한 십년만 젊게 해드리면 되지요?"

"오 년만 더 젊게 보여도 여한이 없겠다."

"알았어요. 서울 올라가는 대로 예약을 해놓을 게요."

"고맙다."

이때 다정이 말했다.

"아빠 저도 보톡스 한 대 맞으면 안 될까요?"

"뭐?"

"저도 눈가에 잔주름이 보기 싫네요."

'네 나이도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내심 스치는 상념을 떨치기라도 하듯 나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알았다!"

나는 천천히 어머니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고 막 떠오르는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할머니, 저 달에는 계수나무도 없고 옥토끼도 없데요.''무슨 소리냐?''사람이 저 달에 가보았는데, 아무 것도 사는 게 없데요.''농담이라도 그런 말마라. 어떻게 사람이 달에 갈 수 있단 말이냐?''정말이라니까요.''시답잖은 우스개소리 그만하고 등이나 좀 긁어봐라.'끝내 내 말을 믿지 않고 돌아가셨던 할머니의 말과 모습이 오늘 문득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 또한 할머니를 만날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기 때문인가? 쓸데없는 상념에 나는 고개를 젓고 꾸벅꾸벅 졸고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몇 잔 잡숫지도 않은 술에 벌써 취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아버지를 살그머니 안아들었다.

"누구냐?"

"저예요."

"졸립구나."

"들어가 한숨 주무세요. 뭐가 걱정 이예요."

"그래, 네 어미도 술 그만 먹이고."

"잡수시래도 이젠 못 잡수세요."

"다 세월 탓이지."

원망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씁쓸히 웃고 가벼운 아버지이지만 한 번 더 다잡아 안았다. 아버지를 침대에 고요히 누여드린 나는 곧 밖으로 나왔다. 외손녀가 모닥불 가에서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곡이 나는 알지도 못하는 최신 아이돌의 댄스곡이었다. 이를 대견한 얼굴로 바라보는 다정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다 자식은 저렇게 해서 키우는 것이지.........'

"당신 왜 그러고 서 계세요?"

"응? 그래?"

미정의 말에 나는 다시 불가로 가 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때 또각또각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말했다.

"회장님! 성공리에 임무를 마치시고 퇴임하신 것을 축하드려요!"

"오, 고마워요."

"잘 오셨어요. 이리 불가로 앉으세요."

애증의 강을 건넌지 오래인 미정이 벌써 육십 고개를 넘겨, 새치가 듬성듬성한 북경의 이 미연을 불가로 따뜻하게 안내했다. 임들 덕분에 그동안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졸작을 끝까지 지켜주신 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올리며, 다음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이 작품에 공지를 띄우겠으니 선삭하지 말아주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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