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321화 (321/322)

< --통일 열차-- >

2018년.

나는 2013년 말 다시 연임에 성공하여 그 임기도 어느덧 1년여만을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대한민주연방공화국은 그동안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넉넉한 배후시장과 풍부한 자원으로 일인당 GNP는 6만 달러를 넘어섰고, 군비도 꾸준히 증강하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일류 군사대국이 되었다.

이즈음 세계의 눈은 다시 극동에 쏠려 있었다. 3년 임기의 총리 연임에 성공한 우익 아베 신조 수상은, 우쭐한 마음과 자신의 정책과 달리 점점 활력을 잃는 경제,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내각 지지율을 만회하기 하기라도 하듯, 한동안 잠잠하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여 대한연방과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핵개발을 포기하는 듯한 이란이 몇 년 전부터 핵개발을 다시 시작함은 물론 구원이 있는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군 병력을 이라크 국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데는 우리의 외교공작이 한몫 했다 할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옛 영화를 회복한 러시아를 통해, 나의 사업시절부터 오랜 친분이 있는 이란을 강력지원 하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즉 자신들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고 대한연방이 있다는 자신감이 이라크 침공 전 단계까지 왔던 것이다. 아무튼 이로 인해 오바마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은 태평양의 군사력 일부를 포함한 전 미국 군사력을 이쪽으로 투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2008년 하반기에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이은 세계 경제, 금융 위기 이후 점차 쇠퇴하는 미국 국력에 따라 삭감되는 군사비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에서의 군사적 현상유지를 하려던 그녀에게는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극동과 중동이 동시에 위험한 수위로 치닫고 있는 속에서 일본 내각의 제2인자로 망언제조기로 불리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망언이 또 터졌다.'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적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뿐이다'라며 오히려 두 나라를 비난하는 것은 물론, 2006년 1월에 이어 또 다시 '일본 천황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이에 나는 화가 나서 우리 연방 정부에서 독도 우표를 발행하도록 했고, 이에 아소 다로는 일본 우정성도 우표를 발행해야 한다며 연속 며칠간에 걸친 망언을 쏟아냈다. 이에 우리 연방정부는 1차로 주일본 대사를 연방 내로 소환하는 한편 나는 곧 바로 중국의 시진핑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각하!"

"이번 기회에 아예 일본 놈들에게 본대를 보여줍시다."

"각하의 그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곧 일본의 북방 4개 도서는 물론 일본의 일부 섬을 점령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바로 조어도로 군사를 내어 점령하겠습니다."

"양국이 일치단결하여 이번 기회에 일본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봅시다."

"옳습니다. 바라던 바였습니다."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던 시진핑이 나의 발언데 동조하고 나왔다. 아무튼 양국 간에 상호 군사동맹은 체결되지 않았지만, 동북3성 경제권의 대한연방으로의 편입과 막강한 우리 군사력에, 대한연방으로 경사될 수밖에 없는 중국으로서는, 나의 발언에 힘을 얻어 시진핑도 곧 강경하게 나왔다. 우리의 부상으로 원 역사보다 10년은 경제발전이 뒤쳤지만, 지금 중국의 위상을 무시할 바가 못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금 우리와 함께 G3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즉 점점 쇠퇴하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와는 달리 양국은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해왔던 것이다. 아무튼 나의 말에 시진핑은 곧 군사적 조치를 취하니, 중국과 일본 양국의 다툼이 되는 조어도(釣漁島:일본명 센카쿠 열도)의 침공을 다음날 바로 개시한 것이었다. 중국 공정부대를 보내 곧 조어도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화들짝 놀란 일본이 급 대응에 나서는 순간, 우리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수특전단 10개 여단을 동원해 우리가 반환했던 옛 러시아령 북방 4개 도서를 점령하는 것은 물론 아예 쓰시마섬까지 점령해버렸다.

이 작전에는 공수부대만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아군 이지스함정 9척과 2만 톤 급 핵잠수함 6척, 항모 3척이 그곳 수역으로 파견됨은 물론, 여타 500여 대의 최신 전투기가 발진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일본으로 가는 두 개의 파이프라인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4년여의 공사 끝에 개통된 양국의 해저터널도 폐쇄해버렸다. 이에 일본 조야가 벌컥 뒤집힌 가운데 나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한연방의 강 대정입니다."

"아니래도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미국은 우리와의 상호방위조약에 의거 대한연방을 지원하겠지요?"

"그것이.......... 우리는 일본과도 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우리의 미국 입장으로서는 누구의 편을 들기도 곤란하니 중립을 지킬 것이나, 각하께서 원상회복을 하는 게 가장 좋겠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툭하면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 망언을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사할린 남부까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판이니, 우리는 이 기회에 단단히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 합니다. 일본이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과 전쟁도 불사하겠습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같은 서방 진영끼리.........."

"이렇게 된 데에는 미국도 일말의 책임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를 분명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하던 종전의 주장을 왜 슬그머니 철회해버리고 명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일본의 주장을 수용함은 물론 양국의 다툼을 기화로 미국이 어부지리를 취하자는 속셈 아니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울릉도가 당시 조선의 땅이었다면 독도 또한 조선의 땅이라고 여겨.........."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죠?"

"그것참......... 어떻게 되었든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으니, 원상회복을 하는 길만이 양국의 우위를 지속할 수 있음입니다."

"우리는 36동안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구원이 있습니다. 이 정도는 약과 아닙니까?"

"그것은 벌써 과거의 일이고.........."

"됐습니다. 우리는 지금 점령한 섬에서 한 발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설득을 하려면 일본을 설득하십시오."

그리고 나는 무례하게 전화를 끊었다. 일본 또한 전투 준비를 하는 등 강경하게 나왔지만, 미군이 중립을 지키고 움직이지 않자, 그들의 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외부적으로 쏟아내는 수사는 거칠었지만 내부적으로 화의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중국과는 조어도를 놓고 양국이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지만 감히 북방 4개 섬과 쓰시마는 탈환 작전을 하지 못하고, 일부의 군사력만 보내 대치하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에 일본 국민들의 내각에 대한 원성과 질타가 쏟아지고, 아베 신조 내각은 점점 궁지로 몰려갔다.

이에 아베는 미국으로 구원의 사자를 급파하고, 또 미국은 전 빌 클린턴 대통령을 특사로 대한연방에 급파했다. 이때 나는 옛 청와대 관저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당시 대통령의 집무실은 네 곳이나 되었다. 지금의 청와대는 물론 옛 비무장지대의 대통령 궁, 평양의 주석궁 또 하바롭스크의 옛 대통령 집무실도 있어 나는 이곳을 번갈아가며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허나 날씨가 추운 관계로 지금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청와대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빌 클린턴을 맞아 그와 대좌했다.

"오래간만입니다. 각하!"

"우리가 함께 했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꽤 많은 세월이 흘렀군요."

나의 말을 받아 클린턴이 말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나이가 40대였는데 어언 내 머리에는 백발이 가득하니 말이오."

"하하하.........! 제 나이도 벌써 육십하고도 둘입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십니다. 아직 50대로 보이십니다."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그래, 일본의 중재안이라도 가지고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일본은 사할린 남부와 독도를 영원히 대한연방의 영토로 인정한다 합니다."

"그 외에는..........?"

"대한연방군이 철수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점령한 도서에서 한 치도 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동안 일본의 망언에도 우리는 많이 참고 참아왔습니다. 하고 조어도에서도 일본은 철수해야 마땅합니다. 그곳 역시 옛 명나라의 영토였으니까요."

"각하, 제 체면도 좀 보아주십시오."

"허허, 그것 참.........."

잠시 생각하던 척 하던 내가 다시 발언을 했다.

"조어도는 중국, 대만, 일본이 공동 개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하면 내 중국과 대만은 설득하리다. 하고 우리가 지금 지배하고 있는 북방 4개 섬은 양국 공히 소유권을 갖고 공동 개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아니면 북방4개 도서는 각각 2개 섬씩 나누어 갔던지?"

그의 표정을 살피던 나는 곧 나의 발언을 이어갔다.

"허나 대마도는 조선조 이래 우리 땅이었습니다. 별 쓸모가 없어 방치했더니 어느새 일본 놈들이 야금야금 이주해와 마치 자신들의 땅인 양 했지만. 아무튼 대마도를 양보하고, 북방 4개 도서는 2개씩 나누어 갖는다면, 우리는 곧 해저터널을 개통하는 것은 물론 가스파이프 라인을 연결해 일본 국민이 추위에 떠는 것을 면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각하의 최후 안입니까?"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일본 측의 안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점시이나 한 끼 하고 가시죠?"

"아닙니다. 지금 양국의 첨예한 대립을 생각한다면 한가롭게 점심을 먹고 있을 입장이 아닙니다."

"할 수 없군요. 우리의 뜻이 관철되어 함께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써 보겠습니다."

곧 클린턴은 내게 목례를 하고 내 집무실을 벗어났다.

그로부터 3일 후.

우리는 그동안 기존의 군사력에 더 많은 함정과 전투기를 파견해 이 점령한 영공을 초두순시하면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종용하는 태도를 취했다. 마침내 클린턴이 일본의 중재안으로 가지고 또 다시 내 집무실을 찾아들었다.

"어서 오시오."

나는 양국의 긴장 관계에는 아랑곳없이 두 팔을 활짝 벌려 빌 클린턴을 맞았다.

"각하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니 기분은 좋으나 일본 측도 강경하니 제 입장이 부담스럽군요."

"그 놈들은 뭐라 합니까?"

"독도와 사할린에 대한 영토권 주장은 철회할 수 있으나, 북방 4개 도서와 대마도는 꼭 돌려달랍니다."

"안 됩니다. 나의 의견을 수렴하기 전에는 내 분명히 경고해 두 건데, 일본 동경마저 이제 작전 반경에 넣고 작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이런.........."

클린턴이 난처한 입장을 보였으나, 그의 입장에는 아랑곳없이 나는 결코 내 주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클린턴이 이렇게 6번을 왔다 갔다 하고 나서야 우리는 협상을 타결할 수 있었다. 즉 북방 4개 도서 중 우리가 2개를 반환하고, 대마도는 대한연방의 영토로, 조어도는 중국, 대만, 일본 3개국이 공동 관리 개발하는 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이번 전투의 빌미가 되었던 야스쿠니 신사를 일부 전범과 분리해 짓기로 했다. 아무튼 이로써 나는 옛 자유중국 즉 대만에 우리가 졌던 빚을 다소나마 갚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이 강력 반발했지만, 우리의 힘을 어쩔 수 없어 종내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는 나는 다시 해저터널을 열고, 가스 파이프라인마저 열어주었다. 이에 따라는 나는 다시 해저터널을 열고, 가스 파이프라인마저 열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란마저 국경에서 철수케 하여 세계는 다시 평화를 찾았지만, 일본 자민당 정권은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바로 일본 국회는 해산이 되고 총선거에 의한 다음 내각을 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국민에 대한 나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어서, 여론 조사결과 90%를 넘는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니 내가 연예인이 아닌 데도, 가는 곳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사인을 해달라는 통에 바깥나들이가 거북스러울 정도였다.

^^좋은 날들 되세요!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