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해연방공화국 출범과 대정그룹-- >
"노무현 대통령의 전화인데, 경신고속전철 기공식에 함께 참석하셨으면 하는 데요?"
"언제라는 데요?"
"이틀 후랍니다."
"알았소. 그러겠노라고 답변해주세요."
"네, 각하!"
경호를 위해 일체의 외부 전화까지 당분간 맡고 있던 세르게이 경호실장이 한 걸음 물러서자 나는 천천히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의 행보에 많은 경호원들이 나를 에워싸듯 걷고 핵 가방을 든 1급 남자비서관도 시종 내 주변에서 5보 이상을 떨어지지 않고 따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대정그룹에서 파견된 비서실 요원 하나도 시종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 전 남아공 지사장 유 호걸 이라는 인물로 그의 걸출한 능력을 인정받아 비서
실로 보직을 변경 받았고, 지금은 내가 어디를 가나 따르며 그룹과 나의 연결고리인 동시에, 웬만한 일은 자신의 선에서 처리하는 상무이사급 인물이었다. 아무튼 내가 천천히 동네를 산책하자 멀찍이서 나를 따르는 시선들이 많았다. 주로 노인들이고 젊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또 아이들도 이 시대의 한국 농촌이 다 그러하듯, 순수한 한국인의 혈통이 아닌 어딘가 혼혈의 냄새가 나는 아이들만이 눈에 띠었다.
세계 제1의 갑부를 배출해낸 동네요, 일국의 대통령을 배출한 동네라, 마을 진입로도 4차선으로 바뀌고, 이것저것 행정적 지원과 우리 그룹의 지원도 있어, 제법 살만한 동네로 탈바꿈 되었지만, 농촌을 기피하는 여성들 때문에 이곳도 외국 여성들이 주로 시집왔고, 그나마도 젊은이들은 얼마 안 되어, 고령화된 농촌 마을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듯했다.
나는 서글픈 농촌 풍경을 뒤로 하고 수령이 400년은 넘은 듯한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걸었다. 비록 오늘의 날씨가 포근하다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나목이 된 고목을 바라보며 걷다가 나는 갑자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의 걸음걸이에 의해 일행 전체가 빨라지는 걸음걸이 속에, 나는 오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동네의 오래된 저수지로 향했다. 갑자기 그곳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회귀한 장소이기도 하고, 그곳 또한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해 저수지를 바라보니, 이것은 저수지라고 표현하기도 거북할 정도의 작은 저수지가 수초를 머금고 녹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제방에 올라 이 모양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레둘레 살펴 편편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힘껏 저수지를 향해 던졌다. 작은 돌조각은 동심원의 파문을 그리다가 어느 순간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내 하는 짓이 우스웠던지 올리비아가 입을 가리고 킥킥거렸다.
"왜 우습소?"
"아이 같으세요."
"너무 긴장만 하고 살아서도 안 되지. 때로 이렇게 유년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정서를 안정시키는 한 방편 아니겠소?"
"그렇기는 하겠네요."
나는 올리비아의 지적에도 몇 번 더 그 짓을 하다가 돌아서는데, 저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전 장 민호 검사로 경숙의 남편 되는 나의 둘째 매제였다. 지금은 곡물 부 상무이사로, 우리가 취급하는 수많은 곡물의 실질적 책임자가 그였다. 나 또한 그의 빠른 걸음에 무슨 일인가 하여 빠르게 그에게 접근했다.
"회장님!"
"무슨 일인데, 그렇게 빨리 걸어오나?"
"다른 것은 없고요. 너무 보고 싶어서요."
"이 정도면 아부 지?"
"하하하........! 네, 아부를 넘어 아첨이지요."
"잘 재냈고?"
"네, 회장님!"
나의 지체가 있으니 항상 처남보다는 회장님이라 부르는 장민호 상무이사였다.
"다른 일은 없고?"
"막내 동서가 이번 칠순 연에는 못 올 것 같은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2주는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모양입니다."
"어쩌다가?"
"매사를 서두르다보니 자신이 잘못한 모양입니다. 급한 마음에 작은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가 그만........"
"할 수 없는 일이지. 같이 왔나?"
"네, 큰 형님도 왔습니다."
"누구? 몽윤 매제?"
"네."
"가보지."
"네."
"그런데, 회장님!"
"얘기 해."
"저.......... 아버님, 어머님을 위해 이제 비서들을 좀 고용하면 어떨까요? 점점 연로해지시는데, 아무래도 옆에서 시중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갑자기 편찮으셔도 그렇고, 여러모로 보아.........."
"자네 생각인가, 아니면........?"
"제 생각입니다."
"나보다 낫군."
"별 말씀을."
"그렇게 하도록 하는데, 기왕이면 무술 유단자나 전직 경호요원 출신으로 각각 남녀 1명씩을 1개조로 해서 8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하도록 하지."
"12시간씩 2개조로 돌아가고, 2개조는 비번으로 하루 휴식을 갖는 체제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자네가 알아서 전담 처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즉석에서 결정을 하고 이를 시행하도록 했다. 아버지 어머니와 상의해봐야 거절하실 것을 뻔한 노릇이라 내 독단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다시 동네로 우리는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마을 어귀에는 몽윤이 서성거리고 있다가 나의 출현에 급히 다가오며 말했다.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음, 자네도 잘 지냈지?"
"네."
"사업은?"
"그럭저럭 잘 되는 편입니다."
"그러면 됐고?"
"경순이는?"
"함께 왔습니다."
"집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있지?"
"함께 어울릴 사람이 있어야죠."
"하긴 그렇겠네. 한 잔 할 텐가?"
"좋지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집 안으로 우리는 들어서고 있었다.
"오빠!"
기다리고 있었던지 세 여동생이 일제히 합창을 하며 내게 달려왔다.
"잘 지냈지?"
"네, 오빠!"
나는 혼자 온 막내 경자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작은 교통사고였어요. 미안해요, 오빠! 함께 오지 못해서."
"억지로 될 일도 아니고, 네가 미안해 할 일도 아니다만, 조심은 해야지. 그리고 사람이 항상 여유가 좀 있는 게 나아."
"알았어요. 오빠!"
"술 마실 사람은 따라 들어오고 아닌 사람은 말아."
"올케들도 일을 하는데 우리만 그럴 수 있나요?"
"전 몇 조각 부치는데 뭔 일이 그렇게 많아?"
"그래도 할 일이 많아요. 하지만 이제 다 끝나가니 바로 우리도 들어갈 게요."
"그래, 그럼."
나는 동생들을 내버려두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어머니는 어디 가시고 아버지만 계시는데, 언제 오셨는지 사돈 즉 나의 장인장모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사위! 이제 지체가 있으니, 마음대로 사위라 부르기도 민망하네."
"별 말씀을.........."
나는 미정이 엄마의 말에 웃으며 대답하고, 아무래도 동서들과는 자리가 불편할 것 같아 말했다.
"잡숫고 계세요. 우리는 이층으로 올라갈게요."
"왜, 여기서 함께 한 잔 하지."
"아닙니다. 저야 상관없지만 동서들이 좀 불편해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렇지만 사위가 빠진다니, 좀 서운한 걸."
"우리끼리 간단히 한 잔 하고 금방 내려올 게요."
"그럼, 그러시든가."
나는 곧 목례를 올리고 바로 안방을 빠져나와 이층으로 향했다.
내가 두 매제를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에는 내 아들과 딸들이 있다가 벌떡 일어나 나를 맞았다.
"이거 어디 가도 불편한데.........?"
"아니 예요. 아빠! 앉으세요."
아이들끼리 노는데 훼방을 놓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이렇게 장성하도록 제대로 자식들과 술 한 잔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고무부들이 불편하지 않으면 함께 술 한 잔 하도록 하자."
"아빠, 저는 아직 술 마실 나이가 아닌데요?"
막내 소산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애비 앞에서 배우는 술도 괜찮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경순이 아내들과 함께 알아서 술상을 봐왔다.
"일 다 끝난 거야?"
"거의 요. 조금 남았어요."
"그럼, 끝나는 대로 이리 올라와. 모처럼 다 모여서 한 잔 해보자고."
"대낮부터 요?"
"잔치인데 어때?"
"알았어요."
미정이 계속해서 대표로 답변을 하고 이내 경순과 함께 물러갔다.
"자, 한 잔씩 하자고. 그런데 잔이 부족하네."
"제가 가져올게요. 아빠!"
보니 인정이였다. 명희의 딸로 올해 외국어대 일어일문과에 입학해 다니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 빨리 가져와."
"네, 아빠!"
인정이 나가자 재빨리 막걸리 병을 든 다정이 말했다.
"아빠, 제가 한 잔 따라드릴 게요."
"그래, 어디 우리 큰딸 잔 한 번 받아보자."
"네, 아빠!"
대접을 집어든 내게 다정이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채우자, 병을 빼앗아든 내게 몽윤을 보고 말했다.
"막걸리 괜찮지? 이 동네 막걸리 맛이 제법이라고."
"네, 형님! 저는 항상 청탁불문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그에게 넘치도록 한 잔을 따라주고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장민호에게 물었다.
"자네는?"
"저도요.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그럼, 한 잔 받아."
"고맙습니다. 회장님!"
나는 장민호에게도 한 잔을 따라주고 딱 하나 남은 대접을 들어 다정에게 주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같이 술 마신 기억이 있나?"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빠!"
"그럼, 받아!"
"저는 술을 별로........."
"애비가 권하는데 빼는 게 아니다."
"네, 아빠!"
나는 다정의 잔에도 술을 따라주고 나니 무언가 허전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철산이가 빠지니 좀 서운한데. 괜히 오지 말라고 했나?"
"공부할 때는 해야죠. 잘 하셨어요. 아빠!"
다정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인정이 다섯 병의 막걸리와 함께 주발을 가지고 들어왔다.
"다음, 효정이 받아!"
"네, 아빠!"
내게 다정을 대하는 것을 보아서인지 군말 없이 두 손으로 대접을 내미는 효정이었다.
"중국에서는 수고가 많았다."
"좋은 경험이었어요. 아빠!"
"그렇다면 다행이고."
"다음 중산이."
"네, 아빠!"
미정의 아들 중산이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얼른 잔을 내밀었다.
"공부는 잘 되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중산은 연세대 경영과 일 학년에 올해 입학해서 다니고 있었다.
나는 다음 차례로 인정에게도 한 잔을 따라주고, 막내 소산에게도 잔을 들려주며 말했다.
"애비 앞에서 술을 배워야 나중에 술버릇이 좋다. 그러니 많이는 말고 몇 잔 마셔봐라."
"네, 아빠!"
뒤늦게 여드름이 나서 이제 겨우 치유된 막내 소산에게도 한 잔을 따라준 내가 잔을 치켜들며 말했다.
"자, 다 함께 건배 한 번 하자고. 건배사는 내가 할 테니, 모두 후창 하도록!"
"네, 형님!"
"네,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위하여!"
내 선창에 따라 모두 내 잔에 함께 잔을 부딪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입으로 술잔을 가져갔다.
모두 내 눈치를 보며 한 잔씩을 다 비우는데, 효정이 인상을 찡그리며 간신히 잔을 비웠다.
"효정이는 왜 표정이 그러니?"
"중국에서 몇 번의 술 마실 기회가 있어서 마셨는데, 그때는 아빠, 모두 독주였거든요. 그런데 막걸리를 먹으려니 좀 그러네요."
"더 마시기 쉽지 않니?"
"양이 많아서요."
"하하하........! 자고로 주당은 어느 술이든 가리면 안 된다."
"여자가 술 잘 마셔서 뭐하게요?"
"아무거든 잘 하면 된다."
"하하하.........!"
"호호호.........!"
내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리는데, 세 아내와 세 여동생이 함께 들어오며, 그 중에 수정이 말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세요?"
"자네 딸이 술이 약해서 큰일이야."
"쳇, 자네 딸은 또 뭐야? 벌써 취하셨어요?"
"농담이고. 자 당신들도 한 잔 받고, 내 동생들도 한 잔 받아야지."
"좋죠. 모처럼 막걸리 마셔보겠네."
막내가 대신 답변을 하는데, 명희가 말했다.
"잔이 없잖아요."
"아들딸이 마신 잔이니 그냥 그 잔으로 먹고, 너희들은 신랑들 술잔 받아들고."
"저는 신랑도 없잖아요."
막내 여동생의 말에 내가 말했다.
"너는 내 잔 받아."
"호호호.........! 없으니 덕 보는 것도 있네요."
"그게 덕이냐?"
"오빠의 잔을 받는 것도 영광이죠."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군."
나는 점잖게 말하며 각자의 잔에다 한 잔씩을 따라주었다.
"나도 한 잔 줘야지?"
"아빠, 여기요."
다정이 자신의 잔을 얼른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미정은 중산의 잔을 들고 있었고, 수정은 효정의 잔을, 명희는 소산의 잔을 받아들고 소산을 한창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명희를 보고 내가 물었다.
"왜?"
"고등학생이 무슨 술 이예요?"
"애비 앞에서 배우라고 내가 일부러 한 잔 따라줬어."
"그래요?"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르고........"
툴툴 거리는 소산을 향해 명희가 말했다.
"왜, 억울해?"
"아, 아니 예요."
명희가 노려보며 묻자 급 꼬랑지를 내리는 소산이었다.
"자, 한 잔씩 들자고."
"네!"
모두 잔을 치켜드는데, 수정이 나서서 말했다.
"우리의 1등 신랑을 위하여!"
질세라 막내 경자가 다른 건배사를 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오빠를 위하여!"
"위하여!"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비우지 않을 수 없었다.
술잔을 비운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잔이 부족하다."
"대접이 있으려나?"
"잔치 준비 때문에 차고 넘치는 게 대접 이예요."
둘째 경숙이 일어나며 하는 말에 미정이 답한 말이었다.
"고모, 제가 갔다 올 게요."
"그래? 그럼, 얼른 갔다 와."
"네, 고모."
다시 인정이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술잔이 오가는 가운데 어느덧 점심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좋은 날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