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314화 (314/322)

< --발해연방공화국 출범과 대정그룹-- >

"그렇습니다. 양국 소위에서 결정되어 내년 1월에 정식으로 기공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아예 두 개의 노선이 동시다발적으로 착공되는 것이죠.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원산, 저 북쪽 온성까지, 그렇게 되면 중국은 한국과의 교역도 수월해질 것입니다."

"허허.........! 이러다가는 양국의 교류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솔직히 아국의 군 수뇌부는 물론 미국과 일본, 심지어 러시아의 우려를 무릅쓰고, 최신예 전투기를 판매하는 것도 다 양국의 공동 발전이 기저에 깔려 있지 않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맞습니다. 하고 늦었지만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때문에 제가 나중에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독재자 일가족을 처형치 않고 중국에 넘겨줬으니, 역사와 일부 시민들의 단죄를 받아도 마땅하죠. 하지만 대승적인 경지에서 판단한다면 양국의 발전이 나는 더욱 긴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양국이 불편한 관계에 놓이고, 더 나아가 견원지간이 된다면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입니까? 궁극적으로 양국 국민에

게도 우리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죠. 안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그 일로 인해 양국이 다시 원만해졌으니, 역사에서도 그렇게 박한 평가를 받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말에 동의하시는 것이죠?"

"개발문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동의는 하나 우리의 여건이 좀 그래서 말이죠."

"그것도 우리가 개통을 한 후, 통행세로 벌충하는 방안으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로 압니다만?"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주석님께서 죽는 소리를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우리도 그 후의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쩐지 후진타오가 개방파로 돌아선 느낌에 내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어제 혹시 덩샤오핑 동지를 만나보셨습니까?"

"아니, 오늘 아침 일찍 만나보았습니다. 거기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중국은 죽으나 사나 발해연방과 손잡지 않고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하시며 더욱 굳건한 동맹관계를 구축할 것을 주문 하셨습니다."

나는 내심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이로 인해 중요 문제가 모두 타결되어 우리는 그다음부터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좀 더 가벼운 주제를 가지고 정상회담에 임할 수 있었다. 그를 반영하듯 후진타오가 농담 성 발언을 했다.

"각하의 따님이 중국에서도 유수의 명문인 베이징대 학생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따님의 명석함만이 아니라 양국의 발전에도 고무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여 매우 흐뭇합니다."

"하하하........! 자식 농사는 저도 제대로 지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하하하........! 이러고 보면 저도 팔불출이죠?"

"그렇지 않습니다. 각하! 팔불출이 아니라 부모라면 누구나 갖는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한 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효정아, 주석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도록 해라!"

"네, 아빠! 아니, 각하!"

내 말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효정이 단정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석님, 강 효정입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아니래도 너무 예쁩니다. 혹시 우리 중국 청년들이 구애하는 일은 없었습니까?"

"아빠가 시킨 과도한 경호로 인해 그럴 기회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보세요. 각하! 너무 하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넘보는 넘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요. 하하하........!"

"하하하.........! 부모의 마음은 알지만 이제는 좀 풀어주시는 게 어떠신지요?"

"안됩니다. 예쁘게 고이 고이 기른 딸에게 아무나 접근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아국이 아니니 경호에 몇 배 더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시겠습니다. 혹시 우리가 경호를 더 제공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아직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나 만약 그럴 필요성이 있다면 정중히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긴......... 양국이 불편한 관계만 아니라면 그럴 필요성이 없등록일 : 14.04.10 00:06조회 : 3298/3306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내 딸을 위해서라도 양국이 긴밀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큰 따님도 함께 오셨다면서요?"

"그렇습니다만, 오늘은 자리가 아니라서 참석하지를 않았습니다."

"함께 뵐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따 오찬장에는 데리고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네."

"내 또 한 번 단단히 눈요기를 하겠군요. 단단히 기대가 됩니다. 자매의 미모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면서요?"

"부모의 입장에서는 다 예쁘죠."

"하하하........! 하긴 그렇겠습니다."

"주석님께서도 현 영부인과 연애시절 서로 북경과 간쑤 성으로 떨어져 있어 애를 먹었다면서요?"

"그러고 보면 우리의 내자가 더 용감한 편입니다. 사랑이 더 깊었는지도 모르고요. 나는 당시 간쑤성 류지아샤 댐 건설의 일개 노동자였으나, 아내는 베이징 수리부 설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당에다 내가 있는 간쑤 성으로 좌천시켜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으니 말 이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대화의 분위기상 물어주었다.

"헌데 당에서는 제가 근무하는 류지아샤 댐이 아닌 빠판샤 댐으로 배치를 해버렸습니다. 해서 저는 현지의 당 간부에게 요청하여 간신히 그녀가 근무하고 있던, 빠판샤 댐으로 이직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주석님께서도 당시의 현지 간부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겠군요. 그렇지 않았으면, 빠판샤 댐으로의 이직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을 테니까요."

"그런 면이 좀 있었죠."

내 말에 겸연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후진타오였다. 우리가 이렇게 사담을 주고받다보니 처음의 서먹서먹했던 관계가 많이 풀리고, 이제는 서로 친근감을 느낄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후 우리는 바로 회담을 끝내고 오찬장으로 이동을 했다. 여기에는 나를 수행한 전 각료들은 물론 다정도 참석하여 후진타오는 물론 중국 측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찬을 끝으로 중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나는 바로 그날 오후 공군 1호기 편으로 귀국을 했다. 그 비행기에는 효정도 함께 타고 있었다. 학기말고사는 모두 끝나고 방학을 하려면 며칠 더 있어야 했지만, 모레가 할머니의 칠순 연이라 나랑 함께 한국에 가기 위해서였다.

두 해 전의 아버지 칠순 연은 내가 너무 바쁜 관계로 못해드리고, 두 분을 며느리들이 모시고 사이판으로 여행을 다녀오시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신 용돈은 두둑이 드렸다. 아무튼 하바롭스크로 돌아와 1박한 나는 그 이튿날 바로 한국으로 날아갔다. 사적인 방문이었기에 김포공항에 내리니, 사전 나의 지시로 온 가족이 이곳에 대기를 하고 있었다. 명희를 비롯해 아들딸들이 다 모여 있는데 오직 철산만이 빠져있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지금은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에서 동 학부 석사학위를 밟고 있어, 일시 귀국한다는 것을 공부에 전념하라고 내가 말린 탓에,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경호원 및 일부 수행원들과 함께 온 가족을 헬기 다섯 대에 나누어 태우고, 고향으로 날아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다섯 대의 헬기 로터 음이 작은 산골 마을에 울려 퍼지니, 온 동네의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나와, 우리가 헬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구경꾼 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는지 내가 제일 먼저 경호 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헬기에서 뛰어내리자, 굉장한 프로펠러의 바람 속에서도 두 분이 주춤주춤 다가오셨다.

이에 내가 빠른 걸음으로 두 분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위험합니다. 더 다가오지 마세요."

"그래, 그래."

어머니는 내 말에 아버지를 꼭 붙들고 멈추어 서셨다.

"건강한 두 분을 뵈니 기쁩니다. 더 오래 오래 사셔서 우리를 기쁘게 해주세요."

"그걸 우리 마음대로 하니........."

어머니 말씀에 내가 말했다.

"우리 곁에 오래 오래 머물러 계시는 것만 해도 우리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고요?"

"특별히 아픈 데는 없다 만은, 또 전신이 무기력한 게 그러니, 안 아프다고 할 수도 없다."

아버지 말씀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갑자기 어디 아프시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바로 헬기로 고양의 우리 큰 병원으로 바로 모실 테니."

"그래, 그래. 어서 들어가기나 하자."

"네, 어머니!"

우리는 곧 고향집으로 향하고 뒤이어 헬기에서 내린 가족들도 우리의 뒤를 따랐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곧 어머니 아버지를 아랫목에 모시고 나와 세 며느리들부터 합동으로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만수무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오래 오래 사세요!"

나를 따라 세 부인이 합창을 했다.

"그래, 그래. 너희들도 건강하고."

아버지가 흐뭇한 웃음으로 바라보시는데 반해 어머니가 답례를 하셨다.

이어 아이들이 한꺼번에 큰절을 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만수무강하세요!"

"그래, 그래. 이제 모두 다 컸구나. 우리 막내 소산이가 지금 몇 살이지?"

"고등하교 2학년 열여덟 살이 예요."

"그래, 그래 벌써 고등가고, 우리 다정이는 벌써 시집갈 나이가 다 된 것 아니냐?"

"아직 멀었어요. 할머니! 아빠 일 좀 돕다가 늦게 늦게 가려고요."

어머니의 물음에 다정이 살짝 홍조를 띠며 대답했다.

"그러면 안 되지. 네 아빠야 주변에서 어련히 알아서 도우려고. 너나 시집 잘 가면 되지."

"아니 예요. 할머니. 요즈음은 모두 시집 늦게 간다고요."

"그래도 빨리 가는 게 좋다."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그만 합시다."

아버지의 말씀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밥들은 먹고 온 게냐?"

"네!"

내가 재빨리 대답해 다른 사람들의 입을 봉하고 한마디 했다.

"동생들은 아직 안 왔어요?"

"오고 있는 중일 게다."

"수 천리 떨어진 사람이 먼저 오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걔들도 나름대로 다 바쁜 모양이더라."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동생들의 입장을 변호해주시는 어머니셨다.

"당신들도 나가서 일 좀 돕지?"

"네!"

"그러지 않아도 된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할 게다."

나의 말을 받아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려는 며느리들을 말리셨다.

"아닙니다. 우리 잔치인데, 동네 사람들에게만 맡기면 예의가 아니죠."

내 말에 어머니도 더 이상의 대꾸를 안 하시고, 아내들도 내심은 싫었겠지만 모두 밖으로 나갔다. 내 입장이 돈이 부족해 큰 가든 같은 곳을 빌려 하지 못할 처지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보다는 이렇게 부모님이 사시는 촌집에서 기름 냄새도 풍기고, 떡이라도 쳐서 서로 이웃 간에 따듯한 정을 나누고 싶어, 굳이 이 모양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제 어미들이 나가자 방에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아들딸들도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 새끼들 마냥 모두 밖으로 나갔다. 나 또한 일어나며 아버지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동네나 한 바퀴 돌고 올게요."

"그러려므나."

나를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일어나시며 답변을 하셨다. 밖으로 나온 내가 집 밖으로 나서자 사적인 일이지만 굳이 따라온 비서실장 올리비아가 뒤를 따르며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음. 동네나 한 바퀴 돌아보려고. 어디 변한 데가 없나하고 말이야. 이 고향동네라는 것이 말이야, 내게는 또 하나의 포근한 어머니 품속이거든."

"때로 저도 문득문득 고향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별로 행복했던 유년 시절은 아니었지만 요."

"그렇게 다 고향은 가난했거나, 부자였거나 그리운 법이지."

"각하!"

이때 조용히 내 뒤를 따르던 경호 실장 세르게이 쿠즈게토비치 예비역 중장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오?"

내가 멈칫 돌아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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