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경영--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헬기를 불렀다.
다섯 대의 헬기가 잠실 헬기장에 착륙했다.
우리는 곧장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향해 달렸다.
경호 차량까지 내 차를 중심으로 7대가 줄줄이 속도를 냈다. 여의도 행사장 내에는 모든 차량이 통제되어 전직 대통령들만이 승용차로 입장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버스에 실려 행사장으로 가는 길을, 우리는 교통 통제를 받으며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이윽고 행사장에 도착해 내가 승용차에 내리니 문민정부 첫 국무총리로 지명을 받은 황인성 국무총리가 나를 영접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답례를 한 나는 그의 안내로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식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전직 대통령 네 사람이 모두 단상에 앉아 있었다.
나의 출현에 전직 대통령 네 분은 물론 다른 사람 모두가 기립해 나를 맞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먼저 윤보선 대통령에게 먼저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덕분에 좋습니다. 늦게나마 공화국 대통령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셔서 국민 모두에게 기쁨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소이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건네고 이번에는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괜찮습니다. 오시느라고 고생 많았습니다."
"별 말씀을.........!"
가볍게 악수를 교환한 나는 옆의 전 통을 찾아갔다.
"아직도 백담사를 찾아준 정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하!"
옆의 노태우에게 들으라는지 뼈 있는 한 마디를 하는 전 통이었다.
"별 말씀을,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내 전부터 각하가 크게 될 줄 알았습니다. 발해공화국이라는 작명부터가 웅지를 품은 사내들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전 통은 엉뚱한 말로 화답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와 악수를 교환하고 옆의 노 통 곁으로 갔다.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 년이 한 십 년은 가는 것 같더이다."
전 통 같으면 이 대목에서 대소를 터트릴 일을, 미소로 마무리 하고 내 손을 잡는 노 통이었다. 내가 그의 손을 놓고 단상 우측으로 가는데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김영삼 대통령 내외가 마침 등단했다. 손을 들어 답례한 김영삼이 곧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별 말씀을. 좋은 꿈 꾸셨는지요?"
"밤새 잠 한 숨 못 잤습니다. 하하하........!"
가볍게 웃은 그가 곧 내 손을 놓고 단상 정면에 섰다. 나 또한 그의 가장 오른 쪽에 자리를 잡고 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곧 10시 정각이 되자 현승종 전 국무총리이자 취임준비위원전장의 개식선언에 이어 3군악대의 팡파르가 일제히 울려 퍼지며 취임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애국가 제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이어지고, 이어 대통령의 취임선서가 있었다. 이때 14대를 상징하는 1,400마리의 비둘기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다음으로 메조소프라노 김학남 씨의 '아침의 나라'라는 축가가 이어지는 동안에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졌다. 이어 김 대통령이 등단하여 '우리 다 함께 신한국으로' 라는 제목으로 20분간에 걸친 연설을 했다. 부정부패 척결, 경제회복, 기강확립이 주요 키워드였다. 곧 식이 끝나고 나는 물론 전직 대통령과 악수를 교환한 김 대통령이 자리를 뜨고, 나 역시 혼잡한 식장을 재빨리 빠져나와 역삼동 그룹 빌딩으로 돌아왔다. 그룹에는 이미 나의 지시로 내가 호출한 몇몇 사장단이 집결해 있었다. 나는 내 집무실로 그들을 불러들였다. 조선의 나승렬 사장, 대정항공의 이 시발 사장, 자동차의 세르지오가 그들이었다. 그들의 인사를 받은 내가 나 사장에게 시선을 주고 물었다.
"청진항에 건설하기로 한 조선소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비욘슨 부사장이 직접 가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인건비가 중국보다도 저렴하니 가장 기술력이 떨어지는 제품을 그곳에서 만들고, 그 다음은 대련, 한국의 조선소에서는 최첨단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쇄빙선이나 크루즈 선박을 만드는 것으로 운용 체계를 갖추고 있지요?"
"네, 회장님!"
"그렇게 되면 선박 건조에서는 인건비 때문에 밀릴 일은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전천후 경쟁력으로, 선발주자들을 곧 따라 잡고, 세계 제1의 조선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좋습니다. 이 사장님!"
"네, 회장님!"
나는 다음으로 대정항공의 이시발 사장을 불러 그에게 물었다.
"발해공화국 내 취항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회장님이 힘써 주신 덕분에 하바롭스크에서 모스크바, 서울, 북경, 동경, 뉴욕까지 취항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크게 남는 것이 없지만, 앞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기름 값이 대폭 오를 것이니, 항상 연비에 신경을 써서 모든 제품을 구매하시고, 또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네, 회장님!"
나는 끝으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자동차 사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현재 자동차 상황은 어떻습니까?"
"곳곳의 생산 현장이 흑자이나, 발해공화국 내 자동차 공장을 대우에게 내준 것이 좀 아쉽습니다. 우리는 러시아 현 시장의 높은 관세로 인해 부품을 들여다 조립해서 판매하는 실정인데, 현지에 공장을 세웠더라면 연방의 일원으로서 아무 제지 없이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하하하.........!"
그의 말에 내가 갑자기 대소를 터트리자 모두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잠시 후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앞으로 5년 안에 그것도 우리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네?"
세르지오뿐만 아니라 모두 내 말을 이해 못하고 또 다시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대로 그렇게 될 테니, 더욱 경영을 합리화 하고, 신차 개발에 주력하세요. 항상 최소연비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하고 자동차 디자이너들도 이제 제법 성장했을 텐데, 새 작품은 없습니까?"
"아직은 주력 차종들이 모두 잘 팔리고 있어, 그런 생각을 안 했습니다만, 신차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모처럼 만났으니, 같이 식사나 하러 갑시다."
"네, 회장님!"
우리는 곧 늦은 점심을 하러 나갔다. 이때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나는 이한구 그룹 전략조정실장을 부르도록 했다.
잠시 후, 이 실장이 헐레벌떡 식당으로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회장님!"
"그렇다면 잠시 거기 앉아서 들으세요."
"네, 회장님!"
이 실장을 내 앞에 앉힌 후 내가 말했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이 역삼동 공장도 대토를 구입해서 모두 지방으로 이전하도록 하세요. 단 그룹 빌딩만은 남겨 놓는 것으로 하고."
"갑자기........."
"경제를 모르는 대통령이 집무를 시작했으니, 임기 말에는 큰 환란이 닥칠 것입니다. 미리 미리 현금을 확보하는 차원입니다. 하고 주력 업종이 아닌 제지도 전부 매각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른 문제는 없죠?"
"네, 회장님!"
"그럼 가서 일보세요."
"네, 회장님!"
목례를 건넨 이 실장이 재빨리 식당을 벗어났다.
다음 날 오전 12시 나는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대를 받아 각료 및 수행원들과 함께 오찬을 겸한 확대정상회담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굴 깔보나 메뉴가 아주 가관이었다.
"스스럼없는 사이고 해서 주 메뉴로 칼국수를 준비했습니다. 싫으시면 다른 음식을 드셔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저도 칼국수 좋아합니다."
김영삼의 말에 나 또한 좋아하는 것은 사실인지라 그렇게 답변은 했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경제'의 '경' 자도 모르는 것이, 대통령이랍시고, 나라를 거덜 내는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선입관이 좋지 않은데다, 예우마저 이렇게 하니 더욱 기분이 나빴다.
나는 이 사람에게 맺힌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전생에 이 사람에 의해 기업은 부도가 나고, 가정도 파탄 났다. 꼭 이 사람 때문은 아니지만 갑자기 잘 돌아가던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니, 어음으로 받았던 나는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는 것도 모자라 빚쟁이가 되었고, 나뿐만 아니라 10만 이상의 가정이 파탄 났으며, 승승장구하던 사람들이 이 고통을 못 이기고 자살한 사람은 또 그 얼마이던가?
나는 표정관리를 하느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테가 나는지 김영삼이 물었다.
"공연히 칼국수를 준비했나요?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딴에는 친밀감의 표시로........."
제 딴에는 친밀감의 표시인지 몰라도, 나는 그와 별로 친하지 않다. 내가 한국에서 대기업을 꾸려가느라고 어쩔 수 없이 야당정치인들에게도 정치헌금을 한 것은 사실이나, 내 손으로 직접 건넨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그를 사석에서 만날 일도 없고, 그가 간혹 초대를 하곤 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결코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그룹에서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갔으니 딴에는 친밀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민주화에 헌신한 점은 인정하나,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은 특히 그 끝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그저 웃는 것으로 간접 답변을 하고 묵묵히 칼국수를 드는 데 그가 말했다.
"평양의 김 주석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북화해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문민정부의 방침을 감안해, 김 주석을 좋은 말로 타일러, 정상회담에 응하게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일개 기업인이 북쪽의 수장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도 나를 깔보는 마음이 있는지, 나를 예우하는 존칭은 항상 생략되어 있었다. 내가 왜 그걸 못 느끼겠나. 그렇지만 이를 내색하면 정말 소인이 되는지라, 나는 더욱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거들지 않아도 김 주석의 마음을 보니 정상회담이 성사 되겠더이다. 하니 너무 걱정 마시고 일단 추진을 하시죠. 하지만 아마 그 사람의 하는 짓으로 보아, 여러 조건을 달고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헌데, 정말 남북의 통로가 열리기는 하겠습니까?"
"제 기자회견 내용 못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한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할 것입니다."
"허허........! 그것 참..........!"
칼국수를 먹는 것도 잊고 쓴 입맛을 다시는 김영삼이었다.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귀국과 아국의 군사동맹을 체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내용도 기자회견 내용에 나오는 것으로 아는 데요? 러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곤란한 제 입장임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운하지만 북한을 견제는 해주실 수는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저는 근린 이웃과 선린우호 및 평화관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곧 중립에 가깝다고 보시면 큰 하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 참..........! 큰 기대를 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김일성이 함부로 경거망동을 하지는 못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내 취임식 날에도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들이 핵개발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여러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협상에 임해도 그것은 그들 나름의 시간 벌기지, 결코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못 들어보셨습니까?"
"글쎄요.........?"
믿고 싶은 것인지, 내 말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 하는 김영삼이었다.
"제가 외람되지만 몇 가지 제언을 드리려합니다."
내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예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하는 김영삼이었다.
"말씀하시죠. 각하!"
모든 것이 자신의 기대와는 어긋나자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그의 입에서 결코 뱉고 싶지 않은 말이 터져 나왔다.
"역사적으로 봐도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심심찮게 우리를 건드리는 역사적 망언을 하지 않습니까?"
"그랬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것을 되받아,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너무 직설적인 언사는 자제해 주시는 게 좋은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예를 들면 '이참에 버릇없는 일본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주겠다'는 등, 너무 노골적인 언사는 지양해 달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위의 예를 든 말이 김영삼 입에서 나오는 바람에, 일본 조야가 발끈해, 단기성 자금을 일시에 회수하는 바람에, 환란의 한 단초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기에, 내가 이런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경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그야, 당연하지요."
"특히 임기 말에 외환보유고에 절대 신경을 쓰셔야 할 줄 압니다."
"그 정도까지 예측이 가능하십니까?"
"대기업 회장들을 만만히 보지 마십시오. 때로 그들의 정보와 판단이 우리나라 안기부를 뛰어넘을 때도 많습니다. 거시경제를 모르고 어찌 미시경제를 운용한다는 말입니까? 제 말을 허투루 듣지 마시고, 이 나라 국민 모두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우를, 절대로 범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모양새가 어째 내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것이 역력했다. 아니 이제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었다. 이 모양에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나는 굳게 입을 닫았다.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