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96화 (296/322)

< --북방경영-- >

그로부터 한 달여 후, 즉 해가 바뀐 1993년 1월 중순이었다.

한국에서는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최초의 문민정부를 세우네, 어쩌고저쩌고 할 때 나는 북방의 절정의 추위를 피하듯 외국 순방길에 올랐다.

내가 제일 처음 방문한 나라는 빌 클린턴 신정부가 출범한 미국도 아니고 바로 밑의 북한이었다. 발해공화국의 출현에 제일 불안해하고 사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우려를 불식시키고 몇 가지 협의할 점이 있어 김일성의 초청 형식으로 북한으로 국빈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 번 방북에는 해당 관료는 물론 대규모 수행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이 평양 순안 공항에 내리자 김일성이 노구를 이끌고 직접 마중을 나와 그들의 우려와 관심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각하!"

"몸소 환영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하하.........! 각하도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예의가 밝지 않습니까? 자, 우리 의장대를 사열할까요?"

"감사합니다. 주석동지."

나는 김일성에게 예를 표하고 그가 안내하는 대로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지는 속에서 인민무력부 소속의 의장대를 사열했다. 그리고 우리는 곧 그가 안내하는 승용차에 올라 주석궁으로 향했다. 나란히 함께 동승한 김일성이 가는 차내에서 내게 말했다.

"남조선 대기업 회장 신분으로 우리 북조선을 방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발해공화국의 수반으로 방문하시니, 참으로 사람의 앞날은 알다가도 모늘은 발해공화국의 수반으로 방문하시니, 참으로 사람의 앞날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군요."

"그래서 인간지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러게나 말이오. 그러나저러나 남포 공단이 순조롭게 돌아가서 그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동감입니다."

"각하! 저 창밖을 보세요. 저 열광하는 인민들을.........!"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지나가는 연도에는 수제 붉은 꽃을 든 동원된 북한 인민들이 꽃을 흔드는 것도 모자라 펄쩍펄쩍 뛰고, 심지어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보고 나는 내심 냉소하면서도 겉으로는 예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렬한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각하를 맞는 우리 인민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환영인사입니다."

"거듭 감사를 드리오."

"각하가 오시니 날씨마저 한결 포근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오."

나는 김일성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것으로 화답하며 평양 창광거리를 지났다.

이윽고 우리는 주석 궁으로 들어가 그의 집무실 옆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본격적인 정상 회담에 임했다. 물론 그 전에 대형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한, 단체 또는 두 정상 간의 기념촬영이 있은 뒤였다.

나의 요청으로는 우리 측에서는 김경제 비서실장이 배석했고, 북한에서는 김정일 서기가 참석해 곧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미 실무선에서 대강의 의제가 조율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화는 좀 더 편안했다.

"우리가 발해공화국에 요구하는 것은 상호간의 불가침조약입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상화군사원조 협정을 체결하면 더욱 좋고요."

대좌하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가는 김일성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고 나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우리는 나진선봉항의 50년 조차를 원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공화국은 부동항이 부족합니다. 그나마도 추위가 심한 해는 일부 얼기도 하니, 고민이 많습니다."

"서로 이를 맞바꾸는 것은 어떻습니까?"

김일성의 말에 나는 모른 척 나의 요구사항만을 나열했다.

"그리고 북조선의 철로를 복선화해 남한과 연결하고, 가스관 북한통과를 보장해 우리가 한국에 팔아먹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의 말에 김일성이 말했다.

"그 모든 것이 두 공화국 간의 관계가 원만해야 처리될 사안이니 상호불가침조약부터 체결합시다."

이에 내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변했다.

"주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러시아 연방의 일원입니다. 상호 간에는 이미 불가침조약이 아니라 군사조약이 체결된 것으로 아는데요?"

"그나마도 옛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러시아는 상호 군사원조 조약을 얼마 전에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아주 냉담합니다. 아무튼 국제사회는 발해공화국이 군사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러시아 연방이라기보다는 일개 국가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해서 각하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방적일 수는 없으니, 서로의 요구사항을 한꺼번에 탁자에 올려놓고 통 큰 거래를 하자는 것이 제 이야기의 취지입니다."

"흐흠.........! 그렇다면 거기에 남북한과 연결할 8차선 고속도로를 끼워 넣읍시다."

"그럼, 우리의 전력난도 좀 해결해 주십시오. 가스관 통과료라 해도 좋고, 해서 100만 메가와트 급2기의 발전소 건설을 우리는 요구합니다. 또한 경협도 좀 더 확대해서 우리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시면 더욱 좋고요."

"좋습니다. 청진이나 원산쯤에 대규모 조선소 하나를 건설하기로 하죠."

"거기에 더하여 우리 노동자들이 발해공화국이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작년 남한기업과의 경협 뉴스를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그 발표만으로도 약 20만을 헤아리는 옛 소련 연방내의 고려인들이 우리 발해공화국으로 몰려오고 있고요. 재중 동포들도 상당수가 이주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는 것은 부지기수고 요.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부족할 것인즉, 북한 인민들도 나중에는 대거 고용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타결 짓는 것으로 하죠."

"발전소 건설은 남포에 30메가와트 급 화력발전소 3기, 청진에 30메가와트 급 3기를 가스 및 석탄 겸용 화력발전소 3기를 건설하는 것으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각하!"

"전기를 포함한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건설하고 이용자들에게 돈을 받는 방식으로 해야겠지요?"

"발전소 건설은 무상으로 좀 해주시고, 나머지는 당장 우리가 돈이 없으니 그렇게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허, 그것 참.........."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잠시 망설이던 내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죠."

"감사합니다. 각하! 이 모든 것을 문서로 보장하고 서명하실까요?"

"아시다시피 우리가 어찌 됐든 러시아연방의 일원인 것만은 확실하니, 상호 불가침조약은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해서 문안을 좀 조정합시다. 상호 선린 우호관계 속에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표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 부분은 그렇게 합시다."

"김 서기님이 들으셨습니까?"

아버지 앞이라 한마디 말도 없이 경청 만하던 김정일에게 내가 불쑥 물었다. 이는 김일성의 수가 내년 7월까지임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물은 물음이기도 했다.

"네, 각하!"

김정일의 대답에 내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는 김 비서실장을 바라보고 물었다.

"비서실장님은 하실 얘기 없습니까?"

"고속도로 부분에서 개성 아니 판문각에서 평양까지는 8차선, 나머지 원산과 두만강까지는 6차선, 또 평양에서 신의주까지는 6차선으로 확실히 못 박는 게 좋겠고요. 여기에 관련해 주석님께 한마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가스관이야 통과해서 남한에 팔면 큰 문제는 없겠으나, 철도와 고속도로망도 남한과 연결하실 의향이신지요?"

"그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사항이므로 당연히 우리가 결정해야할 것으로 압니다. 즉 남조선과의 협상으로 우리가 가부간에 결정을 짓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내가 침음하며 말했다.

"흐흠........! 물론 귀국의 주권이므로 뭐라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나,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한은 물론 우리까지 연결이 되어 서로간의 경제가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하의 뜻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적극 반영할 것이나, 이는 전적으로 남조선이 어떻게 나오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가급적 연결하셔서 민족의 공동 번영을 도모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오찬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곳으로 가실까요?"

"그럽시다."

이때 김정일이 나서서 제 아버지에게 물었다.

"오후에는 확대정상회담인데, 저는 빠지면 안 되겠습니까?"

"왜,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소?"

비록 아들이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공대를 하는 김일성이었다.

"영화촬영소를 방문하게 되어 있어서........."

"그딴 일이 뭐가 중요하오. 참석하는 것으로 하오."

"네, 주석님!"

찍 소리 한 번 못하고 아버지의 명에 순응하는 김정일이었다. 나는 내심 웃음이 나왔으나 꾹 참고 이들과 함께 오찬장으로 향했다.

오후 확대정상 회담을 끝낸 나는 일정에 따라 헬기로 남포공단을 방문했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가 건설한 전자공장은 물론 대우가 건설한 섬유, 신발, 피혁 공장까지 일일이 둘러보고, 공장 관계자는 물론 일하는 여공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또한 순조롭게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나는 우리가 요구한대로 생산 되어 나오는 제품에 대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 저녁때가 다 되어 다시 평양으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곧 김정일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밤 9시가 되자 우리 일행은 그들이 지정해준 백화원 초대소로 돌아와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9시가 되자 나는 다시 김일성의 주석궁을 방문해 잠시 환담을 나누는 것을 끝으로, 북한에서의 공식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사실 김일성은 며칠 더 머물기를 원했지만 현안이 산적한 나로서는 한가롭게 이곳에서 그들이 권하는 묘향산이나 금강산 관광을 즐길 여가가 없었다. 아무튼 우리 일행이 일본 동경 공항에 내리니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수상이 영접을 나와 있었다.

"반갑습니다. 수상 각하!"

"어서 오세요. 대통령 각하!"

우리는 격식에 맞게 인사를 나누며 함께 곧 바로 그들이 대령한 승용차에 올랐다.

예우보다는 실무 방문을 선호한 나의 요청에 따라 우리는 곧 일왕을 예방하고 단독 정상회담에 들어갔다. 물론 이 자리에는 통역 요원은 물론 김 비서실장과 상대측에서는 관방장관이 배석했다.

"각하의 방문에 흐리던 날씨마저 쾌청하게 개었으니, 이는 양국 관계를 상징하는 길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볍게 날씨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일본 수상의 말에 나도 날씨로 가볍게 응수했다.

"북국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 오늘 동경 날씨가 제법 춥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봄날의 날씨처럼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하하하.........! 그러시겠지요.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자산들을 모두 잊고, 불평불만으로 한 세월을 지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동감입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실 까요?"

"그럽시다."

우리는 잠시 내온 차로 목을 축이며 본격적인 대화에 돌입했다.

============================ 작품 후기 젠장, 젠장......... 어제 인수인계를 하러 나갔더니 인수할 사람은 없고, 미안한지 사장이 술만 한 잔 사주어, 생각지도 않은 술만 한 잔 얻어먹고 왔다는......... 아무튼 새롭게 시작하는 이 사월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