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경영-- >
고르바초프로 말하면 소련의 서기장을 시작으로 하여 종국에는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었다. 끝에 가서 쿠테타가 일어나기도 하고 해서 체면을 구기도 했지만, 다시 정식 독립국도 아닌 곳의 총리를 지낸다는 것 또한 그의 체면을 구기는 일인지라, 내 제안을 처음에는 마뜩치 않게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각하가 개혁개방을 시작함으로써 러시아 국민은 비로소 참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식과정에서 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극동공화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모두 혼란과 궁핍으로 내몰렸습니다. 애초 각하의 의도는 이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애초의 의도대로 각하의 경륜을 살려서, 모두 풍요롭고 자유를 만끽하는 세상을, 이 나라의 동쪽 끝일망정 만들어 주십시오. 저는 각하가 틀림없이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실 것을 믿고 있고, 또 그렇게 해주시라 믿고 찾아왔습니다."
내 말이 설득력이 있었던지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던 고르바초프가 내게 물었다.
"내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주는 것이오?"
"내각의 수반이고 저 외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아니겠습니까?"
나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그가 원하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해갔다. 그래도 총리라는 직책이 썩 나쁜 자리는 아니었던지 고개를 끄떡이며 그가 말했다.
"좋소. 내 그대의 성의와 믿음을 보아서라도 최선을 다해보리다."
"감사합니다. 각하!"
"하하하.........! 각하 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은 이제 내가 아니라 당신이지요. 고맙소, 각하!"
아직은 어색한 반 공대의
'각하!'
소리지만 나는 그래도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새삼 나는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다음으로 부총리인 서 석준 씨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전두환 정권 때, 부총리로 낙점이 되어 아웅산 묘소 참배 시에 희생되는 분으로, 그 전에 내가 모신 분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다음으로 총무처 장관으로 내정한 이 범석 씨는 최소한 외무부장관 내지는 총리에 기용할 분이었으나, 여러 나라의 지지를 이끌어내려 하다 보니,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인사의 중요성을 감안해 총무처 장관에 기용된 분이었다.
국방부 장관에 이미 기용된 빅토르 이바노비치 노보질로 대장은 아직 정권이 취약한 나로서는 그의 군내 기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기용된 인물이었고, 내 경제특보 겸 재무부 장관에 기용된 김재익 전 기획실장은, 나에게 정책을 조언하고 나라의 곳간을 맡긴다는 의미가 컸다.
외무부 장관에 기용된 조지 슐츠 역시 어렵게 기용된 분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를 만나자마자 마음을 열고 솔직히 토로했다.
"역사상 있을 수도 없는 횡재수에 가까운 우연으로 극동공화국이라는 억지춘향의 준 독립국가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장차 얼마를 갈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을 잘 살게 해주면 그 생명이 길 것이요. 아니면 단명할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보는 잘 살고 못 사는 성패는 오로지 외자유치에 달렸습니다. 서방의 자본이 많이 들어와 준다면 성공할 것이고, 아니면 실패해 다시금 이 나라는 북극곰의 품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해서 저는 오랜 경륜의 고문님의 외교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또한 전략무기까지 손에 쥔 아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나라에, 고문님은 미국과 서방을 안심시키는 안전핀이기도 합니다. 하니 제 뜻을 수용해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허허........ 이거야, 원.........."
그것이 반승낙이었고, 거기에서도 내가 물러서지 않고 그래도 계속해서 격정등록일 : 14.03.28 12:52적인 열변을 토하니, 마지못한 듯 외교 장관 자리를 승낙한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내무부 장관에 기용된 예브게니 바자노프는 역사학 박사로서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해서 그는 러시아는 물론 외교 무대에서도 일정 량 이상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아직 공고하다 할 수 없는 러시아 내에 우리 공화국의 입지를 다진다는 의미아직 공고하다 할 수 없는 러시아 내에 우리 공화국의 입지를 다진다는 의미에서 기용된 사람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에 기용된 아나톨리 소프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푸틴의 이야기부터 풀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공화국 내에 정보부를 창설할 때에 제1감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원 역사에서 러시아의 후일 대통령이 되는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그래서 그의 행적을 수소문하다 보니 그는 15년간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외국 정보 담당관으로 일했는데, 그 가운데 6년은 독일민주공화국(동독) 드레스덴에서 근무를 했다. 중령으로 진급하면서 KGB 현역에서 물러났고, 1990년 러시아로 돌아와 레닌그라드국립대학교의 총장 보좌역이 되어 대학의 대외업무를 책임졌다. 등록일 : 14.03.28 12:52조회 : 4992/5002추천 : 180선호작품 : 7443(비허용)말이 대외업무이지 주로 그는 학내에서 대학생을 KGB 요원으로 선발해 양성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러던 시기에 마침 최초로 실시되는 민주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아나톨리 소프차크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에 당선되어, 푸틴은 그의 요청에 의해 보좌관이 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 내가 찾아가 설득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푸틴과 소프차크의 관계인데, 푸틴이 레닌그라드 국립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 할 당시 각별한 신임을 준 스승이 이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부름에 흔쾌히 응한 푸틴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소프차크는 러시아 연방법을 제정할 때의 제정위원의 한 사람이기도 한 명성 있는 법률가로서, 고심하는 그를 어렵게 모신 분이었다.
푸틴을 추적하다보니 그의 애제자 중 또 한 명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역시 푸틴의 권유로 그 산하에서 법률전문가로 일하고 있어, 소프차크를 설득하는데, 더욱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내가 당신이 주창하는 다당제와 시장 경제를 종국에는 실현시키려 하오. 더구나 두 애제자가 나의 내각에서 모두 요직을 맡았습니다. 하니 현 시장 직을 버리는 것이 아깝기는 하지만, 아직은 취약한 극동공화국의 법률제정에 초석이 되어 주시오.'
나의 설득과 애제자들의 면을 보아 어쩔 수 없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직을 버리고, 우리 진영에 합류하게 된 소프차크였다.
다음으로 교육부 장관에 기용된 전 연세대학 교수 김동길 씨는, 연세대 교수시절 유신독재에 항거해 옥고를 치른 그의 공을 높이 샀다. 훗날 현실 정치에 뛰어들고, 야당과 대립각을 세운 점은 찬성하지 않지만, 자신의 신념대로 산 점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주고 싶었고, 또한 근본적으로 반공주의자여서, 아직도 공산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제대로 자본주의 교육시켜 달라는 청을 해서 어렵게 모신 분이었다.
다음으로 상공부 장관에 기용된 와타나베 도시오라는 사람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단지 내가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일국교 정상화 이래 한국 대통령과 최초로 한일 정상 회담을 했고, 지한파로 활동했던 나카소네 야스회로를 고문으로 모시는 과정에서 그의 추천으로 기용된 사람이었다.
친한파라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카소네가 극우보수주의 자는 점에서는 나는 그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일본 자민당 내에서도 아직 일정 지분이 있는 그를 우리 진영에 끌어들임으로서, 일본의 자본이 마음 놓고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려는 유인책의 결과가 그였고, 그의 추천이 한 사람의 장관을 낳게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의 추천으로 이 사람에 대해 알아보니, 동남아의 경제발전 과정 특히 한국의 발전과정에 매료되어, 이 분야에 여러 권의 책을 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후진국에서 중진국 내지는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고찰이 극동공화국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나는 나카소네의 추천도 있고 해서 두 말 않고 기용한 사람이었다. 교통부 장관 오명은 우리 그룹의 정보통신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지만, 원 역사에서 체신, 교통, 건설부 장관까지 지낸 분이고,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라 내가 이를 높이 사 교통부 장관에 기용한 인물이었다. 다음으로 농축산부 장관에 기용된 원자바오는 내가 우리나라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쓰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근린 국에 하나씩 배정된 자리의 일환 중, 기왕이면 나와 친분이 있고, 훗날 중국 총리로서 경제 분야에 관여하는 그를 택해, 강택민과 조율한 결과물이었다. 다음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에 기용된 노무현 씨는 이 자리에서 더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분이라 할 것이다. 원 역사에서도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현 13대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현재는 야인으로 지내고 있는 분을, '백성과 만민' 이라는 말로 설득한 분이었다.
나는 이분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소탈한 서민적 풍모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견지한 점을 높이 사 기용했고, 훗날의 인연을 만들고자 하는 나의 다분한 의도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부 장관에 기용된 김종훈은 박근혜 정권에서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물망에 올랐다가 자진 철회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 또한 깜짝 발탁한 사람의 하나인데 현재의 나이가 나보다도 네 살이나 더 어려 31세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년에 신뢰성 공학 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최초로 박사 학위를 획득하고 현재는 유리시스템즈라는 벤처 기업을 창업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14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 숱한 고생 끝에 이만한 성취를 이루었고, 미래 한국인으로서는 희귀하게 벨연구소 소장 직 까지 맡을 정도로 업무에 대한 열의와 열정을 높이 사 기용했다. 또한 미국 조야에 보내는 사인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완의 대기를 너무 일찍 기용해 싹을 자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기용한 한 명숙 씨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무총리에 기용된 사람으로서 참여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을 지낸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 분을 사회활동가로서 높이 평가 했다기보다도, 이화여대 불문과 재학시절 결혼한 남편이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자, 13년간 헌신적으로 옥고를 뒷바라지한 여성으로서의 헌신성과 정절성을 높이 사 기용했다. 이것이 나의 괴변일지라도 실제, 그런 면을 높이 사 기용한 것이 맞고, 또 아국민의 여성들에게도 여자도 노력하면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본보기라 하겠다.
건설국토개발부 장관 홍성부 씨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이 이 분야의 적임자였다. 내 사업 초장기에 내게 많은 도움을 준 인연으로 만나, 우리 그룹의 건설을 세계적인 기업이 되도록 키운 열정과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니,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환경부장관 강금실 씨는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으로 깜짝 발탁된 분으로, 그 이미지가 강렬해 내 머리에 오랫동안 남았던 사람으로, 현 판사직을 때려치우게 하고 어렵게 모신 분이었다. 이 분 역시 이 분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개혁적 마인드와 참신성, 아국 여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있어 기용했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끝으로 노동부 장관에 기용된 김정우라는 인물은 북한인으로, 지난번 내가 평양 방문 시 만난 대외연락부 부부장의 직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북한에게도 적대하지 않는다는 사인을 보내기 위해 배정된 한 석 중에서, 앞으로 이 나라가 발전하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할 것은 당연지사, 이 과정에서 북한 노동력을 원활하게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겼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 특별고문과 내 측근에서 근무할 사람들만 남았다. 특별고문: 나카소네 야스히로, 캐스퍼 와인버거. 비서실장: 김경제경제특보: 김재익경호실장: 세르게이 쿠즈게토비치 중장정보부장: 블라디미르 푸틴통역실장: 이오노바대변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위에 언급한 면면들을 보아 알겠지만 모두 언급했거나 알만한 인물이고, 이오노바 역시 나의 전담 러시아 통역으로 그 밑에 올리비아 리, 방령 외에 30여 명의 통역원을 수하에 거느리게 된 사람이었다. 또한 이들 셋은 그룹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서직도 겸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조각은 완성되었고 이들을 단상에 배석시킨 나의 취임식이 조촐하게 거행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