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84화 (284/322)

< --북방경영-- >

나의 예상대로 의회 통과는 순조롭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개혁파와 보수파의 의제 발언에 이어 설전이 지루하게 지속되는 가운데 오전 회의를 마쳤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부터 속개된 회의도 설전의 연속이었다.

설전의 주 의제는 다름 아닌 군의 통수권까지 준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보수파의 주장은 군 통수권까지 극동공화국에 준다는 것은 말이 자치지 사실상의 독립을 시키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주장이었고, 개혁파는 분명 극동공화국은 우리에게 20%의 세금을 납부하는 자치주이며, 200억 달러의 차관 제공으로 인해 우리가 서방 경제에 예속되지 않게 해주는 공이 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섰다. 급기야는 보수파 중 일부의 극력분자들이 퇴장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과반수 이상의 출석에 2/3 이상의 찬성으로 어렵게 '극동자치공화국입법'이 러시아 하원인 듀마를 통과했다. 솔직히 나는 하원 통과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원은 옐친의 개혁파가 과반수에도 약간 못 미치는 의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르비와 체르노미르딘 총리 측 하원의원들을 동원한 밤샘 달러의 융단폭격에 남아있는 자들은 이번 건에 한해 반란을 획책한 것과 다름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한 고비만 남았다. 상원 통과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상원은 통과를 걱정하지 않았다. 하원과 달리 상원은 개방파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을 긴장한 채 꼬박 주시하고 있던 나는 고르비의 통과 소식에 긴장이 일시에 풀리며 잠시 허탈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나는 30분 후 바로 몸을 추스르고 갑자기 전 수행원을 집합시켜 하바로브스크로 날아갔다. 이곳이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극동공화국의 수도가 될 예정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이곳에 러시아 극동군 사령부가 있었기 때가 될 예정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이곳에 러시아 극동군 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나는 무엇보다 제일 먼저 군을 신속히 장악할 필요가 있어 이곳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즉흥적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그룹에서는 이 작전을 위한 단계별 시나리오와 로드맵이, 기획실 주도로 상당히 자세히 짜여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밤샘 비행 끝에 하바로브스크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주지사실로 당당하게 쳐들어갔다. 나는 비행기 내에서 지난밤 9시를 기해 상원까지 극동공화국자치입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뉴스는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곧바로 러시아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타전되어 일거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빅뉴스가 되었다. 이 뉴스가 전 세계로 타전되자마자 이 지역에 민감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이해당사국들 정상들의 전화가 나예게 빗발쳤다.

한국의 노 통을 필두로 어떻게 알았는지, 북한의 김일성, 일본의 수상은 물론 미국 대통령, 중국의 주석, 하다못해 몽골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내 위성전화로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왔으나, 나는 일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취침하고 있다는 핑계로 모든 전화를 차단시켰던 것이다.

나에 의해 세계 질서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주지사실로 쳐들어가자마자 그의 인사를 받는 등 마는 등하고,는, 바로 극동주둔 사령관과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함대 사령관부터 호출하도록 했다.

내 명에 하바로브스크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령관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전화를 건지 채 30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충성!"

오십 줄의 늙은(?) 군인이 나를 보자마자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반갑습니다. 사령관 각하!"

나는 그를 크게 예우하며 '각하'라는 경칭까지 사용했다. 그러나 늙은 군인은 우쭐하지 않고 자신의 관등성명부터 대었다.

"극동군 방위집적 사령관 상장 빅토르 이바노비치 노보질로입니다. 각하!"

"아무튼 반갑습니다. 거기 자리에 좀 앉으시죠."

"네, 각하!"

나는 새삼 그의 손을 굳게 잡은 채 주지사 집무실의 소파에 그를 직접 데리고 앉혔다. 비로소 손을 놓은 내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의도적으로 제일 궁금한 사항은 배제하고, 그들과 관련 있는 것부터 물었다.

"요즘 군의 보급실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보급 상태가 어떻습니까?"

"하사관은 물론 장교 등의 월급이 반 토막 난지는 6개월이 지났고, 3개월 전부는 월급 구경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허, 허! 그렇게 심각합니까?"

"가감 없는 진실입니다. 각하!

"우려스러운 상황을 넘어 이건 큰일 날 이로구료."

"그렇습니다. 각하! 이러다가는 자체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각하!"

"그렇다면 보나마나 병사들의 보급 상태도 엉망이겠습니다, 그려?"

"그렇습니다. 각하! 각종 생필품은 물론 식량과 부식마저 예전의 절반 수준입니다."

"허허, 그것 참! 아무튼 좋습니다. 내 이 극동군을 인수받은 이상, 밀린 월급을 소급해 지급함은 물론, 앞으로의 월급 또한 매달 정상적으로 지급할 것입니다."

"정말이십니까? 각하!"

"허허, 속고만 살았소?"

"아, 아닙니다. 믿겠습니다. 각하! 앞으로 극동군은 그 어느 사람의 명령도 일체 듣지 않고 각하께만 충성을 받치도록 하겠습니다. 각하!"

"당연히 그래야지요. 내 궁금한 것이 있는데, 실제 지금 군의 전력은 얼마나 되오?"

비로소 나는 내가 제일 관심을 갖고 있는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았다.

"이곳 하바로브스크 및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 15개 사단 16만 명이 주둔해 있고, 사할린에 2개 사단, 캄차카반도에 1개 사단, 북방4개 도서에 1개 사단 해서 총, 19개 사단 20만 명이 주둔해 있습니다. 이는 올봄의 군 감축 계획에 따라 12만 병력이 줄어서 그렇습니다."

"전력은 얼마나 되오?"

"러시아 공군 전력의 약 1/4이 이곳 극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폭기 1천600대, 폭격기 450대, 초계기 160대로 반수 이상이 MIG 25, 27 또는 SU24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알렉세예프스키야 해군기지에는 백파이어 전략폭격기 2개 비행대대 50대가 배치되어, 일본과 중국은 물론 필리핀까지 작전반경에 넣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대륙 간 공격이 가능한 초음속폭격기 블랙잭(다탄두 핵미사일 6기 탑재) 8대를 배치 완료한 바 있습니다. 또 SS20미사일 180기를 12개 관내 기지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육군 전력으로는 4개 사단이 기계화되어 있으며, 스페츠나츠 2개 여단이 관내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여타 사소한 전력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하군, 대단해요! 하하하........!"

가공할 전력이 하루아침에 내 수중에 들어오자 나는 그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어 대소를 그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내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정색을 하고 차갑게 말했다.

"저는 좀 속된 말로 군을 돼지라 보고 있습니다."

"네?"

나의 말이 너무 뜬금없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는 노보질로 상장(우리나라 중장)이었다.

"돼지를 왜 평소에 공들여 키웁니까?"

"그야 잔칫날 잡기 위함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군을 유지하는 것은 유사시에 써먹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각하!"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 얼마나 대비태세와 전시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 보기위해, 어느 날 불시에 작전 명령을 하달해 3주간의 야외기동훈련을 하겠습니다. 가상 적국은 한국입니다."

"네?"

"뭐가 잘못 됐습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한국인이라서 설마 한국으로 가상적국으로 삼을 줄은 몰랐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각하!"

"만일 한국이 위협대상이라면 가차 없이 공격을 해야죠. 무슨 말인지 아시죠?"

"네, 각하!"

나의 말에 비장한 표정이 되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로 복명하는 노보질로 극동군 사령관이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빈말로 그의 깍듯한 인사를 받는 것이 내심 미안했지만 겉으로는 일체 내색하지 않았다.

"내 할 말은 다 했습니다. 돌아가시거든 바로 밀린 월급과 병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 그리고 교체할 장비가 있으면 뽑아오도록 하세요. 그 중에서 장비 교체는 조금 시간을 늦추어도 되니, 군의 사기에 관계되는 것부터 속히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네, 각하!"

나도 자리에 일어나 새삼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앞으로 자주 뵙시다!"

"우리 군은 각하를 위해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충성!"

"고맙습니다. 충성!"

나 또한 그의 인사를 미소 띤 얼굴로 거수경례로 받았다.

그로부터 30분 후.

생각지도 못한 빠른 시간에 이번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모항으로 하는 태평양함대 사령관이 집무실에 나타났다. 그의 번쩍이는 계급장을 보고 나는 그가 태평양함대 사령관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또한 별 세 개가 번쩍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성! 태평양함대 사령관 이고르 흐멜 노보일로프 상장 각하께 신고합니다! 충성!"

"반갑습니다. 무척 빨리 오셨군요."

"전투기를 타고 왔습니다. 각하!"

"하하하........! 성격 한 번 급하신 양반이로군요."

나의 말에도 아직 굳은 얼굴로 전면만 바라보고 있는 노보일로프 상장이었다.

"내 듣기로 선상 반란은 물론 무기 밀매 사건도 있었다는 것으로 압니다만?"

"불미스럽지만 보급과 월급이 끊어져 지난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보급과 월급 지급이 원활치 않지요?"

"그렇습니다. 극동군 주둔 육군과 같이 저희 또한 월급 못 받은 지가 3개월이 지났고, 부식 및 생필품 또한 엉망입니다."

"허,허! 이런, 이런..........! 알겠습니다."

"내 밀린 월급까지 모두 소급해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병사들의 생필품과 부식의 질 또한 대폭 개선하고 풍족하게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각하! 충성으로써 보답하겠습니다. 각하!"

"좋습니다. 그런데 태평양함대의 전력은 얼마나 되나요?"

"저희 태평양 함대는 러시아 해군의 28%에 해당하는 11만4천 명의 병력과 680여 척(총180만 톤)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사양으로는 민스크호 항모 1척, 대륙칸탄도미사일을 탑재한 핵잠수함 69척 외에 여타 포함하여 총 135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잠.

대함.

대공 미사일을 갖춘 8천 톤급 최신 구축함 9척, 주요 수상함 80여 척, 여타전함 195척, 수륙양륙상륙함 22척 외에, 경비함 250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블라디보스토크를 모항으로 패트로파블로스크, 코르사코프, 마가단 등의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병력을 세분하면 전체 병력 중 1/3이 해병대이며, 해군 소속 스페츠나츠 1개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습니다."

"하하하........! 막강하군, 막강해!"

"감사합니다. 각하!"

"우리 잘 해봅시다."

"목숨으로써 보필하겠습니다. 각하!"

"고맙소! 가서 밀린 월급과 병사들이 필요한 각종 생필품과 부식 등을 바로 뽑아오도록 하시오. 그 대신 내 불시에 전시동원령을 내릴 테니 항상 대비태세를 갖추도록 하시고!"

"충성! 알겠습니다. 각하!"

병사고 직업 군인이고 먹어야 싸우는 것이다. 게다가 직업 군인이라고 해서 명예만 먹고 사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그들에게도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 가족을 위해 충성하기 위해 나에게 굽히는 것이다.

이러니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 않겠는가. 아무튼 나는 그를 보내고 내심 흐뭇한 마음에 한동안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바로 다음 일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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