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82화 (282/322)

< --북방경영-- >

한국으로 들어와 투자문제를 정부와 조율하는 과정에 나는 북한의 청진에 조선소를 세우겠다는 안을 슬쩍 끼워 넣게 했다. 그러자 정부 부처 간에 파열음이 나며, 된다, 안 된다 난리가 났다. 종당에는 조선소만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가 투자 승인을 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머지는 아무 문제없이 허가가 나왔다. 그래봐야 대우가 2천만 달러, 우리가 8천만 달러 내외의 투자금액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튼 정부의 물자반출 허가까지 승인이 나자 남포공단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술자와 중장비가 북으로 반입되어 공단조성을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세월은 흐르고, 어느덧 찬바람이 부는 겨울로 계절의 수레바퀴는 구르고 있었다. 1991년 12월 22일.

오늘 아침에 배달된 신문에는 소련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11개국이, 연방에서

탈퇴하여 독립국가연합(CIS)를 결성한다는 합의문을 채택했다는 보도가 머리기사로 장식되어 있었다.

카자흐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에 벌어진 11개국 정상회담에서, 이들 소련 연방을 구성했던 정상들은 어제 즉 21부로 소련연방에서 정식으로 탈퇴를 하며 각각 독립국임을 천명함과 동시에, 이 독립국 11개 나라가 모여 CIS를 구성한다고 합의했다는 것이 주요 뉴스였다.

'옐친이 골치가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러시아의 홍영식 지사장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자신들의 아는 정보로는 옐친이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는 내용'자신들의 아는 정보로는 옐친이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만약 지금 옐친이 죽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공들여온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생긴 까닭에 나는 급히 전화를 끊고 미국으로 전화를 걸게 되었다. 벌써 내 머리에는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을 치료했던 세계적인 심장병의 권위자 마이클 드베이키 박사가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곧 잠결에 받는 월드항공 사장 켈러허를 독촉해 드베이커 박사에게 소련 지도자를 치료해주러, 모스크바에 갈 수 없느냐고 그 의향을 타진해보도록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걸려온 켈러허의 전화는 나를 실망시켰다.

'소련 내에도 뛰어난 의사들이 많으니, 자체적으로 치료할 것이니,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없다.'

는 드베이커 박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내심 실망을 했지만 나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얻어, 내가 직접 드베이커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전화에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내가 한국으로 모시기 위해 몇 번 쫓아다닌 사람이라 설명을 하자, 금방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드베이커였다. 그런 그에게 나의 추측을 말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즉 자신의 일에는 전혀 책임을 지려하지 않지요.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모를까. 즉 저희들끼리 수술을 하다가 만약 사달이라도 나면, 책임이 자신들에게 전가될 것이니, 아무도 손대지 않고 방관할 것입니다. 의술은 곧 생명 아닙니까? 저와 함께 모스크바로 들어가서 집도를 해주시죠. 만약 제 예측이 틀려 그들이 수술을 했다면 더 없이 다행한 일이고요. 어쨌거나 충분한 보상을 해드릴 테니 제발 제 친구를 살려주시죠. 곧 월드항공 사장에게 지시를 해서 특별기편을 편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한마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내 주장만 했더니 그로서는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답변을 하는데, 내 열성이 통했는지,

'그러 마!'

하는 승낙이었다. 나는 뛸듯이 기뻐하며 바로 전화를 끊고 켈러허에게 즉각 특별기를 편성해 의료장비와 함께 드베이커 박사를 모스크바로 입국시키도록 했다.

나 또한 전화를 끊자마자 자가용 비행기를 대령케 하는 한편 수행원 명단을 즉석에서 발표해 버렸다. 그래봐야 통역인 이오노바와 비서실장과 기획실장 이외에, 경호원들뿐이었지만 말이다. 서두른 내가 더 빨리 도착했다.

마중 나온 홍 이사를 안내삼아 우리는 곧장 크레물린 궁으로 밀고 들어갔다. 우리의 억지에 곧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의외의 출현에 놀랄 만도 하련만 이미 부하들에게서 들어서인지 담담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수술을 해야 하나 모두 이를 기피하니 큰일이오."

내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에 나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럴 줄 알고 미국의 세계적인 심장병 권위자 드베이키 박사를 모셔왔소. 아니 지금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는 중이오. 집도를 허락하시겠소?"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그 분이라면 우리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소. 듣자하니 세계적인 명사들을 여럿 수술한 분이라면서요?"

"그렇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것도 없이 이 분야에서는 세계가 인정하는 분이오."

"오는 대로 수술에 임할 수 있도록 내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할 테니, 강 회장은 그동안 어디 가서 편히 쉬고 계세요."

"내 우리 지사에 가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장 부르도록 하세요."

"하하하.........! 정말 강 회장은 믿음직한 친구요. 나에게도 그럴 것이죠?"

"옐친 대통령보다 더 먼저 아는 것으로 아 오만?"

"하하하........! 내 말이 그 말이오. 하하하........!"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려 공관으로 사라지는 체르노미르딘 총리였다. 그로부터 3시간 후, 드베이키 박사가 모스크바 공항에 나타났고, 나는 그를 영접하여 크레물린 궁으로 안내하였다. 그러고 장장 10여 시간의 수술 끝에 수술이 잘 됐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며칠 그의 경과를 지켜보다가 이제 안정만 취하면 된다는 드베이키 박사의 말을 믿고, 그와 나는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물론 드베이키 박사에게는 넘칠 정도로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내가 해주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옐친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자신은 바이칼 호 별장에 있다는 말과 함께 지금 이곳으로 올 수 없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에 나는 쾌락하고 즉각 비행 편을 마련하도록 조처했다. 내가 몇몇 수행원들을 이끌고 이르쿠츠크 공항에 내리니, 사전에 위성 통화가 이루어졌던 지라 다섯 대의 승용차 편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옐친이 머물고 있다는 별장으로 향했다.

우리의 도착 소식에 얼음낚시를 즐기고 있던 옐친이 황급히 별장으로 돌아왔다. 별장이라야 특별한 것은 없었고, 다만 일반인들의 집보다 커다란 통나무집이 세 채 연달아 지어 있다는 것이 달랐다.

"쾌차하신 모습을 보니 반갑습니다."

"어서 오시오. 환영합니다."

나의 인사에 옐친이 기꺼이 포옹하며 나를 반갑게 맞았다.

"아직 2월의 날씨지만 아직 여기는 차니,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러지요."

나는 옐친의 안내에 따라 한 커다란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옐친의 안내에 따라 내가 그가 권하는 응접세트에 앉으니, 철제 컵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커피가 한 잔 나왔다. 나의 기호를 파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블랙이었다. 거기에 양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와 나는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보기에는 괜찮아 보입니다만?"

"많이 좋아졌소. 지금은 거의 정상인이 다 되었소. 고맙소. 강 회장이 아니었으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목숨의 은혜를 입었소. 그런 의미에서 내 강 회장에게 정보를 하나 주려고 이렇게 불렀소."

"무슨 정보이기에 전화로 하시지 않고........"

"국제선이라는 게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전부 도청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이오."

"하긴.........!"

내가 그의 말에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다름 아니라 국유기업체 민영화를 이제 군수업체까지 하려 하오. 이를 외국인 기업까지 100% 개방할 계획이오. 물론 제약은 있소. 1만 명 이상의 대기업체나, 독과점 기업, 또 보험 및 중개업체는 정부의 특별 승인을 받도록 할 것이오. 그 외에는 자유롭게 인수하게 할 것이오. 내 정부에서 이를 발표하기 전에 알려주는 것이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전에 나에게 말해주시오."

"고맙습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이제 러시아도 완전히 시장경제 체지로 전환이 되면 국영기업에 근무하던 인재들까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서방으로 이주를 하지 않겠소?"

"벌써부터 곳곳에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소."

"내 그들을 많이 수용할 테니, 우선권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강제할 수도 없으니, 그 문제는 알아서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라 내가 거론하기를 주저하니, 오히려 옐친이 독촉을 했다.

"무슨 말인데 그렇게 주저하는 것이오. 어려워 말고 말해보시오."

"분명 나라의 세수도 어려워지지 않겠소?"

"세수뿐이요. 나라 곳곳이 솔직히 엉망진창이지."

"해서 내가 보탬이 드릴 방법이 있긴 있는데........"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어서 말해보오."

"옛 극동공화국을 부활해서 말이오."

"계속해 보시오."

"나를 그곳의 수장으로 임명해 주시오. 그러면 내 우리그룹은 물론 전 세계의 자본을 유치해서, 러시아 재정의 절반 정도는 거들 자신이 있소."

"한국인인 당신을 어찌.........."

"내가 한국인 것도 맞지만 러시아인이기도 하오. 내가 극동공화국의 명예시민임을 잊었소?"

"아! 고르바초프가 퇴임 전에, 당신에게 명예 러시아인증을 선물 했지?"

"그렇소."

"흐흠.........! 그러면 임명하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긴 한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은 중대 문제이므로 나 혼자 독단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오. 정부 각료들과 한 번 의논을 해보겠소."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글쎄, 그것이.........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것 같소."

"물론 쉽지는 않으리라 보 오만,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이라면 내가 거론한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건 그렇고........ 군수업체 중에 인수할 만한 곳은 없소?"

"나는 우선 항공기 제작업체를 인수하고 싶소. 그전에도 지분 일부를 취득한 바 있지만........ 또 미사일 개발업체도 인수가 가능한 것이오?"

"물론 인수가 가능하오. 그러나 위에 내가 예시한 것에 해당되면 정부의 특별승인을 받아야 하오."

"알마즈-안테이 (Almaz-Antei corporation)사 도?"

"아마 그래야 될 것 같소. 그러니 일단 제출이나 해보시오."

"알겠습니다."

"이제 모든 이야기가 다 된 것이오?"

"대충은?"

"그럼, 얼음낚시나 즐기다 가시오."

"그럴까요?"

"도중이라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말씀 하시고."

"그러지요. 항상 건강에 유념하시오."

"하하하.........! 요즈음 절주를 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오."

"그래도 해야지요. 몸이 더 좋아지기 까지는."

"주치의 말로는 한 달만 참으면 어느 정도는 괜찮다고 하니 내 그때까지는 참아보려고 하오."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니까요."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군요."

"모든 것이 다 그렇지요. 유익한 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얻거나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맞는 말씀이오. 자 우리 밖으로 나가보실 까요?"

"그럽시다."

이후 나는 그들이 준 두터운 털옷을 껴입고 얼음낚시를 하러 빙판으로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