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경영-- >
김일성이 대뜸 내게 물었다.
"내 기분을 고려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오. 우리 조선을 둘러본 느낌이 어떤지?"
"솔직히 대한민국의 6,70년대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으흠.........! 그만치 우리가 뒤떨어졌다는 이야기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개혁개방을 하려 하오. 중국마냥."
"진심이십니까?"
"허허........! 김 선생 속고만 살았소?"
"솔직히 지금까지의 남북 관계를 보면 조석지변이니......... 잘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이번에는 진심이오. 다 당신네들이 보여 달라는 것은 다 보여 줄 수 있소. 우리의 속살을 다 보여주겠단 말이오. 그리고 제대로 된 처방을 해서 우리도 잘 살게 해주오. 내 인민들에게 고깃국에 이밥을 먹여준다고 한 적이 언제인
데........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비감한 표정을 짓던 그가 조용히 뇌까리듯 말했다.
"이제 내 수명도 얼마 남지를 않지 않았잖소."
"아직 정정해 보이십니다만?"
"자신의 몸은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이오. 외양은 멀쩡해 보여도........"
더 이상 말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일성이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다가 김일성이 다시 입을 떼었다.
"정말로 우리도 개혁개방을 하면 잘 살 수 있겠소?"
"틀림없이 잘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조선을 보십시오. 잘 아시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폐허 속에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는데, 딱 5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여간 부지런하고 열정적입니까? 제도만 완비해 놓고 변하지만 않는다면, 제가 장담하건데 북한도 5년이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고맙소. 용기를 주어서."
"헌데, 제가 이 땅을 밟고 나서는 김정일 서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모르겠소. 지방 출장을 간다고 갔는데........."
"혹여 개방에 불만을 품은 것은 아닌지요?"
"감히, 지가?"
갑자기 화를 벌컥 내는 김일성 때문에 내가 무안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가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아들이지만 잘 해야 할 텐데, 걱정이오. 내 솔직히 말하지만 요즈음 나는 외교와 국방을 책임지고, 경제는 그놈에게 맡기고 있소. 헌데 이 모양 이 꼴이니......... 통 믿음이 가질 않아서.......... 내가 나선 것이오."
"흐흠..........!"
"강 선생!"
"네?"
"요즘 유럽은 통합이다 뭐다 시끄럽고, 미국도 저희들끼리 뭘 한다고 북미자유무역지대니 뭐니 해서 시끄럽고, 동남아도 저희들끼리 뭉치는 모양인데, 이게 도대체 어쩌자는 게요?"
갑자기 국제정세로 확 화제를 전환하는 김일성이었다.
"한 마디로 끼리끼리 뭉쳐 저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거죠. 이럴 때 일수록 우리 민족도 뭉쳐서 이들에 대항해야 되는데........ 어렵겠지요?"
"뭔 말이오? 그래서 내가 강 선생을 지금 만나고 있는 것 아니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제 생각에 경제가 발전하려면 특별한 비방이 없습니다. 투자를 해서 그 이윤을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주고, 또 나라에서 일체 간섭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경제가 저절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
"제 나이 아직 어려 보여도, 세계 각국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저 찌는 듯한 중동서부터 아프리카, 제법 산다는 유럽, 미국 일본 등은 수시로 드나들고요. 그 결과 나라가 치안만 유지해주고 자유롭게 경제활동만 보장해주면, 경제는 저절로 잘 굴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무책임한 짓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나라에서 간섭을 자꾸 덜 하려, 정부기구도 축소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흐흠........! 그나저나 강 선생은 중국과 소련지도자들과도 아주 친하다면서요?"
"하하하.........! 제 신상에 대해서는 훤히 꿰뚫고 계십니다, 그려."
"그 정도도 모르고서 어찌 강 선생을 우리의 제일 협력자로 초청을 했겠소?"
협력자라는 말에서 꼭 왜정시대에 부역하는, 즉 앞잡이 느낌이 확 들어 묘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나는 이를 내색치 않고 말했다.
"탁월하신 선택 같은데.......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은 초지일관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정일 서기가 같이 참석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하하........! 자화자찬도 잘 하면 멋있어 보이는 구료. 아무튼 강 선생이 그렇게 우려를 하니, 내 그를 불러올려 꼭, 뵙고 갈 수 있도록 조처하겠소."
"감사합니다."
"본격적인 경제개발 문제로 들어가서 말이오. 남조선이 경공업분야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발전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소. 그렇다고 우리에게도 꼭 그 방법을 적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솔직히 그 때보다는 우리가 낫지 않소?"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 이오만, 경공업 분야 외에도 전자, 자동차, 조선 등의 중화학 분야, 또 두만강 유역도 개발을 했으면 좋겠소."
"고려해 보겠습니다."
"덕천의 트랙터 공장은 가보셨소?"
"네."
자랑스럽게 묻는 모양새가 칭찬을 기대하나 나는 간단하게 말하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짓던 그가 말했다.
"우리도 그 정도 실력은 되니, 자동차공장을 세운다 해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소만?"
"주석님께 확답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자, 이제 시간이 어느 정도 된듯하니........"
"잠깐 만요."
김일성의 말을 더 이상 못하게끔 제지한 나는 곧 내 의사를 피력했다.
"면담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시간을 좀 더 배정해 주십시오."
"그래요? 정 그렇다면 우리 점심이라도 함께 하면서 진지한 대화를 더 나누어 봅시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김일성과 원래는 45분간 예정되어 있던 시간을, 장장 점심을 함께 하며, 2시간 4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가 진심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우길 원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 이튿날은 우리와 김일성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 노동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것을 비롯해, 그간 우리를 따라다닌 기자들의 동정 취재가 아주 상세하게 보도되어 있었다. 그러자 대하는 관리들의 태도가 더욱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변했다. '이제 개혁개방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느낌 모양' 이었다.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더 열심히 설명을 하고, 투자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그래서 나도 애초의 생각을 바꾸어, 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결심을 했다. 아무튼 9박 10일 중 7일이 지나 이제 공업단지 용지선정을 위해, 사리원은 어제 둘러보았고, 오늘은 남포로 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조금 우리가 늦게 출발했지만, 도로에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차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꼬박 서너 시간을 달려도 채 차량 10대를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도 마주친 차량 중에서도 몇 대는 기름이 떨어졌는지, 고장이 났는지, 중간에 멈추어선 차량을 나는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남포로 가는 길은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시멘트 포장도로였는데, 한마디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도저히 도로의 평탄도를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동승한 김달현 부총리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도로가 부침이 심해요?"
"각 구간마다 해당지역의 기관이, 자체적으로 도로를 건설하도록 할당했더니 이 모양이오."
"허허, 그것 참.........!"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더 이상의 말을 삼갔다. 그리고 이날 남포에 도착해 점심을 먹는데 우리 일행은 또 기가 차지도 않는 일을 당했다. 점심을 준다고 식당으로 안내하더니 12시 반에 들어간 것이 근 2시는 되어 나오는데, 처음으로 한식이 아닌 양식이 나왔다.
수프와 옥수수가 먼저 나왔는데, 이것이 또한 가관이었다. 수프는 그렇다 쳐도 옥수수는 내년에 심을 라고 둔 모종을 가져왔는지, 얼마나 딱딱한지 도저히 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고도 안내원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조직을 하다 보니 이 모양입니다."
즉 이것도 이곳에 없는 것을 급히 동원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아무튼 개판의 식사였지만 맛있게 먹어주고 우리는 곧 김 회장과 내부적인 토의를 벌였다.
그 결과 남포가 공단부지로서는 적격이라는 생각으로 이곳에 공단을 조성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그래서 이들도 동의를 하고 세부적인 공단조성문제로 들어가는데, 건설할 동안 남한에서 파견한 기술자들과 인력이 묵을 숙소를 어디로 정하는 것이 좋겠느냐 문제로 설전이 벌어졌다. 김우중 회장이 평양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김정우 부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김 선생 정신이 있소?"
그의 행동에 김 회장이 벙 쩌서 멍청히 바라보자, 그가 설명을 하는데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기름이 없는데 남포까지 어떻게 3~4시간을 출퇴근한단 말이오?"
할 말 무였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남포 공단에 기숙사부터 건립해 공단을 착공하기로 했다. 기름이 없고 전력난이 심각하다는 것은 그날 밤 바로 평양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김 회장이 여러 차례 조른 것이 이날 밤 실현이 되어, 우리는 평양에 있는 01백화점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조금 늦은 시각이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백화점을 구경하기에 이르렀다. 이층 건물인데 제법 에스컬레이터도 작동되고 괜찮다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진열된 물품들을 보는 순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조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안내원은 빨리빨리 구경하고 나가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여유를 부리며 구경하고 있자니, 조직된 사람들이 우리 눈치를 보며 상품을 고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독촉에 할 수 없이 우리가 백화점을 나와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거리가 어두워진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백화점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돌아보니, 백화점은 어둠속에서 그냥 웅크리고 서있는데, 전기를 일제히 내려서 없어져 보였던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지만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느낌을 안고 우리는 그날 밤 모처럼 일찍 취침에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우리의 숙소를 방문한 김정일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 또한 남조선 기업의 투자를 환영하며 적극 지원할 테니, 적극적인 투자를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수없이 행해, 우리를 안심시키고는 휭 하니 사라졌다. 이제 투자의 걸림돌은 모두 사라졌다는 안심 속에 우리는 곧 본격적인 투자 논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대우는 우선 1차적으로 셔츠, 블라우스, 재킷, 메리야스 등을 연 500만 장, 가방 연 60만 개, 신발 연 180만 족을 생산하기로 했다. 우리는 전자 분야에 투자를 하되, 전화기 연 100만 대, 라디오 연 100만대, 칼라 및 브라운관 연 50만 대, 흑백 및 칼라 TV 연 30만 대, 녹음기 연 50만 대, VCR 연 30만 대 등, 대단위 전자 공장을 짓기로 하고, 남포에 일차로 200만 평, 장차는 500만 평의 공단을 조성하기로 했다.
또한 우리는 평양 근교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우되, 연 3천대 규모로 우선 북한이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물량만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잘 나가다가 투자가 중단 될 위기도 있었으니, 상호 표기 문제가 그것이었다. 우리는 '대정'이라는 상호를 꼭 고집했고, 저들은 안 넣었으면 해서였다. 그래서 내가 투자 자체를 완전 취소한다고 협박하니, 결국 절충점을 찾긴 찾았는서 내가 투자 자체를 완전 취소한다고 협박하니, 결국 절충점을 찾긴 찾았는데, 아주 우스꽝스러운 상호가 출현하게 되었다. 대정뻐꾸기 자동차 1호, 2호 등의 상호가 그것이었다. 즉 미토는 1호요, 줄리에타는 2호가 되어, '대정 뻐꾸기 1호자동차', '대정 뻐꾸기 2호자동차' 등의 아주 희한한 이름이 붙어버렸다. 아무튼 모든 일정이 끝나 우리는 북경 공항을 거쳐 귀로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북경 공항에는 생각지도 못한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리의 방북 사실은 비밀이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나 연유를 물어보니, 이한구 소장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였다.
즉 그가 우리의 기사가 실린 노동신문을 순안비행장까지 찾아가, 외국인에게 부탁해 이를 대정 북경지사에까지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고, 북경지사는 이를 또 한국의 언론에 자랑스럽게 흘리는 바람에,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하게 되었고, 우리는 기자들에 에워싸여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기자들의 조름에 결국 김우중 회장부터가 기자회견 약속을 했고, 나 또한 빠져나갈 수가 없어 기자회견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진지하게 있었던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브리핑한 반면에 나는 대충 얼버무리니, 나에게 묻는 기자들이 하나 둘 줄어들어, 종당에는 김 회장에게만 많은 기자들이 매달렸다.
이런 자리에서 괜히 말 한마디 삐끗 잘못 나갔다가는 남북한 모두에게 오해를 살 수 있어, 나는 애써 말을 삼가고 있는데도, 몇몇 집요한 기자들이 계속해서 내게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내가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빠져 헤맬 때, 나를 구원하는 전화 한 통이 있었다.
받아보니 장쩌민 주석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서 그냥 가기요?"
"아, 네. 들리려고 했습니다. 주석님!"
나는 '주석님' 소리를 일부러 크게 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곧 방문하겠다는 말을 하며, 차츰 기자들로부터 멀어졌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즐거운 휴일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