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80화 (280/322)

< --북방경영-- >

나는 이날 저녁 체르노미르딘 총리 내정자를 만나고, 이튿날은 옐친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곧바로 귀국했다. 이튿날 내가 사무실에 출근하니 이한구 경제연구소장이 보고할 것이 있다고 내 방을 찾아들었다. 이에 나는 김 비서실장과 김재익 기획실장을 배석시킨 채 그의 보고를 받았다.

"몇 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그들의 고위 관리를 만나본 결과 우리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저들이 우리와의 경협을 추진하되, 진심으로 하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1차 경협대상 품목을 선정하다보니, 우리가 애초 계획했던 것처럼 섬유, 피혁, 신발, 전자 등 경공업 제품이 유망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아직 저들에게 제시한 것은 아닙니다만......."

"전자 외에는 거의 우리와 관계가 없는 품목이질 않소?"

"우리 그룹 단독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위험부담도 있고 하니, 이와 관련이 있는 다른 그룹을 끌어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대우 같은 경우 상당

수가 이애 해당될 것입니다."

"흐흠..........! 알겠소. 일단 그쪽과 더 교섭을 진행해 보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이들을 내보내고 집무실을 서성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명 이들과의 경협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고, 끝도 별로 좋지 않아 솔직히 투자가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내면에 소련을 매개로 한 웅대한 뜻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를 잘만 활용하면 이번의 경협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필연으로 해야 할 것이다. 가다가 나의 예상대로 되지 않아 엎어져도 할 수 없다. 내 민족과 조국을 위해 내가 중간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남북경협과 러시아의 일에 신명을 바치기로 하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결심을 굳히자 나는 오연한 얼굴로 창문을 활짝 열었다. 7월의 뜨거운 공기가 확 밀려들었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던 공기를 하늘로 힘차게 뿜었다. 이렇게 몇 모금을 빤 나는 이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인터폰을 들어 대우 김우중 회장을 연결하도록 주문했다. 나라니까 그가 외부에 있었지만 휴대폰으로 연결이 되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강 회장님!"

"남북 합작 사업을 위해 김 회장님과 상의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그래요? 지금 어디요?"

"제 사무실입니다."

"내 금방 가리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현대의 정 회장에게도 연락을 할까하다가 말았다. 그 사람은 고향이 이북이니 대북사업에 적극적이겠지만 품목이 마땅치를 않았다. 또 삼성도 생각했으나 우선은 대우만 끌어들여 사업을 전개해보다가 정 필요하면 이들도 모두 끌어들이기로 하고 나는 생각을 접었다. 그로부터 45분 경과 후, 대우의 김 회장이 내 집무실에 나타났다. 빨리 움직였던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차를 주문한 나는 그와 가벼운 악수를 나누고 그를 자리에 앉혔다.

"아니, 뜬금없이 무슨 대북사업이오?"

"요즘 비밀리에 우리 그룹에서 추진을 하고 있었는데, 몇 차례 저들을 만나본 결과 진심임을 알았습니다. 해서 함께 하면 어떨까 하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들과 무슨 사업을 하시게요?"

"1차로는 가벼운 경공업 분야가 좋지 않을 까요? 섬유, 봉제, 피혁, 신발, 식기류, 좀 더 나아간다면 전자제품 정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흠.........!"

잠시 이마를 찌푸리며 숙고하던 그가 말했다.

"일 리가 있소. 하면 우리는 어느 분야에 진출을 하라는 것이오?"

"전자만 빼고는 전부 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허허.........! 그럼, 우리가 주가 되는 것 아니오?"

"꼭 그렇지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 투자 금액이 많을 겁니다."

"그래요? 일단은 알았습니다. 이를 나 혼자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 그룹 회의에 부쳐 한 번 진지하게 논의한 후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시간은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조만간 이북에 들어가 그들의 태도를 우리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내 눈으로 그들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면 가부간에 확실한 단안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소만?"

"제가 방북을 한 번 추진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때는 투자를 하던 안 하던 일단은 방북을 할 테니, 나도 꼭 명단에 끼워주시오."

"알겠습니다."

이때 차가 들어왔으므로 우리는 차를 마시고 서로 바쁜 관계로 바로 헤어졌다. 그러고 한 이십여 일쯤 지나 북한으로부터 정식 초청이 왔다. 우리는 이를 정부에 통보하고 그들과 협의를 했다. 물론 이한구 소장이 이북을 드나들 때도 사전에 면밀히 정부 당국자와 의견 조율을 거친 다음이었지만, 이번은 대규모 방북이라 절차가 다소 복잡했다.

어찌 되었든 남북 연락관 채널로 의견을 조율한 결과 우리는 8월 15일 광복절 날 한국을 떠나 9박10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로 의견 조율이 되었다. 우리는 곧 우리 그룹에서 나를 포함한 사장단 수행원 등 해서 12명, 대우에서 김 회장을 비롯해 3명 등 총 15명이 방북을 하기로 비자 신청을 했다.

곧 대한민국이 발급하는 여권이 나오고 우리는 8월15일 오후, 내 자가용 비행기로 북경 공항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바로 공항에서 북경 역으로 이동하여 단동 행 열차에 올랐다. 이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우리가 열차로 이동하게 된 데는 특별한 사유가 있었다. 나는 내 두 눈으로 북한 산하를 직접 보고 싶어 육로 행을 고집했더니, 저들이 승낙해 오늘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튼 열차는 밤새 달려 16일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중국과 북한의 접경 도시인 단둥(북경식 발음)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간단한 수속을 밟은 우리는 김일성이 제공하는 자신의 전용열차 즉 침대와 식당 칸이 딸린 전용열차를 타고 신의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기차는 느리게 북한 산하를 가로 질렀다.

스치는 풍경은 우리네 시골 풍경과 별 다를 바가 없는데, 산은 나무를 베어 전부 땔감으로 사용해서인지 헐벗었고, 식량 생산을 위해 비탈진 산자락도 모두 밭으로 개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은 우리의 6,70년대 마냥 옷차림이 남루했고, 대부분이 비쩍 말라 있었다. 아무튼 열차는 지루하도록 느리게 달려 북경을 떠난 지 23시간 만에 평양역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북경과의 1시간 시차로 인하여 오후 4시였다. 즉 만 하루가 지나있었던 것이다. 오는 내내 북한을 처음 육로로 밟아보는 최초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설레임과 아지 못할 두려움 등으로 침대칸에서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식당 칸을 이용하여 그들이 제공하는 별로 맛없는 식사를 조금씩 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평양역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정무원 부총리 김달현이 직접 마중을 나와 우리를 영접했다.

곧 그가 자신이 데리고 나온 일행을 소개했는데, 대외경제부 부부장(차관급) 김정우 라는 사람이 그 중에는 직급이 가장 높았다. 이에 나는 김우중 회장을 비롯하여 우리의 사장단 및 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우리 일행은 곧 그들이 제공하는 차에 올라 평양의 모처로 가는데, 우리를 얼마나 우려먹으려는지, 동원된 군중들이 붉은 수술을 흔들며 연도에서 우리를 환영했다. 이를 본 우리의 사장단과 수행원은 물론 김 회장도 감격한 표정인데 비해 나만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이를 내 옆자리에서 지켜본 김 부총리가 나에게 물었다.

"강 선생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만,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나서요."

나의 말에 소태 씹은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는 김달현 부총리였다. 아무튼 우리를 태운 차는 대동강을 건너더니 대형 체육관(5.1체육관)이 마주보이는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알고 보니 이곳이 '흥부초대소'라는 곳으로, 관료가 아닌 민간 급에서는 국빈급이 머무는 장소라 했다. 우리는 곧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이날 밤은 하루를 푹 쉬었다.

다음날 우리는 만수대의사당에 모여 앞으로의 일정을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김 부총리는 공장 등 산업시찰, 부처별 산업실태 및 산업현황 브리핑, 실무자들과의 간담회를 주요 일정에 포함시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서 우리는 곧 이를 승낙했다. 다음 날 부터는 빡빡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리원 면방직공장, 평양의 피복 공장, 모란봉 TV공장, 덕천의 승리자동차공장, 평북 구성의 기계공작공장, 황해도 은파의 아연광산, 송남 탄광, 원산 해산물가공공장, 해주 및 남포 공단 예정지역 등을 둘러보는데, 이런 곳들이 다 북한이 볼 때는 가장 큰 기업소이고 자랑할 만한 곳이겠지만, 내가 볼 때는 하품만 나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 와중에도 틈틈이 우리는 만경대민속박물관, 동명성왕 릉, 개성의 고려박물관 등을 둘러보았고, 밤에는 목란관에서 저들이 자랑하는 왕재산악단의 공연, 만수대예술단의 서커스 및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그 외에 틈이 나면 우리는 김달현 부총리 외 각부 부부장급과도 만나 열심히 토론을 했는데, 북한의 경제와 관련이 있는 차관급들은 전부 나선 느낌이었다. 무역, 광산, 재정, 수산, 봉제, 금속, 전자, 기계, 중공업 여타 등등해서 우리가 만난 차관급만 해도 대충 12명 이상 되는 듯 했다. 여기에 해당부서의 기술자들이 나와 현황을 직접 브리핑하고 가끔 연형묵 정무원 총리도 나타나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이렇게 빡빡한 일정이 진행되다보니 밤 11시까지 토론이 이어지고, 취침시간은 보통 12시가 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오 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보통 아침에 오늘 하루의 일정이 통보가 되는데 오늘 아침은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돌연 안내원이 내 앞에 나타나 소리쳤다.

"강 선생님! 축하합니다!"

"무슨........?"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바라보니 그가 설명을 했다.

"곧 주석님을 만나게 되십니다. 아무런 소지품을 휴대하지 마시고, 차에 타시라요."

그들이 볼 때는 영광스러운 일인지 몰라도 내게는 축하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곧 8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평양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논과 밭, 과수원, 저수지 등을 지나 평양 근교 대성산의 어느 별장에 우리는 도착했다. 서울의 부자 집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별장이었다. 안내원이 커다란 나무 대문을 열자, 금강산 그림이 그려져 있는 대형 화폭 앞에 김일성이 서 있다가 우리 일행을 환대했다.

"잘 오셨습니다. 어서 오시지요."

큰 목소리에 목소리가 우렁우렁했다.

"반갑습니다."

나 역시 기꺼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포옹을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이어 김우중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차례로 우리의 수행원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곧 김일성의 제의로 우리는 대형 금강산 화폭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전원이 참석한 기념촬영이었다. 기념촬영이 끝나자 그들이 곧 자리를 안내해 주어, 우리가 모두 자리를 잡자 김일성이 물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건강하신지요?"

"네, 아직은 젊으시니까요."

"하하하........! 하긴 그렇지요."

목뒤에 큰 혹이 달렸으나 정말 기골이 장대한 게 힘꼴 깨나 쓰게 생긴 김일성이 큰 목소리로 웃고는 내 말에 동의했다.

"그래, 우리나라를 둘러본 느낌이 어떻습니까?"

"생각보다는 산업이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하하하..........! 나는 산업이 발전한 남조선 사람들이라 대단히 실망할 줄 알았더니,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고만 그래."

"그러나 미비한 합영법 등은 최소한 중국 정도로는 손질을 해야, 적극적 투자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동석했던 연형묵 총리가 얼른 답변을 했다.

"지금 고치고 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완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저 사람들이 투자를 하는데 걸림돌이 없도록 제도를 완벽히 갖추도록 해줘요."

"알겠습니다. 수령 동지!"

"자, 대충 인사도 나눴고, 면도 텄으니 강 선생 나와 이야기 좀 나눕시다."

말과 함께 일방적으로 일어나 내실로 들어가는 김일성이었다. 힐긋 돌아보니 대외연락부장 김용순이 나직이 말했다.

"혼자만 들어가 시라요."

"알겠습니다."

나는 곧 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다과와 물 등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배석자가 있으니, 김달현 부총리였다. 이를 보고 내가 말했다.

"주석님, 저도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대화 도중 메모 아니 기록이라도 해둬야 나중에 잊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약간은 불쾌한 낯빛이었지만 곧 회복한 김일성이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라요."

나는 곧 김 비서실장을 불렀다.

"비서실장은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그가 들어오자 곧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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