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 대-- >
"어서 오시오, 강 회장!"
"반갑습니다. 각하!"
"우리끼리의 대화는 조금 있다가 나누고, 그 전에 저 사람들을 먼저 보내야겠으니, 내 임무의 마지막 공식행사를 얼른 진행합시다."
"그러시죠."
"강 회장 내 앞으로 서시지요."
"네?"
나는 영문을 몰라 반문 하면서도 그가 하는 대로 그의 앞에 점잖게 섰다. 그러자 비서실장인 듯한 자가 무슨 상장 비슷한 것을 고르바초프에게 건네주었다.
"내 마지막 임무로 당신을 우리나라 즉 러시아공화국 인으로 정식 인정하고, 모스크바 시민증을 드리려 하오. 이는 강 회장이 양국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데 대한 보답이기도 하오."
이렇게 나오는데 안 받겠다면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얼른 사의를 표하고 이를 받으려 하는데,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어 내가 고르바초프에게 말했다.
"기왕이면 한국과 가까운 극동공화국 시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그것도 좋겠지요. 비록 흘러간 노래지만."
고르바초프의 말투에서 나는 그가 소련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1858년 하바롭스크가 창설되었고, 1893년 하바롭스크는 시로 승격되었다. 1922년 극동 공화국(Dalnevostochnaya republic)을 형성하여 이 지역에 극동 주(Dalnevostochnaya Oblast)를 창설했다. 극동 주는 아무르 현, 자바이칼(Zabaikal) 현, 캄차카 현, 프리아무르 현, 프리바이칼 현, 프리모르 현을 포함한다. 여기서 프리모르 현이 우리가 말하는 연해주이다. 그러니까 극동공화국은 굉장히 넓은 구역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1926년 극동 주(Dalnevostochnaya Oblast) 안에 극동 지방(Dalnevostochniy Krai)을 창설했다. 극동 지방의 주도는 하바롭스크 시였다. 이 지방은 아무르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제이스크, 캄차카, 니콜라예프스크, 사할린, 스레텐스크, 하바롭스크, 치타를 포함한다.
1938년 10월 20일에 극동 지방(Dalnevostochniy Krai)은 하바롭스크 지방과 연해(沿海) 지방으로 나뉘었다. 이후 하바롭스크 지방에 포함되어 있던 지역들은 '주'로 분리되었다. 사할린 주는 1947년에, 아무르 주는 1948년에, 마가단 주는 1953년에, 캄차카 주는 1956년에, 유대인자치주는 1991년에 분리되어 현재의 독립적인 지방 단위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위에 언급한 주들이 전부 극동공화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넓은 가.
아무튼 고르바초프가 허락을 했다.
"좋소!"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사의를 표하고 그의 앞에 똑바로 섰다. 고르바초프가 상장양식에 든 문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각 언론매체들이 이를 분주하게 카메라에 담으나, 아랑곳없이 고르바초프는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명에 러시아인 및 시민증성명: 강 대정귀하는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수교 및 양국의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므로 러시아공화국은 이를 기려, 귀하를 명예 러시아인으로 인정하며 또한 극동공화국의 명예시민으로 삼는다. 1991년 7월 9일러시아공화국 대통령 고르바초프 ]고르바초프가 읽기를 마치자 비서실장이 박수를 치고, 기자들은 둘에게 포즈를 취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고르비와 나는 명예 시민증을 전면에 내세워 함께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곧 이들이 물러나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환담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시민이 된 것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오."
"감사합니다. 각하!"
"아무튼 잘 오셨고, 그런데 퇴임을 앞둔 나를 찾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구료. 이제는 밑의 놈들까지 '각하'라는 경칭을 빼먹은 지 오래인데 당신이 불러주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허허, 세상인심이 그런 줄은 알지만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내 말이 그 말이오. 물론 옐친의 대통령 취임식 때문에 왔겠고?"
"그렇습니다만 각하에게도 볼 일이 있습니다."
'뭐요?'
라는 뜻으로 눈썹만 위로 치켜뜨는 고르바초프였다.
"각하, 우리 그룹의 특별고문이 되어 주십시오."
"특별고문?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놀다가 긴급한 사안이 있으면 우리 그룹을 위해서 몇 마디 말을 거드는 정도지요."
"한 마디로 한국 대정그룹의 로비스트가 되어달라는 말 아니오?"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으나, 각하에게 연봉 10만 달러를 보장하겠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깜짝 놀라 되묻는 고르바초프였다.
"흐흠.........! 세상에 공짜 없다고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니오?"
"제가 무리한 요구를 한들, 노력해도 성사되지 않으면 헛일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럴 경우 우리 그룹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하긴 특별고문에게 무슨 구속력이 있겠소. 다만 내 면을 좀 이용하자는 것뿐이지.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거 어려운 것도 아니니 승낙하리다. 허허........! 이로서 나도 노년의 밥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건가?"
"별 말씀을."
"인사가 늦었지만 제주도에서 베풀어준 환대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오."
그가 제주도에 왔을 때 제주도 특산인 자리돔물회를 대접했더니 유난히 잘 먹었다. 지금 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회를 그렇게 좋아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자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만 주십시오. 제가 자가용 비행기로 언제든지 모시겠습니다."
내 말에 기분이 좋은 듯 고르바초프가 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 강 회장은 의리가 있는 사람이오. 퇴임하는 내가 이제 영향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소. 그간 사귄 정을 생각해서 내 노년까지 챙겨주니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소."
"겸양이 지나치십니다."
"겸양이 아니라 시실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오. 하하하.........!"
대소를 터트리나 그것은 괜히 공허한 웃음으로, 아니래도 썰렁한 그의 집무실을 더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어 몇 마디 고르바초프와 대화를 나눈 나는 그곳을 나와, 바로 모스크바의 한 호텔로 들어갔다. 메트로폴 모스크바 호텔로 1903년에 지어졌으나 너무 낡아 올해 새롭게 단장을 호텔이었다. 362개의 객실과 11개의 크고 작은 연회장이 갖추어져 있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 주변에 있는 호텔로 엘튼 존, 샤론스톤, 훗날 노무현 대통령이 머무는 곳이기도 한 호텔이었다.
아무튼 이곳에 나는 물론 내일 대통령에 취임할 옐친도 머물며, 자신을 찾는 사람들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 나는 약속시간에 맞추어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그가 머무는 방으로 찾아들었다.
노크를 하니 기다렸다는 듯 옐친이 나타나며 양팔을 벌려 나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나는 그와 가볍게 포옹하며 나 또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각하!"
"아직은 아니 오만, 미리 듣는 것도 상관없겠지. 하하하........!"
대소를 터트린 그가 안으로 들어가며 자리를 권했다.
"자, 이쪽으로 앉으시오. 수행원들은 그쪽 소파에 앉으시고."
"네."
나는 그가 권하는 큼지막한 의자에 앉았다. 옐친 또한 티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나와 마주 앉았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어 고맙소. 솔직히 내가 별 볼일 없을 때부터 나를 찾아준 사람은 강 회장이 유일하오. 마치 오늘 날의 내가 있을 줄 아는 사람 같소."
"제 눈에는 각하께서 큰 인물이 될 듯해서 미리 인사드린 것이 주효한 듯싶었습니다."
"하하하.........! 내 강 회장께서 그런 안목이 있는 줄은 모르겠고, 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혹 바라는 것이 있소? 대통령이 된 기념으로 가능한 한 들어드리고 싶소."
"하하하........! 제 소원을 얘기하면 각하께서 너무 놀라셔서 내일 취임도 못하실까봐,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큰 요구인 모양이구료."
"굉장히 큰 요구이지만 각하나 이 나라에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그룹의 모토처럼 서로 승자가 되는 게임을 하고 싶은 겁니다. 아무튼 오늘은 분위기도 그러니 다음에 조용히 한 번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기다리지요."
"혹여 총리는 지명하셨습니까?"
"왜 추천이라도 하시게요."
"제가 러시아 안에 아는 사람이 몇 되겠습니까? 단 세 사람뿐입니다. 하지만 모두 거물들이지요."
"한 사람은 고르비이고, 또 한 사람은 체르노미르딘이겠군."
"그렇습니다. 아니래도 내 체르노미르딘을 초대 총리로 지명할까 하오."
"아마 잘 해낼 겁니다."
"물론이오. 죽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부드럽지만 빈틈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오."
"제가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무튼 오늘은 즐거운 날 아니오? 오늘 같은 날 술이 빠져서야 되겠소. 간단하게 한 잔만 합시다."
"괜찮겠습니까?"
"아무렴 어떻소. 내가 지금 잔들 뭐라 할 사람이 있소?"
"오후에 다른 만남이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뭐, 어떻소. 취소하면 되지. 아니면 다음에 만나도 되는 것이고. 만난다한들 강 회장보다 더 중요한 인물은 없으니 안심하시고 한 잔 합시다."
"정 그러시면 간단하게 한 잔 하시지요."
"그럽시다."
말과 함께 움직인 그가 바에서 보드카 한 병을 꺼내왔다.
"좀 독하지만 나에게는 이외의 술은 물과 같아서 말이오."
"알겠습니다. 많이 마실 것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겠지요."
"당신은 조금만 하시오. 나는 평소 취향대로 마실 테니."
말과 함께 잔을 내놓는데, 나는 작은 잔이요, 자신은 물 컵을 그대로 술잔으로 삼고 있었다.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걱정 마오. 이 한 병을 다 마셔도 끄떡없소. 내일이 취임식이라 내 오늘은 절제하는 것이 이렇소."
전생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로 술을 좋아하는 옐친이었다. 곧 그와 나의 잔에 술을 가득 채운 그가 말했다.
"건배 한 번 합시다."
"좋습니다."
"각하의 안녕과 러시아의 번영을 위해서 하죠."
"좋소! 거기에 강 회장의 그룹이 번창하고, 강 회장도 건강하길 바라는 의미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서로 축수를 했으니 이제 그냥 건배만 하면 되겠습니다."
"하하하.........! 그럽시다! 자, 건배!"
"건배!"
둘은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옐친은 가볍게 컵 하나를 비웠고, 나 역시 채운 잔은 가볍게 비웠다. 치즈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옐친은, 친히 자신의 잔에다 한 잔을 또 따르고, 내 잔에도 다시 한 잔을 가득 따랐다.
이렇게 시작된 술이 그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도 모자라, 한 병을 더 비우고 나서야 끝이 났다. 참으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후 옐친은 나의 예상대로 예정된 스케줄을 모두 돌연 취소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나 또한 그 자리에 더 있기가 뭐 한지라 살그머니 그 방을 빠져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수행원의 일부가 남아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뭣들 하고 있었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회장님이 명예시민으로 위촉되어, 이를 받는 장면이 나오네요."
"이 동네는 별 것을 다 내보내는 군."
"그만큼 회장님이 유명한 것 아닙니까?"
"그게 아니고 고르비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을 촬영하러 갔다가, 거기에 내가 엮인 꼴이지."
"아무튼 우리는 회장님이 러시아에서까지 화면을 타니 보기 좋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들 그만하고, 그만 나가들 보시오. 나도 좀 쉬어야 하겠으니."
"체르노미르딘 씨는 안 만나십니까?"
"저녁 때."
간단하게 대답한 나는 곧 침실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 작품 후기 ============================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늘 즐겁고 유쾌한 날들 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