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78화 (278/322)

< --90년 대-- >

내가 대형 자가용 비행기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바르샤바 공항에 내리자마자, 코으드코 폴란드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과 치에르스키 공업성 장관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강 회장님!"

"반갑습니다. 환대를 해주셔서."

"별 말씀을. 먼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기 위함이죠."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부총리와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곧 치에르스키 공업성 장관도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동감입니다."

둘의 인사가 끝나자 폴란드 부총리가 말했다.

"그럼, 바로 저희 청사로 가실까요?"

"그러시죠."

나는 이들의계속되는 부드러운 환대를 받으며 곧장 그들이 제공하는 승용차에 올랐다. 우리는 곧 이들의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해 부총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이 자리에는 치에르스키 공업성 장관도 함께 들어왔고, 나의 기라성 같은 수행원들도 함께 자리를 잡았다. 일행 모두가 자리를 잡자마자 내가 말했다.

"정중한 영접 감사합니다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합니다."

"그럴까요? 그럼, 지금까지 미 타결된 분야 및, 제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가죠."

이렇게 입을 뗀 코으드코 부총리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와 GM이 먼저 협상에 임했으면서도 몇 년 동안 타결을 짓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2만 여명에 이르는 종업원들의 완전한 고용 승계 문제입니다. GM에서는 솔직히 이들 종업원 중 80%를 정리해고 해야 된다고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었는데, 대정에서는 이들을 3년 동안은 100% 고용을 하겠다니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회장님께서 직접 확답해주셔야만 다음 문제를 거론할 수 있겠습니다."

"흐흠........! 그런데는 우리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요. 우선 첫째는 종업원들을 보는 시각차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폴란드 노동자들을 아주 훈련이 잘된 숙련된 노동자라고 봅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회사의 자산인데 함부로 해고를 할 수 없다는 시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종업원들이 자본주의 같이 자발적이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전의 사회주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명령을 해야만 비로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딱 지시한 일만 할 줄 알지, 전혀 융통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해서 3년은 지켜보겠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그런 태도라면 문제가 있겠지요."

"좋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기 이곳의 숙련된 기술자들을 이용하여 폴란드 자체 소비를 넘는 부품공장을 키우고자 함입니다. 우리의 해외공장이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해서, 모로코, 중국, 미국에도 있어요. 그러나 이탈리아를 제외한 현지는 현재 전부 조립공장 뿐입니다. 즉 이탈리아에서 만든 부품으로 모두 충당을 하다 보니, 솔직히 부품 값이 비싸요. 그래서 보다 저렴한 이곳에서 부품공장을 육성할까 합니다. 답이 됐습니까?"

나의 물음에 아주 기쁜 표정을 지은 부총리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하하하........! 세 번째는........."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이 폴란드를 넘어 동구권 전체에 나는 수출을 되는 걸 바라고 있습니다. 옛 공산권이라는 유대감도 있고 해서, 모로코는 서유럽, 이탈리아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게 권역, 그리고 이곳은 동구권을 상대로 판매를 할 생각입니다. 또 이 자동차 회사의 강점은 폴란드 내에만 200여 곳이 넘는 현지 판매망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불가리에도 벌써 현지 판매 법인을 설립했어요. 물론 그 나라에도 자동차 공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만든 차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말씀을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정도가 아니라 환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또두 가지 필요조건이 있어요."

"무엇이든지 말씀해 보시죠."

"첫째로는 최소한 폴란드만이라도 10년 동안은 자동차 중고시장을 개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솔직히 말하죠. 아직은 폴란드가 서유럽에 비하면 소득이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해서 중고시장을 개방하면 그 타격은 고스란히 우리가 입어요. 10년이면 우리가 충분히 성장할 수 있으니, 다른 나라는 몰라도 모국인 폴란드만이라도 자동차 산업을 보호해 주세요."

"그 기간 문제는 제가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드릴 수는 없고, 우리 유관 부처가 상의를 해서 가능한 한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완전 고용을 했으니 폴란드 정부에서 우리에게 파는 가격을 낮추어 주어야 합니다."

"무슨 그런 셈법이 있습니까?"

"제 말을 들어보세요. 우리가 100% 고용을 함으로써 폴란드 정부는, 해고된 사람에게 지급할 실업수당이 줄어들어요. GM측의 주장대로 하면 노동자의 80%를 해고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들에게 정부에서 매달 지급해야할 실업수당이 도대체 얼마입니까? 해서 우리는 최소 6천만 달러 이상의 가격 인하요인이 발생했다고 봅니다. 이를 인수가격에 반영해 주십사하는 것이 우리 측의 주장입니다."

"흐흠.........! 그 문제 또한 즉답할 수 없고, 상의 드려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이대로는 안 돼요. 현 22만대 생산라인에서 최소 30만 대는 생산해야 규모의 경제를 갖추어 많은 인하 요인이 발생해요. 또한 부품산업 육성이 말로만으로 해서 되겠어요? 이탈리아 현지 기술자들도 대거 채용하고 하려면, 우리가 앞으로 5년 동안 최소한 11억 달러는 더 투자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상태가 됩니다. 즉 우리는 인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수 후에도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된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확실히 대정은 우리 자동차산업을 제대로 키울 결심이시군요. 환영합니다. 그 역시 우리의 매도 가격에 참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오늘은 회의를 파하고, 그로부터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며칠을 부처 간의 협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그들의 최종안이 나왔고, 또 우리는 이를 놓고 며칠 동안 협상을 벌여야 했다. 그 결과 우리는 최종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에서 4천만 달러를 더 깎은, 1억4천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하고, 저들의 국영자동차 공장 FSO 지분 70%와 함께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또한 저들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앞으로 우리는 5년 동안, 11억4천만 달러를 더 투자해, 연산 30만 대 규모로 증설을 하는 한편 자체 부품공장도 육성하기로 하고, 계약서상에 이를 명기했고, 저들은 반대급부로 7년간 중고시장 개방을 불허하기로 본 계약서상에 명기를 했다. 이로써 나는 적은 돈을 들여 동구권에 자동차 거점 공장 하나를 더 마련했다.

내가 폴란드에서 본 계약을 마치고 불가리아로 이동해, 인수한 쉐라톤 호텔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미국에서 갑자기 급보가 날아들었다. 월드 항공사 회장 캐스퍼 와인버거가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급거 미국으로 날아가던 중 상태가 심해 텍사스 주 소재 베일러 대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댈러스까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현지에 도착해 베일러 의대 병원을 찾았을 때는 수술이 한창 진행 중이라 그를 만나볼 수가 없었다. 나는 수술실 앞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허브 켈러허 월드 항공 사장과 함께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무료하기도 했지만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나는 켈러허에게 물었다.

"뉴욕에도 큰 병원이 많을 텐데 특별히 이 텍사스 주까지 날아온 이유가 있습니까?"

"집도의 마이클 드베이키 박사가 심장병에는 세계적인 권위자이십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상태는 어떤 것입니까?"

"아주 심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만 정밀 진단 결과, 아무래도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해서 하고는 있으나, 결과를 저는 낙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이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고령의 의사와 함께 흰 가운을 입은 몇몇이 병실에서 나왔다. 나대신 켈러허가 고령의 의사에게 달려가 급히 물었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성공적 이예요. 한동안 요양을 하면 활동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겠으나,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죠."

"감사합니다. 박사님!"

나 또한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몇 발짝 따라가다가 뒤돌아보며 확인을 하듯 켈러허에게 물었다.

"저 분이 심장병 분야에서는 그렇게 유명한 분인가요?"

"세계적인 권위자 이십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군이신 윈저 공, 이란국왕, 케네디, 존슨, 닉슨대통령을 수술 치료한 바 있는 심장병 분야에서만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이에 나는 그를 보내고,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했다. 인재 욕이 발동한 것이다. 우리병원으로 모시고 싶어 그에 대한 것을 자세히 조사케 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1932년 의대 재학 중 심장용 롤러펌프를 발명해 수술 중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개심술' 시대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또 인공심장 개발의 선구자로서 70여 가지 외과용 수술도구를 만들어 의료발전에 크게 기여한 세계적인 심장병 권위자였다.

심장동맥 우회로 조성수술(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개발해 심장 수술에 새 지평을 연 미국의 마이클 드베이키 박사는 텍사스 소재 '베일러 의대'의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 걸림돌은 현재의 나이가 84세 라는 믿기지 않는 연세였다. 아직은 현역으로 뛰고 있으나 그 생명이 얼마나 갈지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그렇지만 후진들을 양성하는 데는 충분할 것 같아 나는 그날부터 그곳에 거주하며 열심히 그를 쫓아다니며 귀찮게 했다. 그래도 그는 끝내 자신의 나이를 들어 고사하는 바람에 나는 그를 한국의 우리병원으로 모실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행동 때문에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어느 정도 회복한 와인버거도 만나 볼 수 있었는데, 그가 나를 만나자마자 꺼낸 첫마디가 사의 표시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를 항공사 회장에서는 해임했다. 그러나 여전히 특별고문으로 우리 그룹을 살아 있는 동안까지는 활동하겠다는 확약을 받았다. 이후 나는 허브 켈리허를 월드 항공사 부회장으로 선임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 동안 노 통의 북경 방문이 있었고, 나는 나를 대신해 이상백 박사를 부회장이라는 감투를 씌워 양국의 정상회담에 참석시켰다.

비로소 우리그룹과 중국 정부가 맺은 원자력에 대한 제반 계약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아직 우리와 벡텔 간에는 처음 맺은 그대로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도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1991년 7월 9일.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성하의 계절 턱밑까지 도래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위를 피하듯 현재 모스크바로 날아와 있었다. 7월 10일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옐친의 대통령 취임식을 참관하기 위해 미리 날아온 것이다. 보리스 옐친은 1991년 6월 12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7.30%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오는 10일 즉 내일 취임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크레물린의 주인은 고르바초프였다.

나는 미리 통보를 해 그의 집무실에서 잠시 그를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도 못한 취재진이 많이 모여 있어 나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 국영TV를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들이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동정을 보도하기 위해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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