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73화 (273/322)

< --90년 대-- >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니 한시름 던 느낌에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불어나왔다. 삼월을 맞아 조금은 따뜻해진 날씨에 이마에 약간 맺혀있는 물기를 손수건으로 문지르는데, 뭔가 빠진 느낌이 드는 게 영영 찜찜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마누라들과 아이들 선물을 안 사왔다. 그렇게 잦은 해외 출장에도 선물을 기대하니, 내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다시 공항 내 면세점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막상 들어간다 해도 별로 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더 곤혹스럽게 했다. 이때 올리비아 리가 빨간 미니스커트에 탱탱한 엉덩이를 흔들며 내게 가까이 오더니 물었다.

"회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응, 올리비아는 시집 안가나?"

"또 그 말씀. 저는 홀어머니나 모시고 평생 독신으로 살 거예요."

"왜? 독신자야?"

"숙녀의 일을 너무 많이 알려고 해도 실례예요."

"허허, 그래?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의 선물이 빠졌다. 무엇이 좋을까?"

"차 좀 교체해드릴 때 안 됐어요?"

"차?"

엉겁결에 반문하고 생각하니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언제 사주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고물 그랜저를 아직도 끌고 다니며, 불평 한 마디 없는 아내들이 대견하다 못해 이제는 불쌍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와 우리 임직원들은 1년 전에 나온 2,500cc 대형 세단인 '베르테(verte)'라나와 우리 임직원들은 1년 전에 나온 2,500cc 대형 세단인 '베르테(verte)'라는 놈으로, 광고 차원에서 전부 교체했지만, 불평이 없어서인지 아내들의 차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김 실장님!"

"네, 회장님!"

갑작스러운 나의 부름에 김경제 비서실장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우리 자동차 전시장에 전화해서 말이오."

"네, 회장님!"

"빨간 색 줄리에타로 세 대만 우리 집에 좀 부탁한다고 전해주세요."

"사모님들 드리게요?"

"그렇습니다."

"그럼, 색상을 다르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오. 한 색상 그냥 빨간 색으로 통일해주시오. 네 것이 예쁘니, 내 것이 예쁘니, 싸우면 곤란하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바로 휴대폰으로 그 자리에서 전화를 때리는 비서실장이었다. 이 모양을 보고 내가 말했다.

"갑시다."

나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 세단 베르테에 줄줄이 올라타는 수행원들이었다.

차는 바로 역삼동 그룹 빌딩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날 퇴근 시간 무렵.

나의 지시에 의해 거의 전화를 않는 아내들인데 오늘은 미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가 왔다고 하는 순간 나는 벌써 직감적으로 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여보, 저예요."

"왜?"

"근사한 저녁 차려놨거든요. 빨리 들어오세요. 그리고 고마워요."

"차는 받았어?"

"호호호........! 그러니까 고맙다잖아요."

"어때? 마음에 들어?"

"네. 너무 너무 예뻐요. 셋 다 모두 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말인데요."

"빨리 빨리 말해봐."

"오늘은 한 방에서 다 자자는 데요?"

"뭐? 누굴 잡을 라고."

"잡긴 누가 누굴 잡는 데요?"

"그런가?"

"호호호.........! 아무튼 다른 볼일은 없으신 거죠?"

"바로 들어갈게."

"참, 엄마가 고맙데요."

"그건 또 뭔 소리야?"

"내수에서 엄마가 올라오셨는데, 제가 타던 차를 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고맙다고 전해달라네요."

"장모님한테 당신이 타던 썩은 차를 줬단 말이야?"

"쳇, 알긴 아네요. 그래도 달라니 어째요. 그냥 줬지요."

"알았어. 바로 들어갈게."

"네, 여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비서실장에게 얘기해 그룹의 자동차 대리점에 전화를 해 빨간색 미토 한 대를 더 우리 집에 배달하도록 했다. 그러고 내가 막 퇴근을 하려고 비서실 문을 나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접니다. 형님!"

"누구? 몽윤 매제?"

"네. 요즈음은 제 목소리로 잊으셨습니까?"

"하하하.........! 서로 바쁘다보니 소원해져서 그런 모양이군."

"우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

"할 말이 뭔데?"

"대형 항공사 몇 개를 인수하셨다면서요?"

"그랬지?"

"혹시 보험문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하하........! 다 꿍꿍이속이 있었군."

"헤헤헤.........!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미안하지만 팬암 빌딩을 인수했더니, 그곳에 세 들어 올 자들이 메트로라이프 라고 보험회사야."

"그럼, 다 틀렸네요. 한 건 단단히 하는 줄 알았더니요."

"술이나 한 잔 사게. 그래도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있으니."

"당장이라도 사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오늘은 장모님이 오셨으니, 안 되고. 음.........! 술사라는 소리는 농담이고. 생명보험은 안 되지만, 항공기에 대한 손해보험은 될 것 같으니 서류 챙겨가지고, 내일 사무실로 한 번 들리시게."

"고맙습니다. 형님! 요즈음 제가 형님 때문에 삽니다. 우리나라는 언제 보험인식이 좋아질 런지, 원."

"보험은 배고픔이 해결돼야 되니, 느긋하게 마음을 먹게."

"아니래도 조금씩 인식들이 나아지고 있으니, 곧 좋아지겠지요."

"그래.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아."

"아무튼 고맙습니다. 형님!"

"들어가시게."

"네, 네!"

폰을 접고 보니 어느덧 1층 현관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차고로 가보았다. 빨간색 줄리에타와 앙증맞은 미토 한 대가 번쩍번쩍 광을 내며 서 있었다. 그 앞에는 고물 그랜저가 이제는 제 자리도 빼앗기고 밖에 나와 있었다. 이때 세 아내는 물론 장모님까지 내가 오고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장모님!"

"정마 고맙네, 사위!"

"운전은 할 줄 아세요?"

"이제 배워야지."

"장모님은 활달하시니 운전 배울 마음이라도 잡숫지. 우리 노인네들은 줘도 싫다니, 원."

"하긴 그 연세에 운전 배우겠다는 분들이 몇이나 되겠누."

"장하십니다. 장모님! 그런데 차는 마음에 드세요."

"호호호.........! 사위 덕분에 정말 마음에 드는 차가 한 대가 생겼어. 색깔도 마음에 들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방패 모양의 저게 뭐라고 하는 거야?"

"그릴 요."

"그릴?"

"네."

"그래, 삼각형이 거꾸로 세워져 있으니 역삼각형이지? 그래, 역삼각형 그릴도 아주 특이한 게 마음에 들어."

"그게 알파로메오만의 특색입니다."

"차 이름이 뭐라고?"

"미토요."

"미토?"

"네."

"차 이름도 예쁘네. 그런데 좀 전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나?"

"그건 저희가 운영하는 알파로메오라고 자동차 회사 이름이고, 차 이름은 미토가 맞아요."

"그래? 나는 그런 거 모르니, 차 이름이나 단단히 외워야겠네. 괜히 차 이름도 모르고 타고 다니다가 남이 물으면 무슨 망신이야."

"우리가 만들지만 이탈리아제입니다."

"이태리?"

"네."

"엄마, 우리도 말할 기회 좀 줘요."

"호호호.........! 그래. 내 먼저 들어가마."

미정이 나서서 한 마디 하는 바람에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시는 장모님이셨다.

"무슨 일로 오셨대?"

"막내 동생이 이번에 우리 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잖아요?"

"그랬지. 작년에 우리그룹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복수혈전이라나 뭐라나 하며, 이를 갈고 한 해 공부 더 해 된 건 내가 알고 있지."

"아이고, 그것 때문에 1년 한해 친정식구들에게 시달린 생각을 하면, 지금도 머리에 쥐가 다 나려고 하네요."

"정실 배제원칙에 누구라고 예외가 될 수 없어."

"그래도 너무 해요."

"됐어, 합격했으면 됐지. 왜, 또 계속 그 이야기야."

"큰 동생은 아직도 새시나 배우고 있으니까 그렇지요."

"그게 어때서? 어설프게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는 기술 배워 나중에 독립하는 게 나아."

"언니, 우리에게도 말할 기회 좀 줘요."

"호호호.........! 이젠 내가 그랬나?"

명희의 말에 웃으며 슬쩍 자리를 비켜주는 미정이었다.

"고마워요. 여보!"

"그 말 하려고 지금까지 차례 기다린 거야?"

"네."

"하하하.........! 참, 내! 당신은?"

이번에는 내 화살이 수정으로 향했다.

"저도 고맙지요."

"그런데 왜 말을 안 해?"

"밤에 몸으로 보답하려고 요."

"뭐? 소리나 덜 지르는 게 도와주는 겨."

"뭐예요? 언제는 소리 지르는 게 좋다면서요?"

"험, 험. 내가 그랬나?"

"호호호.........! 언니, 우리도 오늘 집이 떠나가도록 소리 한 번 질러보자고요."

명희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미정이 말했다.

"나는 그게 잘 안 돼."

"신혼 초에는 잘만 지르더니?"

"그때는 아파서고요."

"그래?"

이때 효정이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현관에서 달려 나오며 손부터 벌렸다.

"아빠, 선물?"

"이놈들이 습관이 돼놔서. 학원은 갔다 온 거야?"

"네, 아빠! 선물 없어요?"

"오늘은 현찰이다."

나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선물 대신 용돈을 주기 위해 패스보드를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와........! 이건 우리나라 돈이 아니네요."

"그게 달러라는 거야."

"미국 돈요?"

"그래."

"이게 몇 달러야? 하나 둘.........."

"스무 장이네요. 이게 한국 돈으로 치면 얼마예요? 아빠!"

"음..........! 요즘 환율이 달러 당 725원이니. 계산 해봐."

"에게, 얼마 안 되네요?"

"얼마인데?"

"14,500원요."

"뭔, 계산이 그렇게 빠르냐?"

"요즘 속셈학원 다니잖아요."

"참, 좋은 세월이다. 우리 때는 학원 근처도 못 가봤다. 아예 그런 학원이 없었지."

"그 시절이 더 좋았겠네요."

"뭐?"

"아예 없었으니, 부모들이 학원가라는 잔소리는 안 했을 것 아니 예요."

"하하하..........! 참 내, 할 말 없다. 자 들어가자."

"네~!"

우리는 효정을 앞세워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아이들은 학원에서 다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일찍 퇴근한다고 해서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곧 저녁 식사를 했고, 먹는 중에도 하나 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것은 곧 나에게 쓰고 남았던 달러가 달아나는 소리였다. 이제 그나마 남았던 달러도 다 떨어져 얼마를 주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장모님이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사위!"

"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막내가, 올해 시험을 쳐서 당당히 합격해가지고, 지금 연수원에 들어가 있질 않나?"

"네, 얘기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좋은 부서로 발령을 내줄 수 없나?"

"영업부서가 제일 좋은데, 그곳으로 보내 줄 까요?"

"영업?"

놀란 얼굴로 반문하시던 장모님이 손까지 저으며 말씀하셨다.

"그러지 말고, 사무직으로 보내주시게."

"젊어서는 고생 좀 해봐야, 제대로 된 유능한 사원이 된다고요."

"그래도 걔는 어릴 때부터 주변머리도 없고, 그냥 사무직이 좋겠네."

"알단 적성 테스트도 하고 여러 시험이 있으니, 내 상황을 알아보죠."

"잘 부탁하겠네. 사위!"

"이러지 마십시오."

새삼 고개까지 숙이는 장모 때문에 나는 난처해, 제대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보내주신 후의에 감사드리면서, 늘 즐거운 날 되시길.........!

^^고맙습니다!

^^오늘도 보내주신 후의에 감사드리면서, 늘 즐거운 날 되시길.........!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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