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 대-- >
그로부터 나는 일주일 동안을 더 뉴욕에 머물며 새로 인수한 항공사의 안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항공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유가 인상과 환율이므로 특히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재삼재사 당부해 마지않았다. 미국이야 환율과는 상관없는 국가이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의 항공 산업은 유가가 30%, 환율이 20%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이므로 이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허브 켈러허에게가능한 기름을 덜 먹는 항공기로 구매하도록 했고, 2천년 초까지는 무조건 기름을 많이 먹는 노후기종은 퇴역시키고, 흑자 분을 유류절약형 항공기로 대체하는데 주력하도록 했다. 아무튼 내가 일주일을 미국에 더 체류했지만 끝내 조지 풋으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외국인이 미국의 군수업체를 정상적으로 인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귀국을 결심하고 미국 내 특별고문 2명 즉 이준구 그랜드마스터,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그리고 와인버거 월드항공 회장, 새로운 CEO 켈러허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켈러허의 말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잘들 계시오. 가끔 내 들리리다."
"회장님, 바로 존 에프케네디 공항으로 가시는 거죠?"
"그야, 물론이죠."
"그곳에는 이미 전 팬암 회장이 타던 대형 자가용 비행기가 이미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걸 타고 다니시죠."
"거참.........!"
갈수록 가관이었다. 헬기도 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대형 자가용 비행기까지 타는 신세로 발전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 700여 대가 넘는 항공기를 소유한 몸이 초라하게 시간 맞추어 여객기를 타는 것도 어째 째째한 생각이 들어 좀 그렇다.
"고맙습니다."
간단하게 대답한 내가 수행원들을 데리고 막 승용차에 오르려는데, 한국의 대통령에게 생각이 미쳤다. 나는 대형 비행기를 타는데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중형 비행기를 타고 다니게 하는 것도 좀 그랬다. 그래서 내가 켈러허에게 말했다.
"보잉에 얘기해서 한국 대통령 전용기 하나 주문해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미련 없이 우리의 사옥을 떠났다.
내 전용 비행기가 미국 본토를 떠나 태평양 상공에 진입하자 나는 끝내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미국의 내노라하는 군수업체를 하나 인수해 못난 조국을 군사강국으로 태어나게 하고픈 꿈이 좌절되는 느낌에서였다. 흐린 내 눈에 앞으로 내가 인수하려던 업체의 행로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전 세계 군수산업 시장이 축소됐다. 이의 영향으로 제트기 등 군용 비행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던 맥도널더글라스가 경영난에 빠졌다. 1996년 미국 보잉이 맥도널더글라스를 인수해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보잉의 독점이 심해질 것을 우려하며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EU측에 무역 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미국과 EU의 긴장이 높아졌다. 1997년 보잉은 미국 항공사들과 맺은 항공기 독점 공급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EU집행위원회가 이 양보안을 받아들여 결국 보잉과 맥도널더글라스의 합병이 승인됐다.
결국 F-16을 생산하던 제너럴다이나믹스 포트워스(Fort Worth) 사의 항공기 부문도 1993년에 록히드에 인수되었다. 또 록히드는 1995년 마틴 마리에타와 합병하여 거대한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마틴 마리에타(Martin Marietta)는 1961년에 세워진 전자, 화학, 항공 분야의 회사다.
내 대형 전용비행기가 막 한반도 상공에 진입했을 때였다.
김경제 비서실장이 내 전용 룸에서 독서를 하고 있는데, 찾아들었다.
"회장님, 중요한 안건이라고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받아야지요. 이쪽으로 돌려주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나는 곧 내 전용선으로 연결된 전화기를 들며 생각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은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 것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내에서도 위성전화로 모든 업무를 다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나는 전화기를 들며 다시 와 서있는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지금 한국시간으로는 몇 시죠?"
"오전 10시 15분입니다."
"알았습니다. 여보세요!"
"회장님! 방령 차장입니다."
"말씀하세요."
"우리 그룹의 대정항공이 한국형 전투기사업의 주관사로 선정되었습니다. 전투기로는 제너럴 다이내믹스사(GD)의 F-16 전투기로 선정되었다는 정부 발표가 방금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
"알겠습니다."
이후 방령이 이야기한 내용은 정부가 전에 발표한 내용과 하등 다름이 없었다. GD사와 총 5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후, 1단계로 12대의 F-16 전투기를 도입하고, 2단계로 36대를 조립 생산하는 한편, 3단계 때는 주요 부품을 국산화해 72대의 항공기를 생산, 2000년 4월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수행원들을 데리고 김포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어떻게 알았는지 무수한 기자들이 또 진을 치고 있었다. 내심 한숨부터 나왔지만 그들 앞을 통과하지 않고는 한국 땅을 제대로 밟을 수가 없는지라 나는 그들을 향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10여 미터 전방부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하는데 눈을 감고 찍힌 것도 많을 테지만 용케도 눈감고 찍은 사진은 보도가 안 되니, 그것은 다행이라 할까 그럴 정도였다. 곧 눈부신 불빛 속에 수없는 마이크와 녹음기가 내 입을 향해 들이닥쳤다.
"우선 한국형 전투기 사업의 주관사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감사합니다. 우수한 전투기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 자주국방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관건은 국산화율을 얼마나 끌어올리는 것 아닙니까?"
"정부 발표로는 36%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최소한 50% 이상은 끌어올려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 자신도 있습니다."
"무슨 복안이라도 계신가요?"
"그것은 기밀에 속한 사항이라 여기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끝나는 시점에 보시면 제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면허생산 후 수출의 길까지 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부에서는 이마저도 관철을 못한 모양인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형전투기 사업도 빅뉴스지만, 미국 조야를 들끓게 한 현존 최고의 항공사를, 자랑스럽게도 한국 기업인이 인수했다는 보도에 대해, 국민들이 크게 자긍심을 느꼈는데, 이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시운이 맞아떨어져 인수하긴 했습니다만, 앞으로의 경영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여 최대 항공사가 한국인의 소유라는 자긍심을 영원히 국민여러분께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말씀을 참 잘하시는 군요."
"무슨 말씀입니까? 지난번에는 저성장의 원인이 근로자에게 있다고 하다가 전 국민의 반 이상을 적으로 돌린 적이 있는데.........."
"하하하..........! 기업 총수로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씀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이해는 하면서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아직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으십니까?"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질문 다했으면 비켜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금번 F-16기종으로의 선정과정에서 공군참모총장을 가두는 등 불상사 속에 결정이 된바, 세간에 혹시 로비에 의한 사전 결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처음 듣습니다만 답할 입장이 아니군요."
"그럼, 회장님은 개인적으로 F-16이 낫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맥도널드더글러스 사의 F/A18-호넷이 낫다고 보십니까?"
"기자분이 제 입장이라면 여기서 호불호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답입니다."
"제가 듣는 어감 상으로는 더글러스사의 제품이 낫다고 들립니다만?"
"제 입장은 정부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 뿐, 호불호를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만 명백히 밝혀둡니다."
"팬암 말고도 이스턴 항공사도 금번에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팬암은 알아도 이스턴은 잘 모르는데, 이스턴은 어떤 항공사 입니까?"
"그 역시 미국 굴지의 항공사로서 주로 미주노선만을 뛰던 항공사입니다. 이 말고도 금번에 저희 그룹에서는 사우스웨스트라는 미국의 저가항공사도 같이 인수해 미주지역 망을 완벽하게 구축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대정항공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팬암이 세계적인 노선 망을 구축하고 있으니까요?"
"좋은 질문 해주셨는데요. 팬암이 어려워지는 과정에서 환태평양 노선을 타사에 양도한 사실이 있습니다. 해서 대정항공은 이를 보완하는 노선을 채택하면 전 세계 항공망을 완벽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공사 인수에 대한 답변에는 입이 저절로 벌어지시면서, 기종 선택의 호불호에 대해서는 조개입이 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 되게 끈질기신데.......... 저도 한 고집 합니다. 답변 안 한다면 절대 안 합니다. 아니 못합니다. 그만 비켜주시죠."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미국 현지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회장이나 사장을 모두 미국인으로 선정하셨는데, 꼭 그렇게 할 이유라도 계셨습니까?"
"한국인들과는 그네들이 정서가 많이 달라요. 그래서 가능한 현지인을 선임하고자 했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되는 건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그룹이 아직 항공 산업이 초창기라서 그렇지 앞으로는 많은 인재가 나오리라 봅니다. 해서 종국에는 한국인 CEO도 출현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바쁘신 데도 기자회견에 응해 주셔서."
"또 봅시다. 그리고 잘 써주시면 고맙겠고요."
"옛 기자신분으로서 그런 말을 할 때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하하하........! 그냥 웃지요. 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죠."
"하하하........!"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