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 대-- >
다음 날 아침.
나는 조회가 끝나자마자 비서실장과 기획실장 그리고 경리 이사를 불러 특별지시를 내렸다. 곧 지금까지 상장이 되지 않은 그룹 내 모든 계열사들을 국내 주식에 상장하라는 지시였다. 그리고 대정전자와 반도체 등은 뉴욕과 런던 증시에도 상장을 하도록 했다. 미래의 투자에 대비한 대대적인 자본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이날부터 경리부서가 공모주 모집 위한 준비로 야근을 밥 먹 듯 하는 가운데, 미국에는 '월드항공(World Airlines)'이라는 자본금 100억 달러의 현지 법인 하나가 탄생했다. 현지 법인 등록 인가가 나자마자 나는 일부 사장단 및 수행원을 편성하여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 주요 인물은 이상백 엔지니어링 사장, 이시발 대정항공 사장, 김경제 비서실장, 김재익 기획실장, 통역으로 올리비아 리 및 경호원들이 그들이었다. 우리는 곧장 법인 사무실이 있는 매트 라이프 빌딩으로 향했다. 58층인 이 건물은 뉴욕의 랜드 마크 중 하나로 전에는 '팬암 빌딩'으로 아주 유명한 건물이었다. 우리가 이 건물 앞에 도착하니 친근한 인물 몇몇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이범석 전략기획조정 실장 및 협상 팀 3인방, 엄삼탁 해외정보실장 또 금년 1월부로 신임 미주지사장이 된 송병석 이사, 그리고 내 제안에 의해 우리그룹의 고문으로 위촉된 미국의 태권도 개척자인 그랜드 마스터 이 준구 씨와, 나의 눈에 너무 익숙한 미국인이 2명이 더 서 있었다. 조지 슐츠(George Pratt Shultz) 전 국무장관과캐스퍼 와인버거(Caspar Willard Weinberger) 전 국방장관이 그들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Willard Weinberger) 전 국방장관이 그들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사람들로 둘 다 벡텔과는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조지 슐츠는 1974년 벡텔사(社) 부사장으로 재계에 투신, 사장·회장을 역임한 후, 1982년 7월 전격 국무장관에 발탁될 때까지 벡텔에 근무했던 사람이고, 와인버거는 1975∼1981년 벡텔사(社) 특별고문으로 재직 중, 국방장관에 발탁되어 벡텔사를 떠난 사람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그룹의 엔지니어 사장 이 상백 박사와는 많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들을 금번에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하면서, 이 사장에게 지시를 하여 이들을 우리 그룹의 특별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이 지금 나를 마중 나와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차례로 이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그랜드 마스터!"
"하하하..........!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요."
이어 나는 조지 슐츠와도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상견례 겸 인사를 했다.
"강 대정입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죠지요. 나 역시 동감입니다."
이어 나는 또 와인버거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강대정입니다. 함께 일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캐스퍼입니다. 동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별 말씀을......."
이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우리식구들과도 또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의 사무실이 있는 50층으로 향했다. 금번에 50층 전체를 임대한 우리는 사장실로 지정된 방을 찾아들었다. 곧 넓은 회의용 탁자에 마주 앉은 우리는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이스턴 항공의 매입 문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이번에 이스턴 항공의 매입 문제를 책임지고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범석 시장에게 눈을 맞추며 묻자, 신중한 표정의 이 사장이 답변을 했다.
"우리가 그들의 부채 전액을 떠안는 조건으로 인수 협상이 진행 중이나, 가격 절충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부채가 총 얼마입니까?"
"35억2천만 달러입니다."
"자산은 요?"
"현재 보유 중인 항공기 대수만도 총 304 대로 엄청나지만, 주로 중형 이하가 많습니다. 현지 회계사가 엄밀히 파악한 결과 27억2천7백만 달러입니다."
"자산을 빼면 부채는 그렇게 많지 않군요."
"문제는 근 100여 개에 달하는 항공사의 난립으로 계속해서 적자를 보고 있으니, 아무도 인수를 안 하려 하는 것입니다."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결론을 유보하고 미국인 두 고문에게 물었다.
"우리가 이스턴 항공사를 인수한다는데 대해서 미국 교통운수국은 무어라 합니까?"
"그것이 글쎄, 혹을 하나 붙이려고 해서 말이오.........."
여기까지 말하고 벗어진 이마를 쓰다듬는 슐츠를 대신해 와인버거가 상세한 답변을 했다.
"우리 월드 항공에서 이스턴을 인수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으나, 문제는 파산 직전의 팬암마저 인수했으면 하니 참으로 곤란한 일이오."
"팬암항공사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마저도 계속된 테러 공격과 적자 경영으로 파산 일보 직전이거든요."
"허허, 그것 참...........!"
"사장님 그것뿐이 아닙니다."
내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끼어드는 사람이 있어 바라보니 미주지사장 송병석 이사였다.
"송 이사는 또 무슨 문제가 있소?"
"이 건물주마저도 능력이 되면 이 건물을 인수하라고 해서.........."
"이 건물이라 하면 전의 팬암항공사 사옥이었던 것을 현 보험회사가 인수해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오?"
"그렇습니다. 1981년 현 건물주인 매트라이프가 4억 달러에 인수해 본사 사옥으로 사용 중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매각을 하려는 것이오?"
"이 보험사가 타 그룹의 보험사업 부문을 인수하려는 모양입니다."
"허허.........! 그것 참! 그러나저러나 얼마를 달라는 데요?"
"6억 달러입니다."
"무슨 10년 사이에 50%의 차익을 남겨먹는단 말이오?"
"저는 회장님이 결정하실 일이라고 가타부타 말은 안 했습니다만......... 현재 그렇게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건물이야 급할 것이 없으니 일단 내버려 두고, 그래서 팬암의 인수 조건에 대해서 알아보셨습니까?"
"그들도 부채 인수 조건입니다만.........."
"부채가 얼마인데요?"
"아직 거기까지는........"
그렇게 말하고 또 다시 머리를 긁적이는 슐츠 특별고문이었다. 이에 내가 최종 단안을 내려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스턴 항공은 좀 더 깎아, 30억 달러까지 절충을 해보되, 정 안되면 마지노선은 33억 달러입니다. 그리고 팬암 항공사에 대해서는 엄 정보실장님께서 최대로 빠른 시일 내에 정보를 모아주시고, 이 실장님은 일단 운이나 한 번 떼어보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명받은 사람들이 고개를 조아리는 가운데, 나는 송 이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서 4억5천 달러면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전하시오."
송 이사가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끝으로 나는 오늘 회의를 마쳤다. 이후 나는 이곳에 체류하면서 인수사항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급하면 한밤중이라도 전화를 받고 최종 협상에는 내가 나가 단판을 짓기도 했다. 그 결과 최종 이스턴 항공은 33억 달러에 인수를 했고, 팬암은 56억 달러에 인수를 했다. 그리고 전 팬암 빌딩마저도 5억 달러에 인수해 우리의 미주 사옥으로 쓰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100억 달러의 자본금 중 6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이자를 줄이기 위해 모두 은행부채를 청산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가 이 과정에서 가장 고민이 된 것은 항공사야 원래 운영하려고 한 것인데다, 팬암은 국제선, 이스턴 항공은 국내선 위주니, 구색이 잘 맞아 인수하는데 주저함은 없었지만, 팬암 빌딩만은 낭비가 아닌가 해서 주저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원 역사를 살펴보면 잘 한 일이었다. 원 역사에서는 2005년 4월 2일 미국 뉴욕시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보험회사 매트라이프의 사옥이 미국 부동산 거래역사상 최고가인, 17억2천만 달러(1조7천억 원)에 매각됐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일이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매트라이프가 씨티그룹 보험사업 부문 인수 재원 조달을 위해, 한때 세계 최대의 업무용 빌딩이었던 이 건물을, 미국의 부동산 개발업체 티시먼스페이어 부동산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사상최고가에 매각했다고 밝힌 것이다. 아무튼 이 외에도 내가 소유하게 된 항공사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면 이렇다. 이스턴 항공(Eastern Air Lines)은 1926년 설립되어 1991년 현재 미국 정부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어, 파산직전에 있는 미국의 항공미국 최대의 국내선 항공기를 편성하고 있는 항공사 중 하나였다.1978년 10월에 항공 규제 완화 되면서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수많은 항공사가 생겨나자, 경영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국내선 위주지만 1985년 영국 런던에 국제선 노선을 취항 했고, 이후에 잘못된 경영으로 인해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사측은 회사 구조 조정을 단행 했지만 이런 이유로 이미 기존의 비용 문제의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고 경영난으로 인해 구조 조정으로 직원을 해고했다. 이후에 노동조합 간의 분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1989년 엄청난 손실로 인해 일시적으로 파업을 하면서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원 역사에서는 1991년 1월 18일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지만, 우리와의 협상을 하고 있는 관계로 아직 존속하고 있는 항공사였다. 보유 항공기 대수도 304 대로 엄청나지만, 주로 중형 이하가 많았다.
팬아메리칸 월드 항공(영어: Pan American World Airways)은 1927년 설립되어 원 역사에서는 1991년에 파산한 미국 항공사로 팬암(영어: Pan Am)이라는 약칭으로 알려져 있다.1930년대 남아메리카와 아시아 지역 항로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전성기인 1960년대에 세계 최고의 항공사와 미국의 상징으로써 군림했으나 계속되는 사고와 반미주의 테러, 그리고 1970년대의 오일쇼크로 인해 파산했다. 보잉 747-100 항공기를 최초로 발주한 항공사로
"클리퍼"
라고도 불리는 팬암의 항공기들은 미국만 아니라 서구권 항공 산업의 상징이었으며, 선진적이고 혁신적인 기내서비스로 인정받았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방대한 국제선 시스템을 구축한 팬암이었지만, 미국 국내선 시장에서는 많이 약했고, 이를 보강하기 위해 국내선을 기반으로 한 내셔널 항공을 인수하였다. 그러나 사용하는 항공기의 기종 차이, 엔진 등 부품의 차이, 그리고 기반 공항의 차이 등으로 오히려 팬암의 부담만 가중시켰으며, 때 맞춰 일어난 유류 파동과 동시에 미국 정부의 규제 완화로 인해 팬암은 기울기 시작했다.1977년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에서 일어난 팬암·KLM 공중 충돌 사고로 583명이 사망했고, 61명이 부상당하는 등 항공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고로 기록되었으며, 이 사고로 인해 팬암의 신뢰성이 심각하게 위협되었다. 또한 유가족들의 소송 시비로 팬암의 재정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1980년대는 팬암에게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1981년 본사 빌딩을 매각하는 등 부심했으나, 설상가상으로 1986년의 팬암 73편이 파키스탄에서 테러를 당하고, 1988년 12월 21일 팬암 103편이 로커비 상공에서 테러리스트의 폭탄 테러로 폭발하는 등, 연속되는 사고와 테러 등으로 팬암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로커비 상공의 테러 배후국으로 리비아가 지목되기도 했다. 결국 1991년 12월에 팬암은 공식적으로 파산하게 되는 것을 금번에 우리 그룹에서 인수하게 된 것이다. 총 항공기 보유 대수 226대로 국제선을 주로 뛰던 항공사답게 주로 대형여객기였다. 아무튼 대형 항공사 2개를 인수하자마자 나는 직접 발로 뛰면서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 일환으로 사고와 적자로 얼룩진 두 회사를 병합하여 사명부터 변경하였다. '팬 이스턴 월드항공(Pan Eastern WorldAir Lines)'이라고.
============================ 작품 후기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감사합니다!
^^